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10-30(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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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립 110주년 맞은 금사교회, 미래 위한 빛나는 도약
    교회도 특성과 개성을 나타내는 시대가 됐다. 유행하는 프로그램에 휩쓸려 동참하던 시대도 지났고, 교회가 해야 할 사역들을 수없이 나열하며 모든 사역에 열중하던 시대도 지났다. 우리 교회에 맞는, 우리 지역에 맞는, 우리 교회가 할 수 있는 사역에 집중하는 교회가 주목받고 있다. 부산 금사동에 위치한 금사교회(담임 정명운 목사)가 주목받는 이유이다. 110년, 신앙의 역사 금사교회는 1910년 3월 10일 호주 선교사 엥겔((Engel·한국명 왕길지) 목사에 의해 설립됐다. 조국 대한민국이 일본에 합병될 당시 동래군 동면 오륜대 등곡 부락에 현 금사교회 전신인 등곡교회가 세워졌다. 1914년 3월 현 금사동 333의 2번지로 이전해 그 당시 지명인 금천과 사천 두 마을 중심에 세워져, 지명의 첫 자를 합친 금사교회로 이름을 변경했다. 일본제국주의의 신사참배 강요에 신앙정절을 지키기 위해 많은 사역자들이 금사교회에 피신해 섬기며 초기부터 개혁주의 신앙 노선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1945년까지 신사참배 강요에 피신 온 양경열 전도사, 손명복 목사, 박인순 전도사, 서영수 전도사, 유재신 목사, 이삼남 전도사 등이 섬겼다. 금사교회 제1대 담임목사 부임은 1974년 이관호 목사이다. 이후 1985년 2대 담임 김명석 목사에 이어 2009년 3대 담임 정명운 목사가 현재까지 섬기고 있다. 민족의 아픔과 함께 성장해 온 금사교회는 신사참배 강요 속에서도 신앙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 애쓴 믿음의 선조들의 기도가 쌓인 곳이다. 신앙의 대를 이어 기도 위에 기도를 쌓으며 오늘도 믿음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좋다, 좋다, 좋다 금사교회는 한마디로 ‘성도가 좋은, 말씀이 좋은, 분위기가 좋은 교회’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교회들을 보면 한두번 분쟁이 있기 마련이지만, 금사교회는 그런 역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사람이 모인 곳이라면 어디든 있다는 텃세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순수한 성도들이 모인 곳이 금사교회다. 정명운 목사는 “교인들이 참 순수하다. 신기할 정도로 착하고,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목회자들을 지지하고 섬긴다”면서 “또 장로님들을 비롯한 중직자들 역시 모범이 되는 교회다. 회의를 하면서 언쟁이나 큰 소리가 난 적 없다. 설교하러 오신 목사님들이 중직자들의 섬기는 모습을 보고 감동받고 간다”고 말했다. 쉼 없이 성도들을 자랑하는 정 목사의 모습에서 성도들을 향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금사교회는 오후예배 찬양인도를 장로들이 한다. 교회를 이끄는 리더가 먼저 본을 보이고 섬기는 모습에 교회는 더욱 하나될 수밖에 없었다. 성도들이 좋고 그래서 분위기가 좋아지는 데다 늘 웃고 다니는 담임목사의 설교가 좋으니 교회는 저절로 성장했다. 삼박자가 어우러지면서 교회는 활기를 띄며 성장하고 있다. 교회는 리모델링을 마치고 지난 2월 입당예배를 가졌다. 교회를 새롭게 단장하며 내일을 위한 힘찬 도약을 마쳤다. 실버사역으로 지역민심 잡아 1974년 금사동 및 회동동 일부가 준공업 지구로 승인돼 금사 공단이 조성됐으나 지금은 공장의 유출로 지역 공동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공장의 유출로 지역 경제는 낙후되고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떠나다 보니 초고령 지역이 되었다. 대부분 노인들만 있기에 금사교회의 관심은 자연스레 노인사역에 집중하게 됐다. 지역 어르신들을 위해 노인대학을 운영했는데, 부산지역 모범 노인대학에 선정될 만큼 큰 호응을 얻었다. 영어, 일어, 서예, 노래, 율동, 국악, 침술 등 다양한 강의를 통해 어르신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금사노인대학의 자랑은 1년에 두차례 진행되는 봄, 가을 소풍이다. 제주도, 청와대 등 전국으로 다니며 여행할 기회를 제공했고, 일본으로 수학여행도 다녀와 즐거운 추억을 선사했다. 이런 금사교회의 노력을 알고 금정구청에서 금사노인대학을 지원하며 동참하고 있다. 정명운 목사를 동사무소 사회복지위원, 명예동장으로 위촉하며 교회와 동역했고, 금정구청 향토봉사상을 수상하며 교회의 노력을 인정받았다. 최근 리모델링을 마친 금사교회는 교회 내 노인카페를 마련해 지역 어르신들에게 무료로 음료를 제공하는 공간을 마련했다. 코로나19로 개장을 하지 못했지만 금사교회 노인카페를 마련했다는 소식을 들은 금정구청에서 노인일자리 창출을 위해 직원을 파견하는 등 지역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19로 금사노인대학 운영이 중단되자 지역민들이 오히려 개교를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금사노인대학으로 지역민심을 얻었고, 이는 전도로 열매 맺고 교회에 대한 지지로 열매 맺었다. 리모델링하는 기간 동안 민원 없이 진행됐고 오히려 지역 주민들이 나서 도움을 주곤 했다. 정명운 목사는 “다음세대도 중요하지만 한국교회가 당면한 실버사역에도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천국에 잘 가도록 돕는 것 역시 중요한 사역”이라면서 “노인들은 어떤 질병보다 외로움을 힘들어한다. 바쁜 자녀들을 대신해 교회가 관심 가져줄 때 기뻐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면 울컥한다. 이런 감동의 사역에 교회가 앞장서길 바란다”고 말했다. 금사교회에 부임 후 10년간 기경하며 텃밭을 가꿔 온 정명운 목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미래를 그리고 있다. 성도들을 믿음의 용사로 훈련 시키기 위한 체계적인 양육과 비전센터 마련, 주차장 확보 등 지역에 더 뿌리내리며 성장하는 금사교회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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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30
  • 탈이단자들의 치유와 회복을 꿈꾸는 ‘이음교회’
    이단에서 나와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모인 교회, 이음교회를 찾았다. 이음교회는 2017년 10월 부산CBS 강당에서 예배를 하며 시작했으나 최근 코로나 때문에 강당 사용이 어려워 임시처소를 다니다가 결국 교회 예배당을 마련하게 됐다. 지난 5월 현 교회가 위치한 부산 연제구 연산동에 새 터를 마련하고 이전 감사예배를 가졌다. 건강한 그리스도인으로 이음교회는 신천지뿐만이 아니라 여러 이단에서 나온 이들이 모였다. 이단에서 나오는 탈퇴에 그치지 않고, 예수님과 이어져 건강한 그리스도인으로 세우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이음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권남궤 목사는 부산성시화운동본부 이단상담실장으로서, 특히 상담을 통해 탈신천지를 돕고 있다. 이음교회에 출석 중인 성도들은 탈이단자들과 그 가족들이 대다수다. 이단에 가기 전 출석하던 모교회가 있을 경우 상담을 통해 이단을 나오고 나면 다시 모교회로 출석하게 한다. 대부분 모교회로 돌아가 다시 신앙생활을 하지만, 가끔 이단에 빠졌던 선입견으로 바라보는 교인들의 시선이 불편해 이음교회를 찾기도 한다. 그리고 무교, 타 종교에서 이단에 빠졌다가 예수님을 믿게 되어 바른 신앙생활을 위해 이음교회를 찾는 경우가 다수이다. 최근 신천지에서 포교전략을 기성 교회 교인들의 추수꾼 전략에서 불교, 천주교 등 타 종교인들과 무교인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을 펼쳤다. 신천지에 들어가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예수님을 믿게 되었지만, 탈신천지 이후 진리 안에서 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싶은 이들이 이음교회를 찾고 있다. 권남궤 목사는 “이음교회는 탈이단자들의 치유와 회복을 꿈꾸는 교회다. 이를 위해 세워진 교회이기에 목표를 품고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교회 과제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교회의 관심사 중 하나는 신천지이다. 신천지 교주 이만희 씨가 구속됐고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입은 신천지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권남궤 목사는 “신천지를 향한 빠른 대응이 한국교회의 과제”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탈신천지가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했고 혹자는 40~60%를 예상했으나, 권 목사는 20% 정도 탈신천지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코로나 이전과 비교했을 때 이단상담실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확실히 증가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모임이 지속 되기 힘들고 영상으로는 한계가 있다 보니 탈신천지 움직임이 많아졌다. 또 코로나19를 겪으며 신천지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10년 이상 활동해왔기에 마음이 불편한 사람들이 많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들이 많은데, 그래서 한국교회의 빠른 대응이 필요하다고 권 목사는 설명했다. 