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이성우 한의학박사.png
 
긴 추석 연휴를 보내고 진료실을 찾은 환자들 가운데 ‘무언가 속에서 치밀어 올라 얼굴이 달아오르고 가슴이 답답하며 숨이 막힌다, 목에 무엇이 걸려있는 것 같다.’는 증상들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많다.
54세의 2남1녀를 둔 K주부는 '속에서 불이 활활 타며 몸에 열기가 나고, 소화도 잘 안되고 자꾸만 한숨이 난다며 어디든 돌아다니고 싶은데 갈 데는 없다.’고 한다. 주위사람들로부터 자신의 병이 ‘화병’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며 스스로 ‘속이 썩어서 생긴 병’이라고 호소한다.
이렇듯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듣게 되는 화병은 한국 특유의 ‘참는 것이 미덕.’이라는 문화에서 기인하는 일종의 정신의학적 증후군이다. 미국 정신의학회에서도 ‘Hwa-byung'이라고 우리말 그대로 표기할 정도로 우리문화에서 발생되는 독특한 병으로 인정하고 있다.
한의학에서는 울화병(鬱火病)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울(鬱)이라는 것은 풀리지 않고 쌓인다는 뜻이고 화(火)는 불과 같은 증상이 있다는 뜻이다.
화병은 억울하고 분한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 삭인 이후에 나타나는 일종의 분노증후군으로 가슴이 답답하고 울화가 치밀고 사소한 일에도 짜증과 신경질이 나고, 열이 화끈 달아오르며 숨이 막히고, 불안초조, 우울증과 불면 등의 정신장애와 심리증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과거에는 고된 시집살이나 남편의 외도 등으로 오랜 세월 감정을 억누르고 살았던 여성에서 주로 나타나던 화병이 최근에는 남성들에게도 부쩍 많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취업압박에 시달리는 20대와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직장인 등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화병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SNS시대에 자신과 남을 비교하면서 나타나게 되는 상대적 박탈감과 현대인들의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점차 새로운 유형으로 화병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화병은 오래 방치해두면 만성두통, 불면증, 고혈압, 심장병 등 각종 질병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적절한 치유와 예방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참다 참다 병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답답하고 억울한 감정을 삭이고 눌러만 두어서는 더 큰 병을 불러올 수 있다. 물이 흐르지 않고 고여 있으면 썩듯이, 가슴 속의 응어리진 감정 또한 지혜롭게 표현하지 않으면 곪아서 화병을 일으킬 수 있다.
화병은 우울증으로 발전해 자살율을 증가시키고 무차별 폭행 등의 사회문제도 야기한다.
특히 입시나 취업문제 등 많은 스트레스를 안고 사는 10대와 20대의 화병 환자 증가는 현시대 우리 청년들의 고된 삶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한의학에서는 화병을 간기울결(肝氣鬱結)로 인한 경우와 심화상염(心火上炎)으로 인한 경우로 구분하여 치료한다.
43세 P주부는 ‘가슴이 답답하고 우울해요. 한숨이 자꾸 나오고 한숨을 쉬어도 가슴이 꽉 막혀 있는 것 같아요. 사소한 일에도 자꾸 짜증이 잘나요. 목에 뭔가가 단단하게 뭉쳐 있는 것 같아요.’ 등의 증상을 호소한다. 이 경우가 정신적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여 간(肝)의 기운이 울체되면서 화병이 생긴 간기울결(肝氣鬱結)의 경우이다.
54세 K주부는 ‘가슴속에 열이 나서 화닥거리고 열이 치밀어 올라 얼굴이 붉어져요. 입안이 자꾸 마르고 헐기도 해요. 가슴이 자꾸 두근거리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잠도 잘 안와요.'
이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심장에 열이 울체된 화병이다.
이러한 화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맞는 취미생활을 가지고, 규칙적인 운동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인체의 ‘화’에 대한 저항력을 키워야한다. 또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면 억누르거나 내버려두려고 하지 말고 ‘말로 푼다’라는 말이 있듯이 주변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표현해야한다. 아울러 매사에 마음을 너그럽게 갖도록 노력하고 긍정적인 생각과 태도로 생활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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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칼럼] ‘열불 난다’ ‘속이 터진다’ 화병(火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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