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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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병원 5대, 6대 병원장을 역임했던 조성래 전 원장(흉부외과)이 다음달 31일로 정년 퇴임한다. 84년 고신대학의학부 전임강사를 시작으로 근 33년 동안 복음병원을 위해 헌신해 왔다. 조 원장은 “복음병원에서 근무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것”이라며 복음병원에서 근무한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다. 조 전 원장은 “군의관으로 제대 한 후 원래 백병원으로 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일이 틀어졌고, 이후 자연스럽게 복음병원으로 오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또한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된다. 아마 그때 복음병원으로 오지 않았다면 평생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장 시절 업적
복음병원 80-90년대는 대부분 경북의대 출신이 병원 내 중요 보직을 맡아왔다. 부산의대 출신인 조 전 원장은 초창기 시절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1996년 의학부 의예과장을 시작으로 의학부와 병원 내 웬만한 보직을 맡아 수고해 왔다. 97년 학생부처장과 98년 의학부 교무부처장(3년), 2003년 복음병원 부원장, 원장직무대행, 2004년 제2대 의과대학 학장, 2007년 제5대 병원장(2년), 2009년 제6대 병원장(3년)을 맡아 수고했다. 
특히 병원 부도 이후 병원이 가장 힘든 시절 병원장을 맡아 부도를 해소했고, 평균 월 90억 원 수준의 수입을 100억 원 이상으로 올린 것도 조 원장 시절이었다. 원장 재임 중 많게는 월 150-160억 수준으로 수입을 올린 바 있다. 지금의 연결동(6동) 공사도 조 원장이 추진했다. 조 전 원장은 “직원들이 한마음으로 잘 따라주었다. 내가 잘했기 보다, 직원들이 고통을 분담하고 묵묵히 따라와 준 결과였다”고 말했다. 
또 5대까지 복음병원장을 이어오면서 유일하게 임기를 마친 병원장도 조 원장이 최초였다. 이전 원장들은 병원 파업과 부도, 임시이사 파송 때문에 임기를 다 채우지 못했다. 혼란스러운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혼란스러운 시대를 벗어난 것도 조 전 원장이 취임한 이후였다. 조 전 원장은 “굳이 잘한 것 하나를 꼽으라면, 내가 취임했을 당시 직원들은 좌절감과 패배감에 젖어 있었다. 자신감과 성취감을 갖도록 노력했고,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게 노력했다. 내부고객(교직원)이 만족해야 외부고객(환자)을 만족시킬 수 있는 신념으로 원장직을 수행했다”고 말했다. 

•故 이충한 전 원장과의 애증의 관계
조성래 전 원장과 지금은 고인이 된 이충한 전 원장은 친구사이다. 두 사람 모두 부산의대 출신으로 서로 친구처럼 잘 지내왔다. 하지만 2003년 이후 둘 사이 관계가 틀어져 이후부터 라이벌 관계가 되기도 했다.
왜 사이가 틀어졌나 물어봤다. 조 전 원장은 “관선 시절 병원장 직선제가 있었다. 이때 친구 이충한 교수가 자신이 출마하겠다고 해서, 내가 양보했다. 하지만 선거결과 이재우 교수님이 병원장에 당선됐고, 나를 부원장에 앉혔다.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후부터 사이가 틀어졌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이때부터 관계가 불편했고, 병원장 선거와 정책 등에서 불편한 관계를 이어져 왔다. 
조 전 원장은 “지금 은퇴하는 시점에서 돌아보면, 친구랑 더 가깝게 지낼 수 있었는데 안타깝다. 하늘나라에서 편하게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은퇴 이후에는....
조 전 원장은 은퇴 이후 삶에 대해서는 “먼저 쉬고 싶다. 타 병원에서 제의가 있지만, 쉬고 나서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30년 넘게 복음병원에서 쉬지않고 근무했고, 건강으로 쓰러진 적도 있기 때문에 당분간은 쉬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은퇴 소감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건강히 퇴임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늘 성원해 준 가족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이다. 그동안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께는 살아가면서 고마운 마음을 꼭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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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3년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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