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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사칼럼] 어느 개혁주의 화가의 일생
    지난 10월 1일 흥미로운 보도가 있었습니다. 하루 전인 9월 30일 네덜란드 정부와 프랑스 정부가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1606~1669)가 그린 초상화 두 점을 공동으로 구매하기로 결정했다는 기사였습니다. 네덜란드의 예트 부세마커(Jet Bussemaker) 문화장관은 현재 프랑스 로스차일드 가문이 소유한 이 그림들을 양국 정부가 절반씩 부담해서 1억 6,000만 유로(약 2,120억 원)에 구입해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과 네덜란드 국립박물관에서 순회 전시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정부가 나서서 공중(公衆)을 위해 미술품을 산다는 사실도 생소하고, 그것도 구매 경쟁에 나섰던 두 나라가 대의(大義)를 위해 국적을 초월해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는 모습은 신기하기만 합니다만, 보다 뜻 깊은 의미가 이번 미담(美談)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각기 210×135cm, 210×134cm 크기의 두 작품은 결혼식을 앞둔 예비 부부 마르텐 솔만스(Maerten Soolmans)와 오프옌 코피트(Oopjen Coppit)의 초상화로 알려져 있는데, 그림이 그려진 1634년은 렘브란트가 정든 고향 레이든(Leiden)을 떠나 암스테르담(Amsterdam)에 정착한 지 4년째면서 그곳에서 만나 지극히 사랑했던 여인 사스키아 아위렌부르크(saskia Uylenburg)와 약혼한 지 1년 만에 백년가약을 맺은 해이기도 했습니다. 몸도 마음도 생활도 안정된 렘브란트는 이때를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수난’ 연작(連作)-「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1633), 「십자가에 매달리는 그리스도」(1633), 「그리스도의 승천」(1636), 「그리스도의 매장」(1639), 「그리스도의 부활」(1639)-을 완성해 나갔습니다. 렘브란트가 태어날 무렵 네덜란드 개신교회는 레이든 대학에서 가르쳤던 아르미니우스(Jacobus Arminius, 1560~1609)의 영향으로 예정론을 부정하는 ‘항의파(remonstrant)’가 일어나 내홍(內訌)을 겪고 있었습니다. 1618년 도르트레히트(Dortrecht)에서 개혁교회 첫 국제회의가 열렸고, 개혁파들은 아르미니우스 파를 정죄하고 ‘도르트신경(The Canon of Dort)’를 채택하기에 이릅니다. 이런 과정에서 1609년부터 종교적 핍박을 피해 네덜란드로 이주해 와 있던 영국의 청교도들이 1620년부터 1629년까지 대거 신대륙으로 건너갔습니다. 이처럼 화가 렘브란트는 종교개혁 이후 가장 드라마틱한 시간과 장소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1642년, 지금은 렘브란트 불세출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야경」을 세상에 선보였을 때 쏟아졌던 혹독한 비판과 사랑하는 아내 사스키아의 죽음이 그를 은둔과 파멸로 내몰았습니다. 1656년 마침내 그는 파산했고, 1668년 9월 남아있던 유일한 혈육이었던 아들 티투스마저 잃은 후, 이듬해인 1669년 10월 4일 암스테르담 운하 끝자락에 위치한 호젠흐라흐트(Rozengracht)라는 마을 작은 집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모든 것을 잃었다 생각할 때 신앙의 위기가 찾아오는 법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 재산도 명예도 가족도 건강도 남아 있지 않았던 1668년, 렘브란트는 262×206cm의 걸작(傑作) 「탕자의 귀환」을 그렸습니다. 머리털도 외투도 없이 낡아빠진 옷에 찢어진 신발과 상처투성이의 발바닥으로 아버지의 품에 안긴 둘째 아들은 차마 얼굴도 보여주지 못한 채 등을 지고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돌아온 아들의 어깨와 등을 만지며 거의 감긴 눈으로 측은하게 바라보는 노(老) 아버지의 모습이 애틋해 보입니다. 1669년, 렘브란트는 마지막으로 98×79cm의 「아기 예수를 안은 시므온」을 남겼습니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렘브란트의 하나님』, 안재경, 홍성사, 287에서 인용). 돌아온 탕자처럼, 시므온처럼, 그가 하나님 아버지 품에 안긴 지 345년이 흘렀습니다. 이제 얼마 후면 프랑스에서 네덜란드에서 나란히 전시될 솔만스와 코피트의 초상화처럼, 그도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천국에서 주를 그리며 서 있겠지요.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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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0-07
