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홍석진 목사.jpg
피히(Pihi bird)라는 전설 속의 새가 있습니다. 이 새에게는 날개가 한쪽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참을 날아도 그저 같은 자리만 맴돌 수밖에 없는 비련의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여기 반전이 있습니다. 수컷 피히는 오른쪽 날개만을, 암컷 피히는 왼쪽 날개만을 갖고 있는데 이 둘이 만나서 한 몸을 이루면, 다른 새들이 감히 상상할 수도 없고 실제로 도달할 수 없는 곳까지 어디로든 훨훨 날아갈 수가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어찌 새들에게만 적용되는 이치겠습니까? 인간도 혼자 살 수 없고, 함께 할 때 더 빨리 더 멀리 갈 수 있는 법입니다. 성경 또한 사람이 연합할 때 아름다울 뿐 아니라(시 133:1) 더욱 견고하고 강하다고(전 4:12)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탠포드(Stanford) 대학과 EUI(European University Institutes) 교수를 역임한 대표적인 민주주의 이론가 필립 슈미터(Phillippe Schmitter)는 2012년 “양손잡이 민주화(Ambidextrous democratization)”라는 개념을 제안했습니다. 한국의 정치학자 최장집 교수는 『양손잡이 민주주의』(후마니타스, 2017)에서 이 이론을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민주주의의 보편적 원리, 규범, 가치에 대립되거나 그에 저항하는 조건들과 싸우면서 행위하는 진보적 민주파들을 ‘왼손잡이 민주파’라고 한다면, 한 나라의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 환경 속에서 배태된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면서 민주주의를 이해하거나 때로는 빠른 변화와 개혁에 저항하는 보수적 민주파들은 ‘오른손잡이 민주파’라고 할 수 있다. 사회의 변호와 발전은 이 둘이 공존하면서 양자가 변증법적으로 지양(止揚)해 나갈 때 가능할 텐데, 양손잡이 민주화란 바로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110p.)
탄핵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치러진 이른바 장미대선이라 불린 초유의 대통령 보궐선거가 끝났습니다. 누가 뭐랬건 결과가 어찌 되었건 한국 민주주의가 또 한 단계 성숙하고 발전했다고 봅니다. 다시 최장집 교수의 말을 빌자면, 우리 사회는 정치의 구체제(ancien régime)는 붕괴되었으나 권위주의적인 에토스를 많이 유지하고 있는 구사회(ancien société)는 여전히 크게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진보정권 10년, 보수정권 10년 운운하며 한 때는 금기시되었던 단어들을 아무런 거리낌이나 두려움 없이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자체가 벌써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진일보라 평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더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이번 선거를 계기로 대한민국 그리스도인의 신앙 또한 한 단계 더 성숙하고 발전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누가 되었건 이제 새롭게 선출된 대통령 또한 임기가 끝나면 사라지고 말 인생일 뿐입니다. 반면에 영원히 우리를 다스리고 통치하실 이는 주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또한 주님은 그를 믿는 백성들에게 결코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주셨으며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그저 “은혜를 받자”라고 외치는 일밖에 없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히 12:28) 이러한 믿음의 확신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인간 통치자의 교체에 결코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또한 누가 집권자가 되었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좌우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우주 만물과 인간 역사와 우리의 양심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면서, 이제는 서로 간에 필요한 날개가 되어 훌쩍 도약하고 훨훨 비상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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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양손잡이와 두 날개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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