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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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야기는 사람 사는 세상의 한 쪽 이야기이다. 그 한쪽을 이렇게 풀어 본다. 하나, 오늘 나는 무엇이나 통계화 되는 세상에서 산다. 현대 사회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도 숫자로 표시되는 통계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표시 방법이다. 신문을 비롯한 많은 언론 매체에는 수많은 통계들이 제시된다. 경제에 관한 것부터 정치 여론 조사 통계, 그리고 자살률 같은 사회 현상도 예외는 아니다. 그 뿐인가. 우리 자녀들의 성적도 온통 숫자를 중심으로 한 통계 일색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숫자의 마력에 빠져 살 정도이다. 경제지수가 좋게 나왔다고 발표되면 언론은 한차례 잔치를 벌이듯 알린다. 아이가 1등을 하면 그 집안은 흥분의 도가니가 될 것이다. 실업률을 비롯한 수많은 사회지표들의 통계는 현대인들을 웃고 울리기도 한다. 그런데 실제 그 통계가 나에게 주는 체감온도는 어떤가? 때로 그 숫자로 표시된 통계라는 것이 오늘을 살고 있는 나에게 원하지 않는 고통을 부담시키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볼 일이다.
둘, 오늘 나는 문명과 문화가 마치 이분화된 사회에서 산다. 개인적으로 나는 미국에서 원조로 온 곡식가루와 우유를 먹은 마지막 세대에 속한다. 그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그 풍성함은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니 내 위의 세대에게는 지금의 풍요로움이 신비로울 정도이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휴대폰을 비롯한 많은 전자 기계들은 그 사용법을 몰라 제대로 쓰지 못할 정도로 다양하다. 뿐만 인가? 사람들이 보다 편리하게 살도록 도우는 기계의 발달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행복한가? 이상하게도 휴가가 되면 도시의 많은 사람들은 그 편리함을 뒤로 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산이나 계곡으로 가서 쉬고 싶어 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편리함을 주제로 하는 문명의 발달이 사람의 정신세계를 움직이는 문화의 발달과 함께 가지 않으면 결국 그 편리함은 또 다른 불편함이 될 것이라는 것을 말한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였다. ‘아날로그적 삶을 살기 위하여 나는 디지털을 배운다’고 말이다. 사람에게는 편리함이 모두가 아니다. 그러나 세상은 점점 편리함만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달콤한 유혹을 하고 있다. 조금의 수고로움이 때로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중요한 소도구임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셋, 오늘 나는 진단과 치료가 동행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산다. 각 언론 매체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입에는 진단지가 달려 있는 것 같다. 주변의 수많은 사건들과 현상들을 보고 판단하여 진단하는 능력도 대단한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그 진단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진단 뒤에 따라 와야 할 치료제가 희귀하다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진단에 따른 처방전을 말한다. 그러나 그 처방전의 효과는 기대만큼 없는 것 같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보다 진단이 사람을 중심으로 하기보다 사건 그 자체에 매달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누구나 사건에 대한 판단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정작 그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왜 진단은 많은데 처방이 많지 않을까? 사건만을 보고 그 사건 속에 있는 사람은 잊어버린 결과는 아닐까?
넷, 오늘 나는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 사회에서 산다. 내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셔서 징집을 당하시고 많은 공부를 하지 못한 분이다. 그러나 그 분에게 받은 너무나 소중한 유산이 있다. 그것은 바로 책임감이다. 특히 가족에 대한 부분은 나로 하여금 깜짝 놀라게 할 정도이다. 비단 내 아버지뿐일까? 우리의 부모님들이 한결같을 것이다. 지금은 모두가 져야 할 책임의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고 하며 진 십자가도 할 수만 있다면 벗어버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 사회가 바르게 유지될 수 있는 중요한 힘은 바로 사회와 서로에 대한 책임감이다.
이 같이 살아가는데 그래도 사람에 대한 끊을 수 없는 애정을 가지고 사는지 오늘도 나에게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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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목사] 생명회복을 위한 절반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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