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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칼럼] 비상(非常)시기, 더 비상(飛上)하게 하소서!
    한국교회가 비상상황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하여 송구영신예배마저도 비대면으로 드려야 하는 위기입니다. 저는 교단의 총회장으로서, 한교총 대표회장으로서 시대적 사명감과 책임의식을 가지고 백방으로 뛰며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어떤 경우도 성탄절예배와 송구영신예배만큼은 좀 더 완화된 현장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하여 몸부림 쳤습니다. 그런데 노력에도 불구하고 확진자가 1000명이 넘어가며 방역수칙은 더 강화되고 심지어 몇몇 교회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하며 여론을 더 악화시켰습니다. 저는 무력한 제 자신을 돌아보며 맥이 빠지고 한동안 깊은 우울증을 겪었습니다. 우울증을 그냥 혼자 앓고 있으면 그것도 행복할 텐데, 저를 찾는 사람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기 때문에 여기저기 돌아다닌 것입니다. 마음은 우울한데 꼭 위선자처럼 아무런 일도 없는척 사람을 만나야 하고 이런 저런 모임을 이끌어가야 하니, 더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다른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도 비상상황인 것입니다. 다른 교회도 송구영신예배를 드리겠지만, 우리 교회는 송구영신예배가 최고의 영적 축제요, 1년의 첫 농사입니다. 첫 출발부터 흐지부지하게 되어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는 다시 한 번 ‘절.절.포’ 신앙을 떠올렸습니다. 윈스턴 처칠이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졸업식 축사를 하게 되었을 때 이렇게 딱 한 마디를 했다고 합니다. “Never give up! 여러분 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 청중들이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을 때 처질은 다시 이렇게 외쳤습니다. “Never never never never never give up!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 그리고 나서 처칠은 다시 한 번 큰소리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Never give up!” 일곱 번의 Never give up, 그것이 처칠이 했던 축사의 전부였습니다. 육군 7보병사단 사단장이셨던 우리 교회 서정열 장로님도 부대원들에게 ‘절절포 정신’을 역설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장로님은 사비로 모든 부대원들에게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머플러를 만들어 주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비상(非常)시기에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오히려 비상(飛上)해야 합니다. 제가 송구영신예배를 드릴 때, 예년처럼 성도들을 모이게 하면 중대본의 지침도 어길 뿐만 아니라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인 목사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가 확진자라도 나오면 난리가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대본의 지침을 지키면서도 최소한의 현장과 온라인을 병행하며 송구영신예배를 잘 드려야 합니다. 우리 모두 힘든 겨울 광야를 걷고 있지만 절대로 포기하면 안 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얼마나 고귀합니까? 앞으로 살아갈 날이 얼마나 많습니까? 코로나는 누구도 예견할 수 없었던 재앙이었습니다. 2021년도 알 수 없는 미지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니,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더 비상 신앙, 비상 기도, 비상 헌신을 하며 더 높이 비상하고 웅비해야합니다. “하나님,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록다운된 한국교회를 다시 열어 주옵소서. 무너진 한국교회를 세워주시고 대한민국도 다시 일으켜 주옵소서. 이런 비상(非常)시기일수록 우리 모두 희망의 날개를 펴고 더 비상(飛上)하고 웅비하겠습니다. 아무리 맥이 풀리고 지쳐도 다시 날갯짓을 하며 또 한 번 비상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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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7
  • [성서연구] 또 하나의 극복, 순응
    우리가 구원을 받고 천국에 이르는 과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에 이르는 과정과 흡사합니다.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가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두 가지 태도가 필요했습니다. 하나는 <극복>이요, 하나는 <순응>이었습니다. 그들은 많은 것을 극복했습니다. 바로 왕, 홍해, 광야의 배고픔과 추위, 아말렉 등을 극복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응도 배워야 했습니다. 사십 년이란 광야 생활이 단축되지 않았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만 먹는 게 지루했지만, 다른 음식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이동해야 했습니다. 천막을 풀고 치고, 자리를 깔고 개는 일이 끝없이 반복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랑하는 이들이 세상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지금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어렵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코로나를 극복해야 합니다만, 저는 이때를 통하여 순응의 태도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는 것은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입니다. 예수님은 전능자이시지만, 받아들일 것들을 받아들이셨습니다. 베들레헴에서의 초라한 탄생, 애굽까지의 고단한 피난 생활, 십자가의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주가 되신 것은 성육신과 십자가를 받아들이심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만약 십자가를 지시지 않았더라면 구원은 없었을 것입니다. 믿음의 선배들도 순응의 모델입니다.