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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태동 목사님을 추모하면서
2019/03/11 15:02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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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1.jpg▲ 故 김태동 목사
故 김태동 목사님은 1930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시고 사모님과 3남 1녀 손자, 손녀들을 두고 2018년 12월 17일 밤 8시 30분에 89세를 일기로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제가 김태동 목사님 곁에서 손발 노릇 그림자처럼 함께한 세월이 45년입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은퇴하실 때에 목사님의 약력소개를 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행사시에 인사말, 설교, 격려사, 축사, 문서작성 초안을 부족한 사람에게 부탁하기까지 신뢰하였던 관계입니다. 그리고 교회나 노회에서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저와 함께 상의하여 결정을 하는 관계이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동성교회에서 은퇴하기까지 38년간계속 시무할수 있었던 것도 노회, 총회, 연합운동에서 직책을 맡아 활동 할수 있었던 것은 목사님의 관심과 배려와 지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 때문에 현재의 제가 있습니다. 얼마나 저를 사랑하고 아꼈는지,
부족한 종이 은퇴후 고신대 복음병원에 수개월간 입원하고 있을 때 4번이나 혼자서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병문안을 오기도 하였습니다. 목사님께서 병원 입·퇴원을 반복하실때에 부족한 사람은 기도하면서 감동이 오기를 만약 목사님이 돌아가시면 목사님의 장례식을 준총회장 수준으로 장례식을 치르도록 힘써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목사님께서 제83회 부총회장에 출마하셨을 때 투표에서는 앞섰는데 검표에서
부정이 있어 결국 부총회장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이 일 때문에 목사님이 많이 상심한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족한 종이 요즈음 노회와의 불편한 관계로 적극적으로 힘쓰지 못하고 노회장(설교 부총회장 김태영 목사)으로 치루어지는 장례식 진행을 지켜만 보면서 서운한 마음이었습니다. 총회장을 지내신 친구분들도 오시게 해야 할 텐데.......목사님 부족한 사람을 이해해 주십시오.
그 아쉬운 마음에서 목사님을 추모하는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너무 그리워서 살아계실 때 매일 생명의 양식을 카톡으로 보내 드리던
생명의 양식을 한 달이 지나도록 보내드리는데, 지금도 읽고 계시데요.
목사님은 안동사범학교를 졸업 후, 총회신학교를 졸업하시고 (3회 1953년)
경안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으시고, (1954년) 군목 으로 계시면서 1964년부터 구 반여교회에서 강단을 지키시다가 중령으로 예편하신 후 부산교회(현 예린교회) 시무를 시작하여 오직 부산교회만 36년 시무하시면서 교회를 3차례 건축 대형교회로 부흥시켰으며, 부산교회 원로목사로 노회 공로목사가 되기까지 부산노회와 부산동노회에서 활동하셨습니다.
 
1. 목사님의 신앙은 말씀에 뿌리를 내린 보수적이면서 개방적이며,
긍정적이며 포용적인 신앙이셨습니다.
2. 목사님은 효자이셨습니다.
어느 정도 효자이시냐하면 9순이 되시는 모친권사님에게
식사시 고기반찬을 숟가락위에 얹어 드릴 뿐 아니라
물으시는 말씀에 한번에 귀찮게 여기시지 않으시고
대답해 주실 정도로 효자 중에 효자이셨습니다.
 
3. 목사님은 발로 뛰는 목회를 하셨습니다.
대외활동이 아무리 바빠도 찾아가는 심방목회, 어려움 당한자,
병든 자, 병원에 입원한자, 개업, 입택, 이사 시에,
반드시 찾아가서 심방하고 기도하고 축복하는 목회를 하셨습니다.
 
4. 목사님은 너무 너무 자상하셨습니다.
교회에서 면담후 헤어질 때는 반드시 교회입구까지 나오셔서
손을 흔들어 주셨으며 함께 목사님 승용차를 타고 오다가 중간에
먼저 내리면 함께 내려서 인사하고 다시 자기 승용차를 타고 가셨습니다.
음식점이나 커피숍에서 많을 사람을 제끼고 돈을 먼저 내셨습니다.
전국각지 선·후배 교회, 단체마다의 길흉사에는 빠지지 않으셨습니다.
그동안 부조한 것을 합치면 수 억원은 될 것입니다.
 
5. 목사님은 사람만나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사람을 좋아하셨고,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사람이 많이 있는 곳에 있기를 좋아하셨습니다.
그래서 무슨 모임에도 빠지는 일이 없으셨습니다.
언제 어디서든지 만나자 하면 만나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과의 관계가 원만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관계를 분명히 해야 할 사람은 분명히 하시는 목사님이셨습니다.
 