  • 금년 부산크리스마스트리축제 11월28일 개막, 37일간 개최
    ▲ 10월 2일 열린 부기총 법인이사회 부산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이성구 목사) 법인 이사회가 지난 10월 2일(금) 이비스엠베서더호텔에서 열려 금년 11월 27일 개막하는 제7회 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 진행에 대한 보고가 이뤄졌다. 부산크리스마스트리축제조직위원회 이성구 조직위원장은 “금년 제7회 부산 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는 11월 28일(토)부터 내년 1월 3일(주일)까지 37일간 ‘평화의 성탄, 화해의 성탄, 다함께 미래로’라는 주제로 개최된다”고 보고했다. 특히 금년은 해방 70년, 분단 70년을 맞이해 일본교계인사들을 초청해 화해의 의미를 되새기고, 탈북민들도 초청해 ‘탈북민 공연’, ‘북한음식 체험’을 통해 북한의 실상과 통일을 기원하는 행사를 함께 가질 예정이다. 또 부산의 대표적인 인물인 장기려 박사 서거 20주년을 맞아 장 박사를 기리는 다양한 기념행사도 함께 가질 예정이다. 이성구 목사는 “부산을 넘어 아시아 대표적 겨울축제로 자리매김하며, 국제관광도시 부산의 역동성과 지역 상권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며 “단순한 트리축제가 아닌 교회가 중심이 되어 하나님 나라 확장과 복음전파의 유용한 도구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한편, 법인이사회는 자문변호사 선임을 허락하고, 구체적인 진행을 임원회에 일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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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0-07
  • [목회자칼럼] 연변기행
    지금 우리에게 중국동북지방은 <연변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이번에 다섯 번째로 연변지역을 방문하면서 보다 깊이, 보다 책임감 있게 연변에 대하여 공부를 하기로 결심하였다. 연변지역을 중심한 중국의 지금 동북지방은 우리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우리 민족의 출발과 삶의 첫 번째 터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고조선이 처음 여기서 출발하였다. 고조선의 후예들이 부여, 옥저라는 이름으로 나누어져 살다가 고구려가 이들을 통합하면서 나라(국가)다운 나라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한반도 남쪽으로는 역시 우리 조상들에 의하여 백제와 신라가 나라의 기틀을 세워 나갔다. 그 결과 일컬어 고구려, 신라, 백제 <삼국시대>가 열려 아시아동북지역은 우리 한민족에 의하여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우면서 세 개의 나라가 700여년의 역사를 만들어 나갔다. 그러다가 AD 660년에 백제가, 668년에 고구려가 <신라>에 의하여 정복되면서 아시아 동북지역의 세력 판도가 크게 바뀌게 된 것이다. 우리는 <통일신라>라고 부르고 있지만 고구려가 신라에 의해 정복은 당했으나 실상은 고구려 영토의 대부분은 신라의 통치권 밖으로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고구려가 가꾸어 놓았던 저 광활한 송화강, 목단강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던 기름진 땅은 그 때 이후로 우리 한민족의 영역에서 멀어져 버리고 만 것이다. 고구려의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시절에 우리 한민족의 영토는 최고조에 달했었는데 지금은 역사의 안타까운 기록으로만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그 후 우리는 지금의 압록강, 두만강을 북쪽 국경으로 하는 말 그대로 <한반도 3천리>만으로 머물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1870년대 말, 함경도 지방에 극심한 흉년이 들었다. 당시 우리나라 조선왕조는 혼란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어 조정의 통치력은 허약하기 그지없었다. 극심한 흉년에다 탐관오리들의 폭정에 시달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불쌍한 백성들은 두만강을 건널 수밖에 없었다. 1870년대의 두만강 이북 땅은 청나라의 행정력 또한 제대로 미치지를 않아 거의 방치상태로 버려진 땅이었다. 