권남궤 목사는 “교주가 구속되었으니 형 집행을 받으면 지금보다 탈신천지가 훨씬 더 증가할 것이다. 그러면서 지파장들, 후임자를 꿈꾸던 사람들의 본색이 드러나지 않을까 예상한다. 신천지에 재산이 있다 보니 헤게모니 싸움이 일어날 것이다. 누가 권력을, 재산을, 신도를 더 많이 차지했는지 경쟁이 일어날 것”이라면서 “한국교회는 가만히 기다려선 안된다. 파선되기 전에 빨리 구조보트를 띄워 구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신천지는 지금 예수님처럼 이만희 씨가 핍박 받으며 고난 가운데 있다고 여긴다. 마지막 전쟁에서 살아남아야 14만4천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마지막 남은 자가 되기 위해 버틴다”면서 “결국 복음을 듣지 않으면 신천지 교리가 왜 잘못 되었는지 모른다. 신천지를 나와도 다수는 정통 교회로 돌아오지 않는다. 이들을 찾아내야 하고, 찾아낼 방법을 교회가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교회에서 빼앗긴 영혼들이 있다면 연결고리를 계속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가끔 연락해 안부를 묻고 심경의 변화가 없는지 살펴볼 것을 권면했다. 권남궤 목사는 “교회와 연결고리를 단절시키지 말고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다녀야 한다”면서 “만약 교회에서 감당하기 힘들어 도움이 필요하다면 저희가 돕겠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이단상담사들이 급증하고 있다. 탈신천지인들의 회복을 위해 한국교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특히 대구, 경산 지역을 중심으로 이단상담사를 배출하기 위한 노력들이 활발하다. 전국 몇 개의 이단상담소가 감당할 수 없는 사역들을 한국교회가 함께 감당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목회자, 사모, 사역자 등을 중심으로 이단상담사 과정이 진행 중이다. 강의를 통해 신천지인들의 구체적인 생각을 알게 됐고 탈신천지의 가능성을 보게 됐다. 부산성시화운동본부 역시 이단상담사 과정을 준비 중이다. 이음교회도 탈이단자들의 회복을 기대하며 함께 동참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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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25
  • 가정과 이웃을 소중히 여기는 창원교회
    코로나19를 겪으며 일부 교회의 일탈된 모습으로 교회가 세상의 근심거리로 취급받기도 하지만, 그런 사회적 분위기를 거스르듯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교회,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교회가 있어 주목받고 있다. 올해 설립 125주년을 맞은 창원교회(담임 안동철 목사)이다. 125년의 역사가 깃든 교회 1895년 6월 5일 박치우, 유사림 선생이 경남 창원군 창원면 북동리 123번지에서 예배를 드리며 북동교회(현 창원교회)가 설립됐다. 안동철 목사는 교회가 설립되던 당시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며 교회의 설립 목적을 유추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벌어지고 1894~1895년 청일전쟁이 일어났다.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청나라와 일본이 다툰 전쟁이 우리나라 땅에서 벌어지면서 모든 피해는 민초들이 겪어야 했다. 안 목사는 “나라가 힘이 없어 백성이 기댈 언덕이 없었다. 희망이 없는 이 민족 가운데서 ‘교회가 희망’이라 여기고 교회를 설립하셨으리라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1906년 유사림 씨가 신풍리교회에서 전도를 받고 일반 교인의 연보와 박화선 씨의 특별연보를 합해 북동리 123번지에 예배당을 건축했다. 교회 설립자인 유사림 영수를 시작으로 박치우, 김종언, 김재석, 유덕수 영수들이 교회를 돌보다가 제6대 강성택 강도사가 부임하고 1920년 7대 박성애 목사가 부임했다. 이인재, 이근삼, 정순행, 서봉덕 목사 등을 비롯해 많은 교역자가 부임해 교회에서 사역했다. 1979년 부임한 전영환 목사는 22년간 사역한 후 원로목사로 은퇴했고, 2003년 김인호 목사가 부임해 10년간 사역한 후 2012년 사임했다. 현재 담임목사인 안동철 목사는 지난 2014년 부임해 현재까지 섬기고 있다. 창원교회의 오랜 역사를 증명해 줄 종(鐘)이 교회 내 자리 잡고 있다. 1906년 교회에 설치된 종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철을 수탈하면서 교회의 종 역시 창원지서(파출소)에서 징발해 갔다. 그러나 창원지서에서 화재 등 긴급재난 알림을 위해 종을 사용하다가 해방과 더불어 전덕문 집사가 종을 회수해 교회 종탑에 다시 설치했다. 125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담은 종은 교회 본당 입구에 보관되어 있다. 고신교회에서 2번째로 오래된 창원교회는 민족의 희로애락을 함께해 왔다. ‘교회가 희망’이 되기 위해 창원교회 성도들은 하나님 사랑을 예배로, 이웃 사랑을 섬김으로 실천했다. 책임을 다하는 교회 창원교회는 코로나19라는 위기 가운데서 빠르게 대처했다. 지역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현장예배와 영상예배를 위기 상황에 따라 병행해 진행했고, 교회 앞 현수막을 통해 지역민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선보였다. 그리고 성도들의 뜻을 모아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성금 200만원을 창원시에 전달했다. 이는 창원시를 통해서는 처음 성금을 전달하는 교회로 이웃을 섬기는 마중물이 됐다. 안동철 목사는 “교회가 사회적 봉사에서 머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은 ‘교회’라는 전체 덩어리로 움직이고 있어 만약 우리 교회가 잘못하면 한국 교회 전체가 비난받을 수 있는 구조가 되어 있다. 한 교회가 주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도 가릴 수도 있다”면서 “지역사회 가운데 교회가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지 생각한다. 이제 교회는 사회적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창원교회는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교회,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고민했다. 그 일환으로 시작한 것이 북카페 ‘쉴만한물가’이다. 교회가 속한 지역의 특성을 고려해 문화 사각지대이고 만나서 교제할 공간이 부족한 점을 해결하기 위해 북카페를 마련했다. 교회만 생각한다면 교회 건물 내부에 카페를 마련해도 되지만 지역사회를 섬기고 싶은 성도들의 뜻을 담아 교회 밖에 장소를 마련했다. 그래서 교회 건너편 별관 1층에 북카페를 마련했고, 좋은 소문이 나면서 마산도서관의 제의로 1호 순회도서관이 됐다. 창원교회와 마산도서관의 MOU 체결을 통해 300여 권의 다양한 도서를 주기적으로 북카페에 제공, 지역민들이 편하게 독서 생활을 누리게 됐다. 북카페 ‘쉴만한물가’를 통한 수익금 전체는 어려운 이웃을 섬기는 데 사용하고 있다. 서로를 신뢰하는 교회 사람이 모인 교회이기에, 관계가 중요하다. 성도와 성도 간의 관계, 성도와 목회자 간의 관계는 항상 중요시했다. 그런 점에서 창원교회는 서로를 신뢰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취재차 만난 안동철 목사는 교회를 소개하며 장로님들과 성도들을 끊임없이 자랑했다. 특히 성도들이 직접 발 벗고 나서 교회를 수리하거나 섬긴 모습 등을 하나하나 소개하며 성도들의 열정을 말했다. 안동철 목사는 “우리 교회는 역사가 오래되었지만 순수한 신앙을 가졌다.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고 목회자를 사랑하며 신뢰해주는 교인들”이라고 말하면서, 모든 일에 기도로 동역하며 함께 해주는 성도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안동철 목사에게 창원교회는 담임으로서 첫 사역지이다. 안 목사는 15년간 고신 총회교육원을 섬기며 총회교육원 수석연구원, ‘복있는사람’ 편집장 등을 역임했다. 또 샘물교회 협동목사로 섬겼고 은혜샘물교회가 분립개척하던 당시 박은조 목사와 함께 은혜샘물교회 협동목사로 섬겼다. 안 목사는 박은조 목사로부터 심방, 설교, 행정 등을 보며 목회의 많은 것을 배웠다. 안 목사는 “창원교회의 ‘가정과 이웃을 소중히 여기는 교회’라는 비전, 성장 위주가 아닌 건강한 교회 운동을 지향하는 방향성 등은 박은조 목사님께 배운 것”이라고 말했다. 생명을 살리는 교회 창원교회는 설립 125주년을 준비하면서 1년 전부터 의미있는 날이 되길 고민했다. 120주년은 생일잔치처럼 가졌으나 125주년은 좀 더 뜻 있는 행사를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가졌다. 그렇게 기도하던 중 박대원 목사(웨이처치수원 담임) 가정을 만나게 됐다. 박대원 목사와 서지형 사모는 미혼모 아이들을 돕는 러브더월드 사역을 하고 있다. 1남 1녀를 입양한 박 목사는 복음을 전하며 임신한 미혼모들의 출산 지원 및 양육 지원을 하고 있다. 지금은 전국에 미혼모와 미혼부 900가정 이상을 돕고 있다. 박대원 목사는 “많은 분이 미혼모를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여자’로 생각한다. 하지만 미혼모는 아이의 생명을 죽이지 않고 지켜낸 사람이다. 러브더월드 사역은 사회복지가 아니라 선교”라고 말했다. 이에 창원교회는 생명을 살리고 지킨다는 점에서 ‘생명선교사’라는 호칭을 붙여, 오는 6월 7일(주일) 설립 125주년 기념예배와 더불어 ‘생명선교사 파송식’을 가진다. 또한 이날 코로나19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역민들을 돕고자 다시 한 번 더 후원금을 마련했다. 기념예배 때 성금 500만 원을 창원시장을 통해 공동모금회인 사랑의 열매에 전달할 예정이다. 1895년 민족의 희망이 되길 바라며 시작된 교회는 2020년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는 교회로 성장했다. 125년의 역사를 잇는 믿음의 내일을 열어갈 창원교회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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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25
