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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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침반 (羅針盤, compass)은 방위를 측정하기 위한 계측기로 선박이나 항공기의 침로(針路)를 결정하는데 필수적이다. 나침반 없는 항로 여정은 마치 죽음을 자초하는 것과 같은 자명함이다. 나침반의 좌표가 배나 비행기에만 국한 되겠는가? 그럴 리가! 인간생활에도 가장 중요한 삶의 좌표다. 어떤 사람은 자기 인생의 항로를 가리키는 나침반을 돈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는 지식, 권력, 명예라고들 한다. 그런 대부분의 사람들 중 침몰하지 않은 인생여정을 산 사람이 없다.
요즈음 국가상황을 보며 많은 국민들이 심히 걱정들을 한다. 국가 걱정을 가장 먼저 해야 할 이들은 정치인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오히려 정치인들 때문에 나라가 어려워진다는 것이 국민정서이고 국민들이 나라를 더 걱정을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한 마디로 정치권에 역사의 나침반이 없다는 것이다. 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다. 감히 말하건데 많은 한국 교회도 다르지 않다. 한국교회가 나침반 없는 배가 되어 항해하는 것과 같은 상황을 많이 이가 걱정한다.
사도행전 27장에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네 삶과 같은 주목할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바울이 죄수가 되어 로마로 호송되어 가는 배에는 네 부류의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권력을 가진 백부장, 돈을 벌기 위한 선주와 선장, 상인들, 손발이 묶인 죄수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 바울, 그렇게 276명이 승선해 있었다. 항해 도중 미항이라는 곳에 정박을 했을 때였다. 기도하던 바울은 배가 항해를 계속하면 많은 이의 생명이 위태롭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백부장에게 항해를 잠시 중단해야 함을 알린다. 그러나 그는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신뢰하여 항해를 계속하게 했다. 항해를 시작하니 바울의 권고를 조롱이라도 하듯 순풍이 불며 날씨가 좋았다. 선장과 선주는 자기들의 뜻이 이룬 줄 알았다. 얼마를 갔을까. 곧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밀려와 모두의 생명까지 위태롭게 되었다. 결국 살기 위해 배의 모든 짐들을 바다에 던지며 질풍노도로 널을 뛰는 바다에서 그들은 불안과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이 때 바울이 일어나 일장 연설을 한다. “내가 그레데에서 떠나지 말자고 할 때 들었으면 좋았겠으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젯밤 내가 믿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한 사람도 죽지 않고 배만 손상되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십시오. 나는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믿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이 바울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었다.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이 있다. 첫째 기도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있다. 둘째 모든 짐들을 바다에 버렸다. 셋째 주신 사명을 다하기까지는 어떤 환난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사명자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나의 목회 30여년 걸음은 이 말씀에 의지한 것이었다. ‘온갖 풍랑이 다 일어나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 하나님은 오늘도 기록된 성경말씀을 통하여, 선포되는 말씀 설교를 통하여 나에게, 너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되리라’ 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성도다. 마귀는 하나님이 계심을 믿고 떨지만 절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 교회 안에 있지만 믿음 없는 사람은 기록된 말씀도, 선포되는 말씀도 믿지 않으며 순종하지 않는다.
작금의 한국교회 곳곳에 풍랑을 만나 좌초되는 배와 같은 상황에 직면하고 있음을 본다. 그 중심에는 백부장과 같고, 선장과 선주와 같은 사람들이 자기 의에 도취되어 하나님의 사람을 무시하고 간과하는 형상이 있음을 본다. 비록 죄수의 모습이나 참 하나님의 사람인 바울같은 믿음의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풍랑이 일어나니 사리분별을 못하고 좌충우돌하며 두려움에 떨면서 가진 모든 물건을 바다에 던지는 카오스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2019년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이 한 해를 살아가는 우리 삶의 여정은 배를 타고 항해하는 것과 같다. 순풍에 돛달고 노래하며 가지만 갑자기 불어닥치는 유라굴로 같은 환난을 만나기도 한다. 그럴지라도••• 나침반을 보고 항해하면 결코 길을 잃지 않는다. 인생의 나침반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되리라”는 약속의 말씀에 아멘하며 가면 결단코 하나님이 살리신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빛이 있으라...” 빛이 있었다. 아브라함에게 복이 되리라 하시니 복이 되었고, 이삭을 축복하시니 백배의 복을 받았다. 야곱을 축복하시니 이스라엘이 되었고, 요셉을 축복하시니 노예에서 총리가 되었다. 광야와 사막에 물을 명하시니 물이 흘렀고, 사울을 책망하시니 그 가문이 멸문이 되었으며, 모세를 대적한 족속들에게 화를 내시니 다 멸망하였다. “있으라!” 하시니 있게 되었고, “무너지라! 열리라! 풀리라!” 하시니 무너지고 열리고 풀렸다. 하나님은 지금도 동일하게 말씀하신다. 그 말씀대로 되는 것을 의심 없이 믿는 것이 믿음이다. 나침반을 보고 항해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교회도 기업도 가정도 마찬가지다. 권력형 백부장이 있고, 장사꾼 선장, 선주, 자기 볼 일을 보기 위해 승선한 사람도 있으며, 비록 죄수로 호송되고 있지만 하나님의 사람 바울 같은 사람도 있다. 인생여정의 나침반은 권력이 아니며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도 아니다. 유라굴로 광풍을 만났어도 276명 중 단 한 사람도 죽지 않고 살게 된 것은 “하나님이 말씀 하신대로 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을 믿는 바울의 믿음 때문이었다. 이것이 인생여정의 나침반이다.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진행된다. 내가 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하신다. 이런 믿음의 사람은 때로는 속상하고 억울해도, 지쳐 쓰러지며 때로는 넘어져도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다시 일어서게 하신다. 눈앞의 것 때문에 더 좋은 것을 잃지 않게 하신다. 276명 그 누구도 머리카락 하나 상하지 않고 다 살게 된 것은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사람 바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렇듯, 2019년 한 해를 ‘나’ 때문에,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살게 되는 한 해가 되도록 살아가자. 이런 삶은 나침반의 좌표를 보고 항해할 때 가능하다. 나침반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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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임중칼럼] 삶의 좌표를 설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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