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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1)
2016/05/27 13:3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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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5월 25일(수) 거제교회에서 개최된 제1회 부산이단대책세미나 강의안입니다.)
 
이슬람
 
이만석 목사.JPG▲ 이만석 목사 (현. 한국이란인교회 담임, 4HIM 대표)
 
 
1. IS는 가짜 이슬람인가?
최근에 이라크의 순니파 무장단체인 소위 이슬람국가(IS)의 잔혹한 만행으로 온 세상이 놀라고 있다. 한남동 이슬람 사원의 이주화 이맘은 IS 때문에 이슬람의 이미지가 나빠지자 서둘러 조선일보를 통해서 인터뷰 기사를 내면서 선긋기에 나섰다. 한마디로 IS는 “자신들의 목표를 위해 이슬람의 얼굴로 가장한 자들”이며 가짜 무슬림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견해는 매스컴을 통해서 대부분의 서방세계 정치인들의 입을 이용하여 대중에게 여과 없이 홍보되고 있다. 심지어 교황청 국무장관 안드레아 토르넬리 추기경은 이태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근에 발생하고 있는 중동의 기독교인들 살해 현상은 이슬람과 기독교간의 충돌이 아니라 개인적인 폭력”이라고 말했다.(Vatican Insider 2014.8.26.)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만일 그들이 가짜 무슬림들이면서 이슬람의 이름을 사칭하여 명예를 실추시켰다면 왜 세계적인 집단 시위가 일어나지 않고 잠잠할까?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이슬람의 경전 꾸란을 한 권 태우겠다고 했을 때 온 세계의 무슬림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며칠간 쉬지 않고 시위를 벌였었고 이로 인한 진압과정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었다. 아프가니스탄의 바그람 공군기지의 꾸란 소각 사건이나, 미국에서 별로 인기가 없어 관람자가 거의 없었던 “순진한 무슬림”이라는 짧은 영화가 무함마드를 조롱하는 내용인 것이 발견되었을 때도 세계적인 무슬림들의 폭력시위가 일어나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분노한 시위대가 리비아의 미국 대사 및 대사관 직원들까지 살해했었다. 꾸란 한 권 태우는 일이 이슬람의 명예를 얼마나 실추시켰을까? 만일 이슬람이 참으로 평화의 종교라면 IS처럼 이슬람의 이름으로 수천 명의 생명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것이 더 이슬람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국의 한 무슬림이 신문에 인터뷰 한 번 하는 것으로 그 모순을 뒤집으려 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행동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한편 세계적인 집단시위가 일어난다는 것은 몇몇 사람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각국에서 이슬람 성직자들의 선동과 동원이 없으면 세계적인 집단시위는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런던 시내에서 나이지리아계 영국 시민권자인 ‘아데볼라요’라는 무슬림 청년(28)이 영국 군인 릭비(25)를 차로 들이받은 후 칼로 난자하고 참수하면서 “알라후 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다)”를 외치며 자랑스러운 듯 행인들에게 사진을 찍으라고 포즈를 취했다는 것은 꾸란을 한 권 태우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이슬람의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킨 너무 유명한 사건이지만, 이로 인해 세계적인 무슬림들의 폭력시위가 있었다는 것은 들어본 일이 없다.
