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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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왜곡의 정점을 찍다
지난해 개봉된 범죄드라마 <마약왕>(2018)에 대해서 한 영화평론가는 ‘캐비아로 알탕을 끓인 영화’라는 혹평을 내어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송강호라는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의 이름에 걸 맞는 작품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평론가와 일반관객들 모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이 같은 신랄한 비평의 칼날은 조철현 감독의 신작 <나랏말싸미>로 옮겨가도 무방할 듯싶다. 이 영화 역시 우연찮게도 깐느 그랑프리 수상작인 <기생충>의 주연을 맡은 송강호를 내세웠고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역사의 인물이자 한국인의 정신적 지주인 세종대왕의 한글창제역사라는 귀하고 풍성한 재료를 가지고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영화를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캐비아로 알탕을 끓였다’는 말은 알탕의 가치를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예상치 못한 전혀 다른 성격의 음식을 만들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캐비아(caviar)는 푸아그라와 트러플(송로버섯)과 더불어 3대 진미중 하나로 꼽힌다. 캐비아의 품질과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철갑상어로부터 얻은 원재료를 손질하는 방법도 중요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저장방법에 있다. 신선한 캐비아는 0~7℃ 정도에서 저장해야 하는데, 조금만 온도가 올라가도 품질이 급속히 떨어지게 된다. 캐비아를 알탕이 되도록 끓여먹는 일은 맛과 풍미를 모두 잃어버리게 되는 최악의 상태로 전락시키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초등학생조차도 잘 아는 한글창제역사에 대한 왜곡의 정점은 한글을 만든 이가 세종대왕이 아닌 승려 신미(信眉·1403~1480)라는 주장을 일관되게 주장하는데서 찾을 수 있다. 세종 당시 산스크리트어나 티벳어 등 불교경전과 관련된 다양한 외국어에 능통한 인물로 알려진 신미가 뜻글자 대신 말글자를 만들려는 세종의 의지를 실현시킨 인물로 영화는 그를 부각시키고 있다.
이 같은 영화의 주장이 갑자기 나온 것은 아니다. 학계에서는 이미 사라졌지만 불교대중들의 입소문으로 떠돌던 신미의 한글창제 개입설은 2013년 5월 조선 세종태학원 총재인 강상원 박사의 ‘신미 대사와 훈민정음 창제 학술 강연회’를 통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는 신미의 저서 ‘원각선종석보(圓覺禪宗釋譜)’가 훈민정음 창제 시기(1443년)보다 8년 앞서서 한글과 한자로 출간된 사실이 있음을 주장하며 신미가 한글창제 실제적 주역이었을 밝힌바 있다. 또한 영화의 원작 시비를 일으킨 박해진의 『훈민정음의 길 - 혜각존자 신미 평전』이 2014년 출판되어 세종의 한글창제 역사에 도전장을 내밀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역사학계와 국문학계의 입장은 세종의 한글창제설을 확고히 지지하고 있다. ‘원각선종석보’는 명확한 증거를 통해 2016년에 위작임이(2016.05.03, 뉴시스) 밝혀졌다. 무엇보다도 훈민정음의 원본이라 할 수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집현전 학자인 정인지는 “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정음 28자를 처음으로 만드셨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조선왕조실록 1443년(계해·세종25) 12월 30일자에도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으셨다”고 기록함으로써 세종의 한글창제설에 의심을 가질만한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왜곡이라는 비판을 받을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세종의 한글창제설이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숭상하던 당시 상황에서 승려가 한글을 만들었을 경우 혹시라도 한글 보급이 어려워질 것을 염려한 세종과 신미의 타협에 의해 집현전 학자들이 참여한 것으로 거짓 발표되었다는 가설을 통해 개연성을 확보하려 함을 알 수 있다.
<나랏말싸미>의 역사왜곡은 의문점을 낳을 수밖에 없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일을 갖고 있는 글자인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한글의 역사를 굳이 훼손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단순한 호기심과 상상력의 결과인가, 아니면 노이즈 마켓팅을 통한 흥행에 욕심이 난 것일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감독은 영화의 내용을 사실 그대로 믿고 있을 수도 있다.
 
신미와 감독의 하나 된 세계관
한글창제의 주역이 누구인가를 놓고 볼 때 영화는 세종이 아닌 신미의 편에 서있다. 통치자로서 왕의 최종결정권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한글을 만든 결정적 역할은 승려신분인 신미가 주도하고 있다. 유교를 중심 이념으로 삼고 불교를 폄훼하는 사회를 이끌어가는 왕의 신념에 승려 신미가 거부하지 않고 참여한 이유를 영화는 숨기지 않는다. 조선 땅에 불국토(佛國土), 즉 부처가 있는 나라를 이루려는 승려의 야망이 조선사회를 다시 고려시대처럼 불교의 나라로 돌이키고 싶은 것이다. 백성들 누구나 읽을 수 있는 한글이 만들어질 경우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여 조선의 백성들은 부처의 말씀을 쉽게 들을 수 있고 조선은 다시 불교가 왕성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판단을 영화는 신미역을 맡은 박해일의 입을 통해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세종대왕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겉은 같으나 속은 전혀 다른 생각이 있음을 의미하는 대목이다. 즉 한글창제라는 한민족 역사의 중심에 불교를 놓고 한글창제의 본래 뜻 속에는 불국토라는 불교의 이상이 있음을 만인에게 공표하고 싶은 감독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 볼 수 있다.
