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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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일하던 베어드가 대구에 새로운 선교지부를, 개척하기 위해 이동하게 되자, 1896년 10월 19일에는 미혼여성인 루이스 체스(Miss Louise Maria Chase, 1869-1938)가 부산으로 부임하게 된다. 1897년 10월 11일에는 시릴 로스(Cyril Ross, 1868-1963) 목사와 의사인 그의 부인(Susan Shank Ross, MD, ?-1954)이 부산으로 왔고, 그 뒤를 이은 인물이 시더보탐 목사 부부였다. 이렇게 볼 때 체스 양은 부산지부에 파송된 최초의 미혼여성 선교사였다. 그는 이때부터 1901년 12월 로스 목사 내외와 더불어 선천으로 이동하기까지 부산에서 5년 간 일하게 된다.
체이스가 내부할 당시 부산지부에는 어빈 의사 부부와 아담스 부부 뿐이었고, 부산지부는 여성과 어린 아이 사역을 위해 여성 사역자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바로 이런 시기에 체이스 양이 내한하게 된 것이다. 아담스는 1896년 2월 말 이전(정확한 날지 미상)에 미국북장로교 해외선교부 총무인 엘린우드 박사에 쓴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이곳 부산에서 미혼 여성 사역자가 긴급히 요구된다는 점을 박사님께서 잊지 않으셨으리라 믿습니다. 저는 사역이 무르익은 선교지부에 여성사역자가 얼마나 긴요한지 이전에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자녀가 있는 기혼여성은 언어를 습득하고 나면 많은 일을 할 시간이 날 것 같지만 자기 마음대로 시간을 낼 수 가 없습니다. ... 그러나 미혼여성은 자기 일거리를 정하거나 조직화할 수 있고 그 일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기혼 여성 사역자의 효율성은 두 배 혹은 세배 이상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미혼여성 사역자는 시간이 자유로울 때 언제든지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동원하여 맡겨진 일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1896년 5월 25일자로 쓴 편지에서는, “여성들을 위해 할 일이 많습니다. 그리고 모든 시간을 사역에 쏟을 수 있는 독신여성은 선교부에 큰 소득이 될 것입니다. 이곳에서는 복음을 전할 기회를 찾을 필요가 거의 없습니다. 여자들은 한 번에 두 세 명씩, 혹은 12명까지 집 구경을 하러 옵니다.” 기혼 여성 사역자는 언어를 공부하고 일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도 육아나 가정사 때문에 사역의 방해를 받지만 미혼여성은 필요한 사역에 전력투구할 수 있고, 또 전도하러 다닐 필요 없이 찾아오는 여성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아담스는 부산지부에 독신여 선교사가 필요하다는 점을 엘린우드에게 호소했는데, 아담스의 편지를 받은 엘린우드는 1896년 4월 14일자로 아담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체이스를 선교사로 임명할 계획을 알려주었고, 이 계획에 따라 체이스는 1896년 5월 선교사 임명을 받았다. 임명받은 체이스는 부산에서 일하고 있는 아담슨에게 편지를 보내 9월이나 10월경 한국으로 향할 것이라고 알려주었고, 특히 아담스 부인에게 편지를 보내 선교지에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묻는 편지를 보냈다. 이런 과정을 거쳐 1896년 10월 19일 부산으로 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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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기독교이야기] 부산에서 일한 북장로교 선교사들, 루이스 체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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