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김운성 목사.jpg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백 삼십 년 동안 애굽에서 살았습니다. 그 중에서 얼마 동안이 노예살이 기간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기간이 결코 짧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애굽에서 노예로 사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일은 비돔과 라암셋 등의 국고성을 쌓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건축 현장에 강제로 동원된 그들이 성만을 쌓지는 않았으리라는 것은 너무도 명백합니다. 아마도 그들은 애굽이 지금까지 자랑하는 피라미드를 쌓는 일에 동원되었을 것입니다. 언젠가 애굽에서 지금도 세계 7대 불가사의들 중 하나로 평가되는 피라미드를 바라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그들은 피라미드를 만드는 일에 매우 익숙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애굽의 바로들의 피라미드를 만드는 일은 그들에게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꺼운 마음으로 피라미드를 만들 기회가 왔습니다. 그것은 모세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누구입니까? 백성들은 때때로 모세를 원망했고, 심지어 가데스 바네아에서는 모세를 돌로 치고 지도자를 따로 세워 애굽으로 돌아갈 생각까지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어디까지나 모세는 그들의 최고 지도자였습니다. 모세 없는 이스라엘 공동체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랬기에 모세가 십계명을 비롯한 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가서 여러 날 내려오지 않았을 때, 그들은 몹시 당황한 나머지 모세의 형인 아론에게 하소연했고, 아론과 백성들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빈 마음을 위로했을 정도였습니다. 모세가 눈에 보이지 않자 그들은 그 즉시 무너져 범죄했습니다. 이럴 정도로 모세는 절대적 존재였습니다. 그런 모세가 죽었으니, 백성들이 얼마나 슬펐겠습니까?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을 중단하고라도 그들은 모세를 위한 피라미드를 만들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과거에 바로 왕들을 위한 공사가 억지로 하는 노역이었다면, 모세를 위한 공사는 자발적으로 우러나는 봉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모세를 위한 피라미드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분위기를 볼 때 하나님께서 막으신 게 틀림없습니다. 본문 6절은 모세가 묻힌 장소를 아는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피라미드는커녕 묻힌 장소조차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보면 모세는 무덤조차 없는 사람으로 생애를 끝냈습니다.
사실 모세처럼 위대한 인물도 드물 것입니다. 그는 34장이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대면하여 알 정도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밀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명을 다할 때까지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바로 왕과 애굽 사람들 앞에서 할 일을 다 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모세가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모세는 무덤도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모세는 가나안에도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비스가 산꼭대기에서 가나안을 바라보는 것으로 끝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모세의 인생은 실패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삶의 성패는 가나안에 입성했는가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가치 있게 사용되었는가에 의해 결정됩니다. 비록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어도 모세는 하나님께 아름답게 쓰임 받았습니다. 반면에 가나안에 입성한 이스라엘은 후에 하나님을 떠나 살다가 멸망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목표를 수정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나안 땅을 목표로 살아갑니다. 가나안을 얻으면 기뻐하고, 그렇지 못하면 낙심합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우리는 가나안을 얻는 것과는 상관없이 하나님께 쓰임 받는 목표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으면 광야에 있는지, 가나안에 있든지, 어디서나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장소에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삶을 살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한다면, 그 삶은 성공이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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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 무덤도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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