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느보산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응하였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느부갓네살이 세운 신상에 절하지 않아 평소보다 일곱 배나 뜨거운 풀무불에 떨어지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건져주시지 않아도 우상에게 절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풀부불을 받아들여 거기서 순교할 각오가 있었습니다. 우리도 인생길에서 만나는 모든 상황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강해집니다. 순응을 배우면 나중에 아무리 기도하고 노력해도 병세가 호전되지 않을 때, 아무리 애를 써도 무너진 일을 다시 일으킬 수 없게 될 때,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숨을 몰아쉬게 될 때도 담담하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루마니아의 살아있는 순교자인 <리챠드 범브란트> 목사님은 너무도 힘든 시간을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숱한 고문과 독방 생활로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할 때, 기도했습니다. <괜찮습니다. 하나님! 제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셨지만 원망하지 않습니다. 아마 저보다 더 사정이 급한 형제자매들이 많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얼마든지 더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다른 이들을 먼저 도와주시고, 제게는 나중에 천천히 오십시오.> 순응의 믿음을 가지려면 우리 안에 있는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자신을 극복해야 합니다. 자신을 극복하면 바깥의 상황이 어떠하든 승리할 것입니다. 우리가 순응의 믿음을 거지고 견딜 수 있는 근거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지금까지 함께 계셨고, 앞으로, 영원히 함께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예 세상 자체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눈앞의 재난으로부터의 구원뿐만 아니라. 아예 재난이 없는 영원한 천국으로 부르시는 큰 구원을 주실 것입니다. 그때야말로 모든 것이 극복되는 순간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의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십니다. 순응의 믿음을 가질 때, 비로소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에서 채찍질 당한 후에 오히려 능욕당함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은 것을 기뻐했던 사도들처럼 우리도 주님 뒤를 따를 수 있습니다. 순응은 결코 패배가 아니라, 진정으로 이기는 것이요, 진정한 극복입니다. 순응의 믿음으로 코로나19도 견디면서 새해의 여러 어려운 상황을 이겨나가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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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7
  • [통일칼럼] 가혹한 기독교 박해국가, 북한
    북한에는 두 개의 개신교회(봉수교회, 칠골교회)와 1개의 평양교구 천주교회(장충성당), 64개의 불교사찰 등을 만들어 놓고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것처럼 대외에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북한주민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로 김일성 우상화를 강요한다. 대표적인 김일성우상화가 매주 전국민이 실시하는 생활총화이다. 1967년도부터 전국적으로 실시하는 생활총화는 매주 토요일과 수요일, 정치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에 산재한 김일성동지혁명역사연구실(이하 사상연구실)에서 이루어진다. 사상연구실은 당위원회 선전선동부에 의해서 운영되어지는데. 이곳에서 기독교의 예배당과 같은 모임과 학습 등 예배의식을 행한다. 대외적으로 사상연구실은 북한주민들이 김일성의 혁명사상과 주체사상, 그리고 김일성의 높은 덕성을 배우는 곳이라고 선전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김일성 예배당과 같은 곳이다. 북한의 전 지역 당 및 국가기관,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들과 교육문화, 과학기관, 인민군부대 및 경비대 등 인민생활의 모든 영역에 구비되어 있는 사상연구실은, 행정기관, 산업기관, 군대를 포함하여 전국적으로 약 45만여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신조씨는 북한의 ‘당 세포회’는 구역예배이며, 세포위원장(책임비서)은 구역장이며 , 자아비판은 ‘회개’와 같다고 하면서, 학습과 생활총화로 짜여진 북한사회의 체제가 남한의 교회구조와 비슷한 점이 많다고 증언한 적이 있다. 사상연구실에서는 학습활동 이외에 각종 선서모임과 충성의 편지 전달모임, 축전 전달모임 등의 여러 행사를 진행한다. 사상연구실은 일상적이고 세속적인 장소와는 구별되는 엄숙하고 성스러운 장소로 김일성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주체사상의 성소로 간주된다. 예를들어 여성은 반드시 치마를 입고 입장해야 하며, 남성들도 단정한 복장을 한다. 북한에서는 어려서부터 학생들에게 정치교육을 시켜 사회정치활동에 적극 참여하도록 하는데, 생활총화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핵심적인 활동으로서 소학교 2학년부터 시작하여 남녀를 불문하고 평생동안 의무적으로 참여하게 되어 있다. 모일 때마다 약 40~50분간 김일성의 교시나 말씀을 중심으로 자아비판과 상호비판을 통해 철저하게 서로를 감시하게 하며, 무의식중에 김일성우상화를 철저하게 세뇌하고 있으며, 그 시간은 김일성을 예배하는 시간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미국 다음으로 세계 최고의 선교국이 한국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구상에서 가장 혹독한 기독교 박해국이 북한이다. 한국교회가 세계선교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 휴전선 넘어 북한동족 기독교인들은, 북한 안에서 성경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잡혀가 박해받고 수감되고, 지하교회 리더들은 수용소로 수감되거나 잔인하게 순교의 죽임을 당해왔다.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이러한 소식을 반세기가 넘도록 접하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 왔을까? 계속 이대로 있어도 괜찮은 것인가? 또 한해가 그냥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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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7
