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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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사랑하고 살아야 할 가족관계가 헝클어져 있다. 깊은 상처들에 둘러싸여 있다. 존 포웰은 말한다. “성숙한 사랑에는 상대방에 대한 지식(knowledge, 이해심)과 상대방의 특성을 그대로 용납하려는 자세(respect), 그리고 상대방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노력(responsibility) 그리고 상대방의 허물을 덮어주는 용서(forgiveness)가 있어야 한다.”
 헤밍웨이는 소설을 통해 가족들이 갈망하는 용서를 이렇게 풀어냈다.
 집을 떠나 마드리드로 떠나 버린 아들, 스페인인 아버지는 뒤늦게 후회를 한다. 아들과 화해하고 싶었던 아버지는 광고를 낸다. 엘리베랄 신문에는 이런 광고가 실렸다.
 “파코, 화요일 정오에 몬타나 호텔에서 만나자. 다 용서했다. 아빠”
 약속된 날, 호텔에 도착한 아버지는 놀란다. 파코라는 이름의 젊은 남자가 무려 800명이나 나와서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파코는 스페인에서 매우 흔한 이름 중의 하나다.
 용서가 “가정의 심장에 놓여있다.”고 말한 이는 레스 패로트다. 그는 이렇게 역설한다. “모든 가족은 서로 용서할 필요가 있다.”
 과연 용서란 무엇일까? 나에게 고통을 안긴 이들을 애써 외면하고 사는 것? 아니면 재산상의 손실을 입힌 이들을 너그럽게 보아주는 것? 그것도 아니면 나의 명예를 더럽힌 그들을 잊어주는 것? 하지만 용서란 사건을 잊는 게 아니라 ‘어떻게 기억하느냐’의 문제라고 꼬집은 심리학자가 있다. 심리학자 딕 티비츠(Dick Tibbits) 바로 그 주인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용서의 기술>에서 이렇게 말한다.
 “용서는 당신을 다시 삶의 운전석에 앉게 해준다. 용서는 당신이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고 현실을 왜곡하는 관점을 줄여 ‘있는 그대로’를 보게 해준다. 용서는 틀을 다시 짜서 당신 삶의 이야기를 바꿀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용서는, 당신을 치료한다.”
 
 그는 그저 말만 하는 이론가가 아니다. 10년 남짓 깊이 신뢰하며 다녔던 회사에서 하루아침에 잘렸다. 상심이 컸지만 다시 새 직장을 구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생활했다. 어느 날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고혈압으로 약물치료를 받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산다는 것이 전혀 가치 없다고 느꼈고, 자신이 화났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고, 인생을 향한 에너지도 흥미도 잃고 대부분의 시간을 의기소침한 상태로 지냈다. 그러다 용서를 위한 여러 단계와 절차를 밟고 난 뒤 건강과 열정을 되찾았다. 그의 저서는 이런 경험세계에 기초한다.
 
 그가 말한 용서의 주요개념들은 이런 것이다.
 “용서란 현재의 평온을 회복하고 미래의 희망과 삶의 목적을 되살리기 위해 과거에 받은 분노와 상처에 새로운 틀을 씌우는 작업이다.”
 “용서는 당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당신이 넘겨준 당신 삶의 통제권에서 당신을 해방시킨다.”
 “용서는 자기 삶과 행복을 자신이 책임지는 길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용서는 과거의 상황이 당신의 현재를 지배하지 않도록 가르친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충고한다.
 “타인을 완전히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보다 좋은 면도 있고 나쁜 면도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라.”
 “어떤 불쾌한 상황을 겪더라도 상대의 의도와 당신에게 끼친 영향을 구분하라.”
 “다른 사람에게 거는 기대치를 낮춰라.”
 “겸손과 공감의 기술을 터득하라.”
 
 마틴 루터킹은 “용서는 신선한 시작, 새로운 출발에 필요한 분위기를 창출하는 촉매제”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용서는 미움과 사랑, 절망과 희망 나아가 전쟁과 평화를 구분 짓는 생명선이나 다를 바 없다. 용서가 없다면 우리의 상처는 거침없이 커져서 우리를 실패와 분노, 비통의 쳇바퀴로 몰아넣고 만다. 그리고 끝내 우리의 삶을 파멸로 이끌고야 만다. 그래서 용서는 모든 절망을 치유하고 상처를 꿰매는 치료제와 같다.”
 
 용서는 용광로와 같아 우리의 모든 허물을 태워 에너지로 만들어 준다. 용서는 곧 희망이요 꿈이다. 용서받은 영혼은 다시 시작할 마음을 갖는다. 가정의 가장 큰 기능은 정죄가 아니라 용서다. 하나님이 베푸신 그 용서로 서로를 용납하는 일이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아래 놓이게 된다. 그래서 용서를 가정의 심장이라 부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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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칼럼] 상처치유, 가정에서 해야 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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