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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음악칼럼] 찬송(예배)하며 사는 사람들 7
    누구나 인정하듯 너무도 복잡하고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등 사회 전반이 다 힘들어 하는 것 같다. 크리스천들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것 같다. 무슨 대단한 역할이 아니라 조용히 자기 자리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라는 주의 뜻을 실천하는 그것이다. 그러나 이조차 연약한 우리가 쉬이 감당할 수 없다면 약한 나로 강하게 하시는 주께 구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이 땅위에서의 본분을 다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살다 보면 알게 돼 일러주지 않아도 너나 나나 모두 다 어리석다는 것을 살다 보면 알게 돼 알면 웃음이 나지 우리 모두 얼마나 바보처럼 사는지 잠시 왔다 가는 인생 잠시 머물다 갈 세상 백년도 힘든 것을 천년을 살 것처럼 살다 보면 알게 돼 버린다는 의미를 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부질없다는 것을 살다 보면 알게 돼 알면 이미 늦어도 너나 나나 모두 다 미련하다는 것을 살다 보면 알게 돼 알면 이미 늦어도 그런대로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잠시 스쳐가는 청춘 훌쩍 가버린 세월 백년도 힘든 것을 천년을 살 것처럼 살다 보면 알게 돼 비운다는 의미를 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꿈이었다는 것을 모두 꿈이었다는 것을 철들면 죽는다는 속된 말이 있다. 바꿔 말하면 죽기 전에는 철이 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네 인간들은 주를 인하여 구원받아 성도가 되고 성화의 길을 걸어간다. 짧은 시간에 성화되어 거룩한 삶을 살아가면 좋겠는데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안타깝지만 사실이고 현실인 것이 분명하다. 위의 시는 한국의 유명 대중가수가 부른 노랫말이다. 인생 후반기를 살아가면서 뒤를 돌아보니 잠언서를 비롯한 많은 성경구절들이 저 노랫말과 오버랩 되면서 너무 마음에 와 닿았다. 마지막 가사 꿈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세상적인 욕망과 욕심 그리고 그렇게 놓지 못하고 붙잡으려 몸부림쳤던 그 모든 것들이 다 부질없는 것들이었음을 설명하는 것 같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이 땅을 떠나는 많은 세상 사람들의 한결같은 모습은 미련과 회한, 부질없음과 허무함에 아쉬움의 눈물을 흘리며 인생의 덧없음을 온 몸으로 고백하며 생을 마감한다. 그렇지만 우리네 성도들의 결국과는 많이 다르다. 주를 시인하고 믿는 자들의 꿈은 이제껏 놓지 못했던 세상의 모든 것들을 겸손히 주 앞에 내려놓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찬송하며 천국을 향하여 나아가기에 그렇다. 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축복인가? 우리 입술에 노래가 계속되어야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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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08
  • [목회자칼럼] 고장 난 나침반은 떨지 않는다
    며칠 전, 책상 정리를 하다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 두었던 나침반을 발견했습니다. 요즘에는 핸드폰으로 길도 찾고, 방향을 알려주는 앱도 있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먼 길 여행을 떠날 때, 등산을 할 때에는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필수였습니다. 예전에는 즐겨 썼는데 어느 순간부터 쓸 일이 없어진 나침반을 발견하곤 반가운 마음에 이리저리 방향을 맞춰보니 고장이 났는지 바늘 끝이 떨지 않고 멈춰 있었습니다. 나침반은 바늘 끝을 떨고 있음으로 나침반의 사명을 감당합니다. 그러나 고장이 난 나침반은 더 이상 떨림이 없습니다. 오랫동안 서랍 속에 묵혀 두어 고장이 난 나침반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목회도, 내 사명도 어쩌면 나침반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속되는 떨림으로 나침반이 만들어진 목적, 즉 방향을 맞추는 것에 최선을 다하듯 나 또한 끊임없는 고민과 갈등으로 목회와 사명을 감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너무 많은 고민과 갈등들이 목회를 더 힘들게 하는 게 아닌가라는 우려도 하지만 고장 난 나침반을 보며 나의 갈등과 고민이 바로 살아있는 증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오헨리의 소설 ‘마지막 잎새’의 존시는 재능 있는 화가이지만 폐렴에 걸려 삶의 의욕을 모두 잃었습니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빈 벽을 보며 창밖 벽에 붙어 있는 담쟁이덩굴의 잎을 세고 있습니다. 마지막 잎사귀가 떨어지면 자신도 죽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어느날 폭풍이 온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존시는 폭풍과 함께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자신도 죽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더 우울함 속에 갈등을 겪습니다. 마음 속 저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는 살고 싶은 마음, 하지만 살 수 없다는 현실 앞에 폭풍의 밤을 보낸 후, 다음날 떨어지지 않은 잎새를 보며(물론 어느 화가의 그림이지만...) 삶의 의지를 되찾습니다. 마지막 잎새의 존시처럼 때로는 내 안에 갈등을 통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기도 합니다. “과연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은 무엇일까?” “어느 경계까지가 주님이 하시는 일이고, 또 어느 경계까지가 내가 하는 일일까?” 나는 오늘도 갈등 속에 떨고 있습니다.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지금까지 달려왔는데, 신앙의 회복은 무엇이고, 또 참된 치유는 무엇일까?” “목회자로서 내가 추구하는 것은 주님의 뜻과 합한 것일까?” 나는 오늘도 흔들리며 떨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성경의 인물들 중에서도 나와 비슷한 갈등을 겪은 인물이 있었음을 발견합니다. 구약의 광야길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스라엘 백성과 생각이 달랐습니다. 