신미가 한글을 통해 불국토를 이루고 싶은 염원을 감독은 영화를 통해 이루려는 의지는 영화 곳곳에 반영되어 있다.
첫째는 한글창제 이야기의 갈등 구조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세종과 유학자들이 아닌 유교와 불교 사이의 갈등관계로 몰아가고 있는 점이다. 유교는 가해자로서 신분의 억압을 통해 한자를 배우지 않으면 편지하나 쓸 수 없는 사회를 만들었지만 새로운 말글자를 만들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대신 불교는 피해자로서 개와 같은 취급을 받지만 한글을 만들 만큼 뛰어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유교는 민심을 읽지 못하고 무능력한 반면 불교는 민간에서 신앙되는 현실에 기반하며 아울러 창조력을 발휘한다.
둘째는 세종의 친불교적 행보를 영화는 매우 의미 있게 다루고 있다. 조정대신들은 궁궐에 승려들이 드나드는 것을 경계하지만 세종은 이를 무시해버린다. 세종이 유자(儒者)나 불자(佛者) 모두 조선의 백성임을 언표하는 대목은 과연 배불숭유(排佛崇儒)를 통치의 근간으로 삼는 당시 사회에서 가능한 일이었는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결정적인 것은 세종의 부인인 소현왕후의 49제를 승려들이 주관하는 가운데 궁궐에서 지내는 장면이다. 불상 앞에 놓인 왕후의 위패를 향해 세종은 엎드려 절한다. 해석의 여지를 남겨둘 수는 있지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말처럼 세종이 ‘불교덕후’가 되는 순간이다.
셋째는 한글창제에 불교 사상이 관여된 사실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영화 초반부에서 말글자의 원리가 팔만대장경 안에 있음을 언급하는 한편 세종이 직접 썼다는 훈민정음 언해본의 서문의 글자 수를 일부러 108자로 맞추는 장면을 보여준다. 108은 불교에서 말하는 번뇌의 가지수를 뜻한다.
결국 영화는 정사(正史)와는 다르게 세종과 한글창제의 역사의 숨은 사실로 신미와 불교가 깊이 내재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영화 제작의 목적은 신미가 한글창제에 개입한 목적과 같지 않을까? 영화를 통한 불국토의 달성. 감독은 신미가 한글창제의 중심에 있음을 믿고 있고 그 믿은 바를 영화를 통해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가 한글에 관심이 있는 이유
유교와 불교가 한민족 역사에 끼친 영향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특정 종교에 소속된 사람이라면 자신의 종교가 민족문화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음을 알았을 때 큰 자긍심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역사는 역사 스스로의 입을 통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조작된 역사를 통해 이득을 위하려는 행동은 그것이 상상력이 개입된 예술이라는 이름을 빌리더라도 비난과 조롱을 받기 쉽다.
<나랏말싸미>는 현대적이며 새로운 스타일로 덧입혀진 불교영화다. 겉으로는 역사물의 장르를 취했지만 메시지는 결국 불교가 한글창제의 중심임을 선포하며 대중들에게 불교의 가치를 전파시키고 있다. 다문화 다종교 사회에서 불교의 사상과 문화를 담은 영화를 제작한 일에 대해서 누구도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종교와 관계없는 사람들이 연루된 가장 기초적인 문화인 언어와 연관된 일이라면 다르다. 왜곡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국의 기독교는 영화가 제기하는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세종이 만들면 어떻고 신미가 만들면 어떠냐고 대충 넘어갈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개화기부터 지금까지 한글은 복음에 가장 적합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신념 가운데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사랑받아 왔기 때문이다.
1882년 중국 심양에서 존 로스 목사는 이응찬, 서상륜, 백홍준 선생 등과 함께 ‘예수셩교누가복음전셔’와 ‘예수셩교요한 복음젼셔’를 발간한 것을 시작으로 1887년에는 드디어 최초의 한글 신약전서인 ‘예수셩교젼서’를 발행하기에 이른다. 불교가 1965년이 돼서야 팔만대장경의 한글화 작업을 시작한 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기독교의 한글사랑은 뜻 깊다.
남녀노소뿐만 아니라 신분에 관계없이 문자를 애용할 수 있도록 만든 한글의 정신은 곧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요3:16) 일면 닮은 점이 있다. 선교의 방법으로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교사들이 잊지 말아야 할 일은 한글에 담긴 세종대왕의 뜻이 갖는 인간 사랑의 의미이며, 한국에서 기독교가 부흥발전하게 된 결정적 이유 또한 한글에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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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종은 없고 불교만 남은 영화 ‘나랏말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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