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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사칼럼] 신자가 선거를 대하는 자세
    바야흐로 선거의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올해에는 스무 번째 맞이하는 대통령선거가 있고, 여덟 번째 맞이하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습니다. 선거에 즈음하여 부쩍 시민들이 많이 하는 넋두리가 있습니다. 이번 선거에는 뽑을 사람이 너무 없다는 푸념입니다. 특히나 이번 대통령선거전만큼 ‘차악(次惡) 논쟁’이 벌어졌던 경우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 시민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가중적인 고민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체로 그리스도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투표의 기준이 하나 더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인가?’라는 질문과 대답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에도 부합하는 후보가 없는 실정인데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를 고를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이 사람을 보라’를 외치고 자연스럽게 부모와 자녀 및 형제와 자매간 혹은 교우들 사이에도 정치적 분쟁이 발생하여 관계가 서먹해지기도 합니다. 신자가 선거를 대하는 자세에 몇 가지 오해가 있기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첫째, 세속적인 선거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를 선택하려는 자체가 모순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번 선거에서 누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입니까? 대답은 ‘없습니다!’ 나름대로 일세를 풍미하고 각 분야에서 탁월한 성취와 식견을 가진 후보자들을 폄하하려는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기준이 어떠합니까? 성경 속에서 이와 같은 기준을 만족시킨 사례가 얼마나 있었습니까? 직접적으로는 다윗 한 사람밖에 없지 않았던가요?(행 13:22) 더군다나 세속적인 선거에서 대부분의 후보자들은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설령 그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더라도 유권자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독교 정당의 이름으로 나오지 않은 이상 표를 의식해서라도 자신의 신앙적 신념을 공식적으로 표방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를 후보자 군(群)에서 찾아낼 수가 있겠습니까? 결국 신자는 신앙이 아니라 후보자의 공약이나 정견 그리고 인품이나 행동거지를 잘 판단해서 투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라고 하나님께서 지혜와 명철을 믿는 자들에게 부여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선거를 두고 하는 신자들의 기도에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대부분의 신자들은 선거에 즈음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뽑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 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을 기도 응답의 결과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제임스 스미스의 표현을 빌자면, 선거는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세속적 예전”입니다. 이러한 예전(禮典)에서 신자의 정치적 기도는 이제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즉, 이번에 선출되는 후보자가 변화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란 속담도 있지만, 그리스도인의 신념은 하나님께서 인생을 변화시킨다는데 있지 않습니까? 또한 선거판 자체가 변화하게 해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조차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 이행론”(Adam Przeworski)을 주창합니다. 신자들은 더욱 그런 기도를 해야 마땅합니다. 앞으로 더 이상은 ‘차악을 위한 선거’가 재현되지 않게 하시고, 좋은 후보자들이 많이 나와서 짐 월리스(Jim Wallis)의 말처럼 “공동선을 위한 정치”가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정치적 주권을 굳건하게 신뢰해야 합니다. 세속 군주가 신자일 경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무엇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풀어주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성경에 드러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 가운데 다리오와 아하수에로와 아닥사스다 왕들의 이름이 연이어 등장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신약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대의 왕 헤롯이 야고보 사도를 죽이고 베드로까지 처형하려다가 실패한 직후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당시 예루살렘에는 바울이 구제금을 전달하러 와 있었죠(행 12:13, 25). 훗날 로마서에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롬 13:1). 유대 왕이 그러했지만 로마의 황제라고 다를 바가 있겠느냐는 준엄한 선포가 아니었을까요? 우리 시대에도 같은 정치적 원리가 작동합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누가 선출되든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그를 사용하시고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신뢰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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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04
  • [은혜의말씀] 출애굽의 서막(출1:8-14)
    출애굽기는 모세오경의 두 번째 책으로 ‘출발’ 혹은 ‘탈출’이라는 뜻의 헬라어 <엑소도스>가 명칭이 되었습니다. 출애굽기의 주제는 ‘구속-구원’ 입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에서 구속하시고, 그들을 인도하셔서 결국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먼저, 1장에서 보아야 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번성입니다.(7절) 본문에 보면, 인구 증가를 표현하는 단어가 다섯 번이나 반복하여 나오는 것을 봅니다. 이러한 중첩의 표현은 이스라엘의 번성이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한 약속의 성취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창 15:5, 46:3) 그들은 애굽으로 내려갈 때만 해도 70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400년 전 약하디 약한 야곱의 12 아들을 부르셔서 이스라엘이라는 강한 민족으로 만들어 역사의 무대에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그대로 이루어지는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는 앞으로도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불타는 사명을 가슴에 안고 계속 전진해야 할 줄 믿습니다. 이 동래와 부산 그리고 민족과 열방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흘려보내는 축복의 통로, 복음의 구조선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두 번째,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해진 학대입니다.(8절)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조는 점점 불어나는 이스라엘에 일종의 위기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고된 노동으로 생활을 괴롭게 하고 심지어 산파들을 시켜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죽이라는 명령까지 내립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갈 뿐 아니라 강해져 갑니다.(12절) 여러분, 세상은 하나님의 계획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방해하는 사단의 음모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결코 사단의 공격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고난을 통해 연단 받으므로 더욱 믿음의 사람으로 강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고난은 하나님의 숨겨진 선물이요, 은혜의 방편입니다. 세 번째, 참으로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한 믿음의 여인들입니다.(17절) 노동을 통한 억제 정책이 실패로 돌아가자 바로는 산파들에게 태어나는 남자 아기는 다 죽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태양의 아들이라 자처하는 바로의 명령은 얼마나 무거운 것입니까? 그러나 산파들은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기 때문에 바로의 명령을 어깁니다. 그들에게는 이 세상 왕의 말보다 하늘나라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이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성도는 매일 매일의 삶 가운데 입술로 행동으로 또 물질로, 신앙고백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참믿음은 진짜 두려워해야 할 분을 두려워하며 사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그런 분에게 하나님께서 하늘의 놀라운 복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20절, 21절) 여러분의 신앙이 여러분의 가족, 자녀들을 믿음으로 세우는 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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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04
  • [목회자칼럼] 나의 목회 평가를 주님께 맡기며...