6. 목사님은 부드러우면서도 강직하셨습니다.
부드럽기로는 양털처럼, 솜처럼 부드러워셨습니다.
그러나 강직할때는 아주 강직하셨습니다.
7. 목사님은 집념이 강하셨습니다.
어느 정도 집념이 강하시냐하면 한 평생을 총회장에 대한 꿈을 갖고 살아오신 목사
님께서 제83회 부총회장에 낙선된대에 대하여 총회선관위에 고소하여 재 검표한 결
과 당선후보에게 다른후보의 표가 61표가 산정된 것이 확인되어 부정선거 결과가 나
와 총회 재판국으로부터 선거무효 당선무효로 판결되었고
(그렇지 않으면 목사님의 1차에서 최득표가 됨)
그 후 국법에 재소했으나 국법에서도 부정선거를 인정했으나
이미 총회가 얼마남지 않은 상태에서 기각판결을 내렸습니다.
그 후 총회에 이 사건에 대해 청원서를 제출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선거무효, 당선무효로 그 진상이 밝혀진 것은
목사님의 강한 집념 때문입니다.
8. 목사님은 일에 대한 욕심이 많으셨습니다.
어느정도 욕심이 많으시냐? 하면 무슨 직책이든지 맡기시면 적극적으로 맡으셨습니
다. 그래서 목사님의 경력이 무려 80여개가 됩니다. 그 만큼 힘과 능력이 있다는 증
거입니다. 이렇게 목사님은 일을 좋아하셨습니다.
 
9. 목사님은 개 교회 위주에서 연합적인 활동에 힘쓰셨습니다.
개 교회는 힘이 없다. 여러교회 여러교파가 합쳐야 힘이 있다고 하시면서 세계는 나
의 교구다 라는 말씀처럼 좁은 목회보다 폭 넓은 목회에 치중하셨습니다. 개 교회의
교인양육도 중요하지만 교단연합운동의 인재양성이 절실하다고 역설하셨습니다. 이
런 인품과 성품과 신앙과 정신을 가지셨기 때문에 많은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었습
니다. 그러면서도 쩨쩨하지 않고 선이 굵어 굵직굵직한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
여 추진하는 열심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의 경력 목사님의 살아온 발자취는
눈 부수실 정도로 다양하고 화려하고 찬란합니다.
그 많은 경력 중에 몇 가지 예를들면은
 
목사님의 군목활동입니다.
24세에 군목이 되셔서 육군중령으로 예편하시기까지 23년간의 군목시절에
특이할 만 것은 6.25사변에 참전 하였으며 전방 초소 위문을 시작으로 군 복음화를 시작하였으며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생사를 하나님께 맡기고, 베트남장병을 위해
기도하며 신앙과 생명을 지켰으며 군 장병 3471명에게 세례를 주므로 당시 최다
세례로 세계언론을 떠들썩하게 하였으며 당시 기네스북에 기록될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군종활동의 기틀과 인식, 군선교, 군 복음화의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오는 공로를 세우셨습니다.
 
