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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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에서 한 주간 동안 집회를 인도하고 한국에 왔을 땐 벚꽃이 만개하였습니다. 우리 동네 죽전로나 교회뒷길을 보니까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꽃샘추위가 찾아온 것이 아닙니까? 꽃잎들이 너무 춥게 느껴졌습니다. 괜히 제가 꽃잎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봄이 온다고 무장해제를 한 채 안심하고 활짝 피었는데 꽃샘추위가 와서 추위에 떠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운 것입니다.
그래서 꽃잎들을 보며 이렇게 축복하였습니다. “봄기운이 와서 너희들이 꽃 핀 게 아니라 너희들이 봄을 오게 한 거야. 비록 꽃샘추위가 다시 한 번 오더라도 봄은 너희들 때문에 온단다. 너희들이 화사한 꽃잎을 피웠으니 봄이 올 거야.”
그래서 주일 설교도 ‘꽃송이 하나로도 봄은 오리라’란 제목으로 했습니다. 그런데 주일을 보내고 이번 주에 뒷산을 가보니 벌써 벚꽃 잎이 떨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람이 세게 불면 꽃잎이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것이 장엄하게 느껴졌습니다. 흩날리는 벚꽃잎 아래 서 있었을 때, 먼 추억의 세계로 간 것 같고 꿈같은 미지의 세계로 간 것 같았습니다. 문득 예전에 쓴 ‘벚꽃’이라는 시가 생각났습니다.
“흩날리기 위해 피었나 / 피어있는 꽃보다 / 흩날리는 꽃잎들이 눈부셔 / 그 아래 서 있는 것 자체가 축복이다 / 걷는 것도 송구스러워 / 한동안 서 있노라면 / 문득 떠오르는 한 눈동자 / 그 시선이 나를 걷게 한다 / 어디론가 끌리게하고 / 아득한 세계로 안내하는 꽃잎 하나 하나 / 모두가 사랑의 연서이고 초대장인 거야 /...(이하 중략)
그런데 뒷산에 올라갔더니 진달래가 빛을 바래 시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연분홍빛이 화사하게 피었던 꽃들이 벌써 꽃빛을 잃어 가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화사하게 피어난 꽃도 10일을 가지 못한다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꽃잎은 시들고 있지만 그 대신 참나무나 상수리나무 잎사귀들이 푸르게 솟아나고 크고 작은 잡목들이 잎사귀를 피어내고 있었습니다. 대조적인 모습을 넘어 신비,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진달래꽃을 향하여 다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봐라, 봄이 되어서 네가 피어난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이렇게 꽃샘추위 속에서도 먼저 화사한 꽃을 피웠기 때문에 상수리나무와 참나무들이 잎사귀를 내고 있지 않느냐. 비록 꽃잎은 떨어지지만 너희들이 봄을 오게 하였거니, 너희들 꽃 한 송이, 꽃잎 하나 하나가 봄을 오게 하였거니...”
저는 화사하게 피었다 지고 있는 진달래를 영혼의 꽃이라 생각하며 한동안 마음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신약성서를 보면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마5:8). 갑바도기아의 교부였던 닛사의 그레고리는 청결한 마음이란 에덴동산에서 창조되었을 때의 본래의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마음을 회복하면 자연과 교감하게 될 뿐만 아니라 저절로 아름다운 시가 나오고 음악이 나오며 천재적 예술성이 발휘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의 눈이 하나님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저는 꽃들과 침묵의 대화를 하였습니다. 그럴때 마침내 새에덴의 꽃송이들을 연상하였습니다. 가락동에서부터 지금까지 새에덴의 봄을 오게 하였던 꽃송이들... 그 성도들의 헌신의 꽃송이, 희생의 꽃송이, 눈물의 꽃송이들이 오늘 새에덴의 봄을 오게 하였습니다. 또 오늘 새에덴이라는 꽃 한 송이가 한국교회의 봄을 오게 하고 있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진달래는 시들어가고 벚꽃잎들도 떨어져가고 있지만 그들이 봄을 오게 하듯, 우리 모두가 꽃송이가 되어 한국교회 봄을 오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가 봄의 주인공들이죠. 아니, 한국교회의 봄을 오게 하는 봄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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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칼럼] 꽃이 봄을 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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