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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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이단 교주들의 성경해석은 ‘창의적’이다. 대부분 정상적인 신학교육과 사회교육 과정을 결여한 채, 성경을 보는 나름대로의 눈은 가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성경의 이곳저곳을 취사선택하고 짜깁기 하면서 자의적인 해석을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성경에 나오는 “동방”에 대한 해석을 하면서, 중국과 일본은 동방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중국은 한국보다 서쪽에 있기 때문이고, 일본은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이사야 41:1)는 말씀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즉 자신이 나타난 한국이 바로 동방이고, 자신이 바로 예언된 의인이요 재림주라고 성경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을 감행한다.
이러한 자의적인 성경해석은 최근 이단들의 특징이 되었다. 이로 인해 성경의 내용을 가감할 경우보다, 임의적인 해석을 시도할 경우에 그 이단성을 분별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성경해석의 오류를 분별하기 위해서는, 그 기준이 되는 성경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성경에 익숙하지 않은 ‘진짜’ 기독교인이, 성경을 오용해 다가오는 ‘가짜’ 이단들을 분별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가짜’ 이단이 ‘진짜’ 신앙인처럼 성경을 많이 읽고, ‘진짜’가 ‘가짜’처럼 성경을 안 읽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단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보다, 성경 말씀을 믿고 그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신앙인의 삶에서 더욱 중요하다. 우리가 말씀 위에 바로 섰을 때, 이단 분별은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 은혜의 선물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말씀 중심의 종교개혁과 경건주의의 정신이기도 하다.
초대교부 터툴리안은 그의 「이단논박」에서, “이단들은 성경의 말씀을 다 받아드리지 않는다.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성경의 내용을 가감하여 왜곡시킨다. 성경을 임의적으로 해석하여, 진리를 왜곡한다.”고 이미 경고한바 있다. 시대와 공간을 넘어 기독교 2천년 역사를 통해 이단들은 철저히 비성경적이다.
얼마 전 필자가 교회사학회에서 이단문제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는데, 논찬을 맡은 한남대 최영근 교수의 글이 인상적이었다. 즉 최 교수에 따르면, “척사위정(斥邪衛正)의 수세적, 부정적 대응의 이단대처가 아니라 위정척사(衛正斥邪)의 능동적, 근본적 처방, 곧 교회개혁을 통한 이단대처”가 필요하다고 필자의 논지를 평가해 주었는데, 깊은 공감을 느꼈다. ‘바른’ 말씀으로 ‘악한’ 이단사설을 이겨야 한다.
분명한 점은, 성경에 대한 비밀스러운 지식을 소유했기 때문이 아니라, 성경에 대한 무지가 이단들의 자의적인 성경해석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신천지가 거짓말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모략”의 원어적 의미는 거짓말이 아니라 ‘충고’이고, 하나님의교회가 남녀 하나님을 만들어내기 위해 사용하는 “엘로힘”의 원어적 의미는 하나님이 복수로 존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한 분 전능하신 하나님’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성경해석의 오류와 무지가 비상식적 이단활동의 근거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와 이단이 각각 성경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전혀 다르다. 즉 교회의 성경공부를 통해 만나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지만, 이단의 성경공부를 통해 만나는 이는 ‘신격화된 교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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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지일 교수의 이단바로알기] 오직 말씀 (Sola Scriptu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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