  • [시사칼럼] 공룡의 세상이 온다
    지금도 심심찮게 공룡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이번 한 달만 해도 그렇습니다. 영국 포츠머트 대학의 국제연구팀은 독일 칼스루에 지역에서 등 뒤에 갈기와 어깨에 가시 모양 조직을 가진 독특한 공룡 화석을 발견하여 ‘우비라자라 주바투스(Ubirajara jubatus)’라는 학명을 붙여 학술지인 <백악기 연구(Cretaceous Research)>에 발표했습니다(12.15, 연합). 그런가 하면 중국 쓰촨성 지공시(Zigong City) 건설 현장에서 한 전직 고생물학자는 용각류 공룡(sauropod dinasaur)의 일부로 추정되는 길이 1.1m, 무게 150~200kg 대퇴골 화석을 발견해서 인근의 공룡박물관에 알렸다고 합니다(12.26, Reuter). 때마침 한국에도 공룡 소식이 있습니다. 부경대 연구진은 울산 유곡동 일대에서 발견된 공룡 발자국들을 면밀히 조사한 결과 무리로부터 뒤처진 초식공룡 한 마리를 육식공룡 한 마리가 단독으로 사냥하는 모습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국제학술지(Episodes)에 게재했다고 합니다(12.29, 아시아경제). 유전공학이 더 발달하면 실제 공룡의 귀환이 영화(Jurassic Park)처럼 가능할까요? 대답 여부와 상관없이, 다른 의미의 공룡은 이미 실재하고 있습니다. 생물학적인 종으로서의 공룡이 아니라, 언어학적인 접사로서의 공룡 말입니다. 공룡기업, 공룡산업, 공룡능선, 공룡선생, 공룡약초 등등 언뜻 들으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말도 있지만 대체로 규모가 거대한(gigantic) 무언가를 묘사할 때 “공룡”이라는 접두어를 붙이는 듯합니다. 그런 의미의 공룡이라면 앞으로 더 개수가 많아지거나 규모가 커지거나 영향력이 거대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코비드(COVID)-19 사태는 가정과 산업 심지어 스포츠 분야에 이르기까지 이미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지만, 실제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지체 현상(time lag)이 존재하기 마련이므로 앞으로 더 큰 변화의 파고가 우리 사회를 덮칠 텐데, 대표적인 예측을 한 가지만 해 보자면 바로 이 ‘공룡의 증가’를 꼽겠습니다. 보다 더 극적으로 표현하라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공룡의 세상이 온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불안정한 시대에 오히려 주식과 채권 시장에서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이는 공룡사단들이 있는 반면, 개미군단은 너무 자주 괴멸당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합니다. 통화시장만의 해프닝이 아닙니다. 최근 네이버의 일본판 모바일 메신저 기업인 ‘라인’이 현재 가장 이용률이 높은 ‘야후재팬’을 합병한다는 소식이 있어 한바탕 난리가 났습니다. 온라인쇼핑과 택배물류의 증가로 인해 인터넷 쇼핑몰인 아마존(Amazon)은 올해 더욱 성장했으며 수년 째 지구 부호 순위 1위를 독차지하고 있는 회장 제프 베조스의 재산은 45억 달러가 늘었다고 하고, 판데믹(pandemic) 시대에 오히려 승승장구하고 있는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Tesla)의 일론 머스크 회장의 재산은 100억 달러나 상승했다고 하니 놀랍기만 합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순항 중인 삼성전자는 코스피 전체의 30% 넘는 약 407조의 시가 총액을 자랑하는데 이는 2위인 SK 하이닉스의 약 8배에 육박하는 수치입니다. 이들 공룡기업은 앞으로 틀림없이 닥쳐올 불황 속에서 덩치를 더 키워나가리라고 예상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교회 영역에서도 공룡이란 말이 심심찮게 나돌고 있습니다. 먼저는 ‘공룡이 버거운 한국 교회’라는 제목으로 등장했는데, 지구연대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 속에서 공룡이란 젊은지구론(Young Earth Creationism)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참으로 이율배반적인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돈 먹는 공룡교회”(최태선) 혹은 “한국교회의 공룡화”(김승연) 내지는 “공동체인가 공룡체인가”(심상철) 같은 제목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공룡교회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는 징후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앞으로 찾아올 혼돈과 무질서 속에서 규모의 경제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렇다면 교회도 최신 미디어 및 온라인 환경과 첨단 교육 시스템을 구비한 기존의 초대형교회들이 생존을 넘어 일종의 블랙홀 같은 중심이 되어 더욱 거대한 육식공룡교회로 변신하고 그 밖의 작은 개체나 초식공룡까지도 다 잡아먹어 버리지는 않을까요? 하지만 지나친 낙담이나 기우는 대주재를 향한 불순종이 될 수 있습니다. 공룡은 이제 화석만 남았지만 끈질기게 살아남은 개체들은 아직도 싱싱한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지 않습니까? 설령 공룡의 세상이 온다 하더라도, 2021년의 교회들이여, 부디 끈끈하게 견디며 주님 오실 때까지 실존하는 힘을 보여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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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7
  • [교회학교를살린다] “새해에 가장 먼저 할 일”
    2021년 새해가 밝았다. 어떻게 보면 단 하루의 차이로 우리는 옛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였다. 마치 새해가 되어 새로운 곳으로 순간 이동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새해에 사람들을 만날 때, 마치 새로운 시간과 공간에 와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인사하고 덕담을 나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여전히 흐르는 시간 속에 있을 뿐이고,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는 현실 속에 놓여있다. 코로나19의 상황은 여전히 심각하고, 가정과 교회, 사회의 고난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이 새해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타개하고 새 희망으로 새해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인가? 마치 새로운 시간과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우리도 새해에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공간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는 없을까?