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부산에 정착했던 첫 서양인 가족은 누구였을까? 그가 바로 1883년 10월부터 1886년 5월까지 2년 7개월 간 부산에 살았던 영국태생 미국인 윌리엄 넬슨 로바트(William Nelson Lovatt, 1838-1904)였다. 영국인인 그는 1883년 10월 단신으로 부산으로 와 초대 부산 해관장으로 근무하던 중 1884년 여름 미국출신의 부인 제니(Jennie)와 막내 딸 마벨(Marbel Elizabeth)이 부산으로 와 정착함으로 부산에 거주한 첫 서양인이 되었다. 로바트에게는 장녀 헬렌 마가렛(Helen Margaret)과 차녀 이다 엘리자벳(Ida Elizabeth), 장남 존 쇼우(John Show)가 있었으나 교육문제로 미국 미네소타 주 레익랜드(Lakeland)에 남겨두고 부인과 4살 된 막내딸만 데리고 부산에 거주하게 된 것이다.
부산해관은 1883년 7월 행정업무를 시작하였는데, 당시 본정(本町)으로 불리던 동광동 2가 3번지 소재 일본인 가옥을 빌려 개청했다. 1885년에는 현재의 부산데파트 자리에 목조 2층 청사와 보세창고 1동을 지어 이전하게 된다. 로바트가 내한했을 당시 별도의 사택이 없었음으로 지금의 동광동 1가 입구쪽의 일본인 주택에 기거했는데, 그가 부산에 거주하는 동안 해관업무를 총괄하면서도 해안지대에 해관청사를 건축하고 보세창고를 지었다. 사실 그는 주목 할만한 역사적 인물은 아니었다. 따라서 그는 한국의 역사가들에게 알려져 있지도 않고, 그의 행적은 주목을 받지도 못했다. 그러나 최근 그의 일기, 편지 그리고 여러 사진이 발굴되어 조선 후기 격변기에 대한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다.
이런 자료를 근거로 웨인 패터슨(Wayne Patterson)은 로바트에 대한 책 『폐하의 분부를 받들어』(In the Service of his Korean Majesty)를 썼는데, UC버클리의 동남아시아연구소에서 출판되었다. 나는 우연하게 영자신문 ‘코리아 타임’(Korea Times)에서 이 책자를 알게 되었고, 급하게 주문하였으나 여러 일로 분주하여 탐독을 미루고 있다. 그는 당시 흔치 않던 사진기를 소지하여 그가 남긴 사진 자료는 중요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북장로교의 사이더보텀(Richard Sidebotham)의 사진이 1899년 이후 것이고 엥겔(G. Engel)의 사진이 1900년 11월 이후의 것인 반면에 로바트의 사진은 1883~ 85년 부산 사진이니 그 가치가 높을 수 밖에. 지금의 광복동 롯데백화점에 인접한 해안 사진을 비롯하여 북항과 남항 자칼치 사진, 용두산 송림 아래의 일본 영사관 사진, 광복동 일본인 거리, 부산포 내항 전경, 일본인 거류지 사진, 자성대 성벽이 보이는 부산진 사진 등은 로바트가 남긴 역사의 기록이다.
부산에 거주한 첫 서양인 가족 로바트는 청나라의 압력으로 묄렌돌프가 해임되자 자신도 재신임을 받지 못하고 결국 부산을 떠나게 된다. 복잡하게 얽힌 조청(朝淸) 간의 정치적 이해관계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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