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로부터 석 달 후인 1892년 11월 17일, 일본인 거류지 내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일본인 거류지에는 938호수(戶數) 5,100여명의 일본인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는데,이 화재로 가옥 85채가 소실되고 350여명이 집을 잃어 주민들의 피해가 심각했다. 이때 일본인 거류지에 살던 매카이 목사는 이들 재민(災民)들을 위해 구호 구호활동을 폈다. 그는 5원의 기부금을 출연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 대해서는 매카이 자신이 기록한 바 없으나 일본정부가 수여한 감사장이 남아 있다. 일본 정부는 명치 26년(1893) 9월 13일 자로 상훈국(賞勳局) 총제(正三位勳二等侯爵 西園寺 公望)와 부총제(從三位勳一等子爵 大給 恒) 명의로 감사장을 보냈다. 일본정부가 보낸 이 감사장은 부산 해관장이었던 헌트(J. H. Hunt)를 통해 전달되었는데, 헌트가 이 감사장(official recognition from the Japanese government)을 전달하면서 1893년 10월 23일자로 매카이에게 보낸 편지 또한 남아 있다.
일본 정부가 보낸 감사장 내용은 대강 다음과 같다. “호주인(濠太利國) 제임스 H. 매카이 씨는 명치 15년 10월 조선국 부산항 일본제국 거류지 내에서 실화(失火)가 발생했을 때 이재자(罹災者)를 구조하고 금5원을 기부하였음으로(金五圓施輿セラレタルヲ) 이에 포장(褒狀)을 하사(賜)합니다. 명치 6년 9월 13일”
감사장을 발행한 상훈국 총재 西園寺 公望(1849-1940)는 후에 문부대신, 외무대신,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하는 정치인이었다. 부총제 大給 恒(1839-1910)은 후에 상훈국 총제가 되고, 일본 적십자사 창설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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