함경도 지역의 우리 조상들은 고향에서 굶어서 죽느니 두만강을 건너 지금의 연변 땅으로 들어가서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찾았던 것이다. 드문드문 청나라의 국경 경비대들이 있었으나 먹고 살 길을 찾아나서는 우리 조상들에게는 그것이 두렵지 않았다. 우리 조상들은 청나라 군대의 위협과 천대 멸시를 온 몸으로 감수하면서 방치되고 버려진 그 땅을 일구기 시작하였다. 토굴과 토담으로 된 움막을 짓고 참으로 비참하기 그지없는 <목숨을 연명하기 위한 삶>을 시작하였다. 함께 모여 이웃을 이루고 마을을 이루면서 황무지를 파헤쳐 씨를 뿌렸다. 해가 거듭될수록 여기 저기 자그마한 논밭이 일구어지고 가을이 되면 수확을 하기 시작하였다. 세월이 흘러 지금 저 연변 땅은 우리 한반도 남쪽의 기름진 당과 너무나 흡사하게 옥토로 변모 되었다. 나는 이번 방문길에서 이 부분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우리 조상들이 맨손으로 피땀 흘려 일구어 가꾸고 넓혀왔던 연변의 논과 밭은 140여년이 지난 지금 아름답고 탐스럽기가 그지없어 황홀경에 빠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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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0-07
  • 부산복음화운동본부, 이영훈 목사 초청 기도대성회 연다
    ▲ 부산복음화운동본부 총본부장 윤종남 목사 부산복음화운동본부(총본부장 윤종남 목사)가 설립 1주년을 맞아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를 초청 ‘부산복음화운동 전진대회 및 국민대화합 기도대성회’를 11월 11일(수) 오후 7시 구덕실내체육관에서 개최한다. 총본부장 윤종남 목사는 “지난 1년 동안 기도회와 노방전도를 통해 우리 스스로도 많은 은혜를 받았다. 1주년을 맞아 이영훈 목사님을 초청하여 기도대성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이번 기도대성회는 오후 1시부터 전도엑스포를 시작으로 가스펠 7080 콘서트도 함께 개최한다. 윤 목사는 “대성회 전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구덕실내체육관 옆 주차장에서 부스를 설치해 각 선교단체 및 대형교회, 중형교회 그리고 작은 개척교회의 전도 모델과 전도지 및 전도물품 등을 소개하면서 일선교회에 전도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장욱조, 노문환, 김석균, 김민식 찬양사역자들을 초청해 ‘가스펠 7080 콘서트’를 열어 성도들에게 지난 날 향수와 은혜의 시간을 마련한다고 전했다. 한편, 다음날인 12일 오전 7시 롯데호텔에서 ‘한기총 대표회장 이영훈 목사 초청 조찬기도회’도 함께 마련된다. 부산교계지도자 200명을 초청해 이영훈 목사와 함께 나라와 민족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도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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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0-07
  • 온종합병원-부산CBMC 의료지원 협약식
    지난 6일(화) 오전 11시 30분 온종합병원 9층 회의실에서 온종합병원(명예원장 정근)과 한국CBMC 부산총연합회(회장 정주갑)가 의료지원 협약식을 가졌다.이날 협약식은 의료법인 온종합병원과의 우호협력관계를 확인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지역사회의 보건 및 의료서비스 향상과 건강증진을 도모하기 위해 체결됐다. 이날 협약식에서 정근 원장과 정주갑 회장은 부산의 젊은 크리스천 청년들이 경쟁력을 가지고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세상에서 빛을 비출 수 있도록 부산크리스천잡아카데미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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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0-07
  • 원로작가 강홍윤 화백 기증작품 부산CBS에서 전시