이슬람의 율법에서는 이슬람을 보호하기 위한 폭력, 혹은 배교자를 대상으로 하는 폭력은 처벌받지 않는다. 이슬람의 명예를 위해서 혹은 무함마드를 모독하는 자를 살해하는 행위 등은 정당화 된다. 심지어는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느라 정부가 집행하지 못하고 있는 이런 행위를 감행한 담대한 무슬림들에게는 격려 차원에서 상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이것은 비단 이슬람 국가 혹은 샤리아(이슬람 율법)로 통치되는 지역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무슬림들이 소수인 지역에서도 이슬람의 성직자에 의해서 “살해하라”는 파트와(종교적 명령)가 떨어지면 알라의 이름으로 그 명령을 집행하려는 철저히 헌신된 무슬림이 언제든지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시각에 대해서 분노하는 무슬림도 있을 것이고 이런 견해를 부인하는 온건하고 순진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집트 꼽틱 기독교 사제 ‘자카리아 보트로스’라는 사람의 예는 이것이 사실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살면서 방송을 통해 이슬람의 경전 꾸란의 허구와 모순을 정확한 이슬람 내부 자료를 근거로 밝히고 있기에 그 방송을 보는 많은 무슬림들이 타종교로 개종하거나 이슬람에 회의를 품게 되는 현상이 퍼지게 되었다. 이에 이슬람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알카에다는 그를 살해하는 사람에게 미화 6천만 불의 현상금을 지급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미국 정부가 이슬람 테러단체 알카에다의 수장 빈 라덴에게 걸었던 현상금 5천만 불보다 20%나 더 큰 금액이다. 또한 ‘악마의 시’라는 글로 이슬람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영국 작가 ‘살만 루시디’의 목에 걸린 현상금은 150만 불로 시작해서 300만 불까지 치솟았지만 자카리아 보트로스에 비하면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들은 언론 출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미국과 유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이슬람을 모독했다는 죄목을 붙여 살해를 명하면서 상금을 주겠다는 것은 누가 봐도 테러를 사주하는 행위다. 알카에다는 국제법을 무시하는 테러집단이기에 그럴 수도 있다고 치부하더라도, 살만 루시디를 살해하는 자에게 상금을 주겠다고 한 것은 호메이니의 명을 받들고 있는 이란 정부였다. 이란 뿐 아니라 이슬람권에서는 테러범들에게 자금을 지원하거나 영웅 대우를 함으로 테러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온 세계를 경악시킨 9.11테러를 사주한 빈라덴은 이미 죽었지만 지금도 이슬람권의 영웅으로 존경받고 있고,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었다는 이유로 이집트 사다트 대통령을 암살한 살해범 ‘칼레드 이슬람볼리’의 이름은 테헤란에 한 거리의 이름으로 명명되었으며, 그가 옥중에서 부르짖는 사진을 넣은 기념우표까지 발행되었다.
그러나 굳이 상금을 걸거나 영웅 칭호를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이슬람, 꾸란, 알라, 무함마드 등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한 이슬람 성직자가 그를 살해하라는 파트와(종교적 명령)를 선포하면 충성된 무슬림에 의해서 언제 어디서나 살해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사실 세상에는 테러와는 상관이 없는 수많은 무슬림들이 평화스럽게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이슬람이 평화의 종교’이므로 테러와 관련짓지 말라고 강변한다. 설사 무슬림들이 모두 테러범은 아니더라도 세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테러는 무슬림들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권에 살면서도 이슬람의 경전 꾸란에 심취하게 되면 꾸란에 기록된 이교도들에 대한 증오 개념에 세뇌되면서 돌발적 테러범이 될 수 있다. 소위 말하는 ‘외로운 늑대’형 무슬림 테러를 수사하면서 벽에 부딪히는 이유는 그들이 현존하는 어떤 테러단체와의 연관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테러를 범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의 핵심은 정치인들이 전문가들의 조언을 통해서 테러의 원인은 바로 이슬람의 경전 꾸란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세계 인구의 20~25%를 점하고 있는 무슬림들의 분노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별 수 없이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지만 꾸란의 평화적 가르침을 오해하고 있는 일부 몰지각한 테러범들이 문제다’는 견해를 고집하게 된다. 이것을 서양에서는 ‘정치적으로 수정된 견해(Politically corrected opinion)’라고 부른다.
종교에 관심이 없는 대부분의 순진한 대중은 계속해서 매스컴을 통해 귓전을 때리는 이런 왜곡된 견해를 보편적 정설로 이해하게 된다는 점이 답답하다. 소위 평화주의 무슬림들은 이런 순진한 정치인들이나 매스컴을 이용하여 이슬람을 계속 평화의 종교로 믿도록 강요하는 한편, 이슬람의 정체를 알고 그들이 숨기고 싶은 혐오스런 참모습을 밝히는 사람들은 소위 증오법 혹은 차별금지법 등으로 묶어서 처벌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이미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유럽에서 성공을 거두어 유럽인들은 이슬람에 대해서 부정적인 표현도 못하고 처벌이 무서워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슬람의 지상목표인 ‘샤리아로 다스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원리주의자들의 폭력과 평화주의자들의 거짓은 무슬림들의 가장 강력하고도 효과적인 무기다. 이들은 공동의 지상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서로를 비난하는 척하며 적당히 역할분담을 한다. 즉 IS처럼 과격한 무슬림들은 무함마드가 보여준 행동모범과 꾸란의 명령을 솔직하게 표현하면서 감히 접근이나 간섭을 못하도록 가능한 한 잔인한 테러를 자행하고 대중매체를 통해서 동영상을 공개하여 대다수의 소심한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다. 이는 꾸란에도 명확하게 명시되어 있다.
