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전체기사보기

  • 신천지 안드레지파 본부건물 관련 재판 열린다
    ▲ 부산신천지대책위원회 실행위원회 모습 신천지 안드레지파 본부건물 건축 반대운동이 부산교계 내에서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신천지 측이 연제구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첫 재판기일이 9월 24일(목) 오전 10시로 잡혀있어 교계의 절실한 기도가 요구된다. 부산신천지대책위원회 실행위원장 옥수석 목사(거제교회)는 “대책위원회에서 법무팀을 구성해 이번 소송에 대비하고 있다. 전국 6개 지역에서 본부건축 반대 운동 소송이 벌여졌는데, 이중 3곳은 승소했고, 나머지 3곳은 패소했다. 부산교계는 잘 대응해서 반드시 본부건물 건축이 이뤄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부산신천지대책위원회(상임위원장 최홍준 목사)는 부산시민들을 상대로 20만장 이상의 반대서명과 법무팀 구성, 연합집회 등으로 신천지에 대응하고 있다. 또 연제구지역 각 학교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교육청 항의 방문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책위원회 서기 성창민 목사는 “재판기일이 열리는 24일은 어머니금식기도회 2차 준비기도회가 부전교회에서 열리는 날이다. (신천지본부건물반대운동을 위해)부산지역 교회가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뉴스
    • 뉴스종합
    2015-08-31
  • 통합 제21회 영남지역 목사⋅장로 선교대회
    ▲ 예장통합 영남지역노회협의회가 지난 8월 27일(목) 산성교회에서 제21회 영남지역 목사ㆍ장로 선교대회를 개최했다. 예장통합 영남지역노회협의회(회장 민영란 목사)가 지난 8월 27일(목) 오전 11시 산성교회(허원구 목사)에서 제21회 영남지역 목사⋅장로 선교대회를 개최했다. ‘그리스도인, 복음으로 사는 사람’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선교대회는 영남지역 17개 노회 8백여 명의 목사, 장로들이 참석한 가운데 예배와 특강 등이 진행됐다. 민영란 목사의 사회로 열린 개회예배는 허원구 목사가 ‘버리는 사랑’(요한1서 3:13-18)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허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가 완성하고, 보여준 사랑은 버리는 것이다”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죽어 하나님의 교회와 다음세대, 대한예수교장로회가 세워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생명이 우리의 존재로부터 흘러넘쳐 모든 사역을 기름지고 새롭게 하는 영남지역 동역자들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진 특별기도에서 국가와 민족복음화를 위해 경동노회장 이진동 목사가, 세계선교와 한국교회를 위해 진주남노회장 김문수 목사가, 신학대학교와 기독교 교육재단을 위해 영주노회장 김창진 목사가, 제100회 총회와 영남지역노회협의회를 위해 진주노회장 서상원 목사가 기도했다. 오후시간에는 몽골선교사 허석구 목사의 선교특강과 선린대 총장 주대준 장로의 특강이 이어졌다. 허석구 목사는 특강을 통해 “한국교회는 원래 선교지향적 교회였다. 선교지향적인 교회는 교회의 모든 활동 중심에 선교를 둔다는 것이고 모든 성도들의 생각과 삶에 선교의식으로 가득 차 있는 교회를 말한다”면서 “한국교회가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선교지향적 교회가 위기의 한국교회의 해답이다. 꺼져가는 한국교회의 선교의 불을 다시 피워 선교지향적 개인, 가정,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대구동남노회장 현오율 목사의 인도로 가진 폐회예배는 민영란 목사가 설교하고 경남노회장 정성익 목사의 축도로 마쳤다. 영남지역노회협의회 회장 민영란 목사는 “올해로 21회를 맞이한 본 선교대회는 우리교단 총회 산하 5개 권역 중에 가장 큰 규모로 발전해 오고 있다”면서 “감동과 은혜로운 말씀이 있는 이번 선교대회가 하나님의 축복으로 열린 것에 감사하다”고 전했다.