  • 새로운 시대의 비전을 열어가는 대신침례교회
    오랜 시간 머물던 안정된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발을 내딛으면 설렘과 함께 두려움이 생기기도 한다.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함께 다짐을 되새긴다. 한 사람이 터전을 옮기는 것도 힘든 일인데, 한 공동체가 터전을 옮겨 자리를 잡고 성장해 가고 있다. 부산 해운대에 위치한 대신침례교회(담임 김무건 목사)이다. 대신동에서 해운대로 1954년 3월 부산시 서구 서대신3가 51번지에 미국 남침례회 선교부가 ‘수원지교회’를 개척했다. 초대 교역자인 김덕배 전도사가 3년간 사역했고, 사임 후에는 교역자 없이 침례병원 의료선교사에 의해 예배를 가졌다. 3년 후 제2대 교역자로 박승환 전도사가 부임했고, 1969년 제3대 담임목사 박선제 목사가 부임했다. 박선제 목사는 대신교회를 이끌 뿐만이 아니라 부산교계 연합사역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했다. 또 기독교한국침례회 증경총회장을 역임하며 교단과 한국교회를 섬기기도 했다. 박선제 목사와 함께 대신교회 성도들 역시 교회를 넘어 지역사회를 섬기고, 민족을 품고 세계를 품었다. 복음화를 위해 앞장서고 교회들의 연합을 위해 늘 기도로 동역했다. 구덕산 기슭에서 수원지교회로 개척해 예배를 가지던 중 1976년 교회명칭을 대신교회로 변경했다. 그리고 10년 전 부산 해운대 중동 지역으로 교회를 이전했다. 제6대 담임 김무건 목사는 “대신교회를 65년간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감사드린다. 대신교회 공동체는 새로운 시대의 비전을 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해운대 지역으로 이전 후 초기에는 지역주민들이 교회를 손님처럼 여겼다. 사회로부터 신뢰를 잃은 한국교회는 지방에서도 교회를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게 했다. 교회와 거리를 유지하며 불편사항에 대해서는 교회로 연락하지 않고 곧장 경찰에 신고하던 주민들이 지금은 오히려 교회를 적극 소개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배타적인 모습으로 교회를 지켜보았으나 대신교회가 지역을 섬기는 한결같은 모습에 얼어있던 마음이 녹았다. 새로 이사 오는 주민들에게 대신교회를 좋은 교회라며 소개해 주고, 그렇게 교회를 찾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지역을 섬긴 것이 전도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됐다. ▲ 담임 김무건 목사 시종여일(始終如一) 대신교회는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매년 경로잔치를 개최한다. 성도들이 뜻을 모아 공연도 준비하고 선물과 먹거리를 준비하다 보니 해가 거듭할수록 입소문이 나면서 많은 지역민들이 참석하고 있다. 교회 규모에 비해 벅찰 정도로 지역 노인들이 대신교회를 찾아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김무건 목사는 해운대 지역은 대다수 부유할 거라는 견해가 있지만 의외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붕어빵, 사랑의 떡국떡 등을 전달하며 정을 나누고 마음을 나눈다. 많은 사역을 하기 보다 한 가지 사역을 시작하면 지속적으로 꾸준히 해나가라는 박선제 원로목사의 조언대로 김무건 목사는 사역 하나 하나에 집중했다. 김 목사는 “목회자 혼자 뛰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한다.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할 때, 내려오던 팔을 잡아준 아론과 훌이 있었다. 목사 혼자가 아닌 성도들과 함께 하는 팀사역이 필요한 시대”라고 말했다. 예수님 혼자서도 다 할 수 있지만 제자들을 불렀고, 그들과 함께 했다면서 팀사역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무슨 일이든지 일을 하다보면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하게 여기고, 욕심이 나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그러나 처음처럼 과정을 중요히 여기고, 욕심을 내기보다 현재에 행복과 기쁨을 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목양실에는 ‘시종여일(始終如一)’이 적힌 액자가 벽면에 자리잡고 있다. 첫 마음을 잃지 않고 변함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대신교회이다. 팀사역을 중요하게 여기는 대신교회는 성도들의 신앙 성장을 도모하며 제자훈련을 하고, 전도대와 함께 거리를 누비며 복음을 전한다. 목사 혼자가 아닌 성도들과 함께 걷고 함께 웃는다. ▲ 대신침례교회에서 열린 부산복음화운동본부 전도의 날 행복한 공동체 교회가 먼 거리로 이전하면 핑계 삼아 가까운 교회로 교회를 옮기기도 한다. 그러나 모교회를 사랑하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교회를 지키는 이들이 많다. 5년 전 대신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한 김무건 목사는 한결같은 성도들을 보며 감탄했다. 나라면 할 수 있었을까, 자신이 없다고 대답한 김 목사는 먼 지역에서도 예배를 사모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오는 성도들을 보면 울컥 감동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교회가 숱하게 많은데도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걸음에 달려오는 성도들이 있기에 대신교회는 ‘행복한 공동체’이다. 원로 박선제 목사는 은퇴 후에도 교회를 꾸준히 출석하며 함께 예배를 가진다. 담임목사와 담소를 나누며 서로의 생각을 공유한다. 김무건 목사는 “박선제 목사님은 영적 아버지이자 제 멘토이다. 원로목사로서 담임목사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준다”고 말했다. 원로목사와 담임목사가 좋은 관계를 맺으니 이를 본 성도들 역시 목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오늘의 삶 속에서 행복을 찾고 기쁨을 누리는 행복한 공동체, 이것이 성공이라고 대신교회는 말한다. ▲ 지역 환경 정화하는 '클린시티' 사역 ▲ 중동지역 어르신 초청 경로잔치 및 바자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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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22
  • 다음세대를 향해 가는 다대중앙교회
    해질녘 수평선에 가까워지는 햇빛으로 바다가 붉게 물드는 장관을 보여주는 부산 다대포. 아름다운 낙조로 유명한 다대에는 헌신으로 장관을 이루는 교회가 있다. 부산시 사하구 다대로에 위치한 다대중앙교회이다. ▲40여 년간 건장하게 성장 다대중앙교회(민경성 목사)는 이 땅에 주님의 말씀을 심기 위한 사명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비전을 품으며 시작되었다. 지난 40여 년간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가 가득한 교회, 이웃을 섬기고 봉사한다는 정신을 바탕으로 달려왔다. 교회 이름을 다대중앙교회로 정했을 만큼 다대지역뿐만 아니라 부산의 사하구를 책임진다는 마음으로 아름다운 교회로 거듭 태어나고 있다. 다대중앙교회는 시작 초기부터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지역의 봉사와 이웃을 섬기고 나아가 지역을 위해 여러 기관과 교회와 함께 협력하고 있다. 1980년에 창립예배를 드리고 지금의 모습으로 다대지역에서 아름다운 교회로 나아가고 있다. 지역을 섬기기 위해 다대중앙지역아동센터, 호산나유치원 등 다대중앙교회는 안으로의 교회에서 머물지 않고 밖으로의 교회로 거듭 그 사명을 이어나가고 있다. 최대 700명이 수용되는 예배당은 4부에 걸쳐 1,2,3부 전통예배, 4부 청년부 예배로 드리며 수요기도회와 교회학교 예배가 드려지고 있다. 영감 있는 설교를 통해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급변하는 시대에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매 시간마다 정성을 다한다. 예배를 돕는 각 기관이 있어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또한 청년부 예배를 통해 젊은이들의 세대에 맞는 예배를 드려짐으로 전 세대를 아우르는 예배를 드리고 있다. 예배를 돕는 임마누엘찬양대, 할렐루야찬양대, 시온찬양대, 유다지파 찬양팀이 매 예배시간마다 성도들과 함께 찬양을 한다. 깊은 곡조에서 우러나오는 찬양은 듣는 이에겐 기쁨을 주며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는 시간이 되고 있다. 민경성 목사는 “다대중앙교회의 성장원인인 기도모임은 사무엘 선지자의 말처럼 기도를 쉬는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매일 드려지는 새벽기도를 시작으로 중보기도팀에서 주관하는 각 기관 기도순서대로 이 민족과 더 나아가 이 세계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면서 “작게는 가정과 지역을 위해 매일 드려지는 기도로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도하기를 쉬지 않는 다대중앙교회는 목요전도대, 각 교회학교 전도대가 전도를 매주마다하며 전도훈련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명을 지키고자 성도들을 전도 전문가로 양육하고 있다. 