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하면 집사들이 피택된 후 교회 내에서는 안정을 되찾고 사도들은 좀 더 역동적으로 복음을 전했으며, 교회는 부흥 발전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점차 흥왕하여 갔고 신자의 수도 심히 많아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도 각자가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을 온전히 수행할 때 자연히 교회는 부흥 발전하게 됩니다.
스데반을 위시한 일곱 집사들이 교회 안에서의 중책을 맡게 된 것은 순전히 신앙이 탁월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적어도 그들은 교회 안에서 칭찬을 듣고 또 다른 신자들과 조화롭게 생활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귀한 일을 맡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주의 일꾼은 지체로서의 자기인식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스데반은 집사로 위임된 후 그가 돌에 맞아 처참히 순교할 때까지 다른 집사들과 힘을 합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거룩한 사명을 한시도 게을리 하지 않고 충실히 이행해갔습니다. 스데반의 이 같은 노력의 결과로 교회는 더 이상 구제와 분배 문제로 말썽을 일으키지 않게 되었고, 이러한 안정적 분위기 속에서 복음 전파 사역은 더욱 역동적으로 실시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아무리 하찮아 보이고 빛이 나지 않는 일처럼 보일지라도 작은 일에 충성, 헌신하면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 나라에 크게 공헌하게 될 것입니다.
스데반은 교회 내의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구제 사업을 원활하게 처리하기 위해 예루살렘 교회가 뽑은 일곱 집사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자요,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물론 스데반이 이처럼 아름다운 신앙과 지혜를 겸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스데반은 자기에게 주신 이 큰 은혜를 그대로 묵혀 두지 않고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활용함으로써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는 그 은혜에 합당한 헌신과 충성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본토에서 출생한 히브리 파 유대인과 이방 각처에서 흩어졌다가 유대로 다시 돌아온 헬라 파 유대인들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막이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가 피해 의식을 가지고 서로의 신앙과 삶의 자세를 용납하기를 주저하였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교회 내에서는 헬라파 유대인들 과부에 대해 소홀히 대우한 데 대한 불만이 고조되어 자칫하면 불화와 분열의 위기에까지 몰릴 수도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바로 이때 스데반을 위시한 일곱 집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성도 상호간에 싹트고 있던 불신의 벽을 말끔히 척결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모범을 보이는 신앙으로 승리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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