•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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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교회는 위기에 처해있다. 한국교회 역사상 교회가 오늘처럼 사회로부터 불신을 받은 일이 없었다. 초기 한국교회는 국민적 신뢰를 받았고, 민족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교회를 향하여 도움의 손길을 애절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1890년대 초 우리나라가 시련의 와중에 있을 때 <코리안 리포지터리>(Korean Repository)는 “이 가련한 조선인들이 두 손을 뻗쳐 하나님을 찾고 있다”고 썼다. 1895년 10월 을미사변으로 백성의 체면이 처절하게 유린당하고 일본의 조선침략 야욕이 드러났을 때, 교회는 나라사랑의 노래를 지어 민족의 아픔을 평풍처럼 막고 일어섰다. 민족에 대한 충애(忠愛)로 교회는 신뢰를 받았고, <독립신문>은 기독교를 “충군애국(忠君愛國”의 종교로 인식할 정도였다. 삼일운동당시만 하더라도 기독교는 한국사회의 선한 이웃이었다. 당시 기독교 신자는 전체인구의 1%에 불과했으나 독립만세운동의 준비 및 거사 단계에서 25-30%의 역할을 감당했다. 중국 공산당운동의 아버지라 불리는 천두슈(陣獨秀, 1879-1942)는 3.1운동에 참여한 한국기독교의 역할을 알게 된 후 종교를 미신이라고 보았던 기존의 입장을 버리고, “우리는 조선의 독립운동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았다는 사실을 볼 때 기독교를 경시하던 사상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교회는 민족과 함께하는 고난 받는 교회였고, 따라서 존경과 신뢰를 받았다. 이런 전통은 해방당시까지 계속되었다. 교회는 근대학교와 서구식 병원을 세워 인재를 양성했고, 육신의 아픔을 안고 고통당하던 자들을 치료해 주었다. 금주단연운동을 전개하고 여권신장에 기여하였고, 민주의식을 고취하고, 미신을 타파했다. 참된 효행과 바른 가정생활을 제시하였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는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정부수립의 근간을 제공했다. 따라서 기독교는 계몽과 계도자의 역할을 감당했다. 
그런데 해방 이후 사정은 달라졌다. 신앙의 자유는 주어졌으나 해방정국의 교회는 대립하였고, 분열하기 시작했다. 친일적 기회주의자들을 해방 후에도 득세하여 교회를 혼란에 빠뜨렸고, 교회는 이들을 잠재우지 못함으로써 신앙정기(正氣)를 바로 잡지 못했다. 1950년 4월 대구제일교회당에서 모인 제36회 총회에서는 한국기독교역사상 최초로 경찰이 투입되었다. 어처구니없게도 예상되는 폭력 사태를 대비한 치안(治安)을 위해서였다. 그로부터 두 달 후 6.25가 발발했다. 당시 손양원을 비롯한 많은 영적 지도자들은 한국교회의 대립과 분열이 전쟁의 내적인 원인이라고 인식했다. 1950년대 교회분열과 전쟁의 폐허 속에서 이단들이 출현하고 창궐하기 시작했고, 교회의 대 사회적 영향력은 축소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이후 국가주도형의 성장주의에 영향으로 교회는 수적 혹은 외형적 성장에 치중하여 극심한 개교회주의에 빠졌다. 섬김과 봉사, 사랑과 배려, 절재와 검약, 겸손 등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 혹은 거룩한 삶에 대한 이상은 권장되지 못했다. 현세적 풍요를 신앙의 이름으로 정당화함으로써 천박한 기독교로 변질되었다. 무인가 미자격 신학교의 범람, 선교라는 이름의 상업주의, 사려깊지 못한 노상전도행위 또한 기독교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있다. 혹자는 ‘무례한 기독교’라고 혹평한다. 
교회성장이 멈춘지 오래고 기독교 인구는 감소하고 있다. 주일학교가 사라지고 있고 교회구성원의 노령화는 심화되고 있다. 이런 판국에서 이단이 활개치고 있고 신천지가 도래했다며 전국교회를 들쑤시고 있다. 한국교회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오늘 한국교회는 기로의 가장 큰 문제는 지도자의 비윤리적 행태이다. 도덕의식의 상실과 함께, 성직자의 성적 타락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교회의 계도적 권고는 능멸당하고 있다. 한국교회 문제는 목회자의 문제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무자격 신학교의 난립, 무자격 그리고 훈련되지 못한 목회자의 양산은 한국교회 근원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에게는 교회의 자정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개혁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우선 교회 지도자들의 통회자복이 시급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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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 한국교회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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