    • 뉴스
    • 뉴스종합
    2015-08-31
  • [이단피해] "경제적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 남동생이 신천지에 빠져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A씨 A씨가 남동생이 신천지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2006년 6월 경이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동생의 가방을 우연히 열어보면서 신천지로 의심했고, 설마했던 그 의심은 결국 사실이 되었다.동생을 다시 회심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당시에는 큰 힘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동생과 거리감만 만드는 계기가 됐다. A씨 부모님이 믿음으로 키운 아들이었고, 항상 동생을 위해 기도했기 때문에 신천지에 빠질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동생이 신천지에서 돌아오기를 기도하면서도 강압적으로 회심을 시도하지는 않았다. 서로 연락하면서 조금씩 동생을 설득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A씨와 동생이 공동으로 부과하던 적금에 동생이 손을 댄 것이었다. 또 동생이 사채도 끌어들이고, 잠시 다니던 직장에서는 횡령으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처음에는 신천지에 빠진 뒤 변변한 직장생활을 못하고, 항상 아르바이트나 직장을 자주 옮겨 다니면서 생활고에 빠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이 일시에 이뤄졌고, 수천만원이나 되는 많은 돈이 사라진 것이 의심스러워 조사를 해 본 결과, 당시 동생이 출석하던 신천지 요한지파의 건축이 이뤄졌던 시기와 일치했다. A씨와 부모는 신천지 요한지파를 찾아가 항의했다. 요한지파측은 처음에는 돈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가 이후 “돌려줄 수 없다”고 말을 바꿨다. 동생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결국 모든 부담은 A씨와 부모의 몫이 됐다. A씨는 “착한 동생이었는데, 신천지에 빠지면서 모든 상황이 변했다. 우리 가족은 동생이 벌인 일들을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다. 동생이 빨리 신천지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이단
    • 신천지회심자
    2015-08-27
  • [서임중 칼럼] 마지막 남은 한 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절박한 상황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당연한 이치이기도 하다. 인생이란 그 어떤 사람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만사형통의 삶이란 없는 법이다. 며칠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사람에게는 길거리에 버려진 빵 한 조각도 소중하다. 사형선고를 받은 암 환자에게는 어떤 환경이든, 어떤 상황이든 살아있는 사람이 더 없는 축복임을 뼛속까지 느낀다. 그토록 많은 재산을 다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형제간에 재산 싸움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맞게 된 거부의 뉴스를 보는 역전 앞 걸인에게는 길손님이 건네주는 컵라면 하나가 더 없는 행복이다. 남달리 축복받았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집안에서는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데 반해 부잣집의 개집만도 못하여 쓰러질 것 같은 판잣집 안에서 아침저녁으로 들려나오는 웃음소리는 왜 사느냐에 대한 질문에 정확한 답을 준다. 그런데 이 모든 인간사의 확실한 것 하나는 나름대로 모든 인간은 자기가 살아야 한다는 줄 하나쯤은 붙잡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그 줄이 권력이고, 어떤 이에게는 그 줄이 돈이고, 어떤 이에게는 그 줄이 쾌락이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그 줄이 학문이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그 줄이 예술이기도 하다. 그렇게 인간은 그 줄을 놓으면 죽는 줄 알고 그 줄을 붙잡고 살아간다. 위대한 바이올린 연주가 ‘파가니니’의 이야기는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해 준다. 파가니니가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 줄 하나가 툭 끊어지고 말았다. 청중들은 깜짝 놀라 숨을 몰아쉬었으나 파가니니는 나머지 3줄로만 조용히 연주를 계속 했다. 그런데 갑자기 줄 하나가 또 툭 끊어졌다. 그래도 파가니니는 거침없이 연주를 계속했다. 신들린 듯 연주를 하는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줄이 또 하나 툭 하고 끊어졌을 때 청중들은 두려운 마음마저 가지며 숨을 죽이고 있는데 파가니니는 멈칫하더니 그의 유명한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을 높이 들고 “한 줄과 파가니니” 하고 말한 후 한 줄로 연주를 계속 했다. 그의 위대성은 바로 그 순간에 나타났다. 연주가 끝났을 때 청중들은 일어서서 박수를 그칠 줄 모르고 계속 보냈다고 한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바이올린 줄이 끊어지듯 우리가 믿고 있던 인생의 여러 줄들이 하나하나 툭툭 소리를 내면서 끊어져 버리는 것을 경험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쉽게 절망하며 좌절하기도 한다. 더 이상 세상에 의지할 데 없다고, 믿을 데 없다고,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고 삶 자체를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도, 정몽헌 회장도, 최진실 탤런트도 내로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삶을 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 세상의 모든 줄이 다 끊어진다 할지라도 오히려 더욱 강하게 붙어있는 줄 하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줄 하나만 있으면 어떤 경우도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다. 