노회, 총회 및 지역을 위해 활동하셨습니다.
노회적으로는 1980년 부산노회장을 역임하시고, 부산성서신학원장,
장로회 부산신학 이사장, 부산신학 교장, 이기풍 선교센터 건립
부산동노회 위원장, 기독교 케이블 TV 방송 부산동노회 위원장
을 역임하시고 총회적으로는 총회장이 되지 못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있지만
그래도 총회중심권에서 군 선교(군목부장), 농·어촌선교(위원장),
국내선교 (전도부장 국내선교부장), 총회창립 100주년 배가운동 운영위원장으로,
만사운동의 불씨를 지폈고, 총회 21세기 기독교 2천년 선교대회 대회장,
사이비이단 방어척결(사이비 대책 위원장), 신학교육부 실행위원 및
목사후보생 지도위원장으로 후배양성과 신학교육,
세계선교(세계선교부 선교사 인선위원) 전산망(전산망 운영위원장)을 도입하므로
총회 모든 업무를 전산화하게 하는 등 노회와 총회의 방향을 잡아가는데
기여하셨으며 지역적으로는 우리 총회의 동부지역 15 노회협의회를 창립하고,
초대회장으로 동부지역교회의 결속과 위상을 높이며, 의식을 갖게하며,
방향을 잡는데 기여하셨으며, 총회 21세기 및 부산·경남 장로교 대회 대회장으로
대회를 성공리에 가지므로 장로교단의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하는데 역량을 발휘
하셨습니다.
부산복음화 및 초교파 연합활동을 하셨습니다.
영남목회연구원 원장으로 부산·한국 목회자포럼회장으로
초교파 영남지역 목회자들의 목회정보제공과 자질향상을
위해 힘쓰셨으며, 경찰선교를 위해 부산경찰청교회를 설립하고 (2002)
부산시경 경목실장을 비롯하여 부산시경 교경협의회 초대회장,
전국시도 경목총회 회장으로 활동하셨으며
부산복음화협의회회장, 80년 세계복음화 대회 부산복음화 총무
94년 민족통일 부산복음화 대 성회 공동대회장,
부산복음화대회공동회장, 21세기 복음화운동 대회장
부산목회자 포럼 공동회장, 체육선교회 부산본부 부 총재
부산세계선교회 초대회장 (부산바울선교회 전신)
부산기독교 TV 추진위원회 부산대회장 [CBS]
북한선교협의회 11대 협동총무
부산지부 선교회 회장, 부산복음화 협의회 회장, 세계할렐루야 선교회
지도이사 해운대구 기독교 협의회 초대회장, 부산기독교 총연합회회장,
범죄예방 국민운동본부 민생치안 지도자 협의회 본부장
YMCA 건축위원회 상임회장,
기독교 재산관리법 제정추진위원회 부산대표회장,
기독교 공동시국 대책위원회 대표회장,
부산성시화운동 이사장, 은퇴하신 후에는 은퇴목사를 위한
초교파 은목교회를 설립하시고 (2000년)
통합교단 은퇴목사를 위한 목은교회를 설립하여 (2008년)
목은교회를 설립하여 초대회장으로 활동하셨으며
부산복음화운동본부 고문으로 활동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전국 은퇴목사회 회장을 역임하시고, 은퇴목사를 위한 복지재단을 만드시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었습니다.
 
부산시와 국가사회를 위해 활동하셨습니다.
해운대구 자문위원을 비롯하여, 부산시 자문위원,
부산시 질서를 위한 (부산시경 선진질서위원)
88 올림픽 및 장애인 올림픽 부산후원회장
법무부 사단법인 한성갱생 보호회 부산지부장
남·북 인간 띠 잇기대회 부산대표회장,
지구촌 지체장애인 초청 사랑대회 고문,
범죄예방 국민운동본부 민생치안 지도자 협의회 본부장
사랑의 장기기장 부산지부 이사장으로 활동하셨습니다.
목사님은 훈장, 감사장, 표창장을 많이 받으셨습니다.
베트남 참모 1등 공로훈장 (1968년),
베트남 전공 표창, 베트남 종군기장,
한국교회 100주년 본 교단 총회장 표창 (1984년, 2012년) 내무부, 통일원 장관 감사패 및 공로패 (1985년, 1986년)
대통령 표창장 (1992년)
한국기독교 환경대책협의회 환경대상 외에 감사패, 공로패 41회
표창장 12회를 수상할 정도로 교회와 노회와 총회와 사회와
국가를 위해시간과 마음과 몸과 정열을 쏟아 바친 생애를
살아오셨습니다. 목사님께서 교회와 노회와 총회, 국가 사회를 위해
살아오신 그 마음, 그 정열은 목사님의 흔적으로 남아있습니다.
그 흔적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선한싸움을 싸우고 달려 갈길을 다 마치고
믿음을 지키셨으니 의로운 재판장께서 예비하신 의의 면류관과
큰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 목사님은 슬픔도
눈물도 아픔이 없는 주님 보좌 앞에서 기쁨과 즐거움과 편안한
마음으로 찬송을 부르실 것입니다. 언젠가 부족한 종도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그때 천국에서 뵙기를 바라면서 환송 찬송을 불러드립니다.
저 건너편 강 언덕에 아름다운 낙원 있네 믿는 이 만 그 곳으로 가겠네
황금문을 들어가서 주님 함께 살리로다 너와 날 위해 황금 종 울린다
은 빛 바다 저 너머로 우리 모두 건너 가서 죄와 고통 모든 슬픔 잊겠네
예수님의 사랑 속에 영원토록 살리 로다 날 위해 황금종 울린다.
우리 일생 다 지나고 주의 품에 편히 쉴 때 나의 영혼 자유함을 얻겠네
괴로움 짐 모두 벗고 주와 함께 살리 로다 너와 날 위해 황금종 울린다
[후렴] 저 울리는 종소리와 천사들의 노랫소리 영광 일세 할렐루야 기쁘다
빛나는 저 강건너 아름 답고 영원한 곳 너와 날 위해 황금종 울린다.
 
2019년 2월 1일

증명사진.jpg▲ 김창영 목사(예장통합 부산동노회 공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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