남들은 모두 이 방향이라고 하는데, 둘만 저 방향이라고 하니 얼마나 많은 갈등과 떨림이 있었을까요? 신약의 바울을 보니 선교여행을 떠나며 동역자들과의 갈등, 복음을 전할 때 그 지역 사람들과의 갈등들을 통해 수많은 떨림이 있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바울은 갈등이 있었기에 자신들의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었고, 떨림이 있었기에 늘 분별하는 자세로 사명을 이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의 삶도 저와 혹은 성경의 인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매일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으로 살아가려고 애쓰지만 갈등과 떨림이 늘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습니다. 부모로서 자녀를 양육할 때 무한한 사랑으로 수용해야 할 범위와 훈계와 절제를 가르치는 경계의 갈등, 공동체가 나의 사적인 영역까지 침범할 때,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삶의 터전인 직장과 교회 사이에서의 시간 분배 갈등 등 나침반이 떨리듯 우리는 수많은 떨림 속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또 이런 갈등들이 있지는 않나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명을 감당한다고 목소리는 높이지만, 교회의 양적 부흥을 갈망하는 마음과 질적 성숙을 추구하는 두 마음의 갈등, 인정받고 유명해지고 싶은 솔직한 내면의 갈망과 오늘의 삶에 만족하며 자족할 줄 아는 갈망의 갈등, 목회자로서 목회에 전념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 이중직을 해야 하는 상황의 갈등 등 목회자로서의 갈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고장 난 나침반은 떨지 않듯, 우리가 지금 수많은 고민과 갈등 속에 영혼이 떨고 있다면, 이는 분명 내 삶이 고장 나지 않았다는 증거요, 살아 숨 쉬며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는 확신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처럼 갈등 속에 떨고 있나요? 아니면 고장 난 나침반처럼 멈추어져 있나요? 뜨거운 여름을 보내며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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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08
  • [이상규 교수의 역사탐색] 기도로 출범한 구미위원부와 이대위 목사
    1948년 5월 10일 선거를 통해 198명의 제헌국회의원을 선출하고, 5월 31일 오전 10시 구 중앙청 회의실에서 대한민국 국회를 개원했을 때 임시의장이었던 이승만은 서울 종로 갑구에서 당선된 이윤명 목사에게 기도를 부탁한 일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 땅에 축복하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주님께 저희들은 성심으로 감사하나이다”로 시작되는 이 기도문은 대한민국 공문서 1호라고 할 수 있는 국회속기록 제일 앞 부부분에 기제 되어 있다. 공식 순서에도 없는 기도를 부탁한 것은 “종교사상이 무엇이든지 누구나 오늘을 당해가지고 사람의 힘으로만 된 것이라고 우리가 자랑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이승만의 신앙적 확신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정사(政事)에 앞선 이승만의 기도요청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 최근 김정민 박사에 의해 공개되었다. 연세대학교에서 이승만 연구로 박사학위를 수득한 김정민 박사는 「월드뷰」 2023년 4월호에 기고한 “대한민국임시정부 독립외교의 시작은 기도였다”라는 글에서 1919년 8월 27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를 전담했던 구미위원부 출범식에서도 이승만은 이대위 목사에게 기도를 요청했다고 한다. “이대위 박사께서 목사로서 기도로 구미위원부 창립식을 열어주시겠습니다.” 이 요청에 따라 이대위 목사는 회의에 앞서 1,854자에 이르는 긴 기도로 회의를 시작했다고 한다. 영문으로 기록된 이 기도문 전문이 김정민 박사에 의해 번역되어 위의 잡지에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3.1운동 이후 독립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고 국내외에서 명칭을 달리하는 여러 개의 임시정부가 조직되었는데, 1919년 9월 11일에는 국내외 7개의 임시정부들이 통합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개편되었다. 초대 대통령은 이승만이었고, 이후 김구, 이승만, 박은식 등이 임정의 수반을 거쳤다. 그런데 통합된 임시정부가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선출하기 약 2주일 전인 1919년 8월 25일 이승만은 한성정부(漢城政府) 집정관 총재 자격으로 구미위원부(Korean Commission)를 설치했다. 민족의 대표성을 지닌 외교기관의 출범이 시급하다고 본 것이다. 위원장은 김규식이었고 위원은 송헌주와 이대위였다. 그런데 이 구미위원부가 공식 출범하게 된 8월 27일 공식적인 회의에 앞서 이승만은 이대위 목사에게 시작하는 기도를 요청한 것이다. 이런 점을 보면 이승만에게는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라는 확신과 기독교 이념에 기초한 건국 이상을 지닌 분임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때 기도했던 이대위(李大爲, David Lee, 1878-1928) 목사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김정민 박사에 의하면 이대위는 1878년 평안북도 강서에서 출생하였으니 이승만 보다 3살 아래였다. 일찍이 기독교를 받아드리고 유학차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때는 1903년이었다. 이때부터 동포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단합을 모색했고, 1905년 4월에는 민족운동 기관인 공립협회 설립을 주도하였다. 이런 와중에서도 학업에 정진하여 1908년 포틀랜드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6월 22일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왔고, 그해 가을 UC 버클리대학교 역사학과에 입학하였다. 이때부터 이대위는 <공립신보>, <대도>, <신한민보> 등에 글을 발표하는 한편 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2월에는 국민회의 설립에 관여하였고, 1910년 1월에는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 부회장으로 국민회의의 기초를 닦았다. 그해 일본이 조선을 강점하자 애국동맹단을 조직하여 저항하였다. 