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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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피하고 싶고 잊어버리고 싶지만 반드시 직면해서 깨뜨려야 할 악순환이 있다. 나는 아버지가 싫다.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싫다. 그 사람이 나의 인생에 끼친 너무나도 많은 굴레들. 정죄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정죄함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의 모습이 이렇게 일그러진 것이 나의 어린 시절 때문이라는 사실은 내게 너무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설 수 있는 열쇠는 현재가 아니며 미래도 아닌 가장 생각도 하기 싫은 외로운 과거에 있다. 놓아주지 않은 풀려고도 하지 않는 단단한 과거의 운명의 줄, 아버지는 내게 너무 큰 고통이다. 새 어머니는 주말만 되면 나와 동생을 목욕을 시켜 주셨다. 그런데 우리는 칠일마다 돌아오는 그 날이 너무나도 괴로운 날이었다. 비록 우리의 몸은 깨끗하였지만 우리의 마음은 증오들로 더욱 더러워지는 것이었다. 그 순간만큼 우리는 어머니에게 화풀이 대상이었다. 우리의 때를 밀어 주는 그 손길에서 느끼는 것은 미움과 그것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이었다. 지금도 생각만 하면 도살장의 소와 같은 기분이었다고 생각이 들고 소름이 끼친다. 그러면서 우리는 고등학생이 되기까지 매일매일 정말 이유도 없이 두들겨 맞았다. 7살 때부터 그 작은 몸뚱이는 구타를 당하며 커 나갔던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내일이 오는 것이 얼마나 두려웠던가? 초등학생 때 얼마나 죽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던가? 그 당시 미래가 나에게 준 것은 단지 고통과 두려움뿐이었다. 그 때 나와 내 동생은 누구에겐가 구원의 손길을 뻗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도. 우리는 철저하게 아버지와 어머니의 희생자였다. 지금껏 나는 이러한 미래의 두려움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한 청년의 가슴 먹먹한 고백을 들으며 맹인 가수이면서 작사가인 켄 미드머(Ken Medema)가 부른 노래 ‘이곳이 아니라면’(If This Is Not a Place)을 떠올렸다. 
여기에서 눈물을 이해 받지 못한다면/ 나는 어디에 가서 울어야 하나/ 내 마음에 날개를 달아 줄 수 없는 곳이라면/ 나는 어디에 가서 날아야 하나/ 착하고 덕스런 모습으로/ 당신의/ 기억에 남기 위해 다른 곳은 필요치 않아/ 언제나 남보다 뛰어나기 위해 또 다른 곳은 필요치 않아/ 거짓말이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어.//(중략)
내 의문에 답해 줄 수 없는 곳이라면/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내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곳이라면/ 어디에 가서 말해야 하나/ 여기에서 눈물을 이해 받지 못한다면/ 나는 어디에 가서 울어야 하나.
그래서 가정은 치유의 센터라 한다. 위로와 격려, 용서와 용납, 친밀감과 존중감이 그 핵심이다. 그런데 도리어 가정으로부터 상처를 받는다. 어느새 가정은 형무소가 되고 만다. 의학적 통계에 의하면 인간의 많은 질병이 용서하지 않는 마음 상태에서 생긴다고 한다. 정신과 의사 메닝거는 인간의 모든 질병의 70%는 스트레스에서 오고 모든 스트레스의 90%는 정신적 질병, 곧 미움과 증오 그리고 용서의 결핍에서 온다고 했다. 미움과 증오와 용서의 결핍이 결국 암, 고혈압, 심장병, 뇌졸중, 치매, 우울증 등의 원인이 된다. 
가정은 과연 치유의 센터로서 어떻게 기능할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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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칼럼] 상처치유, 가정에서 해야 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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