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가 현실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공간으로 가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성경에 보면 참 희한한 교육적인 공간이 나온다. 바로 그리심 산과 에발산이다. 하나님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새로운 시간과 공간이 펼쳐지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반드시 해야 할 일로서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에발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는 일을 명령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굳이 서로 다른 산에서 축복과 저주를 각각 선포하라고 하셨을까? 그런데 그 곳의 지형을 이해하면 그리심산과 에발산 자체가 하나님의 교육도구라는 걸 잘 알 수 있다. 서쪽 길르앗 땅에서 요단강을 건너 동쪽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면 만나는 사마리아지방의 중요한 도시 세겜은 북쪽으로는 에발산, 남쪽으로는 그리심산으로 둘러 쌓인 천혜의 도시이다. 산이 별로 없는 이스라엘 땅에서 산이 있고, 그중에서도 축복의 산인 그리심 산에는 나무도 무성하다. 그러니 목축을 주로 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보기에 그 땅은 꽤나 좋아보였을 것이다. 그 옛날 야곱이 삼촌 라반을 떠나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와서 처음에 정착하려고 했던 땅도 이 세겜이다. 게다가 에발산과 그리심산은 직선거리로 약 삼 킬로 정도 떨어져 있는 상당히 가까이에 있는 산들이다. 실제로 그 땅을 보면 마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 산 사이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는 장면이 그려지는 것만 같다. 하나님은 에발산에는 이 말씀을 지워지지 않는 돌에 새겨놓으라고 하셨고, 그리심산과 에발산에 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계속 새겨놓으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고 보고 듣고 몸으로 체득하는 잊지 못할 교육방법을 사용하고 계신 것이다. 산 이름의 뜻도 의미심장하다. 그리심은 ‘잘라내다,’ ‘분리하다’라는 뜻이 있다.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해 우리는 이전의 불신앙의 모습을 잘라내고 분리시켜야 한다. 에발산은 돌산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그리심산에 비하면 에발산은 돌산으로서 매우 황폐해 보인다. 보이는 모습 그대로 교육효과가 있는 것이다. 신명기에서 신신당부하며 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교육행위를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실제로 수행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 아이성 전투에서 이기고 나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 이 일을 실시하였다. 절반은 그리심산 앞에, 절반은 에발산 앞에 세우고 여호수아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하였다. 여기에는 남자와 여자, 노인과 어린 아이 그리고 이방인까지 공동체에 함께하는 모든 이들이 참여하였다. 그때 이스라엘은 비록 작은 성읍 하나를 차지했을 뿐이고, 그들의 앞에는 아직도 가나안의 수많은 적들만 보일 뿐이지만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은 맹세하였다. 새로운 공간 앞에 서서 이 땅을 차지하게 하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 잊지 않고 살아갈 것을 모두가 다짐하는 새로운 시간을 가졌다. 오늘, 우리는 새로운 해 앞에 서있다. 상황은 그대로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두 갈래길을 제시하고 있다. 축복이냐 저주이냐를 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것인가 아닌 가의 문제이지 상황이 아니다. 상황은 여전히 나아진 게 없고, 앞은 보이지 않지만, 새해를 맞이하며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이 새로운 공간과 시간에 행했던 것처럼 이제 우리와 우리의 다음세대가 하나님의 교육방법에 참여할 때이다. 새로운 해는 새로운 결단으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며 시작된다. 가정과 교회, 직장과 학교 등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공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기적으로 읽고,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를 자주 듣자. 그리고 올해를 시작하며 특별히 온 가족 활동으로서, 캘리그라피로 말씀을 필사하는 노트나 액자를 손수 만들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자. 새해를 맞이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과 손과 발, 우리가 서 있는 모든 공간을 새롭게 가득 채우며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시간을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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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7
  • [의학칼럼] 망막질환이란
    ■망막이 무엇이며 기능은? 안구의 가장 안쪽을 덮고 있는 투명한 신경조직을 망막이라 합니다. 안구 내로 들어온 빛은 망막의 내층을 지나 망막의 시세포에 감지 됩니다. 시세포는 빛 정보를 다시 전기적 정보로 전환하고 이 정보는 망막 내층의 세포를 통해 시신경을 지나서 뇌로 전달 됩니다. 이러한 과정으로 우리는 사물을 볼 수 있습니다. 망막은 카메라의 필름과 유사한 작용을 하나 실제로는 카메라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정교하고 복잡한 과정을 통해 그 기능을 수행합니다. ■망막질환의 종류는? 최근 망막이상으로 치료를 받는 환자가 매년 12%씩 증가할 정도로 망막질환 발병율이 높아지는 추세라 각별한 주의가 요구됩니다. 황반변성, 근시성 맥락막신생혈관, 결절맥락막혈관병증, 중심장액맥락망막병증, 황반원공, 황반이상증, 당뇨망막병증, 망막박리, 망막종양, 외상에 의한 망막손상, 빛에 의한 망막손상 등 여러 가지 망막질환 등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황반변성, 망막박리, 당뇨망막병증 등이 대표적인 망막질환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오늘은 황반변성에 대해 자세히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황반변성이란? 60대 이후 흔히 발생하는 노화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질환입니다. 