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정동희 집사.jpg▲ 정동희 집사
 
전남 광양에서 회사 구내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정동희 집사(71, 성은교회 안수집사)는 한편의 영화 같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사형수였던 그는 대통령 특별대사면에서 일반사면까지 받고 이제는 행정적으로 죄가 없는 사람이 됐다.
초등학교만 졸업한 정동희 집사는 자식들은 꼭 공부시키겠다는 목표로 경남 마산에서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살았다. 회사원, 운수업, 연탄소매업, 미곡상 등으로 밤낮없이 일했다. 미곡상회를 하며 종업원까지 거느리며 어엿한 사장이 됐고, 남부럽지 않게 돈을 모았다. 부가 축적되면서 유혹이 있었다. 그로인해 한 여인과 악연이 시작됐고, 결국 한 순간의 실수로 그녀를 살해한 사형수가 됐다.
1985년 12월 살인혐의로 구속되고 이듬해 5월 1심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감옥 안에서 죽는 날만 기다리던 그는 찰나의 순간, 찬송을 부르며 사형장에 들어가던 젊은 사형수를 보게 됐고 그 사람처럼 죽어야겠다는 생각에 예수를 믿기로 결심했다. 정 집사는 “예수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1년에 22독을 할 만큼 말씀을 붙들고 살았다. 마음이 평안해졌고, 아름다운 마음, 아름다운 생각으로 당장 내일 사형장에 들어간다고 해도 두려움이 없었다”고 말했다.
교도소에 있는 동안 대통령이 5번이 바뀌었고, 3번의 특별사면을 받았다. 사형수였던 그가 대통령사면을 받으며 무기형으로 감형됐고, 지난 2000년 다시 20년 징역형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2003년 크리스마스 특사로 가석방됐다. 그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연속으로 일어났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가 교도소에 있는 동안 그의 아내는 가정을 꿋꿋하게 지켰고, 돕는 손길들이 이어지면서 자녀들은 대학까지 진학하게 됐다. 그는 “사형수가 되면서 자녀 교육은 접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서 자녀 교육문제를 하나님께 부탁드리고 희망을 가졌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상의 수많은 천사들을 준비해주셨던 것 같다. 하나님의 귀한 종들을 통해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갔고 장남은 4급 서기관 공무원이, 차남은 시청 공무원이 됐다.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고 말했다.
출소 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고자 광양시 전역을 돌며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노인정, 양로원, 고아원, 장애인슄터, 독거노인 등을 찾아가 봉사하고 있다. 광양시장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또 자신의 시신과 장기를 학술용으로 기증하기로 서약하고, 재소자 정신교육, 교도소 내 기독교인 신앙간증 등 교정선교, 재소자 가족들을 위한 선교활동 등을 해오고 있다. 교도소에서 세 번을 죽다 살아났던 정동희 집사는 옥중간증수기를 3권의 책으로 펴냈다.
기자와의 인터뷰에 연두빛 한복을 입고 온 정동희 집사는 “하나님을 만나 마음이 아름다워져 아름다운 옷을 입고 다닌다”면서 “예수님에게 공감되게 살려면 나부터 그렇게 살아야 한다. 나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보고 예수님을 믿었는데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자 한다. 마음을 비워야 한다. 마음을 비우고 살면서 천국의 체험이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간증집회문의 010-7419-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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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사람이 살아왔으니 남은 생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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