그런데 그가 신학공부를 시작하기도 전인 1911년 2월 32살의 나이로 상황한인(감리)교회 전도사로 부임했다. 윤병구 전도사의 후임이었다. 이때부터 50세가 되는 1928년 6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17년 간 이교회에서 목회자로 활동했다. 그런데 1912년에는 집사목사(deacon) 안수를 받았고, 1913년 5월 14일에는 버클리대학교를 졸업했다. 이 대학에서 한국인 최초로 학사학위(Social Science)를 받았다고 한다. 1918년 4월 25일에는 산 안셀모에 있는 센프란시스코신학교를 졸업하고 신학사 학위를 받았다. 1918년의 일이었다. 그해 10월 10일에는 미국남감리교 태평양 연회에서 드 보세(Du Bose) 감독에게 '장로목사'(elder) 안수를 받았다. 이처럼 면학과 목회활동과 함께, <대도>와 <신한민보>의 주필로서의 문필활동, 그리고 민족 독립운동에도 깊이 관여하였다. 그래서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 총회장으로 선임되었고, 1919년 3월 미국에서 독립선언서에도 이승만 안창호 박용만 등과 같이 서명하였고, 1919년 8월에는 구미위원부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그래서 그 출법식에 대표기도하게 된 것이다. 이승만은 제헌국회 개원식에서만이 아니라 임시정부 시절에도 기도로 회무를 시작하였고, 이를 통해 이대위라는 한 인물과 조우하게 된다. 그러기에 역사연구란 사건과 인물과의 만남(encounter)이라 하지 않았던가! (202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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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3-09-08
  • [서임중칼럼] 진실과 사실과 왜곡의 줄타기
    유구무언(有口無言)이란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다는 뜻이다. 너무도 과분한 은혜를 입을 때도 그렇고, 기가 막혀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할 때도 그렇고, 잘못을 저지르고 사실이 드러날 때도 그렇다. 살아가노라면 진실과 사실과 왜곡에 혼돈되어 정사(正邪)를 분별 못 하고 우(愚)를 범할 때가 있다. 요셉이 보디발 장군 아내의 유혹을 거절하고 감옥에 갔을 때의 당시 상황에 접근해 보면 어떤 사람은 노예 주제에 분수를 모르고 주인마님을 엿보다가 옥살이한다고 진실을 왜곡하여 비난하고, 어떤 사람은 요셉이 주인마님 방에서 황급히 뛰쳐나오는 것은 사실이 아니냐고 역설한다. 그런데도 요셉은 어떤 변명도 항변도 하지 않았으니 사실일 것이라고 비난을 더 한다. 그러나 그 사건의 진실은 하나님과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만 아는 것인데 보디발의 아내가 왜곡하여 보디발에게 이야기하여 요셉이 감옥에 가게 된 왜곡의 대표적 사건이다. 세상 방법의 법리적 결론은 왜곡이 진실을 이긴 것 같다. 약자로서의 요셉은 강자로서의 보디발의 아내를 이길 수 없었다. 그래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회자한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하나님은 이 상황을 다 보고 계신다는 것이며,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것이다. 네델란드의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루벤스의 작품 <simon과 pero> 명화(名畫)가 있다. 그림의 내용을 모르면 춘화도 같다고 왜곡한다. 그림의 내용으로서는 노인이 젊은 여인의 젖을 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 그림의 진실은 아사(餓死)로 죽어가는 아버지를 향한 딸의 지극한 효성의 마음을 표현한 루벤스의 작품이다. 진실을 알기 전에는 사실로 평가하고 더 나아가 왜곡하여 비난하게 되지만 진실을 알고 나면 숙연해지는 것이다. 은퇴 후 9년을 지나면서 전국 600여 교회 부흥사경회를 인도했다. 크고 작은, 도시와 농어촌, 산골과 개척교회를 다니면서 듣고 보고 느낀, 지상교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분쟁이었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드러나지 않은 진실과 함께 사실과 왜곡의 줄타기로 인한 것이 대부분이다. 은혜와 평강으로 거룩한 동행을 노래하던 교회가 한 순간에 분쟁으로 벌판이 되어가고, 헐뜯고 비방하는 아귀다툼이 되고, 결국에는 산산조각이 난 그릇처럼 되는 것을 본다. 그 분쟁의 중심에는 진실을 추구하는 의지는 찾아볼 수 없고, 사실과 왜곡의 줄타기로 인하여 벌판이 되어가는 것이다. 지금도 유명인들의 경찰, 검찰 조사와 관련된 보도가 항상 쏟아지고 있다. 유튜버들은 자기 입맛에 맞추어서 내용을 퍼 나르는데 객관적인 측면에서 볼 때 사실과 왜곡의 줄타기를 보는 것 같다. 진실은 법정에서 마무리되지만, 법리적으로 진실이라고 마무리된 사건도 몇 년, 몇십 년이 지난 후 그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면서 억울하게 옥살이한 예도 우리는 언론을 통하여 접한다. A 목사의 경우, 예산위원회 예산 당회 제직회 공동의회를 통과하여 집행한 특별항목의 지출을 횡령이라고 SNS를 통해 유포되어 A 목사를 바라보는 대부분 사람의 시선이 차갑고, 그 아름답던 인간관계가 뒤틀려진 상황에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기막힌 일을 당했다. 진실은 모든 회의의 기록이 있고, 사실은 그 금액이 집행되었고, 왜곡은 횡령이라는 단어로 A 목사를 죄인으로 만들고 공동체는 벌판이 되어갔다는 것이다. 결론은 모든 것이 왜곡으로 드러나고 진실이 밝혀졌지만, 그동안 A 목사가 겪어야 했던 고통과 그로 인한 교회의 혼란과 그 가족들이 받아야 했던 아픔은 그 누구도 보상하지 않았다. 진실은 언젠가는 드러난다. B 장로의 경우, 개인 사업을 하면서 예배당 건축위원장의 직무를 맡아 교회 건축을 하면서 장로님 개인 돈을 더 많이 들여 건축하였는데, 건축비 횡령으로 고발되어 구치소에 갇히었다. 법정에서 판결로 마무리된 일이지만 진실은 건축비 중 5천만 원을 어음 처리를 위해 당회장에게 허락받고 며칠 사용하였는데 이 사실을 횡령으로 소위 광고지를 예배당 안에 뿌리는 그것이 발단되어 결국 법정으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것은 담임목사가 증인석에서 진실보다 교회 상황에 얽매여 5천만 원 사용을 모른다고 하여 B 장로는 피고인으로 재판정에 서야 했다. 재판 결과는 반대로 진실이 밝혀지면서 장로는 억울함이 벗겨지고 대신 목사가 위증으로 처벌받게 된 사건이었다. 진실은 장로가 건축을 위해 최선을 다한 헌신이었고, 사실은 5천만 원을 며칠 사용한 것이고, 왜곡은 그것을 뒤집어 찌라시를 만들어서 뿌리고 담임목사가 거기에 맞추어 동조함으로 교회가 풍비박산이 된 것이다. 그런데도 B 장로는 탄원서를 써서 담임목사의 위증에 대한 처벌을 선처해 달라고 판사에게 간청했다. 그리고 사건이 마무리 된 후 B장로는 조용히 그 교회를 떠났다. 유구무언이다. 진실과 사실과 왜곡의 줄타기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황에 접근방법을 분석해 보면 대부분 사람은 진실은 고사하고 사실 확인도 없이 왜곡에 관심을 더 두고 비난하고 정죄한다는 것이다. 