    2022년 중국 베이징에서 동계 올림픽을 했다. 쇼트트랙에서 심판 판정의 문제로 모두들 한 소리를 한다. 간혹 심판은 선수들에게 오판을 내릴 수 있지만, 하나님은 오판하지 않는다. 목회에 성공과 실패를 나눌 수 있는 지점이 없지만, 가끔씩 난 과연 하나님이 원하는 방향대로 가고 있는 ‘하나님 중심의 목회’를 잘하고 있는지 고민할 때가 있다. 물론, 오롯이 혼자 갈등을 하며 그 답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도 없지만 가끔은 스스로 나의 목회를 판단하며 괜스레 기분이 좋지 않기도 한다.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지금보다 더 잘하고픈 마음이 들고, 나의 약점을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서 야박한 평가를 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기도 한다. 이런 나의 생각과 평가가 올바른 것일까?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역시 마음 한편에는 하나님의 평가가 바른 평가라는 것을 알고 있다. 세상 사람은 나의 목회를 성도를 모은 숫자로 평가한다. 세상 사람은 나의 목회를 교회당 건축 크기로 평가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가 기준은 다르다. 예레미야의 목회는 성공 했을까?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망해가는 나라를 바꾸지도 못하고 부흥시키지도 못했고 회복시키지도 못했다. 백성들, 지도자들을 회개시키지도 못했다. 오히려 자기의 설교 때문에 감옥에 갇혔고 포로로 잡혀갔다. 이쯤되면 실패 아닌가? 그러나 어느 누구도 예레미야를 실패자로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신실한 주의 종으로 여긴다. 결과가 없는데도 말이다. 모세는 과연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는가? 비스가산에서 임종을 맞이했다. 그렇다면 모세가 실패한 인생인가? 그렇지 않다.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결코 그를 실패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왜일까? 평가 기준이 세상과 다르기 때문이다. 모세는 자신의 사명대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꾸준히 인도하였기 때문에 성공한 삶이다. 그 힘든 광야 길을, 모래 바람 속에서, 모진 원망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 것이 성공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평가했다. 엘리야는 성공했을까? 엘리야는 불을 땅에 끌어내기도 한 능력의 선지자이지만 한 사람을 변화, 회개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실패자인가? 아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나타날 때 모세와 함께 보인 사람이 바로 엘리야이다. 비록 나의 세상적인 비전과 꿈은 좌절되어도 오히려 나를 변화시키고 자금도 사용하시는 분이 바로 주님이다. 주님은 나의 작은 신음에 지금도 반응하고 계시지 않는가? 오늘도 말없이 주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 오늘도 변함없이 주인공이 아닌 단역 배우라도 감당하며 사용되는 것, 쓰임 받는 것이 감사 아닌가? 영화의 주인공만 있다면 영화가 되겠는가? 많은 단역 배우와 엑스트라들이 함께 힘을 모으기에 영화가 만들어진다. 나는 인생의 영화에서 단역 배우이지만 혹은 엑스트라지만 나의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은 나의 인생을 성공이라 부른다. 하나님은 지금도 날 그렇게 평가하고 있다. “오늘도 묵묵히 그 일을 감당해 주어서 고마워!” “오늘도 묵묵히 그 사역을 통해 나를 찾아 주어서 고마워!” 지금도 갈등하는 목회자를 향한 하나님의 따뜻한 위로의 음성이 귓가에서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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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04
  • [부산기독교이야기] 전쟁기 부산에서의 신학교육(2)
    6.25 전쟁기에도 신학교육은 계속되었는데 앞에서는 고려신학교와 조선신학교의 피난지 학교에 대해 소개하였다. 그렇다면 장로회신학교는 어떠했을까? 장로회신학교는 1948년 6월 3일 서울 남산에서 개교했다. 학교의 설립일에 대해서는 3일, 9일, 20일 설이 있으나 20일은 주일이므로 이날은 아닌 것 같고, 3일(목) 혹은 9일(수)일 것이다. 학교를 설립하게 된 배경은 이러하다. 1946년 9월 20일 고려신학교가 박윤선 목사를 임시교장으로 하여 부산진 좌천동에서 개교했는데, 교장으로는 만주에 계시던 박형룡 박사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송상석 목사는 사지를 넘어 만주로 가서 박형룡 목사 가족을 안전하게 귀국하게 하였고, 박형룡은 부산으로 와 1947년 10월 14일 고려신학교 교장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고려신학교 설립자 한상동과 박형룡 교장 사이에는 이견이 제기되었고 결국 박형룡은 교장으로 취임한지 불과 5개월이 지난 1948년 초 고려신학교를 사임하고 서울로 돌아가 새로운 신학교를 설립했는데, 그것이 1948년 6월 개교한 장로회신학교였다. 개교하기에 앞서 5월 20일에는 서울 창동교회에서 새로운 신학교 설립을 결정하고 이사회를 조직하였고, 개교식은 6월 3일 혹은 9일 서울 남산의 과거 조선신궁 터 자리에 있던 성도교회에서 개최되었다. 개교식 이후 성도교회당이 장로회신학교 임시교사로 사용되었다. 장로회신학교는 1회 졸업생 25명, 2회 졸업생 38명, 3회 졸업생 35명을 배출하고 전쟁의 발발로 1950년 9월 학기를 개교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9.28 서울 수복 후 늦게나마 개강했으나 어수선한 가운데 두 달을 채웠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피난길에 올랐다. 1.4 후퇴였다. 1951년 1.4 후퇴 때 교수와 학생들이 다 피난길에 올라 수업은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부산에서 다시 장로회신학교가 개강하게 되는데 그 때가 1951년 5월 1일이었다. 임시교사를 수색하던 중 부산진교회 당회의 허락을 얻고 부산진교회당을 사용하게 되었다. 