얼마든지 일어설 수 있다. 파가니니처럼 한 줄로 연주를 끝내고 기립박수를 받는 것처럼 그 줄 하나로 인생을 연주하고 삶을 마무리할 때 천군천사가 기립박수를 쳐 주는 것이다. 내 나이 20세 때 폐결핵 3기의 중환자로 사형선고를 받아 나의 인생이라는 줄 하나가 끊어진 것으로 절망했었다. 궁핍 가운데 지쳐 3개월 간 걸식의 생활을 할 때도 나는 또 하나의 나의 인생 줄이 끊어짐을 체험하면서 살 소망마저 잃기도 했었다. 그 뿐 아니라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배움의 장에서 희망차게 공부할 기회조차 없었기 때문에 혼자 독학을 하는 고통가운데서 나는 또 하나의 인생 줄이 끊어지는 슬픔과 저림과 아픔으로 일어설 기력조차 없었다. 그렇게 인생을 살면서 내가 붙들고 있던 줄들이 끊어져 나갈 때 나의 인생이란 이제 아무런 희망도 없다고 포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목사가 되어 35년을 한결같이 목양하고 은퇴를 하고 난 지금 내 곁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 둘 멀어지고 낯선 사람들이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그토록 절절했던 사랑의 인간관계의 줄들이 하나하나 끊어져가는 것을 경험하면서 자괴감에 유구무언으로 스스로를 아파하며 일어설 기력조차 없음을 느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세상 줄이 다 끊어졌을 때 나에게 남아있는 한 줄이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고, 그 한 줄의 위력은 그때서야 더 큰 소망과 생명으로 체험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있어서 그 한 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줄이다. 나의 힘은 건강도, 돈도, 학벌도, 명예도, 사람도 아니라 하나님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세상 줄이 끊어져 나갈 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능력으로 나에게 한 줄의 위력을 체험하게 하신다. 바로 그 한 줄, 예수 그리스도의 줄이 나로 하여금 건강과 학벌과 부요와 재물과 세상 모든 것을 다 갖고도 남을 축복의 삶을 경험하게 한다. 그렇다. 아무리 가난하고 병약하다 할지라도, 외롭고 삶이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마지막 한 줄이 남아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오히려 끊어진 세상 줄 보다 더 힘 있고, 가치 있고, 위력 있는 줄이다. P교회에서 부흥사경회를 인도할 때 내 품에 안겨 목회의 소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흐느낀 K 목사님, 그리고 이 병원 저 병원 다녀도 치료되지 않아 삶을 포기하고 싶었는데 부흥사경회 참석하여 안수 기도를 받고 일어설 줄 모르고 울던 J권사님, 그리고 결혼을 약속하고 행복하게 가정을 설계하던 중 헤어짐의 아픔으로 삶을 포기하려다가 말씀을 듣고 웃음을 찾은 Y 청년. 나는 그들에게 파가니니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나 또한 지난 날 뿐만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하나하나 삶의 줄이 끊어지는 아픔과 절박함을 경험하는 가운데서도 여전히 한 줄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함을 깨우쳐 주었을 때 그들은 환한 미소로 목사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 우리 인생에 마지막 남은 한 줄, 예수 그리스도! 그 줄은 세상 모든 줄보다 강하고 위대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생명줄이다.
    • 오피니언
    • 칼럼
    • 서임중 칼럼
    2015-08-27
  • [성서연구] 인생 최후의 보배(히브리서 8장 1절)
    인생은 덧셈에서 시작하여 뺄셈으로 끝나는 수학 계산과 같습니다. 갓난아기일 때는 0 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날마다 덧셈이 이루어집니다. 물건이 더해지고, 지식이 더해지고, 사람이 더해집니다. 30,40대가 되어 급속히 늘던 인생의 자산들은 50대쯤에 절정에 이릅니다. 그러다가 50후반부가 되면 서서히 뺄셈이 진행되어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집니다. 기억력이 떨어지면서 알던 지식도 사라지고, 몸이 약해지면서 만남도 줄어들고, 알던 이들이 한 명씩 세상을 떠나기도 합니다. 덧셈은 대개 기쁨을 가져오지만, 뺄셈은 매우 큰 아픔을 가져옵니다. 80세가 넘어가면 남은 게 별로 없게 됩니다. 요양병원에 가보면 어르신들에게 남은 것이 별로 없음을 알게 됩니다. 약간의 음료수, 화장지, 기저귀, 최소한의 몇 가지 물품뿐입니다. 찾아오는 사람도 점점 줄어듭니다. 이러다 보니 인생의 마지막까지 무엇을 끝까지 남길 것인가 하는 문제가 중요하게 떠오릅니다. 며칠 전 한 요양병원에 계신 올해 91세의 어르신을 찾아뵈었습니다. 한 동안 뵙지 못했기에 그 동안 많이 악화되신 것은 아닌지 염려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만면에 화색이 가득했습니다. 어떻게 지내시는지를 여쭈었습니다. 어르신께서는 “매일 똑같지요!”라고 하시면서 일상을 설명하셨습니다.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셔서 한 시간 기도부터 드리신다고 했습니다. 그 후엔 병실 옥상에 있는 정원에 가셔서 찬송가를 스무 곡 남짓 부르신다고 했습니다. 그 찬송가들의 가사가 다 기억되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운동을 하시는데, 팔굽혀펴기를 15회 정도 하시고, 산책을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 외엔 찾아오는 가족들을 만나시는 일 정도였습니다. 이것이 그 분의 일상이었습니다. 그 분은 당신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남기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욕망 따위는 다 버리셨습니다. 그 분의 마음에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 기도하는 마음, 가족에 대한 사랑, 그리고 건강을 유지하는 몇 가지 노력들이었습니다. 그 어느 것 하나 추한 것이 없었습니다. 