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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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주시는 하나님!
저자는 누가복음 15장 11~32절에 나오는 ‘탕자 이야기’ 비유는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 작은아들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아버지의 말을 충실하게 잘 들으며 집을 지킨 맏아들의 문제까지를 포함한 이야기라고 강조한다. 즉, 스스로 하나님을 잘 믿고 말씀에 따라 살아간다는 교만과 우월감을 빠진 자들을 책망하는 비유라는 것이다. 그 근거로 15장 1절과 2절을 제시한다. 즉,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고 수군거리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내용 중 하나라는 것이다.
세리와 죄인이 작은아들이라면,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맏아들이다. 저자는 오늘날 맏아들은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면서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교인들이라고 지적한다. 이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은 의미가 없다. 그들 스스로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자신의 구주이기 때문이다. 작은아들은 죄인임을 고백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오지만, 맏아들은 자신이 그동안 했던 것을 내세우며 잔치에 참석하는 것마저 거부한다.
이 책의 ‘탕부(蕩父)’라는 뜻은 모든 것을 ‘(자식들에게) 아낌없이 내주시는 아버지’라는 뜻이다. 즉, 작은아들이건 맏아들이건 집 앞으로 나와서 아무 조건 없이 베푼 잔치에 모두가 참석하길 권하는 분이시다.
◈ 《탕부 하나님》 || 저자인 팀 켈러(Timothy Keller)는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리디머교회 담임목사로서, 모교인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가르쳤다. 저서로는 《센터처치》 《기도》 등이 있다. 원제 The Prodigal God(2008). 두란노, 2016. 10,000원.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이 책을 펼치면 제목 다음 장에 바로 ‘프러디걸(Prodigal)’이라는 단어 해석이 나온다. ‘탕자’의 ‘탕(蕩)’에 해당하는 단어로,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1) 무모할 정도로 헤프게 베푸는, 2) 남김없이 다 써 버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방탕하다, 낭비하다’는 뜻과 함께 ‘아낌없이 베풀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탕자보다 맏아들의 문제에 초점 맞춰
김길구 : 이 책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탕부(蕩父) 하나님’은 ‘아낌없이 베푸시는 아버지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같은 글자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탕자(蕩子)’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탕’이 사용되었습니다.
김수성 : 이 책을 읽으면서 먼저 눈에 확 뜨인 부분은, 누가복음의 ‘탕자의 비유’가 작은아들보다 맏아들에 관한 문제에 더 초점을 맞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즉, 이 비유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났다가 예수님께로 돌아온 작은아들 같은 세리나 죄인보다는, 나름 충실하게 하나님을 믿어왔다고 자신하는 맏아들과 같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겨냥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2절). ‘서사비평’으로 탕자의 비유를 읽은 것이죠.
김현호 : 이 책을 읽을 때가 성탄절 즈음이었습니다. 이 탕자의 비유를 읽으면서, 성육신하여 십자가 고통을 당하면서까지 우리를 천국잔치에 초대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맞닿아 있음을 느꼈습니다. 탕자든 맏아들이든 누구든 상관없이 잔치에 참여하여 함께 기뻐하기를 절실히 바라는 탕부 하나님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김길구 : 그동안 우리 교회가 탕자의 귀환에만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함으로써, 정말 중요한 형에 관한 이야기는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생의 문제가 비율법적이고 윤리적인 문제였다고 하면, 형은 율법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잘 믿는다는 바리새인들의 외식주의를 비난하였고,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의 율법주의와 싸운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김현호 : 저자는 탕자보다는 형의 모습을 분석하는데 책의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두 아들의 비유는 형의 영혼을 예의주시하다가 그에게 마음을 돌리라고 신신당부하는 것으로 절정에 달한다”고 썼습니다. 그러면서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서도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교인들 중에 형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고 진단합니다.