그 대부분의 이유는 이해관계로 진실과 사실과 왜곡의 줄타기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분명한 것이 있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그 이해관계 당사자로서는 그 상황의 여정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지만 그것이 인간관계의 보편적이라면 극복하는 지혜를 요셉과 다윗을 통해 배워야 한다. 즉 아프지만 침묵하며 자기의 삶을 아는 것은 자기 자신과 하나님뿐임을 확신하는 마음가짐에서 어둠에서 빛으로의 전환을 믿고 대처하며 인내하는 것이다. 요셉도 그랬고, 다윗도 그랬고, 사도 바울도 그랬다. 어쩌면 소나기가 쏟아질 때는 비를 피하지 말고 맞으라는 교훈이리라. 필자의 저서 가운데 <성도입니까?>가 있다. 세례받고 교적부에 등재되면 교인이 된다. 사전적으로 말하면 종교를 믿는 사람이다. 성도는 사전적으로 말하면 기독교 신자의 존칭, 천주교에서는 특히 공덕이 높은 신자라고 표기한다. 제자는 스승에게서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다. 그런데 교인도 성도도 제자도 진실과 사실과 왜곡의 줄타기를 한다. 나는 어떤 줄타기를 하고 있는가? 진실은 묻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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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18
  • [성서연구] 시세를 아는 사람들
    역대상은 읽기 어려운 성경으로 인식됩니다. 족보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족보에서 시작된 역대상은 11장에 오면 다윗이 왕이 된 것을 알리고, 다윗을 도운 용사들을 거명합니다. 12장에는 다윗의 편에 가담한 사람들을 나열합니다. 다윗이 왕이 되는 과정은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장군이요, 사위였지만, 사울은 그를 정적으로 인식하여 죽이려고 시도했고, 다윗은 여러 해 동안 도망자로 살아야 했습니다. 후에 사울이 블레셋과 전쟁 중 전사한 후에도 다윗이 곧바로 왕이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우선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의 왕이 되었는데, 이는 다윗이 유다 지파였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지파들은 모두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받들었습니다. 칠년 육 개월 동안 이스라엘에는 두 명의 왕이 있었던 셈입니다. 이런 상황이 사무엘하 2장 8~11절에 나옵니다. <8 사울의 군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이 이미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가 9 길르앗과 아술과 이스르엘과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더라 10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이스라엘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사십 세이며 두 해 동안 왕위에 있으니라 유다 족속은 다윗을 따르니 11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이 된 날 수는 칠 년 육 개월이더라> 그런데 다윗과 사울의 가문의 긴 전쟁과 대립의 와중에 점점 다윗에게로 오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사무엘하 3장 1절을 보면 이에 대해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고 했습니다. 역대상 12장에는 이 무렵 다윗에게로 온 사람들을 나열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 중에 잇사갈 자손 중에 이백 명이 다윗에게로 왔는데, 본문이 이들에 대한 언급입니다. 본문을 보면 <잇사갈 자손 중에서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우두머리가 이백 명이니 그들은 그 모든 형제를 통솔하는 자이며>라고 했습니다. 여기 <시세를 알고>란 대목이 나옵니다. 『NIV성경』에서는 <understand the times>라고 했고, 『쉬운성경』에서는 <때를 분간할 줄 아는>이라고 번역했습니다. 『현대인의성경』은 <그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고>라고 번역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시대의 자녀입니다. 특정 시대에 태어나 시대의 영향을 받으며 삽니다. 시대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어진 시대에 올바른 삶의 열매를 맺으려면 시세를 아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때에 대해 전도서 3장 1~8절은 유명하지요. <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때를 모르는 사람은 어리석은 처신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2023년은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어떤 때일까요? 올해는 광복 78주년이며, 한국전쟁의 정전협정 70주년입니다. 아직 우리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고통당하고 있고, 전쟁 위협은 점증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창조질서를 거부하는 동성애를 비롯한 성적 지향의 문제로 사회가 어지럽고, 흉기를 들고 불특정 다수를 공격하는 말기적 증세를 보고 있습니다. 자연 파괴로 인한 기후 이상은 우리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있습니다. 교회의 타락과 부패는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우리도 시세를 분별할 때가 왔습니다. 지금은 더 이상 게으를 때가 아닙니다. 눈앞의 일에만 매달릴 때가 아닙니다. 개인의 작은 이익을 추구할 때가 아닙니다. 평소처럼 행동할 때가 아닙니다. 우리 자신에게 비상 상황을 선포할 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신랑을 빼앗긴 날과 같아서 금식할 때입니다. 지금은 잘못된 다수가 아닌, 의로운 소수와 뜻을 함께할 때입니다. 우리 모두 깨어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다시 허리띠를 동여매고, 출발선에 서야 합니다. 다시 새벽을 깨워야 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우리 모두 시세를 아는 현명한 성도가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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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18
