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김광영 장로.JPG
지금, 개혁의 시대인 것처럼 들린다. 온통 개혁의 바람이 거세게 부는 것 같다. 정부도 그렇고, 기업도 그렇고, 대학도 그렇다. 그리고 교회도 그렇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기관들이 개혁만 외친다. 마치 “개혁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인식아래 어디라도 예외가 없이 그 길로 간다. 물론 전에도 있은 말이건만 새롭게 맞이하는 것 같다.
기업은 신 기술개발과 융합을, 또는 합병이나 인수 통합을 전제하는 M&A와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조직에 변화를 주는 개혁을 시도하여 체중을 조절하기도 한다. 대학도 취업을 비롯한 진로선택의 폭을 넓히는 커리큘럼을 조정하고 유사학과 또는 경쟁력이 약한 학과의 통폐합을 하고 있다. 이것도 부족하면 담을 넘어 대학 간 합병을 통하여 답을 얻으려 한다.
정부도 새롭기를 희망하며 조직 재정비를 하는 내치뿐 아니라 국제간 서로의 이익을 위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개혁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것은 물론 과거의 적대국이라도 손을 잡는 시대를 벌써 만들었다. 과거의 묶인 명분보다 실리를 찾아 국가원수가 직접 나서서 교역의 문을 열고 상호 이익극대화를 위해 FTA교섭하는 실정이다. 따지고 보면 재화에 대한 욕망은 인간뿐 아니라 어디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 이익의 극대화는 자본의 축적을 통한 거대주의를 추구하고 거기서 나오는 힘과 지위의 확보라는 유리한 변화를 목표하는 것이다. 이 개혁 또는 변화의 가치로 이러한 욕구충족의 목표에 초점을 맞추고 갖가지 미화된 이름으로 개혁을 시도하는 밑바탕에는 수량적인 인간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이 욕망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 확신한 바울은 “세상을 본받지 말라”고 성경에 기록하였다.
이런 때에 교회도 종교개혁 500주년의 해를 맞아 교회가 개혁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지도급인사들의 표현은 물론 관련세미나와 여러 형태의 프로그램이 이미 진행되고 또 강단의 외침도 많아졌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떠한 개혁을 추구하는가?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과 다른가? 물량으로 표시한다면 그들의 생각을 뛰어넘었는가? 성경 롬 12장의 말씀 “세상을 본받지 말고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입어라” 한 것같이 세상과 구별되게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가치관을 바로 가르쳤는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새로운 교회를 세웠는가? 자문하여 보았지만 겉모습에만 머무른 것 같다.
일본의 지성 사학자 이에나가 사부로는 “삶은 은총이다. 자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타력으로 풀 수 있는 것이다. 내 안에서 나오는 힘이 아니라 밖에서부터 내 안으로 쏟아지는 어떤 힘 때문에 나의 됨됨이가 영글어지고 나의 됨됨이가 짜여 나온 것”이라고 갈파했다.
바로 성령의 힘이다. 인간은 모두 자기중심의 탐욕에 빠져 세상의 가치와 목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합리성과 이상이라는 것만 주장하는데 그 또한 얼마나 제한 적인가? 이런 까닭에 신학자를 비롯한 이 땅의 성직자들도 하나님이 역사하심이 없으면 때때로 자고하고 교만하고 투기도 하다 실패하는 것이다. 결국 인간 스스로는 완전할 수가 없다.
다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만, 곧 성령의 역사로만 근본적인 변화를 이룰 수 있다. 그런데도 가끔 성화되었다며 완성된 사람처럼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하지만 완전의 단계에 이르기는 어렵다. 누구라도 그 경지는 죽음(?)뿐이기 때문이다. 성직자도 천하의 도덕선생도 사람을 구별하고, 또 차별하여 나누고, 만날 사람, 거리를 두어야 할 사람들을 그 심중에 정하게 마련이다.
결국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다. 누가 사망의 골짝에서 나를 건져내랴” 고백하며 살게 되는 것이다. 그 다음 날에도 그렇게 고백하며 회개할 수밖에 없다. 사람의 변화나 개혁은, 성령의 도우심을 바라는 고백을 쉬지 않을 때만 가능하도록 창조하심 같다. 이러하거늘 누가 자신을 개혁자라라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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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영 장로] 개혁을 돕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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