성숙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우기 위해 교구를 나뉘어 각 속한 곳에서 영성과 삶을 나누고 채움으로서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 민경성 위임목사 ▲다음세대가 몰려드는 교회 최근 한국교회의 공통된 고민은 ‘다음세대’ 문제다. 그야말로 ‘급감’하는 다음세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회들은 물론 총회에서도 이를 위해 노력 중이다. 교회 내 다음세대가 감소해 고민하는 교회가 있다면, 다대중앙교회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대중앙교회는 다음세대를 향한 큰 비전을 품고 있다. 요즘 교회학교 학생 수가 줄어 모든 교회마다 큰 고민거리이지만 다대중앙교회는 학생들이 몰려드는 교회로 교계의 큰 자랑거리다. 민경성 목사는 “다대중앙교회의 큰 장점이자 감사제목은 헌신된 봉사자 수와 교사의 수가 학생들의 수와 비교했을 때 많은 비율로 헌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매주 마다 학생 평균 출석수가 260명이며 교사 수도 100여 명”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헌신된 사명자들을 통해 학교 앞 전도, 미래의 주인공들을 위해 건강 간식을 매주 마다 준비하는 성도들의 열정은 교회 안팎으로 소문이 나 있다. 민 목사는 “이 모든 일들은 한 사람의 열정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모두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자 하는 선생님들과 또한 뒤에서 물심양면으로 기도하며 후원하는 다대중앙교회 당회의 섬김이 다음세대를 위한 큰 결실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육위원장 차현태 장로는 “하나님의 큰 도움과 교사의 헌신이 있는 다대중앙교회는 앞으로도 큰 비전이 있고 아울러 우리 교계의 큰 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대중앙교회 교회학교의 아름다운 전통 중 하나는 매년 마다 새 학기가 시작될 때 당회원들이 영유아부에서 고등부에 이르기까지 축복기도를 하는 ‘자녀사랑 축복기도회’를 가진다. 또한 소년부(초 4~6)는 전국 아동대회에서 중창팀으로 참가해 대상을 받아 부산노회에서 처음으로 큰 상을 받았다. 청년부는 젊은이의 특성에 맞게 뜨거운 찬양과 헌신된 기도와 예배 후에 성경공부를 통해 미래를 꿈꾸고 다대중앙교회를 이끌어갈 리더로 키우고 있다. 뿐만아니라 자녀들을 시대의 진정한 리더로 세우기 위해 영아부에서 고등부 그리고 아기학교에 이르기까지 주일학교 예배와 다양한 교육 특별사역을 실시해 다음세대를 준비하는 사역을 하고 있다. 민경성 목사는 “성도들을 더욱 그리스도에 합한 자로 성장시켜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와 사랑을 알게 하고 성도들 간의 성령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모습을 찾아가게 하고 있다. 우리 안에 받은 은사들을 개발하고 성장하여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봉사하는 섬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복음의 불모지 부산에서 지난 40여 년간 성장해 온 다대중앙교회는 지금도 하나님만 바라보며 나아가고 있다. 성도들은 “이 모든 것은 어찌 사람이 계획하고 꿈꾼다고 이루어지겠습니까? 그것은 더 큰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부어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라고 고백했다. 민 목사는 “이제 다대중앙교회는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특별한 은혜를 세상으로 더욱 힘차게 흘려 보내야할 막중한 사명이 있다”면서 “부산을 성시화하고 민족을 복음화하며 세계열방을 복음화 시키기 위해 끊임없는 눈물과 기도로서 어두워져 가고 있는 이 시대에 모든 민족을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사명을 감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위대한 계명과 위대한 명령에 대한 위대한 헌신은 위대한 교회를 만든다. 위대한 일을 위해 자신을 드려지는 그 헌신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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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10
  • 성서적·신학적 기초 위에 사랑으로 세워진 동신교회
    ▲ 동신교회 전경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격언이 있다. 사람들이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고 익숙해지듯이 교회도 매주 반복되는 예배에 습관화되고 지쳐하는 모습들이 있다. 그러나 익숙함 속에서 변화를 시도하는, 흐르는 물처럼 생동하는 교회를 찾았다. 부산시 사하구 당리동에 위치한 동신교회이다. 교회 본연의 예배 1950년 12월 10일 6.25전쟁으로 남하한 서울 창신 교회 교우 약 20명이 국제시장 내 건국중학교 교실에서 첫 예배를 드림으로 부산 창신 교회가 설립되었다. 그러다 1953년 국제시장 대화재로 광복동 동주여상 교실로 이전했다가 후에 건국중학교로 다시 회집했다. 이후 부평동에 교회를 마련해 예배를 드리다가 1963년 동신교회로 개명했다. 1983년 11월 13일 현 위치인 당리동에 새 예배당을 짓고 지역사회를 섬기고 있다. 동신교회는 ‘예배’에 집중하는 교회다. 교회가 해야 할 여러 가지 사명이 있지만, 예배를 가장 근본으로 중요하게 다룬다. 담임 원도진 목사는 “교회 역사 속에서 예배가 발전해 왔다”면서 4파트의 예배 구성에 대해 말했다. 먼저 I. 경배/참회/영광, II. 기도/찬양/말씀, III. 찬송/주기도/성찬, IV. 봉헌/교제/파송으로 이뤄지는 예배이다. 원도진 목사는 가장 장로교적인 예배라고 설명했다. 칼빈의 예배모범, 특히 1542년 칼빈의 제네바 예배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고 했다. 원도진 목사는 “한국교회는 예배에서 신령과 진정을 너무 강조해왔다. 물론 이것은 분명히 예배에서 강조되어야 한다. 하지만 감정 위주로 흐르는 예배는 바람직하지 않다. 감동을 강요하는 것이 성령의 임재가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한국교회는 유행에 너무 민감하다. 다른 교회가 하니 우리도 하자고 한다. 중요한 것은 다른 교회가 하니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성서적, 신학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다음세대와 함께하는 예배 동신교회가 예배를 중요시한다고 해서 다른 사역을 등한시하는 게 아니다. 동신교회는 15년 이상 지역사회를 섬겨오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를 명절에 초대하여 향수와 시름을 덜어주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매 주 도시락을 전달하고, 전도대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도 최선을 다한다. 또한 담임목사의 주도 하에 많은 선교사역을 하고 있다. 특히 베트남 벤째와 빈롱 지역에 사랑의 집을 지어주고 교회를 지어줬다. 집이 없어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고, 예배당이 필요한 교회를 위해 교회를 짓거나 보수 작업을 도아 왔다. 그러나 그것만이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원도진 목사는 “가난한 자를 돕고, 함께하는 일은 교회가 도와야 한다. 그러나 이 일이 교회 본연의 일은 아니다. 가난과 구제는 국가적 차원에서 시행해야 바람직하지, 개교회의 구제와 도움은 분명히 한계가 있다”면서 “교회는 교회 본연의 일을 먼저 충실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배를 잘 드리기 위해 목회자들을 비롯한 교회 성도들이 함께 고민한다. 그 일환으로 교회력에 따라 절기마다 예배당을 장식한다. 대림절, 성탄절, 부활절, 신년 등이 되면 그에 맞춰 예전색에 따라 예배당을 장식한다. 매년 다른 디자인으로 서로 의논하며 수정 작업을 거친다. 때로는 인근 지역에서 저렴하게 구입한 재료로 주제에 맞춰 예배당도 꾸민다. 가끔 왜 이렇게 하는지 묻는 이들에게 원 목사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한다.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한다고 하면서 예배당 장식이나 데코레이션을 소흘히 하면 안 된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으로, 최고로 드리려고 해야 하면 최고로 예배하기 위해 이 모든 일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원 목사의 예배 철학이 소문이 나서인지 동신교회를 방문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교회를 방문한다. 특히 예배학 전공자들이 찾아와 동신교회가 드리는 예배에 대해 배운다. ▲ 예배당 전경 다채로운 교회 “신학 없는 목회는 기둥 없는 집과 같고 목회 없는 신학은 집 없는 나그네와 같다.” 원도진 목사의 말이다. 원 목사는 그가 생각하는 4가지 목회 철학에 대해 설명했다. 첫째, 성서적 기초가 분명해야 한다. 동신교회는 꾸준히 성경을 공부하고 성서적 메시지를 찾고 성도들이 성서적 기초를 갖도록 도왔다. 구약을 전공한 원도진 목사와 함께 동기로 오래 알고 지낸 왕인성 교수, 부산장신대학교 신약학 교수가 협동목사로 있어 교회에 도움을 주고 있다. 둘째, 목회에는 신학적 베이스가 분명해야 한다. 목회가 성서적임과 동시에 신학적이어야 교회가 교회될 수 잇기 때문이다. 셋째, 교회의 역사적 전통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구약시대 예배와 유대교의 예배, 그리고 교회사를 이어온 예배를 돌아보고 시대별로, 지역적으로, 역사적으로 특징화된 교회의 역사를 다듬어 오늘에 적용해야 한다. 