당시 부산진교회 담임목사는 김성여(金聖與) 목사였는데, 당회 기록에는 장로회신학교 임시교사 건에 대한 아무런 기록도 없다. 일반적으로 피난지 부산에서 개강한 날을 ‘1951년 봄’이라고 말하는데, 당시 교수이기도 한 권세열(Francis Kinsler) 선교사는 1951년 6월 16일자로 선교본부에 보낸 편지에서 5월 1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때 등록한 학생은 275명에 달했다고 한다. 권세열 선교사의 기록은 아래와 같다. “장로회신학교는 1951년 5월 1일, 부산진교회 건물에서 피난민학교로 다시 개학하였다. 우리들은 한 100여명 정도의 학생들이 오리라고 생각했었는데, 현재 등록된 학생 수는 275명이나 된다. 사실 신학교에 온 대부분의 청년들은 전쟁터에 가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학교에 올 수 있었다.” 이어서 학생들의 기도생활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나는 오늘 이른 아침, 학생들의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였다. 학생들이 매일 자신들의 새벽기도회를 스스로 인도하고 있으며, 교수들은 별로 참석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찬송을 부르고 성경말씀을 봉독하고, 말씀을 증거한 후 기도를 드린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약 30분 이상 기도를 드리며, 많은 이들은 눈물로서 하나님께 호소한다. 저들은 음식이나 집 같은 저들에게 핍절한 물건들을 구하지 않고 자신들의 보다 나은, 진실된 신앙생활과 한국교회와 전체 한민족을 위하여 기도드리는 것이다. 우리 서방 세계에서는, 여기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주님을 간절히 사랑하고, 위하여 헌신하는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당시 교장은 박형룡 박사였고 한경직 권세열 등이 교수였다, 그해 7월에는 제4회 졸업식이 거행되었다. 졸업생은 66명이었다. 평양 출신으로 제주도에서 피난하던 임인식은 가족은 제주도에 남아 있고 본인만 부산으로 와 공부하고 4회로 졸업했다. 전쟁 중 부산에서의 제4회 졸업식이 마지막 졸업식이 되었다. 장로교회는 조선신학교와 장로회신학교 문제로 갈등하였고, 두 신학교를 통합하여 총회신학교를 설립하기로 결의했기 때문이다. 비록 조선신학교는 이에 불응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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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04
  • [성서연구] 해석보다 중요한 것
    요셉은 꿈을 잘 해석한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꿈 해석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였습니다. 그는 꿈을 잘 해석함으로써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이 처음으로 꿈을 해석한 것은 감옥에서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주인인 보디발 장군의 아내를 겁탈하려 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얼마 후 바로 왕의 술 맡은 관원과 떡 맡은 관원이 감옥에 투옥되었고, 옥사장은 요셉으로 하여금 두 사람을 뒷바라지하게 했습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꿈을 꾸었고, 그 의미를 알지 못하여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아침에 이들의 근심을 알아차린 요셉이 질문했습니다. 창세기 40장 6~7절입니다. <6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7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신하들에게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두 사람은 요셉에게 자신들의 고민을 이야기했고, 요셉은 두 사람의 꿈을 들은 후 해석해 주었습니다. 꿈의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술 맡은 관원의 꿈은 사흘 후 석방될 것이라는 고무적인 내용인 반면, 떡 맡은 관원의 꿈은 사흘 후 처형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사흘 후 요셉이 해석한 대로 이루어져 술 맡은 관원은 복직했고, 떡 맡은 관원은 죽었습니다. 두 사람의 꿈은 그들에게 주어진 미래의 상황이라 하겠습니다. 누구에게나 미래가 있고, 그 미래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축복으로 여겨질 미래가 열릴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고통의 미래가 주어질 것입니다. 자, 이 상황을 암시하는 꿈을 꾸었다고 해 봅시다. 꿈을 꾼다고 달라지는 게 있습니까?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저 미래에 대해 약간의 암시를 받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 꿈을 누가 해석해 주면 어떨까요? 물론 꿈의 의미를 알지 못해서 두 관원처럼 고민하는 것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해석되는 것이 도움이 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술 맡은 관원은 요셉으로부터 해석을 들은 후 사흘 동안을 기대감에 부풀어 지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흘 후 복직되었으니, 그는 인간적으로 볼 때 엄청난 행운아입니다. 그러나 꿈의 의미를 아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을까요? 떡 맡은 관원은 요셉의 해석으로 인해 사흘 동안을 죽음 같은 고통 속에서 보냈을 것입니다. 해석이 없었다면 꿈의 의미를 몰라서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다지 절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흘 후에 처형될 것을 알고 보내는 사흘은 그에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안겨 주었을 것입니다. 