믿는 자들이여! 너희가 얼마나 잔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네 이웃의 불신자들과 싸우라. 알라는 항상 의로운 자들 편이시라는 것을 알라.(꾸란9:123)
이는 전쟁터에서 무장하고 대치하고 있는 적들과의 전쟁이 아니라 이웃에 살고 있는 불신자들, 즉 이슬람 이외의 종교를 믿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테러를 사주하고 있는 구절이다. IS는 바로 이런 꾸란의 명령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강대국들이나 알라의 법을 모르는 무지한 백성들의 눈치를 본다든지 체면이나 여론 때문에 망설일 필요가 없다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명백하게 기록된 창조주의 말씀인 꾸란의 명령대로 실천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행위라는 종교적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소동이 사라지고 종교가 모두 알라의 이름으로 통일될 때까지 그들과 싸우라.(꾸란8:39)
여기서 소동이라고 번역된 아랍어 피트나(fitnah)는 최영길 교수가 한글로 꾸란을 번역하면서 “알라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각주를 달았다. 전체적으로 이 구절은 지구상에 무슬림 아닌 사람이 한 사람도 남지 않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으면 죽여야 한다는 이론이 도출되고 이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현상이다. 어떤 죄를 짓거나 그들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았더라도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고 다른 종교를 고집한다는 것만으로도 핍박과 살해의 정당한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꾸란9:5, 꾸란5:33 등 참조)
소위 평화를 사랑하는 무슬림들도 이들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이슬람 학자들이라면 부인할 수 없는 만쑤크(Mansukh)교리에 의해서 이미 취소된 평화로운 구절들을 인용하면서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라고 믿도록 많은 홍보비용을 투자하여 미화된 거짓을 퍼뜨리고 있다. 그러나 그 우두머리들은 같은 목적의 성취를 위해서 서로 역할만 분담할 뿐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고 배후에서 서로 돕고 있다. 이것도 정확하게 꾸란에 명시되어 있다. 꾸란은 무슬림들이 비무슬림들을 친구로 삼지 못하도록 명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보호와 유익을 위해서는 허락한다는 것이다.(꾸란3:28) 그 한 예를 들어보자.
압둘 라흐만 알 아무디는 클린턴 대통령의 자문 위원이기도 했으며 9.11 테러 후에도 워싱턴 국립 대성당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기도회 때 강사로 초청받을 정도로 평화를 사랑하는 무슬림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런데 그가 테러집단으로 알려진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후원한다는 것과 모금을 하여 불법 송금한 것이 발각되어 2004년 재판을 받고 미화 75만 불 벌금과 23년 형을 받고 수감되어 있다. 겉으로는 평화를 외치지만 뒤로는 서로 돕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표면상 미국과 공조하는 것처럼 보여도 테러범들에게 가장 많은 송금을 하고 있다는 것이 위키리크스를 통해서 이미 폭로되었다.
이슬람 국가 IS(Islamic State)는 이름 그대로 이슬람의 경전 꾸란과 무함마드의 행동모범을 근거로 만들어진 샤리아를 철저하게 지키는 무장 단체로서 이슬람의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선포한 가장 이슬람국가 다운 이슬람국가이며, 이것에 매력을 느낀 충성되고 헌신된 무슬림들이 세계 각국에서 모여들고 있다.
