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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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교육계에서는 서열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서열을 없앤다고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은 줄 세우기 서열문화에 길들어 있다. 하루아침에 힘 있는 사람이 없애라고 한다고 없어질 것도 아니다. 그렇게 쉽게 서열문화가 바뀌리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모든 공동체와 집단에는 뼛속까지 서열화되어 있다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사람을 평가할 때 줄을 세우는 문화가 일상이 되어 버린 우리 사회현상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첫 학교 입학을 하면 선생님께서 운동장에서 한 줄로 키대로 세웠다. 그리고 각자의 번호가 주어지고 책상 위치도 이 번호대로 앉혔다. 그러다 보니 조숙하거나 생일이 빠르거나 유전자적으로 덩치가 큰 녀석들이 뒷번호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뒷줄 아이들이 교실을 장악하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성적순으로 힘이 나뉜다. 성적이 좋은 친구가 선생님이 배경이 되니 주먹도 맥을 못 추게 된다. 그러다가 머리가 커지고 어느덧 본격적으로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이 시작되면 주먹 순서나 성적순이 아닌 연공서열(年功序列)로 사회생활이 재편된다. 결국 이런 서열은 절친들과의 서열이 서서히 재산순으로 바뀌게 된다. 이렇게 변화되는 서열은 나이가 들면 또 한 번 바뀐다. 건강서열이다.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어도 건강이 무너지면 서열 따위는 의미가 없어진다. 그래서 온통 건강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건강을 위하여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아니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의 서열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사후의 서열이 기다리고 있다. 사후의 서열은 2진법으로 진행된다. O(천국)과 X(지옥)이다. 이 사후 서열은 생전에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눅13:30) 인간들이 만들 놓은 서열은 하나님 앞에서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장교후보생으로 훈련 받을 때에 일어난 일을 잊을 수가 없다. 구대장이 40명 구대원을 얼차려 시키려고 완전군장으로 하고 연병장에 집합을 시켰었다. 우왕좌왕하는 훈련생들에게 ‘후방 전봇대 선착순’하는게 아닌가, 그런데 ‘5번째까지 열외’하고는 다시 선착순을 시킨다. 나의 한계에 다되었을 때였다. 세 번째도 5번째에 들지 못했었는데 짓궂은 구대장의 구령은 ‘뒤로 돌았!’ 하고는 ‘뒤로 번호’ 끝에서 5번째인 나까지 끊고 다시 선착순을 시키는 것이 아닌가.
사실 나는 구대장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런데도 은혜로 열외가 되었었다. 그렇다 구대장이 ‘뒤로 돌았!’하면 서열이 달라지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뒤로 돌았!’하는 날에는 이 세상에서의 서열은 의미가 없는 것이 믿어지는 것이다.
기독교(인)[그리스도교(인)]는 서열이 존재한다. 아니 종교라는 시스템 가운데 있으니 서열이 필연적으로 존재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교회 안에는 서열문화가 자리 잡고 있어서 직무와 직분이 계급으로 여겨지는 타락한 군상들이 되고 만 것이다.
종교개혁이라는 말은 기독교라는 종교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기독(인)[그리스도(인)]은 인격적인 관계로서의 유기적 관계를 회복하는 부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진실된 기독인이라면 서열을 넘어 서는 십자가 사랑으로 한 몸을 이루는 무서열(無序列)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 이 땅에서의 서열이 얼마나 허구인가를 깊이 깨달아서 탈 서열화로 교회에서 계급을 타파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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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의신목사] 서열(序列)의 허구(虛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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