인생의 뺄셈이 성공적이었습니다. 종종 추한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끝까지 움켜쥔 이들과 대조되는 모습이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의 끄트머리에도 놓지 않고 붙잡고자 하시는 보화는 무엇입니까?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8장 1절은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생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빼버리고, 가장 중요한 것을 최후까지 남긴다고 할 때, 우리에게 마지막까지 있어야 할 분은 이러한 대제사장, 즉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생애 마지막에 우리에게 계셔야 할 분은 오직 그리스도뿐이십니다. 다른 것을 다 빼더라도 절대 예수님을 빼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여러분의 인생 촤후의 보배로 삼으시길 기원합니다.
    • 오피니언
    • 칼럼
    • 성서연구
    2015-08-27
  • [시사칼럼] EBE 그리고 케플러-452b
    지금은 고인이 되신 정훈택 교수가 신약 수업 시간에 외계생명체가 있는지 성경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본 일이 있었습니다. 선뜻 대답하는 이가 없는 가운데 교수님의 답변은 만일 외계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그들도 선교 대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손 들까 망설였는데,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또 있었구나 하고 내심 깜짝 놀랐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미확인비행물체’라는 뜻의 ‘유에프오’(UFO, Unidentified Flying Object)란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50년대 미국입니다. 미 공군 조사단장인 에드워드 J. 러펠트(Edward J. Ruppelt)가 그 효시(嚆矢)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1947년 미국 뉴멕시코 주 로스웰(Roswell)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비행물체가 추락했다는 소문이 무성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특히 그 속에 타고 있었다는 외계의 생명체에 쏠렸습니다. 1982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이티’(E.T., Extra Terrestrial)가 전세계적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외계의 지적생명체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은 정점에 달했습니다. 10년 후인 1993년 미국 폭스 TV는 야심찬 기획물 ‘엑스 파일’(X-files)을 내보냅니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과학지식에 의해 쭈글쭈글하고 못생겼던 E.T.는 외계의 생물학적 존재 ‘EBE’(Extraterrestrial Biological Entity)로 명명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낯선 방문자들에 대한 관심은 그들이 과연 어디로부터 왔는가, 나아가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가진 천체가 지구 외에 또 존재할까 하는 궁금증으로 발전합니다. 이번에도 영화가 인류의 상상력을 자극했습니다.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감독의 2012년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와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감독의 2014년 ‘인터스텔라(Inter-stella)’가 그러합니다. 전자는 ‘그들은 어디서 왔는가?’(Where are they from)를, 후자는 ‘우리가 어디로 가는가?’(Where are we going to?)라는 문제를 다뤘습니다. 이론적인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2011년 2월 19일 미국항공우주국(NASA) 케플러 우주망원경 프로젝트 책임자인 윌리엄 보루키(William Borucki) 박사는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연례회의에서 은하계에 500억 개의 행성이 존재하며, 이 중 최소 5억 개는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골디록스 존(Goldilocks Zone)’에 해당한다고 보고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2015년 7월 23일 역시 같은 연구팀은 지구로부터 1,400광년 떨어진 항성 ‘케플러-452’와 그 주변을 공전하는 ‘케플러-452b’를 발견했다고 밝혔습니다. 항성(恒星) 케플러-452는 태양과 비슷한 온도에 10% 더 길고 20% 더 밝으며, 행성(行星) 케플러-452b는 지구보다 1.6배 길지만 공전주기는 368일로 거의 같고 무엇보다도 지구-태양 간 거리와 비슷하게 공전하고 있다 합니다. 문제는 현재 과학기술 수준으로 이 별까지 가는데 2,580만 년이 걸린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이들보다 훨씬 더 멀리 있는 별들을 너무나 세세하게 묘사합니다. 특히 욥기와 아모스가 거론하는(욥 9:9, 38:31; 암 5:8) 묘성(昴星)과 삼성(三星)이 그러합니다. 겨울철 남쪽 하늘 황소자리에서 관측되는 7개의 별을 일찍부터 ‘묘성’으로, 역시 겨울철 별자리인 오리온자리에서 볼 수 있는 세쌍둥이 같은 별을 ‘삼성’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묘성은 실은 수천 개의 별들이 뭉쳐 있는 성단(星團)이요, 삼성은 실은 서로 일직선상에 없는 전혀 무관한 별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네가 묘성을 매어 묶을 수 있으며 삼성의 띠를 풀 수 있겠느냐”(욥 38:31)라고 표현합니다. 현대과학을 앞서가는 진술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 19:1). 알면 알수록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하나님 앞에 경외감을 느낍니다. soli deo gloria!