넷째, 가장 현대적인 목회를 해야 한다. 교회는 시대 속에 존재하므로 이 시대의 첨단 기술과 방법을 동원하여 복음을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문자 지상주의에 붙들려 있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성경 가운데 일부분만 강조, 성경을 막연하게 읽어 교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원 목사는 말했다. 초대교회는 오직 성령만 충만하고 이상적이라고 사도행전 2-3장만 보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6장은 교회안의 차별을, 8장은 강제로 흩어지는 교회를, 11장은 교리적 갈등을, 15장은 목회적 갈등을 보여준다. 갈라디아 교회, 고린도 교회, 빌립보교회 모두가 지금처럼 인간의 모든 문제를 소유했다. 지금의 교회와 크게 다르지 않고 늘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도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본연으로 돌아가자는 데 동의하지만 막연한 과거에 대한 환상은 오히려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 아직도 히브리어가 세계 최초의 언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히브리어는 세계 최초의 언어가 아니다. 성경에도 지역적 사투리, 수많은 외래어가 존재한다면서 고고학, 언어학을 통해 이미 알려진 사실이고 이를 이미 성서 연구에 이용한지 오래되었다고 했다. 지금은 정보가 대중화를 넘어 완전 보편화되었기에 실시간 검색으로 모든 자료를 열람할 수 있다. 고대 근동의 역사와 문화를 알고 성경을 읽고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원도진 목사 원도진 목사는 엘리야와 고대 근동이 전공이다. 그는 장신대, 장신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연세대 대학원에서 Th.M, 장신대에서 Th.M,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Th.M, 미국 드루 대학교에서 Ph.D 과정을 이수하였다. 그는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장학금도 받았지만 생계를 위하여 계속 일해야 했다. 목사였지만 식당에서,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2-3개씩 하며 학업을 이어갔다. 심지어 그의 졸업 파티에서도 본인이 직접 서빙을 하며 일했다. 주어진 환경에서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다. 그래서인지 삶의 터전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성도를 이해할 수 있고, 그렇게 자신을 보듬어주는 목회자를 성도들은 알아보았다. 원도진 목사는 “목회자는 다양한 얼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단에서 설교할 때도 다양한 얼굴이 필요하다. 때론 용서를, 때론 훈계를, 때론 사랑을, 때론 엄격함이 있다. 하지만 성도들이 개인적으로 만나는 목사는 아버지나 어머니 같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학문적인 강의를 듣지는 않지만 모든 이들이 편하게 다가가는 것처럼 목사는 성도들이 편하게 대하는 아버지적인, 어머니적인 얼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목사는 다양해야 한다고 하면서 특히 한 색깔만 띠고 있으면 안 된다고 했다. 목사는 자신의 색이 있어도 여러 가지 색을 다 포용해야 한다. 비난을 받더라도 모두를 안아야 한다. 이는 교회뿐만이 아니라 더 큰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도 동일하다. 원 목사는 “신학적으로 보면 우리 교회에 나의 양은 하나도 없다. 다 주님의 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모두가 나의 양이다. 역설적일지 몰라도 나의 양은 하나도 없지만 모두가 다 나의 양이다”라고 말했다. 원목사도 목회를 하면서 나름대로 겪는 어려움이 있지만 이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더불어 목회자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목회자 자신이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교인들을 사랑하고 모두 품기 위해 목사로서 정말 많이 노력하지만 목사 자신을 위해서는 그리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목사님으로서는 좋은 분이지만 인간 000로는 별로 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원 목사는 교인도 사랑하지만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사랑해가고 있다고 했다. 또한 목회는 할수록 어렵다고 고백했다. 인간적으로 서로 알아가다 보니 처세는 쉬어졌지만 그 안에서 목회자로 꾸준히 신뢰받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절기마다 색색의 아름다움이 있는 교회, 목회자가 성도를 이해하고, 성도가 목회자를 품어주는 교회, 바로 그렇게 동신교회는 다채롭고 입체적인 예배로 오늘도 나아가고 있다. ▲ 가든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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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9-09
  • 따뜻한 사랑 한 그릇 건네는 감천교회
    빼곡하게 들어선 집들과 꼬불꼬불한 미로같은 길로 유명한 감천문화마을은 한국의 마추픽추로 불린다. 새로운 관광지로 급부상하며 부산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감천문화마을 찾는 이유는 ‘사람냄새’나는 그리움을 찾아서다. 이곳 감천에 ‘사람냄새’와 더불어 ‘사랑냄새’를 물씬 풍기는 그리운 교회를 찾았다. 80년이 넘는 역사와 사랑과 정이 물씬 풍기는 감천교회다. 뿌리 깊은 나무처럼 1937년 5월 5일 구회의 전도사 사택에서 가족이 모여 예배를 드린 것이 감천교회의 시작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6.25전쟁으로 인해 모여든 피난민들을 돌보며 민족과 함께 살아왔다. 80년이 넘는 오랜 세월동안 뿌리 깊은 나무처럼 제 자리를 지켜왔다. 지난 2012년 9월 제6대 위임목사로 부임한 최구영 목사는 감천교회를 ‘뿌리 깊은 나무’라고 소개했다. 거센 비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고 가지가 흔들릴 때도 있으나 땅 속 깊이 내린 뿌리는 뽑히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키는 것처럼. 살면서 거센 비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인생이지만 교인들은 뿌리 깊은 신앙으로 예배의 자리를 지켰다고 말했다. 지금도 해운대, 명지, 김해 등 먼 곳에서 교회를 찾아 와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성도들이 있다. 처음 감천교회에 부임했을 때 최 목사는 기본에 충실하기로 했다. 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으니 기도에 힘쓰기로 했다. 단순하지만 확실한 한 가지를 제시하며 성도들과 함께 기도했다. 다시 금요심야기도회를 열고 구역예배의 자리를 마련했다. 기도의 불이 붙자 교회는 제 모습을 찾아갔다. 새벽기도, 수요기도회, 금요심야기도회 등 예배가 회복되기 위해 노력했다. 기도의 불이 꺼지면 성령의 불도 꺼진다고 생각한 최 목사는 예배를 위해 고민하고 노력했다. 주일예배가 끝나면 그날 저녁부터 곧장 다음 주 주일 설교를 성서정과에 따라 준비했다. 지금도 변함없이 끝남과 동시에 다시 시작한다. 그런 최 목사의 열정을 알았는지 성도들도 예배하고 전도했다. 은혜를 사모하며 예배에 충실한 성도들은 교회의 필요한 부분을 발견하고 헌신했다. 오래된 역사만큼 교회 곳곳에 노후된 시설을 보면서 자발적으로 헌신했다. 담임목사에게 찾아와 어느 부분을 교체해달라며 헌물, 헌금을 했다. 최 목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와 이웃을 사랑하는 성도들의 마음이 모여 오늘의 감천교회가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교회의 필요한 곳을 먼저 발견하고 헌신하는 성도들이 있다. 기쁨으로 필요를 채우는 성도들의 사랑이 있어 감천교회는 오늘도 자리를 빛내고 있다. ▲ 담임 최구영 목사 따뜻한 사랑 한 그릇 매주 수요일 정오가 되면 조용한 동네에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나타낸다. 반갑게 인사하며 안부를 묻고 식당 자리에 앉으면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는 국수 한 그릇이 주어진다. 감천교회가 지역주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사랑의 국수’다. 정성으로 오래 푹 끓여낸 뜨거운 육수에 국수를 가득 담아 대접한다.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국수를 대접하고 더 드시라며 한 그릇 더 권한다. 국수만큼 따뜻한 마음을 받은 이들은 국수를 맛있게 먹고 인사하며 돌아간다. 따뜻한 점심을 대접하기 위해 감천교회 성도들은 아침부터 교회로 모인다. 수요일 오전에는 성경핵심통독회를 열어 함께 성경통독을 한다. 그리고 지역주민들에게 대접할 ‘사랑의 국수’를 준비한다. 성경을 읽으며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지역주민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누군가는 앞치마를 메고 누군가는 전도지를 든다. 식당에서 사랑의 국수를 준비하고, 거리로 나가 전도지를 나눠준다. 