그들에 의해서 잔혹하게 고통 받으며 살해되고 있는 기독교인들과 비무슬림들을 지켜주고 보호하는 일을 위해서 물론 국제사회가 관심을 가지고 힘을 모아야 하겠지만 우선 하나님의 보호를 간절히 구하는 일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2. 할랄 산업 육성 정책을 반대하는 열 가지 이유
우리는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애국 국민이라는 사실에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며 국민들에게 행복을 주는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대통령의 노력을 적극 지지하며 감사하게 생각한다. 정부 정책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반정부 세력과 동일시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리 가족들과 국가 안보를 위해서 그리고 후손들의 행복을 위해서 정부의 할랄 산업 지원 육성 정책을 폐기할 것을 촉구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아래와 같은 심각한 문제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할랄이라는 것은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 의해서 “허용한다”는 뜻이다. 즉 해도 좋다는 것이지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을 “와집”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에 의하면 고의가 아니고 모르고 먹었거나 어쩔 수 없어서 먹었을 경우는 알라께서 용서하신다(꾸란6:145)고 한다. 그러므로 할랄 인증만 받으면 17억 무슬림들의 식료품을 공급하게 되어 일확천금을 할 것처럼 홍보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행위다.
둘째, 할랄 고기는 몇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하는데 첫째는 무슬림이 도축해야 하며 둘째는 도축할 때 반드시 아랍어로 “비스밀라(알라의 이름으로)”라고 외쳐야 하며 셋째 짐승이 죽을 때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방향으로 머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그리고 부차적으로 죽은 고기, 피, 알코올 성분, 돼지고기 등을 먹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위생과 전혀 관계가 없고 건강이나 웰빙과도 전혀 관련이 없으며 다만 이슬람의 율법을 준수하는 것만 중요하다. 오히려 할랄식 도축은 매우 비위생적이다. 왜냐하면 짐승의 목을 반쯤 잘라놓고 피가 쏟아지는 채로 공중에 매달아 놓아 고통스런 짐승이 버둥거리는 동안 피가 사방으로 튀기 때문이다. 아무리 위생적인 도축장을 건설했어도 비무슬림이 도축을 한 것은 할랄이 아니다. 이를 “청결하고 안전한 먹거리”라고 홍보해 주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셋째, 일반 도축은 전기충격으로 기절시켜놓고 짐승을 잡기 때문에 짐승이 전혀 통증을 못 느끼면서 죽지만 할랄 도축 방식은 피를 먹지 말라는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짐승의 모든 감각이 정상인 상태에서 목뼈를 건드리지 않고 혈관과 식도와 기도를 자르고 거꾸로 매달아 놓는다. 그래야 심장의 펌프 작용으로 피가 분출되기 때문이다. 짐승은 거꾸로 매달려서 피를 분출하면서 모든 감각과 의식이 정상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죽는 그 순간 까지 몇 분간 극도의 고통과 분노와 스트레스를 느끼면서 죽어간다. 이 때 짐승의 체내에서 인체에 해로운 독성이 생성될 가능성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숨기면 안 된다. 이는 동물을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면 안 된다는 현행 동물보호법에도 저촉되는 범법행위임에 분명하다. 주로 할랄 고기를 섭취하는 이슬람권의 평균 수명이 타문화권보다 짧다는 것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심지어는 1인당 국민소득 9만 불을 훌쩍 넘은 카타르도 평균 수명은 3만 불도 채 안 되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짧다는 것은 결코 기후 문제로만 돌려서는 안 되며 음식 문제도 분명 관련이 있다고 본다.  
넷째, 할랄 도축장을 건설하는 것은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할 문제가 아니다. 현재 할랄 고기의 대부분은 호주에서 수입한다. 그런데 호주산 쇠고기와 한우의 가격은 가격 경쟁이 안 된다. 등심을 기준으로 볼 때 2015년 초 축산협회의 조사에 의하면 호주산은 Kg 당 21,000원 이지만 한우는 34,000원이다. 한우를 도축할 때 할랄 도축사를 고용하고 할랄 관리인을 고용하면 인건비가 추가 부담되어 할랄 한우 값은 추가 상승요인이 있는 반면 호주산 쇠고기는 한국:호주 FTA에 의해서 관세를 매년 2.6%씩 인하하여 앞으로 15년 후면 관세가 완전 철폐되므로 가격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것이다. 할랄 도축장을 건설하면 그 비싼 한우 할랄고기를 누가 사먹을 것인가? 무슬림들 대상이라면 현재 수입하고 있는 호주산으로 충분하며 무슬림 관광객들이 대거 유입된다 하더라도 비싼 할랄 한우를 먹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므로 이는 시장 조사와 수지 타산을 정밀 조사하여 개인과 업체가 결정할 일이지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밀어붙일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재 30여 곳 있는 도축장도 20여 곳으로 통폐합하는 형편인데 할랄 도축장을 다시 만든다는 것은 결코 지혜로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섯째, 할랄 도축장에는 무슬림들만 근무해야 하기 때문에 잘 훈련된 할랄 도축사들을 수입해 와야 한다. 영국도 파키스탄 할랄 도축사들 5천명을 수입했다고 한다. 이들은 이슬람 율법에 철저한 원리주의자들일 가능성이 크므로 지역주민들과 필연코 마찰이 발생할 것이다. 이슬람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는 유럽의 경우를 반면교사로 삼아 철저히 경계해야 할 것이다.  
