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본보는 부산기윤실과 함께 4.13 총선 공정선거운동 캠페인을 펼칩니다. 선거를 맞이하는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자세와 후보자에 선택에 대한 바람직한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번 캠페인은 총 4회에 걸쳐 최현범 목사(부산중앙교회 담임, 부산기윤실 공동대표)와 주광순 교수(부산대 철학과, 부산 기윤실 공동대표), 김진영 교수(부산대 정외과, 부산기윤실 실행위원), 가정호 목사(부산 기윤실 사무처장)의 글이 게제 될 예정입니다.>
 
국회의원 선거에 임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
 
최현범9.png▲ 최현범 목사(부산중앙교회)
 아주 오래전에 부목사로 사역할 때의 일이 생각난다. 이미 소천하신 담임목사님은 누구보다도 개혁적이고 건강한 목회로 교계의 존경을 받는 분이셨지만, 당시 대부분의 목회자들처럼 사회정치 문제에 있어서는 무관심했고 정치에 대한 의식이 별로 없으셨다.
 마침 국회의원선거가 있었는데, 큰 교회이다 보니 지금처럼 그 지역에 출마자들이 너도나도 목사님을 방문했다. 그는 한 후보자를 꽤 마음에 들어 하면서, 이런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이 후보에 대한 편애를 직간접으로 드러냈다. 구역장모임에서 그의 인격과 성실함을 은근히 칭찬했고, 그 후보자의 운동원들은 매주일 교회 정문에서 선거유세를 마음껏 하게 했다. 어느 날은 아예 교회 마당까지 들어와 유세를 해서, 젊은 부목사들이 이건 아니라고 건의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지금의 선거법 아래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지만, 당시에는 그런 의식이 없었다. 이러한 일들이 목사님을 존경하는 교인들의 표심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결국 그 후보가 당선되었지만, 낙선자와는 아주 근소한 표차여서 목사님이 이 후보를 당선시킨 격이 되고 말았다.
 또 다시 선거철을 맞이하면서 그 일이 회상되는 것은, 아직 우리교회들이 이러한 문제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한국교회사에서 교회와 정치의 관계를 돌아보면, 교회는 3.1 독립운동의 실패이후, 철저한 정교분리의 가르침으로 돌아섰다. 사실 미국의 독립이념이 된 정교분리는,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종교의 자유를 보호하려고 하는 취지에서 시작 된 것이다. 오랜 세월 기독교사회였던 유럽은 국가와 교회가 밀착된 가운데 국교제도가 있었다. 국교제도 하에서 국교가 되지 못한 다른 종교들은 차별대우나 심지어는 박해를 받았다. 미국은 독립하면서 정교분리를 기초로 해서 국교제도를 없애고 국가가 종교에 간섭하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전혀 배경이 다른 우리나라에 와서 이것은 오히려 교회가 국가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되고 말았다.
 그래서 교회는 여하한 국가의 일이나 정치적인 문제는 세상일로 치부하고 관여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처럼 표면적으로 정교분리를 앞세운 한국교회는, 내면적으로는 위에 소개한 교회의 예처럼 알게 모르게 정치와 깊은 영향을 주고받았다. 우선 정치적인 무관심은 교인들이나 교회 지도자들로 하여금 정치에 대해서 무지하게 했고 무책임한 사람이 되게 했다. 정치에 대한 무지는 정치에 대해서 그 복잡성을 간과한 채 너무 나이브하게 생각하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 오히려 다양한 모양으로 정치에 오염되게 했다.
 국가권력 또한 교회를 정치와 무관한 청정지역으로 놔두지 않았다. 일제식민지정권부터 군사독재정권에 이르기까지 권력자들은 교계지도자들을 앞세워 그들 정권과 정책의 정당성을 지지하게 했고, 이로 인해 교회가 정의롭지 못한 권력의 후견인 역할을 하며 정치도구로 전락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선거철만 되면 후보자들이 자신이 출마하는 지역의 교회를 찾아다니며 암묵적인 유세를 했고, 담임목사는 그를 회중에게 인사시키면서 은근히 교인들의 표심을 자극했다. 심지어 우리의 정치현실이 지역주의에 고착되다보니 교회들도 지역병에 물들어 버렸다. 교계 모임에는 그 지역에 기반을 둔 정당의 정치인이 버젓이 초대되고, 그것이 당연시 되곤 했다. 이처럼 교회는 겉으로는 정교분리를 내세우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정치화되어 간 것이다.
 이런 정치화는 두 번의 진보정권을 거치면서 더욱 노골화 되었다. 그동안 한국의 보수교회들이 은밀하게 정교분리라는 휘장 속에서 지향했던 정치적인 방향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과는 다른 정치가 펼쳐지자 교회는 아예 휘장을 걷어내고 안팎에서 정치적인 발언을 쏟아내며 노골적으로 정치세력화하기도 했다. 이런 정치화의 모습을 우려하면서 다시 정교분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 한국교회가 돌아가야 할 주소는 또 다시 정교분리가 아니다. 국가와 교회는 분명 구분되지만, 분리되지 않고 될 수도 없다. 이 세상에 단 1Cm도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지 못하는 곳은 없다. 이것이 하나님 주권사상을 기반으로 한 개혁주의신학이다. 개혁주의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정치는 선한 일이고, 위정자는 하나님의 공의의 종이라고 가르치면서, 정치 영역이 믿음과 무관하다는 생각을 사탄적인 것으로 간주했다. 다시 말해서 권력자는 그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좇아 바르게 정치해야하고, 올바른 신앙인은 정치적인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칼빈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불의한 정치지도자에 대한 저항을 정당화하였다. 기독교강요가 시민불복종의 권한으로 끝나고 있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러므로 E. 트뢸취, 한스 숄등은 서구의 정치적인 발전은 개혁주의를 빼고는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이제 우리는 정교분리를 넘어서서 개혁주의신앙 속에서 국가와 교회의 건강한 관계를 찾아가야 한다.
 올해 4월 국회의원선거철이 돌아오면서 교회는 또 다시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교회가 다시금 정치화의 추한 모습을 보이면서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기독교의 이름으로 특정 정당의 선거운동을 하는 목회자들이 나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제라도 우리는 교인들에게 국가정치의 중요성과 정치에 대한 성경적인 원리를 가르치자. 칼빈은 렘 22:3이야말로 세상국가가 지향해야할 바른 정치원리라고 했다. 그 핵심은 정의이고, 그 정의는 정직하고 공정한 재판이면서 동시에 그 사회의 가난한 자, 약자에 대한 우선적인 배려이다. 사실 이것만 제대로 지킨다고 해도 그 나라는 공의로운 나라가 되지 않겠는가?
 우리 그리스도들은 이 하나님의 정의에 가장 가까운 사람을 정치인으로 세울 책임이 있다. 자기 지역출신이거나 지역에 기반을 둔 당이라고 무조건 표를 주어서는 안 된다. 심지어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뽑으려고 해서도 안 된다. 이 사회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할 사람을 세워야 한다. 교회는 교인들로 하여금 그러한 정치적인 안목과 책임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번 총선이 그런 것들이 실현되는 선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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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신문과 부산기윤실이 함께 하는 4.13 총선 캠페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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