  • [시사칼럼] 더 이상 금모으기 없는 세상을 꿈꾸며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국제새만금잼버리대회가 무수한 얘깃거리를 양산하면서 마침내 끝이 났습니다. 그 가운데 돌연 ‘금모으기운동’이 소환이 되어 많은 이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지요. 시설 및 여타 준비 소홀과 태풍으로 인한 기상악화로 인해 야영을 비롯한 본래 행사가 조기종료가 되면서 수만 명에 이르는 참가자들을 위한 후속조치가 문제로 대두되었을 때, 집권여당의 정책위의장이라는 사람이 느닷없이 “금반지 정신으로 돌아가면 못할 게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역시 여당의 한 국회의원은 일부 멤버가 군 복무 중인 비티에스(BTS)를 동원하자는 발언으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또 다른 가수 몇이 참가하는 케이팝(K-pop) 콘서트가 열려 행사의 대미를 장식하면서 다시없을 잼버리로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은 색다른 금모으기운동의 모습을 한 차례 더 보여주었습니다. 대기업들 특히 삼성은 음료와 의료진 심지어 신입사원까지 투입했고, 엘지와 포스코 그리고 현대그룹 등이 각종 물품과 인원을 지원했으며, 이마트와 파리바게트 등 유통업계도 이에 질세라 뛰어들었고, 대한상공회의소와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이런저런 후원에 나섰습니다. 종교계도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숙소 지원에 나섰고, 사찰 또한 템플스테이 같은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제공했습니다. 무엇보다 국가적 위기 순간에 거짓말처럼 등장하는 대한국민들의 감동적인 사연이 이어졌습니다. 대원들을 알아보고 마치 자기 잘못인 양 ‘미안하다’를 거듭하며 물이라도 한 병 건네고 과자를 사 주며 물건이나 음식 값을 깎아주고 보듬어주고 두드려주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가슴 뭉클한 시민들이 속출하면서 ‘아, 대한민국~!’ 가슴 벅찬 구호를 거리마다 소리 없이 울려 퍼지게 하는 장관을 연출했습니다. 원래 금모으기운동의 시작은 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효시입니다. 일단 남성들 중심으로 3개월간 금연하며 모은 돈으로 나라 빚을 갚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는데, 보다 더 대범한 여성들이 가락지와 패물을 모으자는 운동을 일으켰다 합니다. 남녀노소 신분고하 종교신앙을 막론하고 전국민이 참여하여 심지어는 도적떼까지 모인 금붙이들을 훔치기는커녕 자신들 것까지 보탰다는 전설 같은 일화들이 넘쳐납니다. 1997년 11월 국제통화금융(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나라가 또 다시 부채의 위기에 몰리자 우리 국민들이 보여주었던 모습도 장엄했습니다. 차고 다니던 목걸이나 가락지는 물론 장롱에 두었던 돌반지나 심지어 우승메달까지 금으로 된 것이면 무엇이든 자발적으로 내놓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금물결이 되어 방방곡곡을 수놓았습니다. 그 결과 이듬해 1월에서 4월까지 석 달 동안 미국 자유의 여신상 무게와 같은 225톤의 금이 걷혔다고 했습니다(경향, 구혜영). 어쩌면 금보다도 더 귀한 무언가를 모은 사건도 잊을 수 없습니다. 2007년 12월 삼성중공업 소속 선단과 홍콩 선적의 유조선이 충돌하여 원유 12,547리터가 유출되면서 순식간에 태안 앞바다가 기름으로 뒤덮이는 대참사가 발생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지금까지도 믿기지 않는 놀라운 일이 이후 벌어졌지요. 어느 순간부터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연령과 직업을 가진 시민들이 자원봉사자로 나서서 양동이로 기름을 퍼 나르고 흡착포나 헌 옷가지 등으로 바위나 토사에 묻은 기름을 직접 닦아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참여한 인원이 물경 123만 명에 이르렀고, 그들이 손에 손을 잡고 어깨에 어깨를 이어 시커먼 바닷가를 가로지르며 만들어냈던 ‘인간띠’는 그 어떤 화가가 그린 선이나 획보다 더 눈부시고 아름다웠습니다. 복구에 수십 년도 모자란다던 내외신의 평가가 무색하게 국민들의 고귀한 땀방울들로 씻긴 바다는 불과 10년 만에 제 모습을 되찾았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그래도 말입니다. 이제는 이런 소망을 가져봅니다. 더 이상 금모으기 운동 따위는 필요 없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고, 누군가 책임 있는 자들이 저지른 과오의 결과 초래된 재앙을 순진무구한 시민들이 대신 나서서 감당해야 하는 그런 일들은 이번 잔치(“잼버리” 뜻)가 마지막이면 좋겠다는 그런 소망 말입니다. 한국만의 상황도 아닌 것이, 성경에도 일종의 금모으기 운동들이 등장합니다! 예수께서는 목자를 잃은 양같이 고생하던 백성들을 애(腸)를 태우며(스플랑크니조마이, 막 6:34) 바라보셨는데, 그런 와중에도 성전을 위해 가진 바 전부인 두 렙돈을 내놓은 과부를 칭찬하셨고(눅 21:4),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자기 도시락을 아끼지 않고 기꺼이 내놓은 소년을 영원히 기억되도록 하셨습니다(요 6:9). 반면에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어놓고도 호의호식하던 무리들을 거침없이 “독사의 자식들”이라 부르셨고(마 12:34), 교인이라 하면서도 불의에 가담할 뿐 도무지 책임의식조차 없는 자들을 “회칠한 무덤”이라고 준엄하게 꾸짖으셨습니다(마 23:27). 분명히 그런 자들이 다시는 등장하지 않고 그런 일들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그래서 착하기만 한 백성들로 하여금 더 이상 짐을 지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엄중한 경고의 말씀이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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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18
