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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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所聞)’의 사전적 의미는 ‘진실성 여부에 관계없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 전하여 들리는 말’이다. 비슷하게 통용되는 용어로 ‘가십(gossip), 데마고기(demagogy), 유언비어(流言蜚語)’가 있지만 엄격하게는 구별되는 용어들이다.
가십(gossip)은 신문·잡지에서 사생활을 흥미 위주로 다룬 기사(內幕記事)를 말하며,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원래 사교계 명사의 소문을 뜻하였으나, 매스커뮤니케이션의 발달에 따라 연예계, 문단, 정계 등의 유명 인사를 대상으로 삼게 되었다. 데마고기(demagogy)는 사실과 반대되는 선동적인 선전, 밑도 끝도 없는 인신공격으로써 특정한 문제에 대하여 불순한 의도로 유포시키는 선동적 허위선전을 뜻한다. 유언비어(流言蜚語)는 아무 근거 없이 널리 퍼진 소문으로써 부언낭설(浮言浪說), 부언유설(浮言流說)이라고 한다.
‘세익스피어’는 “소문은 추측과 질투와 억측을 섞어서 피우는 파이프다”라고 했다. 이런 추측과 억측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Holy gossip’이라는 말이 있다. ‘거룩한 소문’이다. 성경의 데살로니가교회는 ‘좋은 소문’을 통해 당시 지역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모른다.
근자에 이르러 SNS와 언론보도에 한국교회의 아름답지 못한 소문이 지면과 방송을 통해 퍼지게 됨으로 한국교회가 위기를 맞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반기독교적인 사람들이나 단체는 물 만난 고기처럼 한국교회가 역사에 미친 지대한 영향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어떤 한 사건을 부각시켜 교회의 위상을 국민의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하고 있다. 더 무섭고 고통스러운 것은, 그러한 일들이 이제는 버젓이 교회 안에서 교인들에 의하여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때에 교회가 할 일은 더욱 엎드려 기도하고 거룩한 소문을 낼 수 있는 거룩한 사역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 때 영구 시리즈가 유행했다. 평소 성질이 급하고 불평불만으로 가득 찬 영구가 어느 날 마을버스를 탔다. 그런데 마을버스가 곧장 출발하지 않고 계속 서 있는 것이었다. “왜 안 떠나는 거야?” 참다못한 영구는 운전기사를 향해 크게 소리를 질렀다. “이봐요. 이 똥차 언제 떠나요?” 그 말을 들은 운전기사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나직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예~~~ 똥이 다 차면 떠납니다.”
이런 경우를 ‘누워서 침 뱉기’라고 한다. 누워서 침을 뱉으면 그 침이 자기 얼굴로 떨어지게 마련이다. 영어에도 “Spit in the wind”라는 말이 있는데,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향하여 침을 뱉으면 그 침이 자기 얼굴로 날아온다는 말이다.
잠언 25:25절에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와 같으니라”는 말씀이 있다. 여기 ‘좋은 기별’을 NIV 영어성경에는 ‘good news'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러니까 ‘좋은 소문’을 전하는 사람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1967년에 이스라엘과 아랍연합군 사이에 있었던 6일 전쟁은 세계 전쟁역사의 거울이 되고 있다. 300만 이스라엘이 1억이 넘는 아랍 연합군을 상대로 6일 만에 승리를 거둔 전쟁사다. 이스라엘 탱크는 800대 아랍은 5,400대였다. 전투기도 이스라엘은 200대 아랍은 900대였다. 그런데 어떻게 대승을 했을까? 소문 하나 때문이었다. 당시 이스라엘의 모세 다얀 장군은 “우리 이스라엘 군대가 새로운 무기로 무장하였다”고 소문을 냈다. 아랍군은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모세 다얀이 발표한 ‘신무기’란 전투기나 신무기가 아니었다. “안식일 전에 이 전쟁을 끝내자! 하나님은 우리 편에서 싸우신다!”는 것을 전군에 교육한 것이다. 그 말이 “우리는 신기로 무장했다”는 것이었고 그것이 소문이 되어 퍼지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좋은 소문은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소문도 좋은 소문이 있고 나쁜 소문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소문을 들으며 살아간다. 나쁜 소문이나 헛된 소문은 더 잘 퍼지게 되어 있고 그 소문에 관련된 사람들은 괴로워하며 때론 헛소문 때문에 자살까지 하는 사례도 있다.
예수 믿는 성도가 명심할 것은 ‘소문은 바람결에 지나가는 것’이라는 것이다. 소문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여 그 소문을 인정하는 듯한 언행을 하면 그 소문을 스스로 인정해 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좋은 소문보다는 나쁜 소문에 귀를 더 기울이려 하고 칭찬보다는 헐뜯는 것에 쾌감을 느끼며 남이 잘 못 된 것을 들으면 은근히 쾌감을 느끼는 악성(惡性)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의 속성이다.
지난 한 세기동안 우리나라 교회들에 관한 소문은 다양했다. 예배당 건물, 교인 수, 새벽기도회, 선교하는 모범교회, 엘리트 교인이 많음, 지역사회를 돌보는 교회 등으로 소문이 난 교회들이 있다. 그런데 성도들의 아름다운 신앙생활로는 어느 교회가 귀감이 되었는가? 예수님이 세우시기를 원하셨던 에클레시아 교회는 어느 교회인가? 멈추어 서서 우리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아야 한다. 비록 예배당 건물은 초라하고 교인들의 수준은 낮으며 예산도 적고 교인수가 많지 않아도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지향하는 목회자는 어디에 있으며 그런 교회는 어디 있는가? 그런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목사가 내려놓아야 한다. 비우고 낮아져야 한다. 교회 지도자들이 그렇게 살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데살로니가교회의 좋은 소문이란 웅장한 예배당 건물이 아니었다. 병자들이 고침 받는 신유의 은사가 역사 되는 곳도 아니었으며 교인수가 많거나 예산이 풍족해서도 아니었다. 요즘처럼 세상적인 무슨 굉장한 인물이 많았던 곳도 물론 아니다. 성경이 밝히 보여주고 있는 데살로니가교회의 소문은 오직 성도들의 아름다운 신앙생활이 주 내용이었다. 그 구체적 내용은 무엇인가? 믿음의 역사였고 사랑의 수고였으며 소망의 인내였다. 그것이 교회의 본래 모습이다.
탈무드의 교훈이다. 늙은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말했다. “얘야,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두 마리 늑대가 싸우고 있단다. 한 마리는 악한 늑대로 그 놈이 가진 것은 화, 질투, 슬픔, 후회, 탐욕, 거만, 자기 동정, 죄의식, 회한, 열등감, 거짓, 자만심, 우월감 그리고 이기심이란다. 다른 한 마리는 좋은 늑대로 그가 가진 것은 기쁨, 평안, 사랑, 소망, 인내심, 평온함, 겸손, 친절, 동정심, 아량, 진실 그리고 믿음이란다.”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손자가 묻자 할아버지는 대답했다. “내가 먹이를 주는 놈이 이기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짧은 이야기다.
당신은 자신의 마음에 악한 늑대를 키우고 있는가? 착한 늑대를 키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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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임중칼럼] 소문(所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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