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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에덴교회 담임 소강석 목사가 폭발적인 목회 성공을 이룬 원인은?
2018/12/12 13:02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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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소강석 목사
얼굴에는 껌어 쩨쩨하고 마치 레슬린 선수 같기도 하고 작은체구에어떻게 보면 시골 촌사람 같아 보이는 그를 만난 것은 아마 부산기독교총연합회(부기총) 주최로 20134월 부산 벡스코에서 부산 부활절 연합 집회 주강사로 초청하기위해 의전을 갖춘 벤즈 외제 승용차로 이성만 장로와 함께 김해 공항에서 부터 행사 장소까지 같이 동승했던 기억이 난다. 승용차 안에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하며 동정 인사를 나눈 소강석 목사의 첫 대면에서 그의 소박하고 꾸밈이 없는 진솔한 느낌을 받아 퍽 재미있게 농담도 잘하시는 목회자로 인상을 받았다. 그 이후 필자가 출석하는 은성교회에 부흥회 강사로 초청한 만남의 계기가 되었다.
물론 함께 동승한 이성만 장로 아들이 단국대 교수로 있으면서 새에덴교회에 갓 출석한 총각 교수가 이 장로에게 바짝 다가서는 소 목사의 친절한 화술에도 감탄도 했지만 끈득지게 파고 드는 그의 접근성에 모두 다 손발 들었다. 반드시 자기교회 교인으로 잡아 놓기 위해 필사적으로 파고들어 교수에 대한 정보를 아비로부터 얻어려는 집념에는 과히 고개를 숙일 지경이었다.
이 날 차안에서의 전도 전락은 100%성공에 가깝게 느껴졌다. 소위 동물의 세계에서 "한번 물면 목숨이 다하도록 놓지않는 동물세계 마냥 교인 전도는 바로 이것이다고 자타가 인정할 정도였다. 그 날 집회에 선 첫 말이 어이엿 어리둥어엿이하며 장례 새의 나가는 것에 종까지 흔드는 모습에 청중을 휘어잡는 화술에 녹을 정도였다.
그래서 오늘날 새에덴교회는 30년 전 신학 공부를 위해 서울로 올라 와 목사 안수를 받은 후 1988년 가락동 건물 지하에 세들어 첫 개척한 것이 오늘의 새에덴교회 시작이었다. 지하 단칸 공간에서 분당을 거쳐 현재 용인 죽전으로 세번씩이나 옮겨 오늘에 이른 것이 등록교인 45천명에 이를 정도로 급성장했다.
45천명 출석하는 대형교회 목회자로 자리잡아
과거 전도사 시절에는 전남 화순군 능주면에 첫 사역지로 부임한 백함교회 교인 불과 10여명 남짓, 이곳에서 1981년 당시 광주신학교 2학년 초년 전도사였던 그는 겁도 없이 이곳 백암 마을은 "모두가 전도를 포기 한 곳"으로 알려진 불신의 사각지대에 들어왔으니 분명 젊은 전도사는 일주일도 견디지 못해 쫓겨날 것이다는 입소문에도 겁없이 달려 들었으니 패기만만한 신초라기 신핑 소 전도사가 300호 남짓한 마을에 들어와 전도할 때마다 '나가라고'고 뗏자을 놓아도 마다하지않고 먼저 어린 아이들에 다가가 웃기기도 하는 원멘 쇼로 꼬마 아이들을 불려 모이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욕을 하면 '제가 소 씨이니 이왕이면 소 새끼'라고 불러 달라"며 그들 곁으로 다가 갔다, 마을 어른들이 필요없다"해도 모내기며 타작할 때가 되면 다가가 몸으로 떼우고 마을 애경사에도 빠지지않고 다닌 결과로 그를 마을 이웃 친구로 받아드리게 됐다, 그리하여 198412월에 현재의 자리에 백암교회 헌당식을 올릴 수가 있었다, 이것이 고난 뒤에는 반듯이 기쁨과 영광이 온다는 신념과 믿음이 있어던 관계로 목회 인턴 과정을 경험한 곳이 바로 백암교회 사역이 밑거름이 되었다고 한다.
어떻게 대형교회로 부흥시킬 수가 있을가?
물론 그의 장모님 권사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고 하나 소 목사는 설교를 할 경우 온 몸과 영혼을 다 바친다. 설교 중에 시인이 되어 시 낭송을 하는가 하며 때론 복음가수가 되어 한 곡조 부르고는 마음에 안차면 이선희 가수의 "J에게" 한 소절을 구설프게 댕긴다. 그래서 그의 전도 전락 가운데 특이한 부분은 그야말로 국내 이름이 있는 대형가수 "남진, 송대관" 등 많는 가수들을 영입하여 교인으로 만들어 주변 불신자들이 유명 가수들 보려 오게 되게 연예인들 보려 온 전도 전락이 맞아 떨어진 최고의 설교 전락이 성공한 결실이다, 그뿐아니라 국내 유명 정치인들도 전도하여 이곳으로 예배드려는 바람이 불어 물결처럼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몰려 오기도 한다. 시인이자 문학도 였던 그의 열정은 기존 문인들을 능가할만큼 세련된 글 재능이 있다.
그리고 소 목사는 교회예산의 상당 부분을 나라를 위해 받친 소영웅들 해외에서 파병한 해외전우들을 초청하여 그들을 위로하며 격려하며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의 보은 보답을 잊지 않게 예산을 투자하게 되니 내이웃을 내 몸과 같이 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실천하는 교회로 잡아가다 보니 이 교회야 말로 강당에서 외치는 말씀과 일치하는 행동을 보고 많은 젊은이들이 몰려 오는 것이다. 다음세대의 희망이 새에덴교회을 보고 새 소망이 한국교회가 있다는 것을 희망의 메세지을 읽을 수가 있다는 것을 많은 젊은이들이 본 것이다. 사회와 국가을 위해 그리고 이웃을 위해 따뜻한 겨울 나기 나눔 축제를 열고 이웃에게로 다가가기 때문에 수많는 교인들과 불신자들이 이곳 새에덴교회로 몰려 든 이유이기도 한다는 교회사 연구 학자들이 나름대로 분석을 할 수가 있었다. 설교시간엔 웃음과 위트가 장내를 감동으로 끌어들이는 독특한 기술이 있다. 누구나 쉽게 알아 들을 수 있는 소탈한 설교 내용이 모든 교인이 공감하는데 매력이 넘친다.
소 목사는 "대형교회라해서 교만에 빠지지않고 늘 백암교회 시절의 사역 초심처럼 겸손하게 교인들에게 다가가는 한국교회 롤 모델의 전형적인 순수한 목회자로 남기를 소원하고 있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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