  • [은혜의말씀] 우리의 작은 헌신으로(막 6:34-43)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오병이어’ 기적입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오천 명이 먹고, 12 바구니가 남았다는 것입니다. 34절을 보면, 예수님은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고 합니다. 불쌍히 여긴다는 것은 ‘가벼운 동정심’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 하는 곳에 깊이 들어가, 그 사람과 함께 고통을 나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아픔을 아시고, 우리와 함께해 주시는 사랑과 긍휼의 주님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해는 저물어가고, 제자들도 많은 무리로 인해 걱정이 앞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나아와 무리를 보내어 자기들이 뭔가를 사 먹도록 하자고 제안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이 사고의 차이를 보십시오. 제자들은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르십니다. 그들의 고통을 함께 지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짐을 져 주는 것입니다. 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아파해 주고, 함께 눈물을 흘려주고, 함께 짐을 져 주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는 빈들에 처한 사람들과 함께 짐을 지기 위해, 사랑의 마음으로 달려 나가는 일에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자,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이 다시 질문합니다.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까’ 제자들은 이것은 도저히 안 되는 일이라며, 단정 짓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실수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자기 안에 있는 자원만을 보았습니다. 그 자원을 가지고, 계산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되지요. 자기의 능력만을 볼 것이 아니라, 주님을 의지해야지요. 그런데, 제자들만 탓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면 어떻게 합니까? 머리 굴리기 바쁘지 않습니까? 사람 찾아다니기 바쁘고, 이리저리 끌어 막기 바쁘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 순간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고 기도하십니까? 주님을 놓치면, 그때부터는 제자들같이 ‘부족합니다, 안 됩니다.’ 하게 됩니다. 부족할 그때가 바로 믿음의 눈으로,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일은 내 자원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한 분만을 바라봅시다. 주님이 공급해주실 것입니다. 주님과 제자들의 대화를 통해 배우는 교훈은, 우리의 인생에 부족함과 어려움이 있을 때, 우리의 상황이 아니라 주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대답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답이 무엇인지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에 제자들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구해왔습니다. 그것은 어린아이의 한 끼 도시락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받아 축사하시고, 떼어주십니다. 그랬더니, 떼어도 떼어도 끝없이 양이 늘어납니다. 남자만 5천 명이 배부르게 먹고도, 12 바구니가 남았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빈들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함께 짐을 진다면, 필요한 자원은 우리 주님이 책임져주신다는 말이지요. 우리 주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이 오병이어를 드린 소년이 나옵니다. 이 아이는 작은 자기 도시락을 주님께 바친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 드릴 때, 그 음식은 작은 것이 아니라, 기적의 산실이 되었습니다. 한 아이가 드린 오병이어가 주님의 손으로 옮겨지는 순간, 땅의 일이 하늘의 사건으로 변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탁월한 능력이나 은사가 없어도, 겸손히 순종하고자 애 써는 그 열심을 주님은 귀하게 보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작지만 큰 헌신이 주님의 손에 들려져 큰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도 조용하게 교회와 주님의 일에 헌신하는 신실한 일꾼들이 많아지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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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18
  • [목회자칼럼] 늦은 비의 복을 주옵소서
    그동안 성경 첫 장 설교를 많이 한 것 같다. 창1장의 하나님의 본심 네 가지, 수1장의 쓰임 받는 사람의 여덟 가지 특징, 삼상1장의 응답받는 기도의 매뉴얼, 시1장의 복있는 사람의 특징, 눅1장의 팔방미인, 행1장의 경계선 장애 극복. 최근에는 성경 마지막장이 은혜가 되었다. 마28장의 복음의 전달자, 행28장의 담대하게 거침없이, 그리고 오늘 욥42장의 말씀이다. 사람은 마지막의 모습이 중요하며, 뒷태가 고와야 된다. 유언과 같이 최후에 남기는 말씀이 중요하다. 욥42장은 성경 상에 가장 고난 받은 사람의 모습과 치열한 논쟁 후 마지막 결론을 기록하고 있다. 욥의 회개기도와 친구들을 위한 중보기도로 마무리된다. 김양재목사 말처럼 구원역사를 통해 내 삶이 해석이 되어지면 해결이 된다. 회개할 때에 회복되고, 항복할 때에 행복해진다. 욥과 친구들의 오랜 논쟁과 갈등으로 감정이 상했을 법도 한데 욥이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갑절의 복을 주셨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나니”(요15:13) 예수님의 사랑을 친구사랑으로 설명하고 있다. 친구사랑의 핵심은 친구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시109:4) 욥이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친구들을 위하여 중보기도 할 때 영적회복이 되고, 관계가 회복되었다. 미움은 관계를 회복할 수가 없다. 사랑하고 축복할 때 문제가 봄눈 녹듯이 녹는다. 하나님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이전보다 갑절의 소유를 주셨다. 상황이 역전되었고, 상속권이 인정되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킨다. 역전, 반전, 역주행의 기적이 나타난다. 내가 설치면 나홀로 일을 하지만, 내가 기도하면 주께서 역사하신다. 주께서 욥을 돌이키실 때 고난으로 인하여 멀어지고 오해하였던 가족이 회복되고, 이웃이 회복되었다.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이전에 알던 이들이 다 와서 그의 집에서 그와 함께 음식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케쉬타 하나씩과 금 고리 하나씩을 주었더라”(욥42:11) 욥이 어려울 때에 비난하며 떠나갔던 사람들이 돌아와서 그의 집에서 함께 음식을 먹었다. 밥상머리, 베갯머리가 회복되고, 입맛, 밥맛, 살맛이 회복되고, 단잠, 숙면, 꿀잠을 자게 되었다. 