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이병수 교수.jpg▲ 이병수 교수(고신대 국제문화선교학과, 국제다문화사회연구소 소장)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으로 그들을 위해 이론과 실천의 모범적 삶을 사셨던 손봉호 고신대 석좌 교수는‘난민’에 대한 한국사회와 교회의 입장을“난민에 대해서 세상에서 가장 인색한 우리나라와 이에 대해서 아무 감각도 없는 한국교회”라고 질타 한 적이 있다. 그는 또“만약 우리나라에 미국이나 영국처럼 노동자들과 난민들이 대거 몰려왔다면 아마 우리는 그보다 훨씬 더 극렬하게 국수주의적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지적하였다.
하지만 난민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바꾸어 놓는‘유쾌한 오보’들이 중동과 북아프리카와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다. 필자는 금년 파리 난민포럼(2월 8-11일)에 참가해서 중동과 북아프리카와 유럽에서 난민사역에 종사하는 많은 한국 선교사들의 보고를 통해 우리가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놀라운 일이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온 몸으로 느꼈다. 그것은 한국과 세계 여러 나라의 선교사들의 난민선교에 의해 수많은 시리아 및 기타 지역의 무슬림 난민들이 주님께 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주는 것이 기독교 세계관 학술 동역회 잡지 2017 년 월드뷰 2 월호 내용이다. 글쓴이는 금년 1 월에 한국을 방문한 네덜란드 라브리 공동체 대표이며 국제 라브리 회장을 역임했던 리트께르크(Wim Rietkerk) 목사이다. 그는 유럽에 몰려드는 시리아를 포함한 기타 난민을 하나님께서 유럽 교회에 보내 주신 '뜻밖의 선물'로 본다.
그의 보고에 의하면 고국과 종교적 전통으로 부터 단절된 수많은 무슬림들은 새로 정착한 땅에서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하기 시작하고, 유럽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들을 따뜻하게 환영해주자 놀랄만한 많은 숫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2015 년부터 독일에 약 100 만 명의 난민이 몰려든 현재까지 무려 3,000 명 이상이 세례를 받았고 그가 살던 네덜란드 동네 교회에서도 70 명의 무슬림들이 새신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지금까지 이슬람국가를 찾아간 어떤 선교사도 이런 엄청난 결과를 얻어 낸 적이 없었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난민 사태로 그 나라에서는 이슬람 때문에 복음을 듣지 못했던 무슬림들이 난민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복음에 매우 쉽게 노출되고, 인간적으로 처한 힘들고 갈급한 상황 때문에 복음에 매우 수용적이라 선교의 열매와 결과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이것은 영국의 작가 루이스(C. S. Lewis, 1898-1963)가 「고통의 문제(The Problem of Pain)」라는 책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고통은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을 수 있는‘확성기’라고 말한 것처럼 시리아 난민들이 겪는 고통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확성기’를 통해 듣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에 주신 선교의 수확 및 추수의 기회라는 것이다.
유럽과 중동의 한국인 및 유럽의 선교사들의 헌신과 수고로 많은 중동의 난민들이 주님께로 돌아올 뿐만 아니라, 그들이 앞으로 잘 훈련되어 본국으로 돌아가 같은 민족 무슬림들을 복음화 하는데 선교적 도구로 쓰임 받는 놀라운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선교사들이 예상하고 있다. 그리스 지역에 있는 시리아 난민을 위한 한인 선교사의 보고에 의하면 지금 미국 선교부는 이런 상황을 최대한 활용해서 난민선교의 중요성과 효과를 깨닫고 매우 발 빠르게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유럽의 난민사태를 통해 하나님께서 잠자고 있고 쇠락해 가는 유럽교회를 깨우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앞에서 언급한 네덜란드 리뜨께르크 목사의 생각이기도 하다. 그는 그의 글 결론에서 이런 질문을 제시하면서 마친다. '혹시 하나님은 유럽을 기독교적 뿌리로 돌려보내시기 위해 난민들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닐까?' 마찬가지로 우리 한국교회도 이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포착해서 난민 선교의 파도의 물결에 타야 하지 않을까?
유엔난민기구(UNHCR)에 의하면 전 세계에 6,700만 명의 난민이 존재하고 있으며, 시리아 인구 2,200만 명 중 난민은 1,100만 명이다. 그들 가운데 자국 내에 거주하는 난민은 600만 명이고, 해외에 50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본다. 이들에 대한 복음의 선교적 접근과 그 열매와 효과를 위해서 한국교회가 매우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혹자는 누가복음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타나는 강도 만난 사람은 오늘날 시리아 독재자에 의해 발생된 시리아 난민이고, 그들을 돕는 선한 사마리아인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로 본다. 그 비유에서 예수님의 ‘누가 네 이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두 부류로 볼 수 있다. 하나는 강도 만난 가운데 고통당하고 도움이 필요한 자이고, 다른 하나는 그 고통당하는 사람을 도와주어야 할 사람이다. 따라서 ‘이웃’은 가까이 있고 멀리 있느냐에 따라 좌우되는 ‘공간적 개념’이 아니라, 도움을 필요로 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랑의 필요자와 공급자가 공간적 개념을 뛰어 넘는 이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한국교회가 이 일에 참여한다면 공간적으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 할지라도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난민들에게 진정한 그들의 이웃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피는 물보다 더 진하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다 아니다. 때로는 물이 피보다 더 진할 수도 있다. 인류의 역사는‘피는 물보다 더 진하다’는 원초적 본능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꿈과 이상을 가지고 ‘물이 피보다 더 진하게 사는’ 사람에 의해 발전하고 진보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피가 물보다 더 진하다’는 이 원초적 본능과‘물이 피보다 더 진할 수 있다’는 일반은총을 뛰어 넘어 시리아 난민사역에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특별은총의 하나님의 사랑이 근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익히 잘 아는 대로 아프리카 지역에서 유럽으로 가는 수많은 난민의 행렬 가운데 지중해에서 많은 난민들이 목숨을 잃어가고 있다. 그래서 언론에서“지중해, 난민들의 공동묘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인류적 재앙을 우리 모두가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보편적 인류애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진정한 해결책이다.
어거스틴(Augustine of Hippo, 354-430)에 의하면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사랑이다. 타인을 돕는 손, 가난한자에게 달려가는 발, 불행을 보는 눈, 한숨과 슬픔을 듣는 귀를 가진 것이야 말로 사랑의 참모습이다”라고 갈파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우리는 시리안 난민 사역을 위해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즉각적으로 순종하고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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