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6(화)
 
-사회를 섬기는 교회, 처음부터 지금까지
-도심 속 전원교회, 맑은 공기 건강한 교회
-“교회가 정치적 책임은 가져야 한다”
 
부산중앙교회.JPG▲ 남천동에 위치한 부산중앙교회
 
시작부터 특별한 교회
최현범 목사.JPG
 대부분의 교회들이 개척할 당시에는 소규모 인원이 모여 집에서 혹은 작은 공간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부산중앙교회(담임 최현범 목사)의 시작은 특별했다. 1945년 12월 첫 주일 교회 설립 예배를 가졌다. 부산시 중구 대청동에 위치한 번듯한 교회 건물에서 말이다.
1945년 당시 대청동에 위치한 일본감리교회는 8.15광복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점이었다. 일본감리교회 목사는 노진현 목사(부산중앙교회 1대 담임)에게 교회 건물을 기증, 이곳에서 부산중앙교회가 시작됐다. 일제의 식민통치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찾은 우리나라와 역사를 함께한 부산중앙교회는 광복 70주년과 함께 교회 설립 70주년을 맞았다.
교회 인프라가 갖춰진 가운데 시작된 부산중앙교회는 국제시장 인근에 위치, 이후 6.25전쟁으로 부산에 모여든 피난민들을 섬기기 시작했다. 임시 정부청사와도 근접해 교회를 중심으로 한 구제활동이 펼쳐졌다. 또 구국기도회를 비롯한 사회적 역할이 커져가며 민족과 교회를 섬기게 됐다. 교회가 개척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리더적인 역할을 감당하며 교회가 크게 성장했다.
1960년대 초에는 총회장 배출, 여전도회연합회 활동 등 교계에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교회 내분으로 한차례 분열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1977년 6월 12일 부산중앙교회가 둘로 갈라지는 분립을 하게 된다. 당시에는 교계에서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결과적으로는 ‘해피 엔딩’이라고 말한다. 분립된 새중앙교회는 2000년 1월 호산나교회로 명칭을 변경, 부산에서 대형교회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부산중앙교회 역시 분열 이후 내실을 다지며 건강한 교회로 성장, 새로운 남천동 시대를 맞게 된다.
▲ 남천동 시대
1995년 12월 첫 주일, 교회 설립 50주년을 맞아 교회가 부산시 수영구 남천동으로 이전했다. 남천동에 위치한 교회는 한마디로 말해 ‘도심 속 전원교회’이다. 교회가 세워진 부지는 자연녹지이지만, 경계선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교회 앞까지는 주택가가 즐비해 있고, 교회 뒤로는 울창한 숲이 펼쳐져 있다. 지하철에서 도보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부산시내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앞으로는 탁 트인 광안리 바다와 야경이 멋진 광안대교, 뒤로는 황령산의 푸른 숲이 있는 최고의 환경이다.
지난 2003년 제5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최현범 목사는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고, 교인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경건한 예배를 통한 은혜와 다양한 교육훈련으로 교회가 성장하고 있다. 새가족반 운영, 제자훈련, 사역반 훈련 등으로 교회가 건강한 체질로 바뀌고 있다.
특히 부산중앙교회는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강조하며, 사회적 문제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대표적인 행사로 올해 연초 제직세미나에서 원전에 관한 강의를 개최하고, 고리1호기 폐쇄를 위한 서명운동을 펼쳤다. 교인 70~80%가 서명운동에 동참하며 적극적인 관심을 표현했다.
독일에서 수학한 최현범 목사는 국가와 교회의 관계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교회의 지난 과거사를 돌이켜보면 교회가 무책임하게 정치에 참여하거나 정치에 무관심한 잘못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교회가 정치화 되어서는 절대 안 되지만 정치적인 책임은 꼭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복음이 그것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 최 목사는 “사회적 책임이란 직장 생활 잘하고, 가정생활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르게 세워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우리 교회가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사람들과 진보적인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서로 마음의 문을 열고 상대방의 생각과 관점을 이해해주고 수용하는 가운데 자기의 정치적인 자리매김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최현범 목사는 현재 부산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 공동대표로 섬기고 있다.
▲70주년 맞아 풍성한 2015년
올해 교회 설립 70주년을 맞은 부산중앙교회는 다양한 기념사업을 계획 중이다. 지난 4월 11일(토) 교회설립 70주년 주일학교 글과 그림대회를 개최했다. 유치부부터 고등부에 이르기까지 주일학교 학생들이 참여해, 교회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오는 5월 24일(주일) 오후 4시에는 故 김광일 장로 추모세미나를 개최한다. 인권변호사로 시작해 국회의원, 대통령비서실장 등을 역임한 故 김광일 장로는 생전에 부산중앙교회를 출석했다. 중고교실절 부산중앙교회를 다니며 믿음을 키웠고, 당시 복음적인 신앙을 확립하며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배웠다. 이런 그의 믿음이 훗날 인권변호사로 활동하게 된 밑거름이 됐다. 부산 인권운동의 대부이자 우리나라의 민주화와 정치발전을 위해 헌신한 故 김광일 장로의 추모 5주기를 맞았다. 부산중앙교회는 설립 70주년을 맞아 고인의 신앙과 삶을 반추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 외에도 6월 20일(토) 바자회 개최, 7월 27일부터 29일까지 농어촌 하계봉사, 9월 국내 성지순례, 10월 전교인 체육대회, 12월 설립주일 특별예배 및 선교사 파송, 70주년 기념음악회와 70년사 편찬 발행을 계획 중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고한 신앙 아래서, 세상과 소통할 줄 아는 부산중앙교회. 그래서 내일이 기대된다.
 