    오는 15일(목)부터 24일(토)까지 부산CBS(범천동) 강당 6층에서 ‘부산CBS 방송선교기금 마련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회는 원로작가 강홍윤 화백으로부터 기증된 작품 40여 점을 선보인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한 강홍윤 작가(대신교회)는 오랫동안 지역을 지킨 원로화가로 알려져있다. 그는 한때 뇌혈전증으로 신체의 절반이 마비가 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런 그가 다시 붓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신앙의 힘이었다. 그가 겪었던 아픔과 하나님을 향한 고백들은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졌다. 지난 2013년에는 투병기간(1976~1980) 죽음 직전에서 불태웠던 화가로서의 의지를 담은 작품들로 ‘화가의 부활’ 전을 열기도 했다. 강홍윤 작가는 “나의 작품은 하나님과의 대화다. ‘빛과 생명력’, ‘주님의 사랑’이 나의 그림의 목표다”라고 말했다.그의 고백이 담긴 작품이 이번 부산CBS 방송선교기금 마련전을 통해 소개된다. 이번 전시회를 주관하는 루쏘갤러리 박일 관장(대신침례교회)은 “신앙인으로, 예술가로 그의 작품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았다. 강홍윤 작가님의 작품은 신앙을 체험한 사람만이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작품을 위해 심혈을 기울인 것을 볼 수 있다”면서 “이번 전시회의 작품들은 신앙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작품들이 전시된다. 기증된 작품들이 있어야 할 곳에 가기를 바란다. 이것이 작가의 뜻이며, 전도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홍윤 작가는 “종교미술, 현대미술은 누구나 감상하고 공감을 느낄 수 있다. 비신앙인들도 이것을 통해 전도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은 국립현대 미술관에서 매입한 가격을 기준으로 책정해(국립현대미술관 및 시립미술관에서 작품 구매 시 가격 심의 절차에 따라 실제 작품가격에서 40%정도의 가격으로 매입하는 것이 통상으로 되어있다) 선교기금으로 사용된다. 전시회 오픈예배는 15일 오전 11시 CBS강당에서 진행되며 전시회가 열리는 동안 주일은 휴관이다. 문의 부산CBS 051-636-0050, 루쏘갤러리 051-747-5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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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0-07
  • 복음교회 새예배당 기공예배 가져
    마산 복음교회(이병권 목사) 새예배당 기공감사예배가 지난 3일(토) 오후 3시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호계리 342번지 신축부지 현장에서 있었다.기공감사예배는 이병권 목사의 집례로 지판용 장로(증경장로부노회장, 평성교회)의 기도, 김종인 목사(마산시찰서기, 창대교회)의 성경봉독 후 허성동 목사(마산시찰장, 제일문창교회)가 '너를 택하여 성전건축케 하셨으니 힘써 행할지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했다. 허 목사는 “성전건축을 하게 되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만 한다. 복음교회 신축성전을 건축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건축과정 동안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 조금도 문제가 일어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시작하셨으니 끝까지 지켜 주실 것이다. 또한 이 성전 건축 후 예배당에서 하는 모든 성도들의 기도를 응답하시는 축복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신정환 목사(경남기총 증경대표회장, 산호교회)의 축사와 이상선 목사(증경마산노회장, 함안제일교회)의 축도로 예배를 마친 후 박영태 장로(건축위원장)의 광고가 있었다. 2부 기공식은 건축사무소 디딤건축설계사 인사와 시공사인 익투스건설 대표 김용득 장로와 복음교회 당회장 이병권 목사와의 시공사 협약체결과 시공사 인사와 기공선언, 테이프컷팅과 시삽식이 있었으며 전 성도가 함께 합심기도로 모든 순서를 마쳤다. 이병권 담임목사는 “이번 신축성전은 다음세대 교육을 위한 목적으로 짓게 된다. 주께서 함께 하시는 은혜와 축복이 있을 것”이라고 인사했다. 복음교회 신축예배당 완공은 내년 4월경이며 건축에 들어가는 재정은 약 15억 원이다.경남지사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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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0-07
  • 손양원기념관 20일 개관, 3년간의 노력 끝맺어