그에게 요셉의 해석은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 사흘 동안에 자신의 죽을 운명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깊은 고통 중에 몸부림치다가 속절없이 죽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해석의 한계를 생각하곤 합니다. 해석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해석은 대책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줄 수는 있습니다. 이년 후 바로 왕이 꿈을 꾸었을 때, 요셉은 꿈을 해석하여 다가올 풍년과 흉년을 예고했고, 대책을 세워 애굽 사람들이 굶어죽지 않게 했으니, 이때는 해석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책을 세울 수 없는 경우엔 해석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해석보다 중요한 것은 인생의 진로를 바꾸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즉 죽을 자였는데 살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미래를 바꾸는 것은 우리 소관이 아닙니다. 죽을 사람을 살게 하는 것, 망할 사람을 부흥하게 하는 것은 사람의 노력에 달린 게 아니라, 절대적인 하나님의 차원의 은혜의 일입니다. 결국 꿈과 그 해석만으로는 희망이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우리 인생을 붙잡고 인도하시고 방향을 바꾸시는 인생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꿈이나 해석하고 앉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엎드려 인생을 바꾸고 인도해 주시도록 기도 해야 합니다. 우리 삶을 송두리째 하나님께 맡기고 부르짖어 기도하면서 나아가는 2022년이 되길 원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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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11
  • [서임중칼럼] 그래도 3월 9일 투표장으로 가야한다.
    지혜롭지 못한 곰 이야기가 있다. 남극에 사는 백곰이 어느 날 시베리아에 있는 호전적이고 당돌한 흑곰의 방문을 받았다. 저녁 식사 후에 시베리아 곰이 남극 백곰에게 말했다. “남극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지방이 아닙니까? 이런 곳에서는 햇볕을 다 흡수하여 따뜻하게 해 주는 검정 털이면 더 좋은데 남극 곰님의 털은 이게 뭡니까. 하얀 백색이니 이 추운 지방에서 더욱 춥겠습니다.” 유식한 척, 거만하게 그리고 딱하다는 듯 흑곰이 말했다. 순진하게 생긴 남극 곰은 흰털을 갖고 있다는 것이 부끄럽다는 듯 두 눈을 껌벅거리며 작은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태어날 때부터 이런 털을 갖고 태어났으니 어쩌겠습니까.” “남극 곰님도 참 딱하십니다. 검정색 물을 들이면 될 텐데,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남극 곰은 자기의 흰털을 검정색으로 염색을 했다. 그러고 나니 북극곰처럼 참 따뜻하고 좋았다. 그렇게 염색을 한 얼마 후 총소리가 나면서 사냥꾼이 남극 곰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남극 곰은 평소처럼 잽싸게 하얀 눈과 얼음 사이로 달아나 숨었다. 그러나 이미 자신의 몸은 검정색으로 온 몸이 염색 되어 있어 흰눈과 얼음 사이에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고 결국 남극 곰은 사냥꾼에게 잡히고 말았다. 이 이야기를 통해 여의도 1번지를 보는 듯해서 씁쓸하다. 나는 古稀 중반의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선거에 참여했다. 그때마다 후보들의 동일한 구호는 “내가 적임자이고 동시에 내가 당선이 되면 이렇게 하리라”며 공약을 내걸곤 했다.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公約은 空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이번에는 속지 말고 투표를 잘 해야지 했으나 수포로 돌아갔다. 그래서 公約을 보지 말고 인성과 그가 살아온 세월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선택 기준이 되었다. 그것은 백곰이 검은색으로 염색한 후 낭패를 당한 슬픈 이야기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2022년 3월 9일은 20대 대통령 선거일이다. 그리고 석 달이 못 지나는 6월 1일은 지방선거일이다. 이 나라는 온통 선거이슈가 1년 365일 어느 날도 그치지 않는다. 대선, 총선, 지방선거, 보궐선거... 그야말로 선거천국인지 선거지옥인지 모를 판이다. 참으로 미안한 표현이다. 그렇지만 정말 ‘깜도 안 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20대 대선에서도 20여명이 넘게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그리고 여전히 후보들은 ‘나 아니면 이 나라는 희망이 없다’고 자아도취적 목청을 높이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그런 사람들 덕분에 이 나라가 태평성대를 맛 본 역사는 없기에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도 민망하다. 그래도 투표장으로 가지 않으면 그것이 역사의 물줄기를 엉뚱한 곳으로 돌리는 우를 범하기 때문에 우리는 대한민국의 내일을 생각하면서 투표장으로 가야 한다. 정당이나 후보의 정치적 修辭에 속아서도 안 된다. TV 오래 된 광고 문구 중 “순간의 선택이 십년을 좌우합니다.”라는 것이 있는데 그 글귀는 백번이라도 맞는 말이다. 대선을 앞두고 후보 진영의 선거유세를 들어보면 아직도 국민들을 우매한 것으로 인식하는 듯한 공약들이 남발되는 것을 볼 수 있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지만 이제는 그런 말장난에 이력이 나서 무감각해지는 것에 슬픔을 느낀다. 약속 파기와 거짓말을 물마시듯 하는 정치 지도자일수록 나를 믿어달라는 뻥치기 수법이 능수능란하다는 것도 이제 국민은 다 안다. 그러기에 진정한 일꾼을 선택하는 것은 유권자들인 국민에게 달려 있다. 