최구영 목사는 사랑의 국수를 회상하며 처음에는 힘든 시기도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사랑의 국수가 자리 잡았지만 예전에는 아이 돌반지를 팔아 재정을 마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매주 덥고 추운 날씨에도 불 앞에서 헌신하는 애찬부원들의 섬김이 있어 가능했다”고 말했다. 감천교회 ‘사랑의 국수’는 지역에서 소문이 나면서 후원이 이어지고 있다. 감천교회 성도가 아니지만 지역 병원, 은행 등에서 국수를 기증한다. 지역을 섬기고자 하는 감천교회의 마음을 오랜 시간 보았고, 이에 감동했기에 동참했다. 비단 국수뿐만이 아니다. 감천교회는 지역 주민들을 위해 주차장, 화장실, 수도시설을 개방했다. 주민들이 오가며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열어둔 것이다. 작은 것이라도 베풀고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 섬김의 마음이다. 사도행전적 교회로 최구영 목사는 “교회가 사도행전적 교회가 되길 원한다”고 말했다. “기도가 살아나야 교회가 살고, 예배가 살아야 성도들의 삶이 살아난다”면서 야베스의 기도를 강조했다. “야베스는 유복자요, 가난했고 유약했지만, 기도로서 복에 복을 더하였고 지경을 넓혔고 존귀한자의 축복을 받았다”면서 “야베스가 받은 축복이 성도들에게도 가득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최 목사는 매일 밤 아내와 함께 교회를 위해 기도한다. 또 성경을 깊이 연구하여 본문에 충실한 설교를 한다. 교회의 재정이 넉넉지 않지만 선교하는 일에도, 다음세대를 섬기는 일에도 매진하고 있다. 교회 및 기관들에게 선교후원하고, 해외선교와 북한 복음화를 위해 돕고 있다. 또 장학금 등 다음세대가 성장하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투자한다.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성도들이 있어 감천교회는 매일 행복하게 달려간다. 최구영 목사는 성도들과 함께 내일을 꿈꾼다. 노인대학, 도서관, 학사관, 다문화시설을 마련해 더 많은 사람들을 섬길 수 있게 되길 소망한다. 숲을 만들면 새들이 모여들 듯 노인대학을 통해 지역 어른들에게 기쁨을 주고, 도서관을 통해 다음세대가 머물 공간을 마련하고, 학사관을 통해 청년들이 지낼 장소를 마련하고 싶어했다. 또 크리타트(christat) 사역에 동참하고 있다. 예장통합 부산노회에서 사역 중인 크리타트는 세계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해비타트(무주택 서민 주거 해결 기독교 봉사단체)에 기반을 두고 있다. ‘크리타트’는 christian과 habitat(거주지)의 합성어이다. 자생력이 부족한 교회는 대체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예배를 드리며, 교제의 공간이 부족하다. 열악한 교회의 환경을 개선해 쾌적한 환경에서 예배를 드림으로 예배에 집중하도록 도와주고 신앙생활과 전도에 긍정적, 효과적 영향을 제공해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도움을 주는 사역이다. 최 목사는 크리타트 사역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미자립 교회를 돕고 싶다고 말했다. 교인의 자랑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최신영 집사를 소개했다. 최신영내과 원장인 최 집사는 최구영 목사가 질병으로 병원을 찾아 만나게 됐다. 가톨릭 신자였던 그를 전도해 감천교회에 출석하게 됐는데, 교회에 와서 다시 세례를 받았다. 또 교회 출석한 날부터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하고 있고, 매주 목요일 오후 4시 병원 직원들, 제약회사 직원들과 함께 예배를 가진다. 이 외에도 모범적인 장로, 권사들을 자랑하는 최구영 목사의 얼굴에 목회자로서의 기쁨이 가득했다. 목회자와 성도들간의 사랑이, 교회를 넘어 지역과 민족으로 번져가고 있다. ▲ 과거의 감천교회 ▲ 감천교회 1주년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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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21
  • 복음의 거목이 된 '수영교회'
    한 여인이 뿌린 복음의 씨앗이 자라 거목이 돼 “받은 사랑으로 새로운 100년의 역사를 써 갈 것” ▲ 수영교회 전경 한 사람이 살아 온 100년의 인생을 되돌아보면 숱한 추억이 담긴 희로애락의 여정일 것이다. 하물며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살아온 교회의 100년 역시 숱한 추억이 담긴 희로애락의 여정이었다. 올해 화창한 봄날 100주년을 맞은 수영교회(담임 유연수 목사)를 찾았다. 복음의 싹을 틔워 수영교회는 설립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행사를 기획하면서 ‘우리 교회 역사알기’를 마련했다. 기독교 역사학자인 이상규 교수(고신대 명예교수)에게 의뢰해 수영교회 설립배경에 대해 알게 됐다. 지난 1월 20일 열린 ‘우리교회 역사알기’에서 이상규 교수는 “수영교회는 수영과 그 인근 지역에 설립된 최초의 교회로서 1919년에 설립되었다. 수영교회는 오랜 역사를 지닌 교회이지만 예상외로 해방이전 경남노회록 등 공식기록에 매우 드물게 언급되어 있다”고 말했다. 경남지방에 기독교가 소개된 것은 1880년대 중반 이후인데, 부산과 인근 경남지방에 교회가 설립되고 조직을 정비하게 되자 여전도회연합회도 창립하게 된다. 경남여전도회연합회는 무교회 지역에 전도인을 파송하기로 하고 동래군 남면 수영리에 서울에 있던 윤경신 씨를 전도인으로 파송했다. 윤경신 여전도사는 부산으로 내려와 1919년 5월부터 수영지역 일대에서 개척전도하게 되는데, 이것이 수영교회 설립의 배경이 된다. 1919년 시작된 수영에서의 복음운동은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해 간다. 신자들이 생겨나고 공식적으로 예배를 드림으로 교회가 설립되고, 1920년에는 한옥을 수리해 예배처소로 꾸민 예배당을 확보하게 되었다. 유연수 목사는 “100년 전 가냘픈 한 여인의 구령의 열정으로 수영 땅에 뿌려진 복음이 싹이 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지금에 이르렀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일꾼을 세우시어 교회를 세워 오셨다”고 말했다. 수영교회는 1대 윤경신 전도사(1919~1922년)를 이어 2대 황보흠 전도사(~1926년), 3대 서영수 전도사(1927~1962년)가 담임 교역자로 섬겼다. 목사가 담임 교역자가 된 것은 제4대 강위상 목사(1963~1966년)부터 5대 이한석 목사(1967~2007년), 6대 유연수 목사(2007년~현재)가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100년의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담임 교역자가 6명에 불과한 것에 대해 유연수 목사는 “성도들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목회자도 사람이기에 부족한 점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교인들이 사랑으로 보듬어주고 기도로 협력해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 담임 유연수 목사 다시 한자리에 100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아픔이 없었다고 하면 말이 안 될 것이다. 수영교회 역시 위기가 있었고 그로인해 교인이 감소했지만 잘 견뎌내고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유연수 목사는 “이번에 교회 역사를 말하면서 아픔이 있었던 과거에 대해 잠시 고민했지만, 이것 역시 우리의 역사이다. 교회가 더 어려웠을 수도 있지만 잘 극복하고 견뎌준 교인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수영교회를 거쳐 간 역대 교역자들이 많다. 윤희구 목사, 구자경 목사, 홍은철 목사, 이경열 목사, 강은중 목사, 황신기 목사, 최지홍 목사, 오세우 목사, 한남융 목사, 남일우 목사, 박동수 목사, 손규식 목사 등이다. 또 수영교회 출신 목회자도 다수이다. 황건배 목사, 박대근 목사, 김정득 목사, 이신철 목사, 이신열 목사, 정현구 목사, 김희택 목사 등 모교회에서 배운 복음을 전 세계 각지에서 전하고 있다. 유연수 목사는 “100년의 역사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역사요, 또 앞서 섬기신 신앙의 선배들의 눈물과 땀으로 드려진 믿음과 헌신의 역사임을 잘 안다. 예배당 벽돌 한 장 한 장, 예배실 의자 하나 하나가 교회를 섬겨오신 성도들의 믿음의 흔적임을 안다”면서 “특히 몸은 떠나 있지만 마음으로 모교회와 함께 하면서 교회가 평안할 때 같이 기뻐하고 교회가 어려울 때 같이 기도와 염려해 주신 동역자들의 사랑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5월 4일 수영교회를 사랑하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4일(토) 오후 3시 홈커밍데이를 열고 예배와 축하행사를 가질 계획이다. 이한석 목사(5대 담임)의 회고사를 비롯해 Soko의 특송 및 기수별 모임을 가진다. 다음 날인 5일(주일) 오전 11시 설립100주년 감사예배를 가진다. 이날 황건배 목사가 기도, 박대근 목사가 설교, 구자경 목사가 축도를 맡았다. 오후 3시에는 축하행사로 노회장 이국희 목사(수영중앙교회)가 기도, 총회장 김성복 목사(연산중앙교회)가 설교, 증경총회장 윤희구 목사(창원한빛교회)가 축도를 맡았다. 이 외 100인 찬양대로 구성한 페스티벌콰이어의 찬양으로 행사를 풍성하게 기획했다. ▲ 예배 전경 사랑으로 세워가다 수영교회는 100년간 받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크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 사랑을 다시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5월 19일 VIP초청 감사주일, 10월 27일 전교인 다온데이를 통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앞장선다. 