망막의 중심부에 위치한 신경조직을 황반 이라고 하는데, 시세포의 대부분이 이곳에 모여있고 물체의 상이 맺히는 곳도 황반의 중심이라 시력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시력은 물체의 상이 황반의 중심에 맺힐 때 가장 예민하고, 망막의 주변으로 갈수록 갈수록 저하됩니다. 이런 황반이 노화, 유전적요인, 독성, 염증 등에 의해 기능이 감소하게 되고 심할 경우 시력을 완전히 잃기도 합니다. ■황반변성의 원인은? 황반변성의 원인은 명확하게 규명되지는 않았습니다만 현재까지는 노화로 인해 소수성의 노폐물 축적으로, 망막에 저산소증이 발생하여 황반 부위가 서서히 퇴화하게 되는 것을 주요 원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망막과 맥락막에 비정상적인 혈관이 생기고, 이 혈관에서 누출된 혈액이나 액체가 원인이 되어 시력저하를 유발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출혈의 위험이 있는비정상적인 혈관을 생성시키는 가장 큰 원인으로는 나이를 들 수 있으며 이 외 흡연, 튀긴음식, 햄버거 등의 고지방 고열량 식습관, 스트레스, 비만, 고혈압, 혈중 콜레스테롤, 심혈관계 질환, 유전 및 가족력 등의 요소들이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황반변성의 증상은? 황반변성 초기에는 환자 스스로가 뚜렷한 이상을 찾기 어렵습니다. 컨디션이 나쁘면 시력이 떨어지지만 컨디션이 회복되면 시력도 다시 회복됩니다. 특히 황반변성이 한쪽 눈에 먼저 발병한 경우에는 반대쪽 눈을 사용해 이상을 느끼지 못할 수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사물의 형태를 구분하는 능력이 떨어진다거나, 욕실의 타일이나 중앙선 등 선이 굽어보이거나, 책이나 신문을 읽을 때 글자에 공백이 생기거나, 사물의 가운데가 검거나 빈 부분이 있을 때, 물체가 찌그려저 보일 때, 색깔이나 명암을 구별하는 능력인 대비감이 떨어지는 증상이 보인다면 황반변성을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노안과 황반변성의 구별법은? 황반변성으로 진단받은 환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나이에 따른 노안으로 여겨, 병원을 찾지 않고 방치하다가 질환이 상당히 진행된 이후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안은 가까운 곳의 작은 글자를 보기 어려워지는 경우로 돋보기 등의 안경 착용으로 충분히 교정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황반변성의 경우에는 기존시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가까운 곳뿐만 아니라, 먼 곳을 보는 것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특히 사물이 찌그러져 보이거나, 직선이 휘어 보이고 중심이 잘 보이지 않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면 반드시 병원을 찾아 진단을 받아보셔야 합니다. ■황반변성 치료가 가능한가요? 자주 하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황반변성은 조기 진단과 꾸준한 치료가 필요한 질환입니다. 약물 투여나 광역학치료, 유리체강내 주사, 수술 등 다양한 방법으로 치료가 진행됩니다. 일찍 발견할수록 망막세포 손상이 적어 치료효과도 그만큼 좋으며, 이미 망막 신경 손상이 많이 진행된 경우에는 치료를 하더라도 시력 호전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정기적인 안과검진으로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생활 속 습관을 통해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비만, 흡연, 고혈압 등의 조절가능한 인자를 줄이도록 애쓰는 것이 중요하다. 흡연은 맥락막 순환에 손상을 주어 혈중 항산화인자를 떨어뜨리고, 맥락막 혈관수축을 야기하여 저산화 손상을 야기하므로 황반변성의 위험성이 있는 환자는 반드시 금연하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황반색소는 노화에 의한 손상을 감소시켜 망막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역할을 하므로, 야채와 과일을 통째 충분히 섭취하거나 상용화된 비타민제를 복용함으로써 황반변성의 예방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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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7
  • [부산기독교이야기] 빌 왈레스와 침례병원
    6.25 전쟁 중 부산에서 시작된 의료 기관으로 침례병원이 있다. 이 병원은 ‘왈레스기념 침례병원 Wallace Memorial Hospital’으로 불려왔는데, 이 병원이 실제로 개원한 것은 1955년 11월이었지만 진료소로 출발한 것은 1951년 11월 22일이었다. 이렇게 보면 전쟁 중 가난한 피난민을 치료하기 위한 구제 의료기관으로 출발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병원이 기념했던 왈레스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그는 윌리엄 L. 왈레스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보통 빌 왈레스(Bill Wallace, 1908-1951)로 불렀는데, 1908년 1월 17일 테네시주 녹스빌에서 의사의 아들로 출생했다. 그는 처음부터 의사가 될 생각은 하지 않았고 자동차나 공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브로드웨이침례교회(Broadway Baptist Church)에 출석했는데, 신앙심 깊은 학생이었고, 고등학생인 17세 때인 1925년 7월 5일 자신의 생애를 의사로 헌신하기로 작정하고 의학도의 길을 가게 된다. 그 후 10년간은 의사가 되기 위한 수학의 날들이었다. 테네시대학교에서 수학하고 테네시주의 멤피스의과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가 되었다. 그리고는 녹스빌의 녹스빌병원에서 외과 레지던트 훈련을 받았다. 그의 어머니는 11살 때 사망했고 아버지는 그가 의대를 졸업하기 2년 전에 사망했다. 그에게는 오직 누이(Ruth Lynn)만 남이 있었다. 의료선교사로 살기로 작정했던 그는 남침례교해외선교부(Southern Baptist Foreign Mission Board)에 의료선교사를 자원하였고, 1935년 7월 25일 공식적으로 남중국 우저우(梧州)의 의료선교사로 지명 되었다. 우저우는 중국남부의 광시좡족(廣西壯族) 자치구의 도시였다. 그는 이곳으로 가 침례교병원이었던 스타우트기념병원(Stout Memorial Hospital)에서 15년간(1935-1951) 사역했다. 1930년대 초 국제정세가 급변하기 시작했고 특히 일본의 군국주의가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일본은 세계전쟁에 뛰어들었고 중국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했다. 도처에서 분쟁과 전쟁이 일어나 정국이 어수선했다. 심지어는 폭탄이 날아들고 병원도 불안했다. 그러나 빌 왈레스는 포탄이 떨어지는 순간에도 피하지 않고 환자들을 치료하며 수술을 마칠 때까지는 외부 환경에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진실로 신실한 의사였다. 1950년 12월 18일 시련이 닥쳐왔다. 19일에는 중국 공산당이 병원으로 들이닥쳤고, 의도적으로 왈레스를 체포했다. 