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9.12.06 15:16 |
[부산기독교이야기] 북장로교의 의료선교사 어빈 문제 (Fusan Problem)
2019/06/26 10:43 입력
트위터로 기사전송 페이스북으로 기사전송 구글+로 기사전송 C로그로 기사전송
이상규교수 copy.jpg
 
부산에서 일한 북장로교 의료선교사 어빈(Dr Charles Irvin, 1862-1933)은 특이한 인물이자 논쟁적인 인물이었다. 1894년 3월 부산으로 와 1911년 4월까지 17년간 의료선교사로 활동했고, 선교사직을 사임한 후에는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 5가 영선고개에 ‘어을빈의원’을 개원하여 돈을 벌었던 의사. 만병수(萬病水)라는 만병통치약을 계발하여 돈을 벌었고, 말년에 자기 병원옥상에서 돈을 던져 이것을 주우려는 주민들의 모습을 감상하는 광기를 부렸다는 서양인. 부인 베르타와 이혼으로 선교사직을 사임한 후 무려 26여년 연하였던 양유식(1888-?)이라는 한국여성과 재혼하는 등 특이한 삶을 살았던 인물. 40년간 한국에 체류하고 1933년 2월 9일 부산에서 사망하고 복병산에 묻혔던 서영인이 어빈의사였다. 성격이 독특하여 다른 이들과 융화되지 못해 선교부 내의 골칫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런 그의 행태와 이로 인한 선교부내부의 문제를 헤아릴 수 있는 문건을 발견했다.
미국북장로교 동아시아 담당자였고 후에는 선교부 총무가 되는 아서 브라운(A. J. Brown)은 1903년 7월 14일자로 웰본(Arthur G. Welbon) 선교사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오월번(吳越璠)으로 불린 웰본은 1900년 내한하여 안동지부에서 일하던 선교사였다.
“친애하는 웰본 씨,
... 저는 어빈 의사건과 부산 문제(the case of Dr Irvin and the question relating to the Fusan station)에 대한 웰본 씨의 4월 23일자 편지를 주의 깊게 읽었습니다. 아신는 바처럼 당시 선교부 통신을 맡으셨던 엘린우드 박사께서 건강이 좋지 못해 휴가 중이신데, 이러한 난처한 문제로 그 분께 편지를 쓴다는 것은 현명한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선교부 이사회 또한 대부분의 이사가 시외로 휴가를 떠났기 때문에 9월까지 회의는 열리지 않습니다. 웨본 씨께서 지적하신 문제들은 이사회에서 철저히 검토하여 공식적으로 결의된 바 있고, 어빈 의사는 다시 선교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Dr Irvin is again on the field). 게다가 엘린우드 박사도 부재중이신데, 제가 부산 사안을 사적인 편지를 통해 제기한다해도 이사회에서 관심을 가져줄지 확신이 없습니다. 웰본 씨께서도 저와 마찬가지로 한국을 위한 선교부 총무인 제가 미래지향적인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라고 여기실 것입니다. 저는 과거의 모든 견해 차이(past differences of opinion)는 영원히 묻어두고 사무실에 있는 저희나 현지 선교사들이나 할 것 없이 모든 관계자들이 우리 앞에 놓인 위대한 사역을 위해 새로운 단결과 헌신을 다짐해야 한다는 매우 긴박한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웰본 씨의 말씀처럼 우리는 선교사들이 기도하는 마음과 양심으로 최선이라고 여긴 것을 행하였음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이사회 임직원 또한 동일한 양심으로 최선이라고 여기는 것을 행했으리라 확신합니다. ...”
이 편지를 보면 어빈 의사 건으로 부산 선교부 혹은 주한 북장로교 선교부에서 문제가 되었 고 이 점이 월본 선교사를 통해 북장로교 해외선교본분에 보고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구체적인 문제를 알기 위해서는 웰본이 1903년 4월 23일자로 쓴 편지를 찾아야 하는데, 이 점은 나의 숙제로 남아 있다. 그런데 웰본 선교사의 손녀인 Priscilla Welbon이 엮은 『서울 주제 북장로교선교사들의 일상생활, 1903-1905』에 보면 흥미로운 기록이 남아 있어 부산선교부의 어빈 문제에 대한 보다 주요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어서 브라운의 편지에서 언급된 어빈 문제는 당시 ‘부산문제’(Fusan Question), ‘부산 사안’(Fusan Matter), ‘부산 사례’(Fusan Case), 혹은 ‘부산 난제’(Fusan Problem) 등으로 불렸는데 이런 다양한 이름만큼이나 문제가 복잡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1897년부터 1910년 사이에 여러 주한 선교사들과 미국북장로교 해외선교부 담당자간에는 많은 편지가 오고 갔는데, 그 내용은 다른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는 그런 식으로 기술했는데 이 점은 당시 사태의 심각성을 헤아릴 수 있다. 외부로 알려질 경우 선교본부나 선교후원자들, 그리고 선교 현지 교회에도 영향을 줄 수 있었기 때문에 자기들만이 통하는 그런 기술을 했음(were mostly guarded in their language))을 알 수 있다. 문제가 심각했음인지 1907년에는 어빈과 관련된 모든 “결정사항을 삭제하고 기록을 말소하자”는 결정을 했고“(all records of the action be wiped out and that the records be expunged) 이 결정에 따라 많은 기록이 폐기되었다. 이 점은 짧은 기간 부산에 체류했던 어네스트 홀의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차호 계속)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kcnp1@hanmail.net
한국기독신문(www.kcnp.com) - copyright ⓒ 한국기독신문.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 많이본기사
  • 화제의 뉴스

화제의 포토

화제의 포토더보기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기사제보
  • 정기구독신청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 한국기독신문 (http://www.kcnp.com) | 창간일 : 1995년 4월 11일 | 발행인 : 김해옥 | 편집인 : 신이건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신상준 국장 
    602-053   부산광역시 서구 까치고개로 229번길 47-1
    사업자등록번호 : 758-96-00228 | 정기간행물등록 : 부산, 아00259
    대표전화 : 051-245-1235 | 팩스 : 051-245-2763 | kcnp1@hanmail.net
    Copyright 2015. kcnp.com All right reserved.
    한국기독신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