    • 오피니언
    • 칼럼
    • 시사칼럼
    2015-08-27
  • [은혜의 말씀] 절반의 감사 (합3:16~19)
    절반의 감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유태인들이 강한 이유는 절기를 잘 지켜서 그렇다고 봅니다. 절기라고 하는 것은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음식을 먹고 한 밥상에 둘러앉아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집안의 내력을 듣고, 그때에 가정교육이 이루어지고 만남과 나눔이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설날을 맞이해서 가족들이 다 모이고 떡국을 먹고 세배를 하듯이 이스라엘 백성들도 명절, 절기를 지키면서 문화가 만들어지고 가정의 대화가 풍성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유태인들은 절기를 중심으로 역사가 흘러갑니다. 유태인들의 절기는 특별히 ‘맥추절이다’ ‘유월절이다’ 할 때 그 절기는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 곡식을 추수해서 감사하는 의미가 있고, 두 번째는 역사적인 사건을, 위기 때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어떻게 도우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역사에 대한 최고의 감사가 있습니다. 세 번째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셨는가에 대한 예표를, 미리 앞서서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구원사역을 상징하는 것이 절기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의 말씀 하박국서를 통해서 이 맥추절의 의미를 살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박국서는 주제가 간단합니다. 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가? 왜 의인은 고난을 당하고, 불의한 것들이 득세하고, 왜 세상의 불법이 판을 치고 정의로운 사람, 공의로운 사람은 늘 고난을 당하느냐?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을 당하고 대적들이 흥왕하는 것을 이렇게 허락하실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당할 때 이유 없는 환란 때문에 왜 의인은 고난을 당하고 나쁜 사람들은 잘 되느냐? 그 부분에 대해서 하나님께 질문하고 도전 하는 것이 하박국서입니다. 이 하박국 선지자에게 결론적으로 주어지는 말씀이 본문입니다. 16절에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에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 도다.」 그런 환난의 때, 위기의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게 아니고 「비록 무화가 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합3:17) 없으며, 못하며가 다섯 번이 나옵니다. 나무에 열매는 없고, 외양간에 소는 없고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감사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18절에 가서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절「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오늘 절대감사, 선불감사, 평생감사, 무조건감사, 감사할 일이 있어서 감사하는 사람은 조건적인 사람이고 그리 아니해도 일단감사, 평생 감사하는 사람은 인생이 happy day로 흘러갈 것입니다. 조건 따지고 상황 따져서 하는 사람은 늘 일희일비하고, 마음의 조울증을 겪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내 힘의 원천이고 내 최고의 백그라운드, 내 최고의 후원처가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불같은 시험을 지나고 죽을 것만 같은 순간들을 헤쳐 나가면서 비로소 노래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비로소 입술이 열리는 것입니다. 고민거리가, 기도제목이, 근심거리가, 간증거리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맥추절을 지나면서 오히려 절반의 타작도 안 되는, 건더기가 없는 가운데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래 할 줄 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 할 줄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이 와도 감당을 하고, 감수하기 때문에 그 삶이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런 부모님 밑에 있는 자녀들은 행복한 것이고, 이 시대의 고난을 돌파하고 pass of 해서 절반의 감사일지라도 오히려 그때야 말로 내게서 가장 심금을 울리는 노래가 나오는 때입니다. 느낌을 아니까, 고통의 맛을 아니까, 쓴맛을 겪어본 사람이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맥추절에 일 년의 절반을 지나면서, 성도들의 마인드가, 성도들의 스피릿이, 성도들의 스타일이 새로워져서, 불평과 원망과 짜증의 삶을 청산하고, 환난과 빚지고, 가난하고, 병들고, 약한 것들을 통과한 후 승승장구해서 높은 곳으로 나아가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오피니언