    ▲ 경남 함안군에 위치한 손양원기념관은 개관을 앞두고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다. 사단법인 산돌손양원기념사업회(이사장 이만열)는 오는 10월 20일(화) 오후 2시 故 손양원 목사의 생가 터에서 ‘손양원기념관’ 개관식을 가진다. 경남 함안군 칠원읍 덕산4길에 위치한 故 손양원 목사의 생가 터 위에 기념관을 건립하고 3년간의 사업추진 끝에 마침내 개관식을 갖게 됐다.기념사업회는 2012년부터 사업을 추진해 왔다. 기념관건립본부(본부장 박시영 목사)를 조직하고 지난 2014년 4월 착공식을 가졌다. 3,655㎡(1,100평)의 대지 위에 생가복원 및 기념관을 건립했다. 국비 11억7천만원, 도비 3억6천만원, 군비 33억6천만원, 기념사업회 3억1천만원 등 총 52억원의 경비가 소요됐다. 개관식은 1부 순교 65주년 기념 및 개관 감사예배, 2부 개관식, 3부 오페라 공연으로 진행된다. 1부 예배는 1950년 9월 28일 순교한 손양원 목사의 순교 65주년을 기념해 문수석 목사(경남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가 기도, 홍정길 목사(밀알학교 이사장)가 설교, 신상현 목사(예장고신 총회장)가 축도를 맡았다. 3부 식후 행사는 고려오페라단(단장 이기균)의 주관으로 손양원 오페라 갈라콘서트가 열린다. CMK교향악단과 베아오페라싱어즈의 공연으로 손양원 목사의 생애를 그리는 오페라 공연이 펼쳐질 예정이다. 기념사업회는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사랑의 사도 손양원 목사의 생가복원과 기념관 건축이 완료되어 개관식을 가진다. 손양원 목사의 사랑과 화해의 정신이 이곳을 통해 평화의 메시지로 널리 꽃 피우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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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0-07
  • 우려 속에서 출발한 부산복음화운동본부, 지난 1년의 평가는?
    2014년 11월 5일 발대식을 시작으로 부산복음화운동본부(총본부장 윤종남 목사, 기도본부장 김명석 목사, 전도본부장 임대식 목사)가 창립됐다. 그리고 1년의 시간이 지났다. 우려 속에서 출발한 부산복음화운동본부가 지난 1년 동안 어떤 모습을 교계 앞에 비춰왔고, 그에 대한 평가는 어떠한지 알아봤다. 우려 속에서 출발 부산복음화운동본부가 창립된다는 소문이 났을 때 가장 입장이 난처한 곳은 부산성시화운동본부였다. 기존 성도들에게도 ‘복음화’와 ‘성시화’라는 단어가 주는 혼란스러움도 있었지만, 두 기관의 사업이나 방향 등이 비슷할 경우 교계 안에서 마찰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특히 복음화운동본부를 창립하는 주체가 부산기독교총연합회 증경회장들이라는 점이 교계 안에서 큰 불신감이 일었었다. 과거 부기총 증경회장단들이 여러차례 새로운 연합기관을 창립해 왔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자신들이 회장으로 봉사했던 부기총과도 대립을 하곤 했다. 이들이 만든 교시협과 구군연합회도 처음 활발한 활동을 했지만 현재 명맥만 유지한 채, 활동은 전무한 실정이다. 교계 내에서는 “(어른들이)또 놀이터가 필요한 것 같다”는 심한 말들까지 흘러나왔을 정도. 부산복음화운동본부도 그런 우려 속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려는 기우였다는 것이 확인됐다. 후원이사회를 구성했고, 비록 작은교회들이지만 젊은 목회자들을 끌어들여 실무적인 일을 맡겼다. 매달 개최하는 노방전도에 200-300여 명의 성도들이 참석해 열정적으로 전도하는 모습은 교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 넣기에 충분했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총본부장 윤종남 목사는 “우리는 성시화운동본부같이 복잡하지 않다. 그냥 ‘나라사랑 영혼구원’을 위해 (나라를 위해)기도하고, (영혼 구원을 위해)노방전도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영혼구원을 위해 노방전도를 할 경우 팔순이 넘은 老 목사들도 동참해 거리를 걷는 사람들에게 전도지를 돌린다. “예수 믿으세요”라는 말과 함께 전도지를 건네는 老 목사들의 모습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큰 감동과 도전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윤 목사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국교회가 야성을 잃어 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 예수님도 그랬고, 선교사들도 처음에는 노방전도로 복음을 전했다. 