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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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사무엘이 젖을 뗀 후 엘리 제사장 슬하에서 성장하던 때의 일을 보여줍니다. 당시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 아래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배우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이때 사무엘은 나이만 어린 게 아니라, 영적으로도 아직 미숙했습니다. 그의 영적 미숙함에 대해 7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아이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여기서 눈길을 끄는 구절은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란 부분입니다. 당시에 사무엘이 여호와 하나님을 몰랐을 리가 만무합니다. 그는 성막에 머물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배우던 중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분이라는 사실, 광야에서 인도하시고 가나안을 주신 하나님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라고 한 것은 사무엘이 아직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여기 <알다>라는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많이 사용된 동사인 <야다>입니다. 야다는 먼발치에서 보았거나 이름 정도를 들어서 아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 동사는 자신이 직접 경험하여 아는 것을 말합니다. 음식을 직접 먹어보는 것, 자동차를 직접 운전해 보는 것 등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을 체험할 때, 비로소 하나님을 안다고 하겠습니다. 사무엘은 그때까지 아직 나이가 어리고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기 전이었습니다. 그저 엘리 제사장으로부터 하나님께 대한 객관적 사실들만 들어서 아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하나님께서 사무엘의 이름을 직접 부르시고, 그에게 직접 말씀하셨음을 보여줍니다. 그 날 사무엘은 난생 처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처음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처음엔 엘리 제사장이 부르는 줄 잘못 알았지만, 나중엔 엘리의 충고를 따라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 날 밤이 지난 후 사무엘은 그 전날의 사무엘과 전혀 달랐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렇습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 교회에는 다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 아주 초보적인 체험을 가진 사람, 늘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면서 은혜 위에 은혜를 맛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깊이 맛보아 알도록 사모해야 합니다. 그저 교회 다니는 사람으로 머물면 안 됩니다. 오늘 우리의 심각한 문제들 중 하나는 하나님께 대한 간절함이 사라진 것입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처럼 간절히 은혜를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이를 위해 말씀을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이는 하나님 체험은 말씀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본문 1절은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라고 했고, 7절도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를 아는 것은 곧 말씀을 아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여호와를 만난 후에는 21절의 표현처럼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분입니다. 성경을 통해 말씀을 만나고,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체험해야 합니다.
엘리 제사장의 문제점은 바로 여기 있었습니다. 그는 평생을 제사장으로 살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얻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던 밤, 엘리도 성막에 있었으나 하나님께 부름을 받지 못했고, 말씀도 듣지 못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오히려 사무엘이 받은 말씀을 엘리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려면 영적으로 맑고 깨끗해야 합니다. 말씀은 영이 맑은 이들에게 다가옵니다. 부정한 인간적 편견으로 가득하면 말씀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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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 여호와 하나님 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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