그는 한 번도 권총을 소지한 적이 없으나 미리 권총을 갇다 두고는 왈레스를 모함하여 미국 간첩으로 체포하여 온갖 고문을 가했다. 결국 그는 1951년 2월 10일 죽임을 당했다. 야만적인 고문을 숨기기 위해 시신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3월 12일 자 타임지(Time)는 그의 순교를 보도했다. 공산군은 범죄를 숨기기 위해 아무도 모르게 매장했으나 후에 묘지를 찾아 그가 평소 즐겨했던 빌립보서 1장 21절,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 죽는 것도 유익하니라”는 묘비를 세웠다고 한다. 이처럼 43세의 나이로 중국에서 순교한 왈레스를 기념하기 위한 병원이 침례병원이었다. 침례병원은 의료선교사로 봉사하던 중 중국에서 순교한 미국인 의사 빌 왈레스의 숭고한 뜻을 기념하고, 6·25 한국전쟁으로 어려움에 처한 한국민을 돕기 위해 1951년 11월 22일 미국남침례교 한국선교회가 부산시 남포동 2가 22번지 부산침례교회에 천막 진료소를 열면서 출발했다. 진료소장은 브리안(N. A. Bryan, MD)의사였다. 그러다가 1955년에는 영도구 영선동 2가 31번지에서 정식 병원을 개원하였고, 이듬해 4월 초대원장 로버트 라이트(Robert Wright) 의사가 부임했다. 1964년 3월에는 수련병원으로 지정되었는데 남침례교회의 재정 지원으로 부산시 동구 초량 3동 1147-2번지에 80병상의 병원을 신축하고 1968년 11월 1일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이곳에서 30여 년 간 의료활동을 전개했던 침례병원은 1999년 12월 1일 금정구 남산동 374-75번지로 이전하였다. 신축병원은 지하2층 지상12층 600병상 규모로 발전하였으나 부산의 외각 지역이라 환자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등 여러 요인으로 경영난에 지면하였고, 의료진 이탈과 임금 체불이 이어지면서 2017년 1월 27일자로 휴원하였고, 7월에는 법원으로부터 파산 선고를 받고 결국 회생하지 못했다. 피난민을 위한 선한 의지로 출발하여 왈레스기념병원으로 불리던 의료기관의 소멸은 가슴 아픈 종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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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1-01-07
  • [서임중칼럼] Good News
    12월이 시작되면 어디에서도 성탄 케롤송이 들리는 세월이 있었다. 어쩌면 이젠 그 세월은 점점 추억이 되는 듯해서 씁쓸하다.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그 성탄절이 되면 나눔과 사랑의 따뜻함을 마음에 담는 행복함이 있었다. TV도 라디오도 안방에 전달하는 뉴스는 희망과 감동의 따뜻함이 많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방송의 뉴스를 듣지 않는 습관이 되었다. 뉴스시간이 되면 채널을 돌려버리고 만다. 딱히 무엇 때문이라고 표현할 수 없지만 나만 그럴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좋은 소식이 안방에 전달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좋은 소식은 고사하고 우울하고 짜증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이야기들만 들려오는 뉴스를 듣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대통령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을 하고 있다. 전대미문의 법조계 수장들의 샅바싸움에 진절머리가 난다. 여의도 1번지에서는 내로남불이라는 말을 노래처럼 부르는 選良들의 의식에는 국민이 없다. 거대여당은 의석수의 힘을 믿고 온갖 법들을 밀어붙이기로 통과 통과 행진을 전개한다. 야당은 골리앗 앞에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속수무책인 사울의 형국이다. 그래도 밥값은 해야겠다는 명분으로 뻔한 수가 보이는데도 헛발질만 하고 있다. 차라리 성경을 읽고 골리앗을 대하는 다윗의 전법이라도 배웠으면 좋았을법하다. 코로나19가 대구에서 확산되었을 때 정부는 병상확보와 방역체계를 완비하겠다고 대국민 약속을 했지만 1년이 지난 작금의 코로나19 확산상황에서 들여다보니 말뿐이었지 준비상황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정부 여당이 젊은 의학도들의 시위에 화난다고 의사시험을 묵살시키는 한치 앞을 보지 못하는 정책을 보면서 작금의 코로나19 방역체계를 위한 의료진 수급의 차질은 예견된 일이었다. 민주당 정권은 초기부터 부동산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해법은 고사하고 24전 24패를 하고 국토부장관이 해임되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윤모 여당의원은 위안부 할머니 생일을 앞세워 공교롭게도 자기 생일날 노마스크로 와인파티를 하여 국민의 공분을 샀다. 이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국민은 국태민안을 기대하고 거대여당을 만들어 주었는데 그들의 생각에는 그들만이 있지 국민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굿 뉴스는 없는가? 그렇지 않다. 개인적인 굿 뉴스, 가정적인 굿 뉴스, 회사, 교회 국가적인 굿 뉴스도 있다. 진정한 굿 뉴스가 무엇일까?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이 진정한 굿 뉴스다. 그런데 소위 내편의 뜻대로 된 내편만의 좋은 소식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기뻐할 굿 뉴스가 있다. 그 소식이 무엇일까? 누가복음 2:10~11절에서 그 답을 찾는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그렇다. 인류에게 굿 뉴스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성탄 소식은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다. 그래서 신약성경은 Good News, 좋은 소식이다. 왜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심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가? 성탄이 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가? 첫째는 ‘인카네이션’의 기쁜 소식이다. 요한복음 1:14절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는 뜻은 ‘인카네이션’(Incarnation) 곧 成肉身이다다. 즉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뜻이다. 그것은 낮아짐의 교훈이다. 낮아짐이 왜 좋은 소식이 되는가? 죄로 인하여 사망에 이르게 된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낮아진 모습으로 섬기고 대신 죽는 사역을 통해 평화와 생명의 구원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의 진정한 의미는 계급의 차이, 빈부의 차이가 없는 예수 안에 하나됨의 일치와 연합의 아름다움이 연출되는 것에서 찾는 것이다. 그것이 굿 뉴스, 성탄의 은총이다. 둘째는 ‘소테리아’의 기쁜 소식이다. 