그들이 욥을 슬퍼하며 위로하였으니 소통과 공감과 나눔이 회복되었다. 각각 케쉬타 하나씩과 금고리 하나씩을 위로금으로 주었으니 물권이 회복되었다. 부자는 티끌모아 태산이 되고, 십시일반이 모이고, 만 가지 은혜를 받고, 사방에 돕는 자들이 나타난다. 욥이 받은 최고의 축복은 말년의 복이다(욥42:12). 졸지에 당한 고난보다도 부인과 친구들의 정죄와 비난이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 끔찍하고 황망한 시절에 마음으로 원망하지 않았고, 입술로 범죄치 않았다. 사사시대에 룻이 전반전은 엉망진창이었지만 후반전에 나중축복을 받았다.(룻3:10) 시골에서 어른들이 화투치기 하는 것을 볼 때 초장 끝발보다 후 끝발이 중요했다. 인생 이모작을 살면서, 하프타임을 지나, 배터리 충전하고, 성령충만, 은혜충만 받아야 결실의 계절에 늦은 비의 복을 받을 수 있다. 낙심천만한 오랜 고난과, 힘 빠지고 지치기 쉬운 인간관계 속에서 욥은 저력있게 버티었고 마침내 모년, 말년, 노년에 복을 받았다. 욥은 졸지에 일곱 아들과 딸 셋을 잃었지만, 말년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얻었다. 부인을 제외하고는 갑절의 복을 받았다. 자녀들의 미모와 기업을 볼 때 명성이 회복되었다. 주일학교에서 다음세대 일꾼들이 새벽이슬같이 일어나야 된다. 정치, 경제, 국방, 외교, 교육, 문화, 사회, 목회, 선교사역에 준비, 예비, 겸비, 유비무환의 지도자들이 벌떼같이 일어나리라. 도산 안창호선생님은 인재가 없다고 탓하지 말고, 네가 인재가 되라고 하였다. 욥은 오랜 고난의 세월을 버티어서 140세를 장수하였고, 아들과 손자 4대를 보았으며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다(욥42:16~17).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고, 황충이 해하지 않고, 때를 채웠다. 나이가 차서 죽는, 충만의 복을 받았다. 물이 끊어지지 않고, 막히지 않고 연결이 되었다. 오래오래, 길게길게, 곱게곱게, 넓게넓게 복을 누렸다. 요셉이 7년 대풍년에 흥청망청하지 않았고, 7년 대기근을 잘 버티었다. 모세는 애굽, 바로의 궁궐에서 40년, 미디안광야에서 40년, 출애굽 40년, 오르막내리막 길을 놀라운 적응력을 가지고 잘 감당하였다. 아니, 그 변덕스러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주께서 끝까지 이끌어 주셨던 것이다. 욥의 전반전은 눈물과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그것마저 후반전을 위한 눈물의 씨앗을 심는 과정이었다. 세월이 무섭게 빨리 지나간다. 누구나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다. 자기에게 남은 세월을 기억하며 포기하지 말고 인내하며, 버티고, 견디자! 주께서는 남은 자를 통하여 구원역사를 이어 가신다. 현재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가 없으니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늦은 비의 복을 대망하면서 살아 버티어라.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간다. 늦은 비가 내려야 곡식이 익는다. 찬 서리가 내려야 가을걷이가 끝이 난다. 성경에는 이른 비가 우리나라의 늦은 비이지만 코로나 이후에는 시간 개념이 크게 혼돈하게 되었다. 골든타임, 하프타임, 파이널타임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다. 그야말로 내일 일은 알 수가 없고,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고, 살아남은 자가 강한 법이다. 이 세상 끝날에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함께 갈, 저 천국이 예비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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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18
  • [이상규 교수의 역사탐색] 이승만 연구가 유영익 박사
    오늘 아침 신문을 보고 유영익 박사가 7월 26일 저녁 이대서울병원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36년 4월 9일 경남 진주에서 출생하신 유영익 박사는 사학자로서 큰 족적을 남기고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서울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한 그는 1960년 미국으로 가 하버드대학교 역사·동아시아언어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마치고 1972년에는 갑오경장 연구로 박사학위를 수득했다. 그 후 택사스의 휴스턴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일하던 중 귀국하여 고려대학교 사학과, 한림대학교 사학과, 스탠퍼드대 역사학과 객원교수, 그리고 한림대학교 부총장,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한국학 석좌교수로 일했고, 그 후에는 한동대학교 국제개발협력대학원 석좌교수로 일했다. 필자가 그를 만났을 때가 이 무렵이었다. 물론 지면으로는 이전부터 그를 알고 있었지만 2009년 10월 28일 수요일 한동대학교 교수 기도회와 학생 채플 설교차 갔는데, 아침 교수 기도회 후 유영익 교수와 처음 만나게 되었다. 필자에게 먼저 오셔서 “유영익 입니다” 라고 말씀하시던 노학자의 겸허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이후 그와 교류하며 그의 학문과 인격을 대하게 된 것은 필자에게는 큰 영예였다. 나의 부족한 책도 인사하는 뜻으로 그에게 보냈지만, 그는 2010년 4월 아시아왕립학회 서울 지부가 펴낸 영문서적 <초기 한국의 미국과 일본과의 접촉>(Early Korean Encounters with the US and Japan)을 선물로 주었고, 2013년 6월에는 <건국대통령 이승만>(일조각, 2013)을, 2019년 8월 말에는 <이승만의 생애와 건국 비전>(청미디어, 2019)을 보내주어 감사하고 송구했다. 한동대학교를 떠나 이후에는 한일역사공동연구촉진위원회 운영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 휘하에서 제12대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고, 소천되기까지 국방대학원 석좌교수였다. 유영익 박사는 한국근현대사 분야의 대표적인 학자이지만 특히 이승만 연구가로서 이승만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하버드대학교에서 공부하던 중 우연히 하버드-옌칭 도서관에서 청년기 이승만이 저술한 <독립정신>이라는 책을 읽고 그의 개혁사상과 국제정세에 대한 식견에 큰 충격을 받아 이승만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승만이 <독립정신>을 탈고했을 때가 1904년이니 29세 때였고, 한성 감옥에서 쓴 책인데, 출판된 것은 1910년 미국에서였다. 이 때 이승만은 대한제국의 문제점과 주변 열강의 움직임, 그리고 대한제국이 해야 할 일들을 말하면서 기독교입국론을 주장한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유영익 교수는 이 책을 읽고 국제 정세를 헤아리는 청년 이승만의 식견에 감복하였고, 이후 이승만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다고 한다. 