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 지방에서의 최초의 사회복지 시설
, 혹은 호주장로교회 선교부가 설립한 첫 자선기관은 미오라 고아원(Myoora orphanage)이었다. 1891년 부산에 왔던 멘지스 페리 퍼셋 등 세 미혼 여선교사들의 첫 번째 사역은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었다. 여선교사들이 처음부터 이런 사역을 계획한 것은 아니었으나 현지에서의 필요 때문에 자연스럽게 고아원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때가 1893년이었다. 이 고아원이 ‘미오라 고아원’으로 불리게 되었다. ‘미오라’라는 말은 호주 원주민어로 ‘야영지’ 혹은 ‘안식처’(resting place)라는 뜻인데, 당시 멜버른 인근 투락에 있던 하퍼 부인(Mrs. Harper)의 저택 이름을 따서 명명한 것이다. 하퍼 부인은 호주 빅토리아 주 여전도회연합회(PWMU) 창립이후 34년 간 회장으로 봉사하면서 자신의 저택에서 선교모임과 선교비 모금을 위한 만찬회를 개최하는 등 한국선교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헌신했던 여성이었다. 특히 그의 재정 후원이 고아원 사업에 큰 도움을 주었으므로 이를 기리기 위해 하퍼 부인의 저택 이름을 따서 ‘미오라 고아원’이라고 명명하게 된 것이다.
이 고아원은 여선교사 집 앞에 버려진 한 아이로 시작되었으나 수용인원은 점차 증가하였다. 설립 2년이 지난 1895년에는 수용인원은 13명으로 늘어났다. 약간의 변동이 있었으나 그 수는 10명 전후였고, 15명을 넘지 않았다. 1900년 10월 말 왕길지 선교사 내한부터 몇 년간 수용인원은 9명에 지나지 않았다. 선교사들 수용된 고아들을 멜버른에 있는 교회나 개인이 후원하도록 한사람씩 결연하였다. 이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미오라고아원 수용자 및 후원자들(1902년 당시)
이 고아원 사역은 멘지스와 여선교사들의 책임 하에서 운영되었으나 이 사역 역시 왕길지 목사의 관할 하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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