또 개척교회, 선교지를 방문해 봉사하고 격려의 뜻을 전할 계획이다. 수영교회는 그동안 단독 및 협력 개척한 교회가 많다. 민락교회(부산), 경산중부교회(경산), 광혜교회(광주), 동광교회(대구), 서문교회(경주), 당평교회(부산), 구산동교회(김해), 복대제일교회(청주), 한샘교회(대전), 일원동교회(서울), 브니엘교회(미국), 믿음교회(인도뱅갈로르), 소망교회(인도이지부라죤), 사랑교회(인도사우디날리루가)를 개척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2일 교회 설립 100주년을 맞아 100주년 기념 교회를 개척했다. 사랑빚는교회이다. 교회 개척을 통해 ‘내 교회만’의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확산되는데 눈을 돌리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수영교회는 오늘도 노력하고 있다. 유연수 목사는 “이제 우리 교회는 온 성도가 한 마음으로 100년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받은 사랑으로 새로운 100년의 역사를 써 갈 것이다. 그리고 앞서 섬긴 선배님들의 수고에 감사하며 그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할 것이다. 우리 교회는 지나온 100년 역사 속에 교회를 섬겨 온 교역자들과 성도들을 기억하고 기도하겠다. 은혜로 달려온 100년을 디딤돌 삼아 사랑으로 100년을 세워가겠다”고 말했다. ▲ 100주년 기념 '사랑빚는교회' 개척설립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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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4-26
  • 장애인과의 아름다운 동행 30년 '한울장애인자활센터'
    2019년 부활주일이 특별히 의미가 깊은 것은 장애인주일과 함께 겹쳐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중 장애인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2019년 부활주일 맞아 다시 한 번 더 되새겨볼 의미를 가져 본지는 장애인 사회복지 시설중 하나인 사단법인 한울장애인자활센터(이사장 조성삼, 이하 한울)를 탐방했다. 일명 부산 ‘부평야시장’ 입구 부산은행 부평동 지점 4층, 월요일 오전 한울을 방문했을 때 조금은 분주해 보였다. 바로 한 주의 시작을 예배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김광호 목사(부산중부교회)가 매 주 월요일 마다 체험 동아리반과 직원들과 함께 찬양과 예배로 한주를 시작한다. 한울은 1985년에 설립되어 장애인의 직업재활 및 경제적 자립을 위해 장애인 정보화컴퓨터 교육을 실시하여 왔으며, 장애인의 인권개선과 권익옹호를 위하여 많은 활동을 하여 왔다. 그리고 1990년에 ‘장애어린이집’을 설립·운영함으로써, 30여년간 장애인 및 장애 어린이 교육에 매진하여온 장애인 교육 및 자활기관이다. 고 최성묵 목사의 준비와 기도로 시작된 한울은 1983년 12월 20일 부산중부교회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KNCC)에 장애인 선교사업 계획서를 제출했고 1984년 KNCC 프로젝트 심사위원회를 거친 후 세계교회협의회(WCC) 승인(Project NO. 8502)으로 1985년 설립했다. 참고로 당시 부산중부교회 담임 목사였던 고 최성묵 목사는 부산민주화 운동의 대부로 알려져 있고 1970년대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부산의 민주세력과 더불어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한울은 이러한 2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처 나눔, 베품, 섬김의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 장애인의 취업문제와 어린이의 조기교육을 성실히 실시하여 장애인들이 경제적 자립과 아울러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존중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줄 책임과 의무를 실천하며, 이러한 책임과 의무가 함께 사는 모든 비장애인에게도 있음을 전파하여 비장애인들로 하여금 장애극복운동에 동참케 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한울의 주요 사업은 장애인 직업교육 사업(장애인 정보화 컴퓨터 교육사업), 장애인 직업 재활사업(의료기 및 컴퓨터 부품 조립 사업), 장애인 체험 동아리 사업, 공동체 커뮤니티 사업(한울 장애아 학부모회 활동, 한울타리 동문회 활동), 장애인 권익 옹호 및 인권 개선 사업(지역사회 연대 및 네트워크, 장애인 단체 및 유관기관 연대활동), 그리고 후원자 관리 및 자원봉사자 네트워크 형성이다. 한울이 지난 30여 년간 활발하게 활동한 것은 바로 컴퓨터교육이다. 이를 통해 장애인들이 정보화 활용능력을 배양하고, 정보화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여 왔다. 1995년 한울 출신 동문들이 한울타리 동문회를 조직화여 회원 상호간에 친목도모와 정보교환을 통한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며 현재 80여명의 회원들이 사회 각계각층에서 활동하고 있다. 또한 2000년 한울 출신 장애인학부모를 중심으로 학부모회를 결성하여 장애아 양육과 치료, 교육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서로 교환하며 공유하고 있으며 현재 100여명의 학부모들이 토요체험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아울러 한울은 2001년부터 10여년간 정보통신부 ‘장애인 정보화교육 수행기관으로 선정되어 장애인 컴퓨터 교육업무를 충실히 이행했다. 2005년 ‘장애인 영화제작교실’을 운영하여, 자신들이 제작한 영화가 장애인 영화제에서 수상했고, 부산․서울 등지에서 상연됐다. 그리고 2006년에는 장애인 건강증진과 체력관리를 위하여 ‘요가교실’과 ‘장애청소년 수영교실’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바가 있다. 한울은 2014년부터 직업재활사업으로 의료기부품을 조립하여 완성품을 만들어 납품을 하는 의료기부품 조립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의료기기 제조 및 개발업체인 (주)거명과의 업무협약을 통해 핸드 피스, 트래이, 마인드 캐어를 조립 생산하고 있으며 5명의 뇌병변 장애인들이 참여하여 재료 입하, 재료 분류, 조립과 본딩 및 팩킹과 납품을 감당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직업 재활 및 경제적 자립을 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2015년부터 발달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일상적 사회생활이 어려운 장애들에게‘장애인 체험활동 동아리반’을 운영 중에 있다. 부산시내 거주 만 19세 이상 발달 장애인 대상으로 하는 주중 프로그램은 월~금요일(오전 10:00-오후 4:00)까지 운영한다. 장애인들이 음악, 미술, 스포츠 중심의 예체능 체험활동과 직업재활 체험, 사회적응 훈련 등 다양한 체험활동을 함으로써 장애인들이 지닌 소질과 기능을 향상하여 잠재능력을 개발하고, 사회적응력을 높여 장애인들의 사회재활을 돕고 있다. 매일 기도로 시작하는 이 프로그램은 오후 특별활동을 통해 공예 공작, 컴퓨터 교육, 요가, 역사체험학습, 숲 체험학습 및 시청각교육을 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은 부산민주공원과 보수동책방골목문화관 그리고 보수동사무소 등 10여개가 넘는 협력 기관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토요일에는 별도 ‘토요체험활동’을 실시하고 있으며 오는 5월 중 진주에 야외체험활동을 계획 중에 있다. 이를 통해 일상적 생활이 어려운 장애인들에게 역사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장애인들의 역사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사회적응력을 향상시키며, 비장애 지역청소년들이 자원봉사자로서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하여 활동함으로써,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에 유대를 강화하며, 진정한 사회통합을 지향하고 있다. 이러한 체험활동 동아리반은 수시로 모집하고 있고 한울에 문의하면 필요한 정보를 제공 받을 수 있다. 이외에도 매년 회지인 ‘한울가족’과 각종 출판물을 발행하고 있고 ‘한울아름다운음악회’를 개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문 상담사가 장애아 교육 관련 동료 상담 및 학부모 상담을 하고 있고 전문 변호사가 장애인 인권 침해 및 차별 등 관련 법률 자문을 하고 있다. 또한 사회복지사 현장실습기관으로 선정되어 사회복지사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한울은 지금 장애인의 자활에 필요한 장기 발전 비전 사업을 구상 중에 있다. 한울 주간보호센터 설립, 한울 보호 작업장 운영, 한울 그룹 홈(Group Home)운영 등을 계획하고 있다. 조성삼 이사장은 “장애인에 관심이 많은 기업인들이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장애인의 자활에 필요한 다양한 작업들을 후원해 주기를 희망하고 있다” 며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을 강조했다. 한울은 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아직 성숙되지 못했던 시기에 부산시의 조례 제정과 사회적 인식을 깨우는데 선구자적인 역할을 감당해 왔다. 장애인과 동행한 30년의 한울은 한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사람의 한걸음 위한 사역이 앞으로도 계속 이루어질 수 있게 많은 기도와 후원 그리고 체험활동 및 직업재활사업의 원활화를 위해 자원봉사자 및 재능기부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2019년 한울 장애인 체험 활동반(종일반) 및 후원 문의 051)248-8599 후원계좌 부산은행: 041-13-000175-3(예금주: 한울 장애인자활센타) 조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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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4-19