누가복음 2:11절의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와 마태복음 1:21절의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는 말씀이 굿뉴스다. ‘구원’이란 말의 히브리어는 '예수아' 이고, 헬라어는 '소테리아'다. 곧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신 성탄은 구원의 좋은 소식이다. 죄에서 환난에서 질병에서 멸망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성탄이 굿 뉴스다. 셋째는 ‘임마누엘’의 기쁜소식이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마1:23)”라는 뜻이다. 세상에 이보다 더 큰 기쁜 소식이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고난과 슬픔을 당할 때도 함께 하신다. 약할 때도, 힘들 때도, 병들었을 때도, 외로울 때도 곁에 함께 계셔서 위로해 주신다. 이것이 성탄의 굿 뉴스다. 그래서 성탄의 의미는 작은자들, 곧 지금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섬김과 나눔과 사랑으로 함께하는 것이다. 넷째는 ‘에이레네’의 기쁜 소식이다. ‘에이레네’는 ‘평화’, 히브리어는 ‘샬롬’이다. 예수님의 성탄은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사람들중에 평화가 된 것이다.(눅2:14) 현대인들의 마음에 참된 평화가 없지만 그런데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마음에는 평화가 충만하다 그것이 성탄, 굿뉴스다. 세계민족의 인종갈등, 대한민국의 남북의 갈등, 국내정치의 여당과 야당의 갈등, 사회 계층의 갈등, 기업의 노사갈등, 한국교회의 갈등, 가족갈등의 관계가 성탄의 굿 뉴스를 통하여 화해와 연합과 평화의 은총이 임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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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22
  • [성서연구] 성탄은 회개를 촉구합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노회 주최 성경퀴즈대회에 나갔습니다. 그날 <성경 전체의 주제를 담은 요절은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저는 요한복음 3장 16절이라고 대답했고, 정답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버님께서 평소에 그렇게 말씀하신 게 생각났던 것이지요. 이 문제는 다분히 주관적인 문제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생각하니 요한복음 3장 16절이야말로 성경 전체의 주제라고 생각됩니다. 그 이유는 성경의 주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은 예수님을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이고, 신약은 그 약속의 성취를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생명을 주는 데 있습니다. 병들고 쇠약해지는 땅의 생명이 아닌, 천국의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은 인간의 죄입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 인류는 예외 없이 죄인이 되었습니다. 죄는 양심을 죽게 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며, 멸망으로 끌어갑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구원이 필요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외치신 첫 메시지는 회개였습니다. 마태복음 4장 17절을 보면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길잡이로 왔던 세례 요한의 첫 메시지 역시 회개였습니다.(참고, 마태복음 3장 1-2절) 기독교는 죄를 외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종, 제자 등의 여러 신분을 가집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제일 먼저 인식해야 할 신분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존재라는 것이고, 그다음에 신분은 죄인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죄인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 서지 않는 기독교가 생겼습니다. 주의 종, 목회자, 선교사, 장로, 집사, 권사 등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데는 익숙한데, 죄인으로는 서지 않습니다. 이러는 동안 자신이 죄인임을 망각했고, 따라서 회개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첫 메시지인 회개를 무시하는 기독교가 등장했습니다. 회개 없는 기독교는 천국 없는 기독교가 되고 맙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하셨는데, 회개하지 않으니 기독교는 천국을 상실하고 땅의 나라에 함몰되었습니다. 기도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위한 것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복주의 신앙은 요한복음 3장 16절을 잊게 하여, 하나님의 사랑, 독생자를 주심, 멸망에서 영생으로 가는 복을 잊었습니다. 교인이라 하면서도 천국보다, 장례식장의 조화 숫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는 산헤드린 공회원이었고, 랍비로서 땅의 나라에서 최고로 출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심으로써 그의 급소를 찌르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3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땅의 나라에서 성공한 니고데모에게 하늘나라를 바라보도록 촉구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은 요한복음 3장 16절로 이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땅에서 하늘로 올리시는 분이요, 그것이 궁극적 구원입니다. 성탄의 계절입니다. 예수님의 성탄은 십자가로 가는 첫걸음이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원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배후에 죄가 있습니다. 따라서 죄를 회개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성탄절은 오히려 더 많은 죄를 짓는 기회가 될 뿐입니다. 이번 성탄절에는 값싼 축하 대신 죄를 회개하고 십자가를 바라보길 원합니다. 성탄의 첫 메시지는 회개와 천국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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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22
  • [시사칼럼] 크리스마스트리가 한국 나무였다고?
