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김운성 목사.jpg
 
6월 둘째 주일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그리스도인치고 성령의 강림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성령님의 강력한 임재가 있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우선 권능을 얻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은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습니다. 여기 권능이란 <뒤나미스>라는 명사인데, 여기서 다이너마이트란 단어가 파생되었습니다. 다이너마이트는 폭탄입니다. 바위도 산산조각 낼 수 있습니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초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에게 성령님께서 임하셨을 때, 성도들은 권능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폭탄을 받은 셈입니다. 이들은 당시의 빌라도로 대표되던 로마 세력, 대제사장들로 대표되던 성전 세력, 백성의 장로들과 산헤드린으로 대표되던 권력층,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지르던 군중들과 맞서서 승리했습니다. 성령님에 충만한 성도들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회개했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으며, 예루살렘의 거대한 바위산 같은 복음의 적들이 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사람들은 작은 계란처럼 약해 보였고, 그 주위의 환경은 강한 바위산 같았지만, 성도들이 권능을 얻자 다 깨어져 항복했습니다. 나중에는 로마 제국까지도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처럼 성령님으로 충만하면 놀라운 역사가 임합니다. 병든 자가 일어나고, 귀신이 굴복하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승리하게 됩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늘어나 부흥하고, 그리스도인들의 명성이 높아집니다. 아주 멋진 일입니다.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으로 충만하길 갈망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은 성령 충만한 한쪽 면에 불과합니다. 성령께서 강력하게 임하시면 그 반대의 상황이 올 때도 있습니다. 그 대표적 예를 하나 말씀드린다면 본문의 내용이 될 수 있습니다. 본문은 남 왕국 유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북 왕국의 악한 왕인 아합과 그 아내 이세벨 사이에서 태어난 아달랴는 남 왕국 유다로 시집을 왔습니다. 그녀는 결국 아들이 죽은 후에 손자가 왕이 되도록 하지 않고, 손자들을 모두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되었습니다. 사악하기 이를 데 없는 여인입니다. 그 와중에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요아스를 빼내어 숨겨 키운 후에 그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아달랴를 죽이고 왕으로 옹립했습니다. 여호야다 대제사장은 요아스왕의 은인이요, 아버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많이 흐른 후 요아스는 변했습니다. 여호야다가 가르친 신앙의 길에서 벗어나 우상을 숭배했고, 악을 행했습니다. 그 때 여호야다의 아들인 스가랴가 왕에게 직언을 했는데, 왕은 가족과도 같은 스가랴를 죽였습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역대하 24장 20절에 있는 <하나님의 영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매>란 대목입니다. 성령님께서 스가랴에게 임하셨는데, 그 결과는 죽음이었습니다. 여기서 깨닫는 바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님께서 임하시면 죽는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강하게 역사하시면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승리하고 부흥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님도 성령 충만한 분인데, 순교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령님의 역사에 대해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하면 우리가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됩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하면 죽을 자가 살기도 하지만, 반대로 죽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하나님의 인도에 우리를 전적으로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성령님 역사의 전자에만 매달린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성령님 안에서 기꺼이 죽음도 받아들일 수 있는 새로운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 성령님 안에서 하나님의 손에 우리를 맡겨야 하겠습니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성서연구] 성령 임재를 원하십니까?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