 
 故 김광일 장로를 추모하며
 
ㆍ오는 24일, 추모세미나 개최
 부산 인권운동의 대부이자 민주화를 이끈 故 김광일 장로(1939-2010년). 세상은 그를 인권변호사, 국회의원,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기억하지만, 정말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믿음 좋은 진정한 크리스천으로 기억한다.
 김광일 장로는 1939년 일본 도쿄 근교에서 태어났지만, 1945년 가족 모두가 귀국해 선대의 향리인 경남 합천에 정착했다. 그는 경남중고교를 졸업했는데, 당시 공부를 위해 부산에 있는 외가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의 신앙은 일찍부터 믿음을 가진 어머니 등 외가의 영향에서 비롯됐다. 부산의 외가에 머물던 중학교 1학년 때 부산중앙교회에 출석하면서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중고교시절 그는 집과 학교, 교회 밖에 없었다. 시간이 나면 거의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는 고교 시절 고등부 회장을 맡았는데, 당시 기획한 신년 찬양예배는 지금도 교회의 전통으로 내려오고 있다. 학교에서는 기독학생회에 가입해 학원 복음화에 앞장섰다.
 1952년 경남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다닌 부산중앙교회를 그의 생애 마지막까지 다녔다. 약 60년간 한 교회만을 섬겼다. 국회의원 당선 이후 서울에 살면서 옥한흠 목사가 담임한 사랑의교회에 출석했으나, 부산에 다시 돌아왔을 때는 부산중앙교회를 한결같이 섬겼다.
그의 하나님 사랑, 교회 사랑은 깊었다. 주변에서는 지독하다고 할만큼 각별했다. 신앙은 김광일 장로의 평생을 이끈 나침반이었다. 중고교시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신앙의 핵심을 배웠다. 이후 ‘이웃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 이상으로 더 큰 사랑이 없다’는 것이 그의 일생을 규정짓는 삶의 신조가 됐다.
 부산중앙교회 담임 최현범 목사는 “믿음과 열정으로 교회를 섬겼던 그는 당대 대부분의 교인들과는 달리 인권운동의 최전선에 서있었다. 서슬 시퍼런 군사독재정권 시절,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몸 사리면서 시국 관련자들의 변호를 기피하던 그 때, 그는 적극적으로 그들의 방패막이가 되었다. 죄 없는 이를 죄인으로 만드는 왜곡된 국가권력에 항거하면서, 힘없는 자들의 인권을 지키려 했던 그는 자연히 부산 인권운동의 대부가 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런 분이 우리 교회의 장로였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그것은 우리 교회만의 자랑이 아니라, 보수교단의 자랑이고, 아니 한국교회의 자랑”이라고 덧붙였다.
 최현범 목사는 자신을 청빙하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독일로 찾아 온 김광일 장로를 잊지 못했다. 검소하면서도 소탈한 모습에 반했고, 일주일간 함께 지내며 담소를 나눴다. 그리고 부산중앙교회 5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최 목사는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시작했다. 매일 성경 읽기, 1시간 기도, 독후감 작성, 성경 암송, 큐티, 생활 숙제 등 젊은 사람들도 힘든 과제를 60대 중반을 넘긴 김광일 장로는 충실히 완수했다. 신앙의 선배답게 성도들에게 본이 되는 모습이라고 기억했다.
 김광일 장로의 장남 김성완 장로(부산중앙교회)는 어버지를 ‘아주 특별한 친구’로 기억했다.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 힘 없는 이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아버지가 자랑스러운 그는, 만화를 좋아하고 영화감상을 즐겨하며, 사진찍기를 좋아하고, 등산을 즐겨했던 아버지를 추억했다. “아버지는 단 한번도 부정과 불의 앞에 침묵하거나 타협하지 않았고 늘 진실 앞에 당당한 모습을 우리 두 아들들에게 보여 주셨다”고 말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표현되고 또 제가 그 사랑을 갚고, 이것이 옆으로 번져가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그런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긴 故 김광일 장로.
 부산중앙교회는 교회 설립 70주년을 맞아 故 김광일 장로 추모세미나를 오는 5월 24일(주일) 오후 4시 부산중앙교회에서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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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세상과 소통하는 건강한 교회 ‘부산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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