  • 소외청소년들의 안전한 울타리 ‘부산청소년자립생활관’
    ▲ 생활관 전경 어린 나이지만 사회 어두운 곳에 발을 들였다. 잘못된 선택으로 범죄를 저질렀고, 소년원을 다녀오게 됐다. 소년원을 나오면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들의 앞은 더 캄캄했다. 돌아갈 집도, 가족도 없다. 그런 이들에게 울타리가 되어 줄 곳이 있어 찾았다. 부산시 강서구 대저동에 위치한 ‘부산청소년자립생활관’이다. (재)한국소년보호협회 부산청소년자립생활관(관장 박용주 목사)은 법무부 산하기관이다. 1998년 12월 법무부는 산하기관인 (재)한국소년보호협회를 설립, 청소년 자립 지원 사업을 펼쳤다. 경기도 의왕시를 시작으로 부산, 광주, 대구, 대전, 경기도 안양, 전북, 강원 지역 등 전국 8개의 자립생활관을 운영 중이다. 청소년자립생활관은 소년원 무의탁 출원생 및 가출 등 소외청소년을 대상으로 거주보호 자립지도, 진학 직업교육 및 안정된 사회 정착을 지원하고 있다. 개별 특성에 맞춰 심리적 지원, 정서적 안정 지원 및 학업 지원, 취업 지원 등 사회적응에 필요한 지원을 하고 있다. 부산청소년자립생활관은 지난 2004년 개관해 활동해 오다, 2017년 새롭게 증개축을 실시했다. 2인 6실, 3인 2실로 총 8실을 운영 중이고, 정원 인원은 18명이다. 입주 자격은 법무부, 사회복지사업법, 보건복지부에 의한 대상자로 만 12~22세 남자 청소년이다. 소년원, 법원, 보호관찰소 등 소년보호 관련기관으로부터 의뢰를 받거나 무의탁 아동청소년, 저소득층 및 국민기초수급대상 가정, 근거리대상자 등이다. 1주간 예비 입주기간을 거쳐 정식 입주를 결정하게 된다. 이후 6개월간 생활하며 2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또한 재량에 따라 자립할 때까지 돕기도 한다. 이곳을 찾는 청소년들의 대다수는 출원생들이다. 가끔 일반 쉼터에서 감당하기 힘든 청소년들을 의뢰할 때도 있지만 소년원을 나온 출원생들이 쉼을 얻으며 사회로 적응해 나가는 통로가 된다. 취업 및 취업알선, 취적·연고자 찾기, 사후지도 등을 한다. 검정고시, 인성교육, 직업교육, 음악 등 멘토링 활동도 하고 체육활동을 통한 건강증진을 도모한다. 또 운영 및 자립위원, 자원봉사자 및 유관기관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한다. 관장 박용주 목사는 “이 곳이 또 하나의 가정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법무부 산하기관으로서 지켜야할 규정들이 있다. 그러나 수많은 규정으로 아이들을 옭아매기보다 가정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래서 입주하는 청소년들에게 꼭 당부하는 것이 있다. 외출은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외박은 꼭 사유를 말하고 허락을 받을 것. 그리고 술, 폭력, 범죄에 연루되지 말 것을 당부한다. 박 관장은 “이 곳을 찾는 아이들 대부분이 부모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가득하다. 이는 어른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제게, 직원들에게 불만을 표출하며 험한 말을 할 때도 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험한 말로 위협할 때도 있어 근무환경이 힘들고 어렵다. 그러나 이들을 아끼는 마음으로, 더 나은 미래를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4년 6월 25일, 박용주 관장은 고민 끝에 제의를 수락했다. 목회를 하던 중 부산청소년자립생활관에 대해 알게 됐고 고민하던 끝에 결심했다. 이들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데 작은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과 목사로서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낳은 결과였다. “우리가 어떻게 만났든지, 한 지붕 아래서 살아가는 가족 같은 유대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어려서 부모가 이혼하고 가정이 깨어져 갈 곳 없어 이리저리 친척집을 다니다 어느 정도 커서 집을 나오게 된다. 그렇게 헤매다 범죄에 연루되고 소년원을 가게 된 경우가 허다하다. 이들에게 가정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고 싶었고, 복음을 전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고 싶었다.” 그 힘으로 세상을 이겨낼 수 있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 관장 박용주 목사 ▮작은 거라도 주고 싶은 부모 마음 잠자고 먹을 것이 있다고 충분할까? 그렇지 않다. 한 아이를 키우면서도 돈 들어갈 곳이 숱하게 많은 것처럼 생활관을 찾는 이들에게도 해주고 싶은 게 많다. 여느 부모처럼. 생활관에 입주할 때 변변한 옷 한 벌, 신발 한 켤레 없는 아이들도 많다. 심지어 소년원에서 입던 원복 그대로 입고 오기도 한다. 그들에게 좋은 것은 아니더라도 외출할만한 옷과 신발을 사주고 싶은데 이런 경우엔 비용 지출이 힘들다. 생활관에 관련된 기본 운영 외에는 비용을 지출하기 힘들다. 취업이나 학교, 학원 등 수강료나 등하교하기 위한 교통비 등을 용돈으로 주고 싶고, 또 줘야하는 필요 항목이지만 현실이 녹록치 않다. 그래서 외부 후원으로 용돈을 주기도 하고 그 마저도 없을 때는 박 관장의 사비로 용돈을 주기도 한다. 박 관장은 “아이들이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는 용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진 것 하나 없이 몰리다보면 결국 범죄 현장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부산청소년자립생활관은 사회정착을 돕고 있다. 진학, 전편입학, 검정고시, 교양학습 등 학업연계지도를 한다. 또 취업알선, 직업체험 및 직업탐색을 돕고 사회정착을 지원한다. 부산 솔로몬로파크 상상드림카페를 운영해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고 있다. 바리스타 교육도 하고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관장 박용주 목사는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전하고 싶었다. 그들의 삶에 빛이 되어줄 복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4년 전 예배처소를 마련했다. 부산 덕천동에서 시작해 현재는 김해에 자리잡은 한소망교회. 이곳에서 매주일 오전 8시 30분 생활관 아이들과 직원들이 함께 예배를 드린다. 출근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자립해서 생활관을 떠난 아이들도 가끔 교회를 찾아와 함께 예배를 드리기도 한다. 처음에는 쭈뼛거리던 아이들이 어느덧 대표기도를 하기에 이르렀다. 만약의 경우를 미리 차단하기 위해 일반 성도들과 분리해 오전 일찍 예배를 가진다. 박 목사는 교회로부터 사례비를 받지 않기에 한소망교회의 재정은 교회 운영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구제와 선교비로 사용된다. 부산청소년자립생활관은 지난 2017년 12월 18~23일 타이페이 싼시아지역에 희망드림 해외자원봉사를 다녀왔다. ‘섬김, 그 행복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원주민센터의 정비를 도왔다. 이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더불어 사는 인간관계 정립, 더 넓은 세계관을 확립하는 기회였다. 지난 2018년 6월 12~15일에는 중국 상해로 금연캠프를 떠났다. 금연을 결심하고 실천하면서 변화된 삶과 성취감, 새로운 동기부여를 심어주며 건강한 성장을 도모했다. 또 지난 1월 13~15일 전남 완도에서 가족솔루션캠프 ‘소나기(소통·나눔·기쁨) 캠프’를 개최했다. 박 관장은 “아이들 대부분이 비행기를 처음 타는 경우가 많았다.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성취감도 높았고 또래 같은 밝은 표정을 보였다. 주변 목회자와 성도들이 멘토로 참여해 아이들을 자식처럼 품어주셨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생활관에 지급되는 운영비로는 불가해 후원을 받아 진행한다”고 말했다. 2004년 3월 세워진 부산청소년자립생활관은 ‘또 하나의 가정’이다. 함께 먹고, 나누고, 잠 든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캄캄한 현실 속에 내일을 꿈 꿀 수 있게 만드는 공간이다. 박용주 관장은 “세상에서 소외되고 의지할 곳도 갈 곳도 없는 아이들에게 내 집처럼 꿈과 흼아을 가지고 살아 갈 수 있도록 후원교회가 되어 주시고 아이들의 부모가 되어 달라”면서 “물질, 물품 등의 후원도 가능하고 재능기부와 여러 가지 봉사활동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감사함으로 위기의 청소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믿음으로 당당하게 세상에 적응 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후원계좌) 농협 301-0177-7014-71 (재)한국소년보호협회 부산청소년자립생활관 ▲ 한소망교회에서 예배 드리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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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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