    <구름바다에 잠겨 마치 섬처럼 보이는 봉우리들마다 아직도 활짝 피어있는 눈꽃을 이고 서 있는 작은 나무 세 그루가 있었습니다...>『뾰족이 삼총사의 눈물』(지식나이테, 2018)이라는 책의 첫 문장입니다. 그런데 아주 흥미로운 대목이 등장합니다. <“근데 이 나라에는 나와 같은 ○○나무가 많니?” 크리스 아저씨가 묻자 오솔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네. 높은 산 위에 넓은 ○○나무 숲이 있어요. 거기엔 크리스 아저씨보다 훨씬 키가 큰 나무도 많아요.” 오솔이의 대답을 듣고 크리스는 흥미로운 듯 귀를 쫑긋 세웠다.>(25-26 p.) 여기서 “크리스”는 외국에서 팔려온 나무입니다. 그런데 뜻밖에 자기와 같은 ○○나무들이 많다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다는 설정입니다. 저자는 무슨 나무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요? 다시 책의 머리말 앞부분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연말이 되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설치되어 화려한 장식과 반짝이는 조명으로 지나가는 사람의 눈길을 끕니다. 그런데 외국에서 크리스마스트리로 많이 사용하는 나무가 우리나라가 고향인 구상나무라는 것을 아시나요?> 원래 서구에서는 성탄절에 전나무를 주로 썼습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1483-1546)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전나무 가지에 쌓인 눈이 달빛을 받아 어두운 숲속을 환히 비추는 것처럼, 어둠 속의 초라한 나무 같은 인간도 예수님의 빛을 받으면 주변을 아름답게 비출 수 있다.”(Luther) 그래서 작은 전나무 하나를 가져다가 눈 모양의 장식을 달았던 것이 오늘날 크리스마스트리의 유래가 되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전나무는 일단 키가 커서 자르기도 힘들고 잎도 날카로워서 손을 베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그러다 홀연 완벽한 대체재로 나타난 나무가 <구상>입니다. 실제로 캐나다의 한 온라인 식물 판매점은 구상나무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초록 잎 뒷면에는 은백색 빛이 어려 있습니다. 이 나무는 무거운 크리스마스 장식을 매달아도 견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신의 집을 신선한 향기로 가득 채울 겁니다.”(동아사이언스) 이제 앞서 소개한 “크리스 아저씨”라는 이름의 뜻을 알겠습니다. 크리스마스트리로 쓰려고 외국에서 수입한 나무인데, 와서 보니 자기와 같은 나무가 많이 있고 게다가 원산지가 바로 이 땅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던 게지요. <구상> 자체가 순 우리말입니다. 제주도 방언인 “쿠살낭”에서 유래했는데 여기서 “쿠살”은 성게, “낭”은 나무를 의미하며 이파리가 마치 성게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국립산림과학원의 발표에 따르면(2019. 12) 주로 한라산에 서식하던 구상나무가 외부에 알려진 때는 1907년입니다. 식물학자 출신인 프랑스 신부 포리(Urbain Faurie)와 선교사 타케(Emile Joseph Taquet)가 한라산에서 채집한 표본을 보내자 영국 식물학자 윌슨(Earnest Wilson)이 연구하여 1920년 한국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학명(Abies koreana)으로 발표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고, 원래는 가구 제작이나 관상용 조경수로 쓰이다가 어느 날 크리스마스트리로 잘 어울리는 걸 알게 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는 전언입니다. 마치『세 나무 이야기』(안젤라 헌트, 두란노, 1993)의 실사판 같습니다. 저마다 꿈꾸던 세 나무가 버려졌으나 결국은 예수님의 구유와 나룻배와 십자가로 영광스럽게 쓰임 받았다는 아름다운 이야기처럼, 한라산 고지에서 외롭게 꿈꾸던 <구상>은 복음전파자들에 의해 발견되어 세상에 나가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리는 나무 중의 나무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이사야서 구절 하나를 소개합니다.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사 49:6). 여기서 “나의 종”으로 불리는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로서(사 49:7) 이 땅에 오실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위로하시고 살려내시고 새롭게 하셨습니다. 성탄은 인간만의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보잘 것 없는 땅 끝 산간벽지의 구상나무를 이처럼 당신을 상징하는 거룩한 도구로 삼아주시지 않았습니까? 이맘때쯤이면 국내외 안팎으로 숱하게 볼 수 있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원래는 한국 나무였다니! 100년 만에야 밝혀진 놀랍고 반가운 소식과 함께 그러나 정작 이 땅에서는 멸종위기종(EN)으로 전락했다는 안타까운 속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IUCN, 세계자연보존연맹). 그래도 그 씨가 90여 개의 품종으로 개발되어 온 세상에 퍼져있다고 하니 그 또한 복음의 강력한 역사를 보는 듯해서 반갑기도 합니다. JESU JU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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