    • 칼럼
    • 은혜의 말씀
    2015-08-27
  • [교회법률상식] 총회 유령 위원회가 노회에 하달한 유령 공문
    [질의] 최근 합동 교단 내 언론지인 크리스천포커스 38호 8면에 총회로부터 황해노회장 앞으로 “황해노회 동산교회에 관한 건”이라는 제목의 기상천외한 공문이 하달되었다는 특집 기사를 보았습니다. 게재된 공문의 내용을 보내드리오니 검토하시고 법적으로 합당한 공문인지 법리적인 답변을 바랍니다. (합동 S노회 K장로)(합동 S노회 K장로) [답] 필자에게 알려온 공문의 내용을 검토한 후 총회장과 총회 서기에게 전화상으로 확인한바 권원 없는 유령 위원회가 유령 공문을 노회에 하달한 것 같아 보인다. 공문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문서번호 본부 제99-1167호(2015.7.9.) 수신 : 황해노회장, 제목: 황해노회 동산교회에 관한 건, 내용: 제99회 총회 특별재판국 보고는 잠재하고 제98회 재판국 판결문 보고대로 처리하기로 결의하였기에 통보하오니 이행하여 주시고 그 결과를 2015년 8월 17일까지 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별첨 : 제98회 총회재판국 판결문 사본 1부 끝. 하단 발신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관인) 총회장 백남선 황해노회 동산교회화해수습위원회 위원장 박무용”으로 하여 실인은 없고 총회 관인만 찍힌 공문이 황해노회 노회장에게 하달되었다고 한다. 이에 필자는 공문에 기록된 결의 내용과 위원회 조직에 대하여 총회장과 총회 서기에게 직접 전화로 확인한바 총회장 명의로 하달된 결의내용에 대하여 총회장은 “결의한 사실을 모른다”라고 답하였고, 총회 서기는 “그런 위원회를 조직한 일이 없다”는 답을 받고 보니 유령 위원회가 유령 공문을 총회장의 명의를 도용하여 총회 산하의 노회에 하달한 것으로 대명천지에 이런 날벼락과 같은 사건이 또 어디 있겠는가? 1. 유령 위원회의 허상(虛想) 총회 규칙 제27조 단항에 “당석에서 제안하는 안건은 … 개회 후 48시간 내에 제출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였다. 그래서 총회 서기가 작년 제99회 총회 회기 중 “긴급동의안은 법정기한인 수요일 오후 2시까지 제출해 달라”는 광고를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동산교회 관련건의 긴급동의안은 법정기한이 이미 지나버린 수요일 오후 4시 20분에 제출하였을 뿐만 아니라 총회 마지막 날 파회를 목전에 두고 서기가 “긴급 동의안이 있습니다!”라고 총회장에게 여러 번 제의하였고, 총대 석에서도 “긴급 동의안이요!”라고 항의가 있었으나 회장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서기가 8건의 긴급동의안 서류를 사회하는 총회장에게 올렸는데도 회장은 그 서류를 총회에 상정하지 않고 밀쳐 버림으로 모든 긴급 동의안은 자동으로 폐기된 서류라고 서기는 말했다. 문제는 총회 임원회가 총회를 파회한 후에 법리상으로 총회 회기 중에 이미 폐기된 긴급동의안을 임원회가 위임받은 잔무라고 억지를 부리면서 ? 법정시간 내에 접수된 “H목사 조사처리의 건”은 기각 결의하고, ? 법정시간이 지나서야 접수된 황해노회 동산교회 관련 건인 “특별재판국 설치 조사처리의 건”은 상정했다는 것이다. 이 때 서기는 “긴급동의안은 폐기된 것이니 취급할 수 없다”고 강력히 항의했으나 총회장과 부총회장이 중심이 되어 밀어붙이기 식으로 상정하여 결국은 “3인을 보내어 화해를 한번 권면해 보라”고 결의한 것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처음에는 “화해조정위원회”(위원장: 부총회장 박무용 목사, 위원: 부총회장 이호영 장로, 회계 서병호 장로)라는 이름으로 3인 모두가 위원장 서기 회계의 위원회 임원이 되어 활동하다가 언제부터인가는 “황해노회 동산교회화해수습위원회”로 명칭이 바뀌어 버렸다는 것이 총회 서기의 답변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볼 때 황해노회 동산교회화해수습위원회야말로 가히 유령 위원회라고 할 수밖에 없다. (다음호에 계속)
    • 오피니언
    • 칼럼
    2015-08-27
  • [성공칼럼] 영원한 결합