대부분 정치인들의 듣기 민망한 언어구사 가운데 하나가 걸핏하면 ‘국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왜 그 말이 마음에 와 닿지를 않는가? ‘내가 말할 때의 국민’과 ‘네가 말할 때의 국민’이 다르게 느껴지는 언어구사는 하지 말아야 한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국민은 하나인 것이다. 그러기에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지역과 세대를 아우르며 미래 지향적인 대한민국을 책임질 정책, 곧 국방・경제・교육・사회・복지에 관하여 평소의 언행이 신뢰를 줄 수 있는 후보를 우리는 가려내어야 한다. 이런 때에 아직도 오늘의 유권자들의 의식이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국가 흥망성쇠가 걸린 이 나라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는데 나라야 어찌되든 상관없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사고에 치우쳐 소위 학연(學緣)・지연(地緣)・혈연(血緣)은 물론 금권(金權)에 자신의 고유한 권리를 넘겨 버린다면 그보다 더 서글픈 일이 없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민주주의의 신봉자 링컨은 “투표는 탄환보다 강하다”는 명언을 남겼다. 탄환을 영어로 벌리트(bullet)라 하고 투표용지를 벨러트(ballot)라 한다. 두 단어는 철자와 발음이 비슷하다. 그래서 이 단어가 갖는 의미가 더욱 크다. 그렇다. 우리가 선택하는 후보자들의 이름이 기록된 투표용지는 탄환보다 강하다. 그 탄환보다 강한 투표용지를 전혀 쓸모없는 납 조각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무서운 범죄행위나 다를 바 없다. 투표를 포기하는 것, 이도 저도 싫어 무효표 만드는 것, 인물 중심이 아니라 이기적인 욕심에 치우쳐 타락된 투표 행사를 하는 것이 바로 범죄다. 대선 후보들의 면면을 보면 소위 그 나물에 그 밥이란 말이 생각나지만 그래도 “투표는 탄환보다 강하다”는 링컨의 말을 생각하면서 대한민국 제 20대 대통령을 선택하기 위하여 우리는 3월 9일 반드시 투표장으로 갈 수 있어야 한다. 2022년 3월 9일은 대한민국의 미래가 결정되는 역사적인 날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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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11
  • [시사칼럼] 고통의 문제
    어느 날 일면식 없었던 분이 보내신 저서를 한 권 받았습니다. “욥이 물었다, 내게 왜 이러세요? 강정훈 지음.” 신앙 유무를 불문하고 고난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욥, 과연 저자 역시 신학생 시절부터 만나 동고동락했던 아내를 암으로 먼저 떠나보낸 후 기나 긴 아픔의 시간을 겪어야 했더군요. 고통의 승화를 논할 수 있겠으나, 사실은 고통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느끼는 첫 번째 감정이 고스란히 책의 제목에 녹아 있습니다. 최근 들어서 부쩍 각광 받는 ‘죽음학(Thanatology)’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1926-2004)는 말기 암 환자 육백 명을 관찰한 뒤 사람들이 고통의 시간을 보내면서 변화되는 다섯 단계가 있다고 보고했는데, 첫 단계가 ‘부정(否定)’으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말도 안 돼!’라면 그 다음이 바로 ‘분노’ 곧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였다고 합니다. 이어지는 ‘타협’과 ‘우울’과 ‘수용’의 단계보다 훨씬 더 솔직하고 원초적인 반응이 초기 두 단계에 압축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한 양심으로 살아왔거나 특히 독실한 신앙을 견지하며 살아온 인생이라면 오히려 더 그럴 수 있습니다. 유대인 랍비이기도 한 해롤드 쿠쉬너(Harold S. Kushner)가 아들을 14년 만에 잃고 스스로 상처 입은 종교인임을 자처하면서 쓴 『왜 착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까』를 보십시오. 이러한 문제를 신학적으로 규명해보려 애썼던 옥스퍼드의 루이스(C. S. Louis, 1898-1963) 교수 또한 먼저 심대한 아픔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일평생 단 한 번 사랑했던 여인을 잃고 그가 남긴 글(A Grief Observed)에 이런 대목이 등장합니다. “주여, 이것이 당신의 진짜 조건입니까? 제가 당신을 너무 사랑하여 그녀를 만나든 만나지 못하든 괘념치 않을 때에만 H를 만날 수 있는 것입니까?” 여기서 “H”는 그의 아내를 상징합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서 이토록 고통스러운데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분노와 원망 섞인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고통이 이들을 쓰러뜨리지는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고통은 결코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없습니다. 끝을 알지 못하겠는 감염 사태 속에서 최근 두 분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한 분은『안식』의 저자인 마르바 던(Marva J. Dawn, 1948-2021)입니다. 그녀는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암에서 장애까지 인간의 연약한 굴레들을 온 몸으로 짊어지고 살아오신 분입니다. 살아있는 동안 고통의 극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이 분을 보면 되겠습니다. 하지만 결코 고통에 굴복하지 아니하고, 숭고한 인내와 견고한 믿음이 어떠한가를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또 한 분은 차동엽 신부입니다. 서울공대를 졸업한 수재로 학식과 강연이 대단한 분이셨지요. 장차 한국의 추기경이 될 수도 있었던 인물인데 겨우 60대 초반에 생을 마감했으니 안타깝습니다. 대중적으로도 인기가 많았던 그는 『믿음 희망 사랑』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마지막 1초까지 우리의 삼색 촛불은 타고 있어야 한다!” 