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서임중목사 copy.jpg
 
 작금의 나라 안팎은 어두움 그대로다. 언론에 보도된 것들만 정리해도 머리가 아픈 이야기뿐이다. 정치적으로는 전직 대통령이 탄핵으로 수감되어 있는 가운데 주말이면 태극기 집회가 도심의 물결을 이루었다. 전직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되는 청와대 수난사가 이어지고 있다. 국제 정세는 미국의 보호무역으로 인하여 세계경제가 휘청거리고 국내경기는 여기저기 균열조짐이 일어나는 것을 본다. 사회는 미투운동으로 을씨년스러운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다. 그래도 남북 전쟁이 휴전상태로 살얼음판을 딛는 상황가운데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이 이어지는 소식은 가뭄의 단비 같다. 불안감에 휩싸인 국민정서가 바람 앞의 촛불 같지만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을 갖게 되어 후유 한숨이 나온다. 그러니 ‘나라가 걱정이 되어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이야기가 끊어지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어두움이다.
어두움에 속한 사람이란 공중 권세 잡은 자의 추종자를 뜻하는 말로서 ‘공중권세 잡은 자’는 인간의 참된 행복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방해하는 초자연적인 악의 세력으로서 악의 영들, 곧 사단을 의미한다. 이 사단이 지배하는 역사는 어두움이다. 즉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모든 것이 바로 어두움의 일이다. 로마서 1:28-31절에는 어두움의 일에 대하여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고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 어두움에 속하여 그것을 추구하고 그것을 통하여 행복을 얻으려 하는 그 자체가 어두움의 일이다. 이 어두움에 속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너를 아프게 하고 내가 행복했다면, 너를 모해하고 내가 웃었다면, 너의 배고품을 보면서 내가 배불렀다면, 너는 넘어지는데 나는 혼자 달음질 했다면, 너는 힘겨워 울고 있는데 나는 흥겨워 노래 불렀다면 그것은 아직 내 안에 부활의 은총이 없는 어두움의 삶이다. 원망과 불평과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모해와 거짓된 삶이 어두움이라면 이해와 관용과 용서와 사랑과 감사와 축복은 빛이다. 어두움에서 빛으로의 삶이 부활신앙의 삶이다. 우리가 전에는 어둠이었지만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며, 그러기에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여야 한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다. 그런데 나는 우리는 아직도 이 어두움에 있는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되실 때의 사회가 어떠하였던가? 유대인의 무질서가 있었다. 교권 주의자들의 난무가 있었다. 권력이 하나님을 난도질하던 때였다. 거짓이 활개를 치던 상황이었다. 불의가 승리했다고 외쳐 대던 때였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불신의 담이 높아 있던 때였다. 어둠에서 살면서 빛에서 사는 것으로 착각하던 시대였다. 진리를 불의의 망치로 못질하던 때였다.
오늘의 우리 사회가 어떠한가? 질서를 부르짖지만 혼란이 거듭되고 있다. 사상이 하나님을 얽매려고 한다. 불의가 진리를 난도질하려 드는 어처구니없는 일 들이 일어나고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인간의 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사역자들은 선지자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팡이를 땅에 던져버리고 있다. 이것이 무엇인가? 부활신앙을 고백하지 못하는 어두움에 속한 자들의 필연적인 삶의 모습이다. 빛이 없어서가 아니라 빛으로 나아가는 부활의 은총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어두움에 있는가?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아직도 불안과 근심과 미움과 절망과 죽음의 어두움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진정 부활의 은총을 경험하지 못한 아픔이다. 우리가 진정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들의 삶에서 미움이 사랑으로 전환되고, 불안이 평안으로, 절망이 희망으로, 근심이 기쁨으로, 원망이 감사함으로 전환되는 것 그것이 어둠에서 빛으로의 부활의 은총이다.
내 안에 미움과 원망과 불평과 시기와 질투와 분쟁의 어두움을 밀어내고 이해와 관용과 용서와 사랑을 통한 기쁨과 감사와 축복과 평화의 빛으로 전환된 삶의 장을 엮어가야 하는 것이 부활신앙인의 삶이다.
아직도 어두움에 있는가? 우리가 전에는 어둠이었지만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며, 그러기에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여야 한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다(엡5:8~9) 그것은 유별난 행동이 아니라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연주되는 복음의 삶이다. 그것은 애해와 관용과 용서와 사랑이다.
토요일 오후 목욕탕에서 나와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골목길에서 감자 5개, 파2단, 고구마3개, 시금치 1다발을 앞에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72세 할머니를 만났다. 그 앞에 마주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그 모든 것을 전부 비닐봉지 몇 개에 옮겨 담아 차에 실었다. 그리고 5만원을 드렸더니 “거스름돈이 이만큼 없는데...”하시는 할머니 손을 잡고 괜찮다고 하면서 일어났다. 돌아서는 눈에서는 눈물이 고였다. 몇 번이나 돌아보는 나에게 할머니는 물끄러미 바라보시면서 몇 번이나 허리를 굽히셨다. 저녁 선물이라고 건네준 비닐봉지를 받아 든 아내는 종종 있었던 일이기에 이미 감을 잡고 빙그레 미소만 짓다가 “잘 하셨네요.” 라고 내 등을 한 번 툭 쳤다. 빛으로 나아가는 삶이란 유별난 것이 아니다.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연주되는 십자가 복음의 삶임을 다시금 자각하면서 고난주간을 맞는다.
어두움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부활의 아침은 왔다. 아직도 어두움에 있는가? 2018년 부활의 아침을 기다리면서 우리 모두는 어두움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삶을 연주해야 한다. 그것이 부활신앙인의 삶이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서임중 칼럼] 아직도 어두움에 있는가?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