    성경에는 언약이라는 단어가 삼백 번 가까이 나오고 영원한 언약이라는 말도 많이 나온다. 이 언약은 구원 즉 하나님과 결합한다는 말이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것이란 사람이 하나님과 영원히 결합한다는 말이다. 그 외에 가족, 공동체, 하나 됨, 평화로운 사회, 함께 있고 싶다, 좋은 관계 등의 말은 모두가 결합이 있기에 가능한 말이다. 건물을 지은 후 수 천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튼튼하다는 말은 그만큼 결합이 잘 되었다는 말이다. 찬사 중의 찬사인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나 사람과의 관계나 건물과의 관계나 그 결합이 오랫동안 혹은 영원하기 위해서는 결합할 수 있는 접착제가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혈연 혹은 종교적 신념으로, 돈으로, 학연, 지연으로 결속력을 높이려고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영원한 결합이 될 수는 없다. 때가 되면 접착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특히 가정에서 자기애, 자기 지배욕, 자기 우선, 걱정, 근심, 분노, 짜증, 무시, 큰 소리, 욕, 도박, 술, 여자, 자기 욕심,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부부나 가정의 결합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가능하지 않다, 그리고 돈이나 권력, 성공을 추구하는 것도 잠깐 접착력이 있을 뿐이다. 돈과 권력을 추구하면서 옳지 않는 일이나 악을 행하면 거짓과 악은 접착제가 아니기에 결국은 깨어지는 것이다. 영원히 함께 살고 싶으면 영원한 접착제인 사랑과 진리와 선이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한 부부가 결혼 할 때 상대방의 조건에 끌려서 결혼을 했다고 한다. 결혼하자마자 남편은 본가 편을 들고 매일 늦게 들어오고 일과 관련된 행사는 다 참여했다. 쉬는 날은 피곤해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자기 취미 생활만 했다. 아내는 남편이 자기편이 아닌 것이 불만이었지만 가정 일만 많이 했고 존중받아본 기억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교회에 재미를 느껴서 늘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다. 이렇게 25년을 보내다 보니 각 방을 사용한 세월도 오래되고 이 부부 사이에 접착력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혼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접착력이 없어 함께 살 수도, 헤어질 수도 없는 비참한 상황이었다. 이 부부가 다시 함께 살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부부가 결합할 수 있는 접착제가 있어야 한다. 돈과 권력이 있는 어떤 사람에게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고 하자. 그럼 이 사람들이 결합한 것일까? 아니다. 이 권력자에게 모여들어서 무언가 얻으려는 마음은 사랑이 아니라 권력자를 이용하는 것이기에 결합이라고 할 수 없다. 내 목표와 돈과 권력을 원하고 있는 한 이들이 결합하는 것은 잠시 동안인 것이다. 부자가 돈과 권력이 없어지거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없을 때는 결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돈과 권력은 접착력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사람을 만나는데 돈보고 만나거나 무엇인가 원하는 것이 있어서 만난다면 나는 이미 하나님이나 사람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원한 접착제는 사랑과 진리와 선이 동시에 있는 것이다. 사랑은 내가 수단이 되고 상대방이 목적이 되는 것이며, 진리는 사랑과 선을 이루기 위한 길이며, 선은 상대방에게 실제로 유익을 주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옳은 말을 해주고 유익을 주긴 하는데 결국은 자기를 위한 것이라면 이것은 사랑이 아닌 상대를 이용하는 자기사랑이기에 언젠가는 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먹을 것과 돈을 주면서 진리 없이 사람들을 이용해 조직을 만들 숨겨진 의도가 있는 것은 악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감정 섞인 충고, 상대방을 무시하는 가르침은 그 속에 선함이 없는 진리이기에 언젠가는 끊어지는 것이다. 결국 상대방을 목적으로 하는 사랑이 시작점이다. 이 사랑에서 사랑하며 살 수 있는 방법, 노하우, 사상, 진리가 나오고 사랑과 선을 증명하는 선한 행동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매 순간의 삶을 살면서 나는 수단이 되고 상대방이 목적이 되어야 하며, 방법도 옳은 것이어야 하며, 나의 행동은 상대방에게 유익을 주는 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내가 진정으로 예수를 주님으로 믿는 것이며 진정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다.