흔들릴지언정 꺼지지는 않는, 고통 속에 더 아름답게 타오르는, 그런 믿음과 소망의 촛불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서도 은은하게 타오르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고통의 문제를 다시 논하는 까닭은 이런저런 일들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고통에는 상대적인 무게가 아니라 절대적인 질량만 존재합니다.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느끼는 고통이야말로 우주제일입니다. 극복하기는커녕 위로하기에도 벅찬 것이 또한 고통입니다. “아내가 떠난 이십 수년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내의 죽음을 빙자해서 청중들에게 눈물을 유도하여 은혜를 짜내는 설교가 될까봐 말을 아꼈다.. 이제는 입을 열고 싶다.. 이 책은 간증집이 아니다. 비극적인 상황에서 세월이 오래 흘러가지만 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직도 많이 아프세요? 이렇게 생각해 보면 조금은 낫지 않을까요?’ 하는 조심스런 목소리다. 아픈 사람에게는 아픈 사람, 아팠던 사람의 말이 위로가 된다. 동병상련이다.”(강정훈, 9) 그 말이 나에게는 적잖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루이스와 던 그리고 차 신부 또한 훌륭한 위로자가 되어 주었습니다. 이 글 역시 고통 중에 있는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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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11
  • [은혜의말씀] 아름다운 소식(왕하 7:3-10)
    사마리아성에 극심한 기근이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아람 왕 벤하닷과 그의 군대가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완전히 포위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먹을 것이 바닥난 성내는 그야말로 지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비참한 현실 앞에 엘리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7:1) 하나님의 말씀이 내일은 기적을 보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아보실 때 놀라운 은혜의 역사, 기적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의 열쇠는 하나님께 있음을 믿습니다. 다음 날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마리아의 상황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기근과 굶주림으로 사람을 삶아먹는 비참하기 짝이 없었던 지옥과도 같았던 사마리아성의 상황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모습은 아닐까요? 영적으로 보면, 이 세상은 하나님의 은혜와 영원한 생명, 구원에 대한 소망을 알지 못한 채, 인간의 욕심과 욕망, 자신의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지마는 끝내 공허함과, 굶주림, 채우지 못하는 쾌락 앞에,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셨습니다. 내일이면 사마리아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복된 소식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마리아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아름다운 소식은 구원의 소식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을 밖에 없는 우리들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이요, 아름다운 소식입니다. 그러면 이 아름다운 소식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내게 주신 구원의 은혜를 누리십시오. 성안은 굶주림과 기근으로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고 있었지만, 이 네 명의 나환자들 구원의 기쁜 소식을 보고 체험하고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구원의 기쁨을 거저 가서 보고, 누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자만이 그 은혜를 전할 수 있습니다. 2. 나만 누리는 것은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환자들은 이런 아름다운 소식을 자신들만 누리고 침묵하는 것은 죄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름다운 소식-복음을 전하지 않는 침묵은 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나 혼자만 누리고 죽어가고 있는 자들이 있는 것을 뻔히 보고 있으면서도 알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옳지 못한 것입니다. 이제 나를 위한 구원에서 남을 위한 구원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3.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부르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영적인 눈으로 지금도 지옥을 향해 죽어가는 수많은 영혼들을 보십시오. 이 복음은 죽은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능력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이 아름다운 소식이 온 세상에 전파되길 원하십니다. 나를 통해 이 생명의 복음이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복음 전도자의 사명을 다하는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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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11
  • [목회자칼럼] 이런 사람 없습니까?
