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원래 데이비스는 호주의 영국교회 선교회(CMS) 파송으로 인도에 파견되어 약 2년간 일한 바 있고, 건강이 좋지 못해 호주 멜버른으로 돌아온 그는 멜버른 대학을 졸업하고 멜버른 교외 카오필드에 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항상 다시 인도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러나 어머니를 보양해야하는 의무감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러나 1886년 어머니가 사망하자 다시 인도 선교사로 가고자 했다. 그런데 이 때 데이비스는 한통의 소중한 편지를 접하게 된다.
이 편지는 중국에서 일하고 있던 영국성공회 소속 월푸(John Wolfe)의 편지였다. 건강 때문에 잠시 일본서 휴양했던 월푸는 1887년 잠시 부산을 방문하고 선교지인 중국으로 돌아갔고, 선교사 없는 부산에 선교사를 보내주도록 여러 곳에 요청했으나 그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월푸는 부산 방문기와 한국선교사가 필요하다는 편지를 호주 멜버른의 매캐트니(H. B. Macartney) 목사에게 보냈다. 매카트니는 당시 세계정세에 눈을 뜬 선구자적인 인물로서 이 편지를 받은 메카트니는 이 서한을 자신이 발간하는 선교잡지 「국내외선교」(The Missionary at Home and Abroad)에 게재했다. 그런데 인도로 돌아가고자 했던 데이비스는 바로 이 편지를 접하고 한국이 인도보다 더 시급한 선교지라는 점을 인식하고 인도를 포기하고 한국으로 가기로 결단하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이 한통의 편지가 호주의 젊은 청년 데이비스로 하여금 한국으로 그리고 부산으로 오게 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 한통의 편지가 후일 호주의 126명의 선교사들로 하여금 한국과 부산, 경남지방으로 향하게 만든 동기가 된 것이다.
남중국 주제 선교사 울프가 쓴 한통의 편지가 데이비스로 하여금 인도행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오게 했다는 점은 백낙준 박사 이래로 회자되어 왔다. 그러나 이 편지가 한국에 소개된 적이 없다. 그래서 필자도 이 ‘역사적 문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30년 전인 1987년 호주 멜버른을 처음 방문한 이후 여러 도서관을 뒤지며 이 편지의 소재를 추적했으나 130여년이 지난 1886-88년 어간에 발간된 이 잡지를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호주장로교회의 한국선교 120주년을 맞는 2009년 4월 초 빅토리아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 of Victoria) 150주년 기념행사에 초대받고 다시 멜버른을 방문하여 시립도서관(State Library of Victoria)을 뒤지던 중 이 ‘역사적’인 한통의 편지를 찾게 되었다. 호주의 영국교회 선교회(CMS: Church Missionary Society)가 간직하고 있던 간행물 The Missionary at Home and Abroad을 빅토리아주 시립 도서관에 기증했는데, 이 도서관 고문서실에서 이 편지가 게재된 「국내국외선교」를 찾게 되었고 그 결과로 이 ‘역사적 편지’를 발굴하게 된 것이다.
ⓒ 한국기독신문 & www.kcnp.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