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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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하는 가을철을 맞았다. 여러 교회에서 영적인 추수도 한창일 것 같다. 총동원 전도주일, 새생명 축제 등의 슬로건을 걸고 아직 믿지 않는 이들을 교회로 인도하기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교회가 한두 곳이 아닌 것 같다.
구령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그 어떤 일보다도 귀한 일이지만 ‘이건 아닌데’ 싶은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게 뭔가.
내가 전도하여 예수를 믿도록 하겠다고 속으로 작정한 특정인물을 ‘태신자’라고 칭하는 것이다. 태중에 있는 아이는 반드시 세상에 나오게 되는 이치를 생각하면서 아직은 태 안에 있지만 머잖아 태어나게 될 신자라는 뜻으로 태신자라고 칭한다.
태아는 임산부의 몸속에 들어있는 생명체인데 그러면 태신자는 누구의 뱃속에 들어있다는 말인가. 사람 속에 있다는 말인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말인가. 도대체 누가, 왜 이토록 모순이 많은 말을 만들어 쓰기 시작했는지 참 어이가 없다.
우리가 듣기에도 거북한 이 말을 전도 대상자 본인이 듣게 되면 어떤 기분일지 생각해 보라. 아마도 의아해하거나 씁쓸한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보면 이 ‘태신자’라는 말은 전도대상자인 당사자는 듣지 못하게 그 앞에서는 쉬쉬하고 전도하는 사람들끼리만 얘기하는 아주 궁색한 말이 되고 만다.
이제 생각을 정리하면서 ‘태신자’라는 용어의 적절치 못한 점을 상고해 보고자 한다. (1)‘태신자’라는 용어는 언어의 보편성이 결여된 말이며 기독교가 인정한 말이 아니다.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며 매개체로서 누구든지 알고 쓸 수 있는 보편성이 있어야 하는데 ‘태신자’라는 말은 일반화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기독교인들 조차도 납득이 되지않는 말이다. (2)소위 ‘태신자’는 아직 예수를 믿지 않으나 장차 예수를 믿은 것을 기대하는 전도대상자일뿐인데 그를 신자(태신자)로 지칭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3)전도대상자를 ‘태신자’라고 지칭한다면 그 전도대상자가 끝내 예수를 믿지 않으면 그건 뭐라고 말해야하겠는가. 낙태(사산)되었다고 해야 하는가.
더 이상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태신자’란 말은 천부당만부당한 말이다. 입 밖에도 내지 말아야한다. 만약 장차 신자가 될 희망을 갖고 ‘태신자’라는 용어를 인정한다면 장차 목사, 혹은 장로가 되기를 바라고 기도하는 사람들은 ‘태목사’, ‘태장로’ 이렇게 칭해도 괜찮다는 결론에 이른다. 아무튼 ‘태신자’란 말은 쓰지 않는게 좋다. 독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지요. 함께 생각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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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생각해봅시다] 태신자, 말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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