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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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9일은 ‘소방의 날’입니다. 해방 후 불조심 강조 기간에서 출발해서 1991년부터 법정기념일이 되었지만 여전히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반면 소방관을 영웅시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미국입니다. ‘미국의 소방관 장례식’이라는 동영상만 봐도 저들이 소방관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우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2014년 3월 보스턴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소방관 에드워드 왈시, 마이클 케네디 두 사람의 유해가 지나갈 때 동료들뿐만 아니라 시민들까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같은 해 12월 성탄절 다음 날 사망한 15년 베테랑 소방관 제임스 우즈의 장례식에도 수천 명이 모였습니다. 장례식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미국의 소방관에 대한 예우는 유명합니다. 소방관 배지(badge)는 어디를 가든 출입이 자유롭고 심지어 주차 단속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소방관 현실은 어떠할까요? 2015년 4월 부산의 한 중고차매매단지에서 일어난 화재를 진압하고 땀과 재로 범벅이 된 채 돌계단에 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는 소방관 사진이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든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2018년 4월 인천 서구 가좌동 화학공장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를 진압한 소방관들이 기진맥진한 채로 이번에는 땅바닥에 앉아 역시 컵라면을 먹고 있는 사진은 그나마 누리꾼들의 관심조차 끌지 못했습니다. 1999년 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 때 10여 명의 청소년을 구조한 소방관은 유독가스 후유증으로 병까지 얻었지만 결국 직무연관성을 인정받지 못해 가족들에게 엄청난 치료비만 남기고 사망했습니다. 인정받고 존경받기는커녕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자기 목숨과 가족의 삶까지 담보하면서도 묵묵히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진정한 불의 전사(fire-fighter) 한국 소방관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이번 달 초 종교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에 대한 첫 번째 무죄 판결이(대법원전원합의체) 내려졌습니다. ‘여호와의 증인’과 관련해서 더 알려졌지만, 원래는 ‘양심적 집총거부’라는 해묵은 주제였습니다. 무죄로 판단한 9명 다수의견의 골자는 이러합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양심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며, 이는 소수자에 대한 관용이라는 자유민주주의에 반한다.” 반면 다음과 같은 소수의견도 있었습니다. “대체복무제 도입으로 해결해야 할 국가 정책의 문제로, 서둘러 판단할 것이 아니라 국회입법을 기다려야 한다.” 결국 ‘대체복무제’로 초점이 모아졌습니다. 벌써부터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는데, 그 중에 소방대 근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동시에 소방대 근무는 일종의 특혜라는 주장도 제기되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현재 소방대원이 인기 직종이라 경쟁률이 엄청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2018년 전국 소방공무원 채용 4,156명에 지원자 34,111명, 8.2:1)
직업안정성을 고려한 결과라고 생각이 들지만, 소방관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늘고 있다는 점만은 고무적인 사실입니다. 그러나 본질만은 기억해야겠습니다. 1958년 스모키 린 소방관이 현장에서 어린이 셋을 구하지 못한 후 안타까운 마음으로 남긴 시가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부름을 받을 때는 / 아무리 강력한 화염 속에서도 / 한 생명을 구할 힘을 제게 주소서 // 너무 늦기 전에 / 어린 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게 하시고 / 공포에 떨고 있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중략)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 제 목숨을 잃게 되면 / 신의 은총으로 / 제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 주소서.” 1998년 6명의 소방관 장례식에서 당시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가서 누가 우리를 구하여 줄 것인가?’라는 부름(calling)에 ‘여기 내가 있습니다, 나를 보내주십시오.(Here am I, send me.)’라고 응답한 용기 있는 사람들이라는 추모 연설을 한 적이 있습니다. 죽음도 생계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불에 맞서 인명을 구하는 일은 소명(召命)없이는 불가합니다. 하기야, 우리가 감당하고 있는 어떤 일이 소명 아닌 것이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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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소방관과 대체복무 그리고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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