김수성 :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실감했습니다. 교회에 다시 나가게 되었을 때, 뭔가 높다란 벽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던 분들만의 교회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법 긴 시간 동안 나는 이방인이었고, 그들과 같이 어우러지기보다는 겉돌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렘브란트. 탕자의 귀환.jpg▲ 이 그림은 렘브란트가 말년에 그린 ‘탕자의 귀향’(1699년경)이다. 젊었을 때 큰 성공을 거뒀으나 허랑방탕한 생활로 비참한 말년을 맞이했던 렘브란트는 스스로에게서 탕자의 모습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한편, 화가 난 듯 서있는 형의 모습에서 우리 또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형의 문제점은 오히려 ‘의로움’ 때문
김길구 : 한편, 이 비유는 우리 교인들의 인식 중에 세상과 교회를 구분하는 것에 대한 질책이 아닐까요. 즉, 세상 사람들의 비윤리적이고 허랑방탕한 생활과 교인들의 율법주의적 삶을 구분하여, 전자는 탕자요 후자는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선을 긋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언급한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둘 다 영적으로 잃어버린 존재라 규정했습니다.
김현호 : 팀 켈러는 여기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형을 아버지의 잔치에 동참하지 못하게 막은 것은 오히려 착하기 때문이고, 자신의 도덕적 이력에 대한 교만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즉, 그가 잔치에 동참하지 않은 것은 그의 악(惡)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의(義)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던 것을 완전히 뒤집어버립니다.
김수성 : 극단적으로 말하면 탕자의 귀환을 거부하는 교회의 모습, ‘자기들만의 교회’에 자족하는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기독교인이 늘어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을 겁니다.
김길구 : 맏아들과 둘째 아들의 딜레마는 궁극적으로 우리 교회의 공동체 의식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기독교계에서 일반적인 사회 현상에 대해 배타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기독교를 배타적인 종교로 인식하고, 갈수록 교회와 멀어지는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김현호 : 한국 교회에 위기의식이 널리 퍼지게 된 것도 바로 형의 시선으로 교회공동체를 규정해 왔고, 이 사회를 배척해 왔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엄격한 종교적 도덕주의자’가 사실은 또 하나의 탕자의 범주에 들어가고, 하나님의 사랑의 빛을 오히려 감추는 것에 다름이 아닙니다.
김수성 : 그런 경향이 결국 교회 스스로 사회와는 별개의 모습으로 존재하게 하고, 사회는 그런 교회를 향해 얼굴을 돌리는 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죠. 즉, ‘차이’를 포용해야 하는데, 이를 배척하는 경향을 보인 것이죠.

#종교개혁 초심으로 잔치에 동참해야
김길구 : 탕자의 비유를 종교가 아닌 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기득권자들과 일반 국민들과의 괴리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형의 회개 없이는 진정한 공동체가 이뤄질 수 없듯이, 우리 사회도 그러한 형국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김현호 : 오늘날 한국 사회에는 공무원, 정치인과 청와대에 근무하는 이들 중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지만, 이들이 윗사람에게 의무적인 순종이나 맹종을 함으로써 나라가 도탄에 빠졌습니다. 순종이 결과적으로는 악에 봉사하는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고, 불순종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김수성 : 최근 부의 양극화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가난의 대물림’이라는 말이 나오듯,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사회 구조, 즉 사회 시스템에 가장 큰 원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득권자들은 개인적인 부분에만 초점을 맞춰 개인의 노력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치부합니다. 탕자이기 때문에 잔치에 동참하면 안 된다는 형의 논리와 비슷합니다.
김길구 : 이 책에서는 제대로 된 형의 모습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 던지는 뼈아픈 메시지라 할 수 있습니다. 동생이 자기의 재산을 갖고 집을 나가 방탕한 길로 나갔을 때, 형은 단호히 그 동생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섰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그 동생을 데리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바로 형의 사명이라는 것이죠.
김현호 : 참 형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새해를 맞아 우리 성도들 모두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와야 할 것입니다. 새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형의 모습을 한 성도든, 탕자였던 사람들이든, 모두가 종교개혁 당시의 마음을 품고 귀향의 행렬을 이뤄 영원한 잔치에 참여하기를 기도합니다.
김길구 : 그동안 우리 교회는 소위 ‘잘 믿는 형’만을 위한 교회가 아니었는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이제 정유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집 나간 동생을 탕자라고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집을 나서 동생을 찾아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형의 모습이 더욱 많아지는 새해가 되길 빕니다.

다음에는 김동춘 권연경 조석민 유정훈 공저인 《성전과 예배당》(대장간, 2016)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독자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복과 건강을 기원합니다. [정리: 김수성]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탕자의 귀향》 / 헨리 나우헨 / 포이에마
《팀 켈러의 센터처치》 / 팀 켈러 /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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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양 읽기 22] 방탕한 동생을 찾아 집을 나서는 형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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