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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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은 쉽게 달력을 넘길 수 없는 한국 현대사의 두 역사적 장면과 만난다. 66년 전에 일어났던 한국동란과 올 해 29주년을 맞는 6월 민주항쟁이다. 두 사건은 무관한 것 같지만,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이제는 필연적인 역사적 과제로 서로 융합되어 있다. 6.25 동란은 이미 끝난 역사적 사건인 것 같지만,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여전히 맞서 있는 남북한의 현실적 대결을 생각하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전쟁으로 볼 수밖에 없다. 6월 민주항쟁 역시 아직까지 가야 할 길이 먼 한국 민주주의를 생각하면, 현재진행형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6월에 기록된 이 두 역사적 사건은 완결된 사건도 아니며, 여전히 풀어나가야 할 과제를 안고 있는 현재적 사안으로 우리 사회 속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이것은 민주화와 통일이라는 우리 민족의 역사적 과제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셈이다. 어느 하나라도 포기할 수 없고, 버릴 수도 없는 과제라는 점에서 한국교회의 책무가 새롭게 제기된다. 살아 있는 교회는 언제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찾아 민족의 역사를 추동하는 힘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지금 한국교회는 민주화와 통일이라는 민족사적 과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6월 항쟁을 전후해서 한국교회는 그래도 한국사회의 반민주적인 현실을 민주화하기 위해 많은 교회와 신자들이 희생과 땀을 흘림으로써 민주화를 위한 십자가를 졌다. 그런데 형식적인 민주화의 틀이 만들어지고 난 뒤, 소위 많은 민주인사들이 현실적인 권력의 지배구조 속에 함몰되면서, 설익은 민주주의의 열매에 취해버림으로써 한국 민주주의는 실질적인 생활 민주주의로 성숙해 나아가지 못했다. 이와 함께 교회도 여기에 안주하면서 보수화되기 시작했다. 정치적 민주화와 함께 경제, 문화, 사회, 교육 전 영역에서 민주화가 제대로 진행되어야 했으나, 이를 온전히 추동할 힘을 잃어버린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 지점을 정확히 파악하여, 개 교회 중심주의의 틀을 깨고 지역사회와 함께 새롭게 호흡하면서, 우리 사회의 지체된 민주주의를 활성화하는 촉매제로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회는 이제 교회 자체의 성장주의에서 벗어나 십자가 사건처럼 자기희생적 결단을 실천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는 한국교회가 자기를 비우고, 자기를 죽이면서 세상에 보냄을 받는 운동체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는 일차적으로 자기가 속한 지역사회와 민족공동체 나아가 전 세계 인류와 연대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펼쳐나가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한국교회는 남북한의 통일문제도 절체절명의 과제로 재인식해야 한다. 그 동안 개 교회별로 혹은 연합체의 형태로 민족 통일을 위한 방안 모색과 실천들이 펼쳐졌다. 성과도 있었고, 시행착오도 있었다. 문제는 이를 바탕으로 한국교회는 또 다른 차원의 다양한 전략의 강구와 실천이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선결되어야 할 과제는 한국교회의 하나 된 목소리이다. 남한의 교회들이 하나 되어 통일문제를 추진하지 못하면서, 남북한의 통일문제를 논의한다는 자체가 아이러니이기 때문이다. 한 하나님을 섬긴다는 한국교회가 하나 되지 못하면서 남북한 민족이 하나 되는 통일운동을 전개한다는 자체가 모순됨을 우리가 심각하게 성찰해야 한다. 이 지점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교회가 추진하는 민족 통일의 실현은 온전할 수 없다. 설사 통일이 된다할지라도 한 민족 안에서의 분열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제 한국교회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교회일치 운동을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이 운동의 가장 현실적이고 적합한 매개가 민족통일이라는 점에서, 통일문제가 한국교회에 던지는 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6월을 맞으며, 역사 속의 6월의 무게가 더욱 무겁게 다가서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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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산] 6월과 한국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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