여섯째, 할랄 인증에 소요되는 비용을 정부가 지원한다는 것은 특정 종교의 율법을 준수하는 일을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종교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할 정부가 이를 지원하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으므로 금해야 한다.
일곱째, 이슬람 율법에 “나지스(Najis)” 개념이 있는데 이는 더럽다는 뜻이다. 비무슬림들은 더럽기 때문에 상종하면 안 된다는 이슬람의 율법이며 비무슬림들이 만진 물건도 더럽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할랄 도축장에서 5Km 반경 내에 돼지 도축장이 있으면 안 되고, 비할랄 식품과 함께 운반해도 안 되고, 비할랄 식품을 조리하던 도구를 사용하여 요리해도 안 된다는 개념이다. 이는 무슬림이 아니면 더러운 존재들이라는 이슬람의 배타적 교리 때문에 그렇다. 이는 비단 음식의 문제뿐만 아니라 사람도 무슬림들은 할랄(허용된 것)이고 비무슬림들은 하람(금지된 것)이라고 한다. 무슬림들 여성들(할랄)이 비무슬림 남성(하람)과 결혼하는 것은 금하며 그를 이슬람으로 개종시켜야 결혼이 허용(할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무슬림들이 음식과 식자재만 할랄로 만들어 팔면 된다는 생각은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는 한 헛된 망상에 불과한 것이다.  
여덟째, 할랄 인증에 소요되는 비용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은 국민의 세금으로 이슬람을 확산시키기 위한 포교 자금 혹은 이슬람 테러 자금을 지원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2011년 1월 5일 미국 기독교방송인 CBN은 70억불 규모의 프랑스 할랄 산업의 60%가 테러 단체로 잘 알려진 무슬림 형제단에 속한 기관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방송했다.  
아홉째, 이슬람의 할랄 규정은 세계적으로 통일된 것이 없다. 국가마다 그 기준이 다르고 한 국가에서도 인증기관마다 기준이 다르다. 어제 있었던 할랄 기준도 무프티(Mufti)급의 성직자가 파트와(Fatwa)를 선언하면 언제든지 없어질 수도 있고 새로 생길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가변적인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 돈을 투자하면서 동분서주하는 행위는 결코 지혜로운 일이 아니다.
열째, 일반적으로 무슬림들은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원리주의 무슬림들은 샤리아로 통치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투쟁하고 있다. 오일 달러를 이용하여 샤리아의 영향력을 키우려 하는 것이 이슬람 금융 및 쑤쿠크(이슬람 채권)라고 한다면 음식을 통해서 샤리아의 영향력을 키워나가는 것이 할랄 확산 전략이다. 할랄 인증을 받은 회사의 경영진은 많은 돈을 투자해서 어렵게 받은 할랄 인증인데 혹이라도 직원들 중의 한 사람이 이슬람 율법을 어기는 것이 할랄 관리자들에게 발각되어 인증이 취소될 것이 두려워 직원들에게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 준수를 강요하게 된다. 따라서 한국인들이 보편적으로 즐기는 소주와 삼겹살도 회사를 해롭게 하는 준범죄행위로 취급되므로 화기애애한 직장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할랄 장려 및 인증 비용 지원 정책은 식품산업 세계화를 통한 기업의 경쟁력을 키워주기 위한 경제 활성화의 일환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할랄 산업이란 이슬람의 율법인 샤리아를 지키게 하기 위해서 음식으로 그 영향력을 키워나가는 이슬람 포교 전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는 유럽의 경우를 보건대 국가적 불협화음의 불씨가 될 것이다. 무슬림들이 급증하고 있는 유럽에서는 자경단을 조직하여 샤리아로 통치하는 지역이 프랑스에만 750곳 있으며 샤리아로 재판하는 재판소가 영국에만도 85개소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스웨덴에도 무슬림들이 완전히 접수하여 샤리아로만 통치하는 지역이 55개소 있으며 이 지역에서는 무슬림 자경단이 정부경찰을 공격하고 접근을 금지시킨다고 한다. 이는 유럽의 무슬림들이 특히 악해서가 아니고 유럽인들이 무슬림들에게 복지혜택 제공을 소홀히 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다만 이슬람의 경전의 가르침이 배타적이고 폭력적이기 때문에 충돌은 불가피한 것이다. 그러므로 할랄 전략을 통한 이슬람의 율법 샤리아의 영향력 확대는 한국의 보편적 미풍양속과 심각한 마찰을 일으키게 될 것이 확실하다. 이런 일에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국민으로서 결코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킬 수는 없다.