    인사가 만사다. 지도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 지는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쓸 데가 없다. 누가복음 1장에는 주의 길을 예비한 세례요한의 여덟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그야말로 팔방미인이다. 신년벽두에 이런 사람으로 나타났으면 좋겠다. 사도바울은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했다. 배워서 남주자. 벌어서 섬기자. 첫째, 세례요한은 사무엘처럼 부모님의 기도 응답으로 태어났다. 세례요한의 부모인 스가랴와 엘리사벳은 나이가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오랫동안 기도하였기에 주께서 그 기도를 들으셨고, 응답하셔서 아들 세례요한을 주셨다. 사람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신앙적이냐는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을 말한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킨다. 나는 사랑하나 저희는 도리어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다.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 말아야 된다. 새벽기도 끝나는 날 내 인생도 끝난다. 둘째, 세례요한은 이삭처럼 남에게 기쁨을 선사하는 사람이다. 세례요한은 어머니 엘리사벳의 뱃속에 있을 때에도 마리아가 잉태한 예수님께서 가까이 올 때 기뻐 뛰어 놀았다. 남들에게 기쁨을 나누어주는 사람, 해피 바이러스가 되어야 된다. 옛말에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내 눈에 피눈물이 난다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 가슴에 한이 맺히게 하지 말고 흥을 돋우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 성도의 특징은 기쁨이 샘솟듯 하고, 은사를 불일 듯 하고, 청춘이 독수리 날개침 같이 하고, 사슴의 발같이 높은 곳으로 인도 받는 것이다. 셋째, 세례요한은 주 앞에서 큰 자였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가장 큰 자가 세례요한이다. 크리스찬은 하나님 앞에서, 코람데오, 신전인격이 중요하다. 창세기부터 복있는 사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이다. 사람들의 평판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보실 때 좋아야 되는 것이다. 주는 자가 복이 있고, 섬기는 자가 큰 자이다. 큰 은혜를 받았으니 축복의 통로가 되어서 흘려보내는 통 큰 대인이 되어야 된다. 주께서는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신다. 넷째, 세례요한은 나실인처럼 구별된 자였다. 구약성경에 나실인들은 엄마 모태로부터 구별되이 자랐다. 포도주나 독주를 금하였다. 하나님의 뜻은 성공이 아니고 성결이다. 가정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고 거룩이다. 거룩의 뜻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깨끗하고, 정결하고, 순수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구별되고, 차이가 있고, 다르다는 것이다. 신앙생활에서 주의해야 될 것은 이것저것 주워 모은 혼합주의이다. 성도는 다른 사람 어찌 하든지 나는 주의 군사가 되어야 된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 아니라 구별된 사람이 되어야 된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된다. 다섯째, 세례요한은 모태로부터 성령 충만함을 받은 자였다. 성경에 존귀하게 쓰임받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들이다.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권세와 능력을 받고 증인의 삶을 감당할 수가 있다.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때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화답하고, 피차 복종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사랑하고, 존경하고, 자녀들이 순종한다. 바나바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자였다. 성령을 소멸하고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가 없다. 여섯째, 세례요한은 이스라엘 자손을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한 사람이었다. 주께서는 성도가 복음을 잘 전하도록 건강도, 물질도, 시간도 주신다. 지상 대 명령이 복음전도이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사람의 발이 아름답다. 전도가 주께서 가장 기뻐하는 일이다. 전도 목표를 설정하고 이름을 적고 작정 기도하면 모든 한계를 뛰어 넘고 기적의 구원 역사가 일어난다. 일곱째, 세례요한은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사역한 자였다. 엘리야가 등장하는 구약성경 열왕기상 17장을 보면 그의 소개가 디셉 사람 엘리야가 전부이다. 엘리야는 스펙도 없고 자랑할 것이 별로 없는 농사꾼이었다. 그러나 그는 혼자서 바알과 앗세라 거짓 선지자들을 일당백 하였으며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고 간절히 기도해서 불로 응답받은 사람이다. 