    • 오피니언
    • 칼럼
    2015-08-27
  • [가정칼럼] 아내와 주방! 쿵짝이 맞다
    여름이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경쾌한 리듬의 레게 음악. 저 멀리 자메이카의 전통음악이 대중음악으로 정착하면서 중요한 음악 장르가 된 레게는 뜨거운 햇빛 아래 총총 땋은 헤어스타일, 알록달록 패션까지 갖춘 이들이 쿵짝 쿵짝 리듬에 맞춰 노래하여 경쾌함을 준다. 그래서 레게를 기분 좋아지는 음악이라고 하나 보다. 이 레게 리듬이 경쾌한 이유는 2박자 계열이기 때문에 쿵짝 쿵짝 리듬과 함께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디가나 쿵짝이 잘 맞아야 하나보다. 주부들의 전용 공간인 주방에서도 이 쿵짝이 필요하다. 주부들 사이에서 영식님, 일식씨, 이식군, 삼식세끼 라는 말이 유행한다고 한다. 밖에서 하루 세끼를 해결하는 남편에게는 영식님이라는 존칭을 써주고, 하루 한 끼 먹는 남편에겐 일식씨, 두 끼를 먹을 땐 이식군, 하루 세 끼 집에서 다 챙겨먹는 남편을 향해 삼식 새끼(?)라고 부른다는 것. 그만큼 가사의 부담감을 표현한 이야기일터, 예전의 우리 어머니께서 어찌 된 게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는 넋두리와도 통한다. 주부들의 평균 노동시간을 따져보면 40대 주부들의 경우 하루 평균 12시간 16분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하루의 반 이상을 집안일에 사용한다고 했을 때 수면, 식사 시간 등을 빼면 자신만의 시간은 거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 뿐인가. 잠을 자면서도 가족들의 출입에 늘 신경을 써야 하고 잠깐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가족들의 호출에 정신이 분산된다. 말하자면 24시간 대기조다. 바로 이런 과도한 가사 노동에 쿵짝이 필요하다. 레게 리듬에서 쿵과 짝은 액센트가 다르다. 쿵을 여리게, 짝을 세게 하는 엇박자가 더욱 리드미컬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주부들의 가사 노동에 있어서도 집중적으로 노동에만 집중할 수 있는 쿵이 있다면, 노동에서 해방되는 짝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들에게도 출퇴근 시간이 필요하다. 출퇴근은 여러모로 가정을 리드미컬하게 발전시킬 수 있다. 우선 과도한 가사노동시간을 적정한 선으로 유지할 수 있으며, 출퇴근의 개념을 통해 아내들은 정해진 시간 내에 가사노동에 더욱 충실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의무감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과 좋지 않은 감정들의 노출을 줄여줄 수 있다. 당연히 가정도 좋아질 것이다. 실제 어떤 주부는 본인 스스로가 출퇴근 시간을 정해서 가족에게 당당하게 동의를 구하고 협조를 요구했다고 한다. 처음엔 저러다 말겠지 생각했지만 아내는 결코 흔들리지 않고 독한 마음으로 출퇴근 시간을 칼같이 지켰다. 아침에 출근해서 보면 밤새 폭탄을 맞을 것 같이 되어있어 울화통이 치민 적도 있었지만, 끝까지 출퇴근 시간을 지켜가다보니 오히려 근무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등 즐기면서 일할 수 있었고, 퇴근 후 개인 시간에는 취미생활도 시작하여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가장 기분 좋은 변화는 자녀들이 어머니의 그러한 모습을 자랑스러워하며 닮고 싶어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아내에게 출퇴근 시간을 준다는 것은 가정이라는 훌륭한 직장을 선물하는 것과도 같다. 그로 인해 주부의 공간이 리드미컬한 경쾌한 작업 공간으로 바뀔 수 있다. 우리나라 남편들이 선진국 남편들에 비하면 주방일을 도와주는 게 턱도 없이 모자라다는 기사에 고개만 끄덕일 것이 아니라, 우울하게만 바뀌어가는 부엌에 새로운 리듬, 경쾌한 리듬을 불어넣을 선물이 필요하다. 주부에게 가정은 직장이다. 직장에는 근무환경이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이 환경이 열악할수록 자신의 일에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없다. 주방이라는 공간은 직장 내에서 가장 오랜 시간 머무르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방에서 아내가 마음껏 일하며 마음껏 놀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주방서재를 마련해 주는 것은 주부를 놀게 해 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주방은 정말 다양한 공간이 될 수 있다. 대단한 노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식탁을 조금 밀어내고 아담한 책장을 들여놓으면 될 일이다. 식탁은 책상 대용으로 사용하면 된다. 또한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오디오가 있으면 예술과 문학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바뀔 수 있다.
    • 오피니언
    • 칼럼
    2015-08-27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