우리는 모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유민주주의를 향유하며 후손들이 평안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물려줘야할 사명이 있다고 믿는다. 이를 위해서 정부가 정책적으로 할랄 산업에 지원하는 것을 당장 포기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바이다.
 
3. 일년에 한 번은 이슬람에 대해서 설교하라
2015년 말 현재 한국에 이주 노동자들이 60만명을 넘어섰고 노동 외의 목적으로 거주하는 외국인들까지 합하면 170만명을 넘는 외국인들이 우리 주변에 들어와 함께 살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혹자는 말하기를 이들을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큰 비용들이지 않고 선교할 수 있는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기회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문화충돌의 위기를 말하기도 한다.
굳이 어떤 예를 들지 않더라도 세상에는 다양한 문화가 있고 각 문화권마다 특색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아주 사소한 문제가 큰 피해를 불러올 수가 있다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 중에도 이슬람권에서 온 근로자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매우 특별한 문화적 습관이 있기 때문에 제대로 알고 접근하지 않으면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것이다.
유럽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즉 이슬람이라는 문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제 와서 곤혹을 치르고 있으며 심지어 스위스에서는 모스크에 첨탑 시설을 금지하자는 안건을 국민들이 서명운동을 벌여 국민투표로 통과시켰고, 프랑스에서는 여인들의 몸 전체를 가리는 부르카 착용을 금하며 이를 어기는 사람에게는 벌금을 물리는 등 이슬람을 제재하는 법을 만들고는 있지만 이는 사후 약방문일 뿐 근본적인 대책은 미리 세웠어야 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유럽뿐만 아니라 이슬람이 들어가는 곳은 어디서든지 범죄가 증가하고 사회 분열이 일어나고 폭력과 테러 사건이 난무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사실 유럽은 기독교 문화가 오래 전부터 정착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이 제도적으로 적용되고 있어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였다. 그래서 소위 “똘레랑스(관용)”정신이 사회 전반에 스며들어 있었기에 다른 문화에 대한 관용은 선진국 사람들로서의 성숙한 인격의 상징이라는 것이 사회적 통념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산업혁명과 기술과학 발달로 경제가 급성장하다보니 노동인구가 부족하게 되어 가장 가까운 북아프리카에서 값싼 노동력을 받아들이는 정책을 채택했다. 무슬림들은 본국에서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던 사람들이었기에 처음에는 유럽의 풍요를 체험하면서 그저 유럽에 거주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무슬림들의 숫자가 많아지자 태도가 달라지면서 무슬림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집단행동을 일삼아 사회적인 불협화음이 심화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1부4처를 인정해 달라든지, 학교식당에서 할랄 음식을 급식하라든지, 이슬람을 모독하는 자를 처벌하라는 법을 제정해 달라는 등 ... 이런 끈질긴 집단 시위를 통한 요구로 영국에서는 이미 각 도시에서 샤리아 법정이 85개나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들을 연구 분석한 독일의 메르켈 총리, 영국의 캐머런 총리, 프랑스의 싸르코지 전 대통령은 이구동성으로 이슬람 때문에 다문화 정책이 실패했음을 선언했다. 그런데 사회복지가 발달된 선진국에서 이슬람 때문에 실패했다는 다문화 정책을 대한민국 정부가 맹목적으로 따라가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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