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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산] 아~ 광복 71주년
2016/08/24 10:3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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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옥 장로.JPG
 
동녘하늘이 붉게 타오르는 아침 태극기를 걸으며 광복을 생각한다. 목숨 바쳐 조국의 해방을 위해 분투하신 선열의 피와 눈물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이 이 땅 의 민족을 불쌍히 여겼기에 조국의 광복은 찾아왔고 후손들은 번영하며 살고 있다. 
동방예의지국 힌 옷을 즐겨 입고, 힘이 있다고 남의 나라를 침범하지 않고, 이웃 간에 음식을 나누어 먹고 길가는 나그네를 즐겨 대접했던 정이 많은 민족 그런 우리의 조상들은 가까운 섬나라 일본에게 온갖 수모와 굴욕을 당하며 무참히 살육 당할 것을 짐작하지 못한 것일까. 조선 말기 백성의 안위는 안중에 없고 권력과 재물에 눈이 먼 탐관오리들은 당파싸움에 몰두하고 있었다. 싸움에서 힘이 부치면 청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여 반대파를 축출하고 힘에 밀린 반대파는 러시아에 도움을 요청하는 조선의 내각은 그야말로 나라가 아니요, 외세의 힘이 지배했던 어지러운 나라였다. 이렇게 어지러운 시기를 일본은 가만두지 않았다. 언젠가 반드시 조선반도를 집어 삼키겠다는 야욕의 칼을 갈고 있던 일본에게 아주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일본은 명치유신 이후 조선에게 여러 차례 통상을 요구하였으나 번번이 거절당하자 1875년 고종12년에 운요오 호를 보내어 무력시위를 벌이게 된다. 영흥만을 거쳐 한강을 타고 거슬러오자 강화의 초지진 포대가 발포하였다. 이에 맞서 운요오 호는 초지진 포대를 격파하고 영종도에 상륙하여 분탕 약탈 방화 살육을 감행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다음해 일본은 이 사건의 책임을 조선에게 돌리며 통상을 요구하여 강화도 조약을 맺게 하였다. 열세에 몰린 조선은 일본이 요구하는 대로 강화조약을 맺게 되었는데 일본과 처음 맺은 조약이요, 일본의 영사재판권을 인정한 불평등한 조약이었으며, 조선이 일본에게 굴욕적인 개국을 허용한 사례가 되었고 조선의 침투를 허용하는 계기를 주게 되었다. 이에 분하여 최익현 등 유생들에 의하여 일본에 대한 척사운동이 일어났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일본에 의한 경제적 침략은 갈수록 심해졌다. 이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의 내각에서 친 러시아파가 등장하자 비상수단을 쓰게 되었다. 조선으로 파견된 미우라는 대원군을 충동질하여 1895년 고종 32년 10월에 대원군을 앞세우고 일본의 칼잡이를 모아 경복궁으로 향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을미사변이다. 미우라는 이경식 홍계훈을 살해하고 조선의 국모인 민비를 무참하게 살해하였으니 이 얼마나 분하고 원통한 일인가 가슴을 치며 통분을 해도 울분을 달랠 수 없는 참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권력에 눈이 어두워 나라의 국모를 살해하는데 앞장선 대원군은 말할 것 없고 조선을 삼키려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일본의 만행에 치를 떨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조선백성의 국모가 일본의 칼날에 무참히 베어졌던 그날 하늘도 울고 땅도 울었으리라. 어디 이뿐이랴 갈수록 심해지는 일본의 야욕은 급기야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며 자기들이 원했던 대로 조선에서 모든 권력을 손안에 쥐게 되었다. 이로써 일본의 고문정치는 실시되었고 1905년 조선을 보호국으로 만들 야욕으로 일본의 하야시와 조선의 박재순이 강제로 을사조약을 맺게 하였다. 조약을 맺을 당시 조선정부가 강력하게 항의하자 일본의 이토오는 하새가와를 대동하고 어전회의에 들어와서 각료 한사람씩 붙잡고 협박하였으나 참정대신 한규설과 탁지부대신 민영기는 끝까지 반대하였고 을사조약을 체결한 5명의 매국노가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을사조약 5적신 박재순 이지용 이근택 이관용 권중현이다. 이 조약으로 조선은 모든 주권을 상실하게 되었고 일본의 경제착취로 조선 백성들은 농사지어 쌀 곡식을 빼앗기고 조 수수 콩 등으로 연명하게 되었다. 어디 이뿐이랴 일본의 만행은 이후로도 말할 수 없이 이 민족을 괴롭혔다. 언어와 글과 이름과 목숨을 그들의 총칼 앞에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무참히 도륙하였으니 광복 71주년을 맞이하는 고요한 아침 휘날리는 태극기는 그때 그 시절 선열들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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