지금은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쁨으로 하는 노방전도 한국교회 내 노방전도에 대한 불편한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더 이상 노방전도의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며, 오히려 시민들에게 불편함만 주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런 우려 때문에 복음화운동본부는 노방 전도 직전 교육을 통해 사람들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또 그동안 경험을 통해 사람들이 어떤 선물을 좋아하는지도 확인하고, 맞춤형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전도지에 특정교회를 위한 전도를 하는 것도 아니다. 마치 교회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참석하는 수백명의 성도들이 기쁨으로 전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윤 목사도 “가장 큰 보람은 성도들이 전도를 불편해 하지 않고, 기쁨으로 전도를 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전도는 곧 기쁨이라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보람이다. 작은 것이지만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거리에서 영혼 구원을 위해 노력하는 이런 모습을 한국교회가 한번 쯤 고민하고 되돌아 봤으면 좋겠다. 작지만 이런 운동을 통해 한국교회가 다시 초심으로 다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마음 속 깊은 바램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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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0-07
  • 김우미 학장 “선택과 집중을 통해 의대 발전 이뤄나갈 생각”
    ▲ 고신의대 김우미 학장 지난 9월 17일(목) 학교법인 이사회(이사장 강영안 장로)로부터 고신의대학장 인준을 받은 김우미 학장(기초의학, 고신의대 4기)은 고신의대 역사상 최초의 여성학장이다. 전임 학장들 밑에서 7년 동안 보직을 맡아 봉사했고, 지난 임학 학장 재임시 부학장으로 헌신한 공로가 이사회의 높은 점수를 받았다.그는 지난 25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자신의 임기중 정책과 의대 발전방향에 대해 설명했다. 김 학장은 “예산과 인력에서 타 대학과 경쟁이 쉽지만은 않다”고 인정하면서 “국가 정책 키워드에 맞춰 선택과 집중을 통해 의대발전을 이뤄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또 “고신의대 설립목적인 의료선교사 양성도 포기할 수 없는 과제”라면서 “교목실 지원 강화와 의료선교 강화를 통해 학생들에게 선교에 대한 도전과 영적 영향력을 미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선배들이 이뤄놓은 ‘의료선교’라는 좋은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도 피력했다. 김 학장의 말대로 고신의대와 간호대는 한국교회에서 ‘의료선교’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전국 41개 의대 가운데 단일대학 중 가장 많은 의료선교사를 배출했고, 역사가 100년이 넘는 연세의대보다도 선교사의 숫자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학장은 “현재 의대와 간호대, 그리고 교직원 출신으로 해외에 나가 있는 의료선교사는 총 64명”이라고 밝혔다. (사)한국의료선교협회가 밝힌 전 세계 의료선교사 500 여명 중 12.8%에 해당한다. 10명 중 한명은 고신 출신이라는 것. 이처럼 고신의대 출신이 선교사로 지원하는 숫자가 많은 이유는 선교와 기독교 관련 교육과정을 학생들이 이수해야 하고, 실제 의료선교 현장에 나가 다양한 경험과 비전을 습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과대학도 의료선교에 동참하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김 학장은 “비록 환경과 여건이 어렵지만,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경우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으로 믿는다”며 고신의대를 향한 기도와 관심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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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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