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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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 투병기를 바탕으로 소설을 쓰고픈 미래의 작가가 있었다.
“내가 백혈병에 걸렸다. 손이 떨리고 글씨가 이상하다.오랜만에 연필을 잡아서인가? 3월 30일 새벽에 코피가 심하게 나고 토해서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실려 왔다. 그러다 저녁 쯤, 백혈병이라고 해서 너무 놀랐다. 무균실이라는데 들어가 머리를 밀었다. 난생처음 겪어 보는 일. 봄바람, 봄꽃, 봄의 풍경을 하나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너무 억울하고 슬프다. 맞는 골수가 없다 한다. 엄마를 믿고 용기를 내자. 옆 침대의 아이가 죽었다. 천국서 행복하게 잘 살길... 피오줌이 나온다. 누가 날 좀 살려줬으면... 바다에 가보고 싶어... 돈으로 살 수 없는 깨달음을 얻었어. 파란 하늘, 맑은 공기... 이런 걸 느끼기만 해도 큰 행복이란 걸...”
이정표. 13세, 서울 등촌초등학교 6학년, 그는 끝내 소설을 완성하지 못한 채 일기만을 남겨 놓고 떠났다. 1년 9개월 병마와 힘겹게 싸워야 했던 정표, 숨을 거두기 전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다.
“정표야 사랑한다. 너 너무 멋졌어, 최고였어, 잘 했다.”
인생의 저주란 목마름이 아니라 감사할 줄 모르는 메마름이라 한다. 정작 내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기적이고 그 기적과 함께 사는 나야말로 최고의 행복을 누리고 사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불평, 불만에 갇혀 살 때가 많다. 그래서 신앙의 반대는 불신앙이 아니라 불평이라고 한다.
정신의학자 루이스 캐디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런 말을 한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을 허무주의의 수렁으로, 절망의 구렁텅이로, 자기 연민으로, 자신만의 고립된 공간 속으로, 그리고 우울로, 마침내는 죽음으로 치닫게 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 어떤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느끼지 않는다면, 해마다 새로 피어나는 꽃과 나무 그리고 우렁찬 소리와 함께 탄생하는 어린 생명의 기적에 대한 경이로움과 감사는 무엇인가? 그리고 부모님의 사랑과 헌신에 대한 존경과 찬미는 무엇인가? 또한 우리가 가고 싶은 곳 어디든지 갈 수 있게 하고, 우리가 하고 싶은 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우리 육체의 고마움에 대해선 생각해 보았는가? 당신은 ‘지구에서의 아름다운 휴가’를 즐기며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는가?”
감사야말로 삶의 원천이 된다. 감사는 평범한 식탁을 생명의 잔칫상으로 만드는가 하면 마음의 분노를 쉬게 하고 평화를 가져다준다. 감사하는 순간 하늘의 소망이 열리고 내일에 대한 희망에 부풀어 오르게 된다.
지금 지글러는 이렇게 말한다. “‘감사하다’고 말할 때마다 우리는 ‘내가 가진 것과 내가 있는 장소를 그대로 받아들이겠다. 나는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라고 다짐하는 것이다. 나는 감사할 줄 모르면서 행복한 사람을 한 번 보지 못했다.”
① 큰 것에 감동하고 놀라기보다 사소하고 작은 것에서부터 감사를 발견하다.
② 먼 미래에 일어날 일보다는 지금 이곳에서 감사를 찾아낸다.
③ 기적적인 일에 감사하기보다 매일 매일의 일상에 감사하며 산다.
④ 감사를 계속하다 보면 불평과 불만이 치료되는 것을 경험한다.
⑤ 감사는 감사를 불러일으킨다. 그랫 이 세상에서 가장 부요한 사람이 된다.
⑥ 감사하는 순간 세상이 아름다워진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사랑스러운 존재로 바뀐다. 모든 관계에 평화가 깃든다.
⑦ 감사하는 순간 축복이 임한다.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만방에 선포하는 감사의 선교사가 된다.
17세기 영국의 한 시인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주님! 주님은 나에게 너무가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나에게 한 가지만 더 주시옵소서. 감사하는 마음을”
13살의 나이에 행복이 무엇인지를 발견했던 정표가 그립기만 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정표야 고맙구나, 넌 참 행복이 무엇인지 깨우쳐 주었어. 이제 널 대신해서 이 행복 널리 전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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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칼럼] 살아 숨 쉬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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