엘리야는 열심이 특심이었다. 엘리야는 엘리사라는 후계자를 잘 세웠다. 엘리야가 구약의 대표적인 선지자라면 엘리사는 구약에서 기적을 가장 많이 행한 선지자이다. 여덟째, 세례요한은 주의 길을 준비한 자였다. 예수님보다 앞서 와서 주의 길을 예비한 삶을 살았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쓸데가 없다. 성도는 부름 받고, 사랑받고, 쓰임 받는 자이다. 쓰임 받을 동안에는 죽을 틈도 없다. 주께서 부르실 때 준비된 사람은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라고 선뜻 대답할 수가 있다. 실력 있는 사람은 “ㄲ”시리즈 여덟 가지가 있다. 꿈, 꾀, 끼, 깡, 끈, 꼴, 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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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11
  • [부산기독교이야기] 전쟁기 부산에서의 신학교육1
    6.25 전쟁기 부산에서의 신학교육은 어떻했을까? 부산에는 1946년 9월 20일 개교한 고려신학교가 있었다. 고려신학교는 부산진 좌천동 일신여학교 교사에서 시작되었으나 약 5개월 후인 1947년 3월 5일은 한상동 목사가 시무하던 초량교회 삼일유치원으로 이전하였다. 한상동 목사는 고려신학교를 설립하기 두 달 전인 1946년 7월 30일 초량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목회하여 있었는데, 해방 후 다시 선교지로 돌아온 호주선교부가 일신여학교 교실 사용에 대하여 의의를 제기하였다. 즉 한상동 목사와 호주선교부 대표 안다손 (George Anderson) 선교사간에 문제가 있어 한상동 목사는 일신여학교 건물에서 나와야 했고, 마땅한 교사가 없어 초량교회 유치원으로 이전한 것이다. 그로부터 약 40일 후인 4월 19일에는 부산시 광복동 12가 7번지 적산 건물로 이전하였다. 이곳이 지금의 광복동에서 용두산공원(당시 우남공원)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주변이었다. 따라서 전쟁기 고려신학교는 광복동 1가 7번지에 위치하고 있었고, 학생 수는 70여명에 달했다. 그렇다면 다른 신학교육기관은 없었을까? 전쟁기 서울의 대학이 부산에서 수업하거나 부산 분교를 운영하였고, 1951년 5월 4일 ‘대학교육에 관한 전시 특별 조치법’을 공포하여 전시연합대학을 운영하게 했다. 이런 경우는 세계교육사상 유례가 없는 전시 하에서의 교육 제도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에 있는 신학교는 어떻게 신학교육을 계속했을까? 서울에서 부산으로 피난 오게 되자 부산에서 임시교사를 설치하고 신학교육을 시행하였는데, 한신대학의 경우도 부산에서 전시학교를 운영하였다. 1940년 개교한 조선신학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1951년 4월 28일에는 한국신학대학이라는 이름으로 대학으로 인가를 받게 된다. 이 조선 신학교는 전쟁이 발발하아 임시 휴교하였으나, 1951년 3월 부산에서 다시 개강하게 된다. 이 일 주도한 이가 정대위 교수였다. 당시 학교 관계자들은 부산이나 제주도로 피난 중이었는데, 그는 항서교회 종탑 방에 임시로 거주하고 있었다. 후에 경동교회 담임목사가 되는 강원룡 목사도 정대위 교수와 같이 항서교회 종탑방에서 살고 있었다. 이들의 노력으로 남부민동의 항남교회에서 신학교육을 재개하게 된 것이다. 당시 항남교회 권남선 담임목사는 일본 아오야먀(靑山學院) 출신으로 김재준 보다 2년 선배였다. 이런 관계로 항남교회 옆의 공한지를 이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강원룡의 회고록에 의하면 거제도에서 피난하고 있던 김재준 목사를 찾아가 부산으로 돌아와 다시 신학교를 시작하자고 했을 때 김재준은 완강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김재준은 조선신학교 설립자 중의 한사람이었고 조선신학교를 많이 후원했던 진정률 장로가 거제도에 살고 있었기에 그곳에서 피난하고 있었다. 캐나다에서 유학했던 정대위 교수는 영어가 능통했고 한국전에 참가한 캐나다 군부대로 찾아가 그들이 쓰고 버리는 목재 탄환상자들을 대량으로 얻어와 임시교사를 짓고 사택까지 준비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김재준 목사를 찾아가 신학교육을 위해 부산으로 돌아와 달라고 요청하엿고, 이렇게 하여 교수들이 모이고 신학교육을 재개하게 되었다고 한다. 정대위 교수는 학장으로, 최윤관은 부산의 상이군인정신요양원 원장으로 일하면서 교수하고 있었고, 김정준은 교수로 동참했으나 1951년 8월에는 캐나다 토론토의 임마누엘신학교로 유학을 떠났고, 1952년 3월에는 서남동, 이장식 교수와 전경연 박사가 교수로 취임하였다. 강사로는 안희국, 강원룡, 김종대, 서창제, 지동식, 최거덕, 한철하 등이 강사였다. 피난지에서 첫 졸업식은 1951년 7월 18일 거행된 제10회 졸업식이었다. 학부 15명과 전문부 32명을 배출하였다. 학생수가 늘어나자 미군과 교섭하여 목재와 나무상자를 얻어와 강당 겸 강의실도 세우고 신학교육을 시행했는데, 이곳이 남부민동 22번지였다. 1952년 4월 26일에는 함태영 목사가 학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대한민국 심계원장 출신인데, 저명한 법률가였다. 피난생활을 끝내고 서울 동자동 켐퍼스로 돌아간 때는 1953년 8월이었다. 그래서 한국신학대학은 2년 5개월, 곧 5학기 동안 부산에서 신학교육을 시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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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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