직접적인 계기는 1993년 말 이승만의 양자인 이인수 교수로부터 이화장에 보관되어 있던 10만 여 장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이승만 관련 사료를 기증받은 일이었다. 이때 이건희 삼성회장은 50억 원의 연구자금을 제공했고, 최송옥 여사는 1996년 8월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소재한 자신의 저택을 이승만 연구를 위해 연세대학교에 기부하였다. 그래서 유영익 박사의 주도로 1997년 연세대학교에 현대한국학연구소가 설립되어 이승만 연구를 주도하게 된다. 유영익 박사는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석좌교수로서 연구원의 초대 소장이었다. 2011년에는 연세대학교 현대학국학연구소에서 이승만연구원이 분리되어 독립된 기관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영익 박사는 방대한 문헌을 바탕으로 이승만 연구를 수행하여 이승만 재평가를 이끌었고, 이승만을 비판하는 수정주의, 좌파적 시각을 거부하고 이승만의 생애, 사상, 독립 외교활동, 교육, 연설활동 등을 연구하였다. 그는 이승만의 공과를 따진다면 공7, 과3으로 평가하면서 자유민주의에 기초한 정부수립 혹은 건국, 미국식 대통령제 확립,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농지개혁, 60만 명 수준의 국가 상비군 육성, 양반제도의 근절과 남녀평등 실현 들을 공로로 지적했다. 그래서 그는 이승만은 중국의 쑨원(孫文), 일본의 후쿠자와 유키치(福澤 諭吉)를 능가하는 인물로 평가했다. 그런데 지난 6월 20일 유영익 박사가 카톡으로 문자를 보냈다. “경애하는 이상규 교수님,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요즘 같은 무더운 날씨에 교수님께서 날마다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유영익.” 자주 문자를 주시는 분이 아니었다. 예기치 못한 문자였기에 반가운 나머지 바로 답신을 드렸다. “아이구 존경하는 유 박사님, 황송합니다. 늘 강건하시고 많은 가르침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어제 밤에 안동에 왔습니다. 오늘 경안대학교에서 강연하게 되었습니다.” 꼭 한 달 전의 일이다. 경북 안동에서 나눈 문자가 마지막 통신이었다. 자신의 갈 길을 예견하신 듯 미천한 후배 학도에게 지상에서 마지막 고별의 문자를 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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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3-08-18
  • [소강석칼럼]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당신이 지치고 위축될 때/ 당신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을 때/ 나 그 눈물을 닦아 줄게요/ 난 당신의 편이에요/ 오, 세상이 거칠어지고 친구들이 그저 당신을 찾지 않을 때도 말이에요/ 마치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서/ 난 당신을 받쳐 줄게요.” 사이먼 앤드 가펑클이 부른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라는 노래의 가사다. 1970년 발표한 노래인데 당시 빌보드 팝 싱글 차트에서 6주간 1위를 차지했고, 이듬해 그래미상에서 총 5개 부문 트로피를 받은 팝 음악 역사상 가장 훌륭한 노래로 알려져 있다. 이 시대가 얼마나 험하고 각박하고 삭막한가. 우리 그리스도인은 험한 세상에 다리가 돼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마 5:13~15)이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빛과 소금을 오늘의 언어로 적용하면 다리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는 험한 세상에 다리 역할을 하며 우리 민족과 사회를 통째로 바꿔버렸다. 첫째 기독교는 봉건주의 사회를 자유민주주의 사회로 바꾸었다. 사실 우리나라는 개항 이전까지 봉건사회였다. 신분과 남녀 차별이 확연했고 인권이 유린당했다. 그런데 기독교가 들어와 신분 차별을 타파하고 문맹을 퇴치하며 진정한 인권 자유 박애 정신을 심어주었다. 그래서 교회를 다녀간 사람들이 신문물과 신문명을 받아들여 교회에서부터 신분을 타파하고 봉건주의 사상을 철폐하기 시작했다. 둘째 기독교는 독립 주권국가를 이루는 데 앞장섰다. 역사적으로 105인 사건이나 3·1운동을 주도한 세력은 거의 기독교인이었다. 훗날 독립 이후에도 건국위원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었으며 건국의 모토로 삼은 정신이 바로 기독교 정신이었다. 이처럼 한국교회는 우리나라가 독립 주권국가를 이뤄 건국하는 데 다리 역할을 했다. 셋째 기독교는 이 땅에 공산 전체주의를 막아내는 데 앞장섰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절대 존재와 영혼의 가치를 존중하는 종교다. 그래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한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헤겔과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사관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절대 같이할 수 없고 충돌하게 돼 있다. 공산주의가 들어가는 곳마다 교회를 폐쇄하고 교회당을 공장으로 만들고 목회자를 죽이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6·25전쟁 때도 가장 피해를 본 종교가 기독교였다. 그중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이 호남의 영광 영암 신안 지역이다. 영광 염산교회는 77명, 야월교회는 66명, 영암 지역 교회도 89명의 기독교인이 순교당했다. 최근 나는 몇 분의 호남 지역 목사님과 함께 김광동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장님께 면담을 요청해 만났다. 국가 차원에서 학살당하고 순교를 당한 교회와 지역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조사를 하고 진실 규명을 해 달라고 말이다. 김 위원장님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잘 추진해 보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우리는 왜 이런 일을 했는가. 이 사안에 대한 진실한 조사와 규명, 명예 회복이 이루어질 때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더 확고하게 세워지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굳건한 반석 위에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는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17년째 해오고 있다. 보은(報恩)이 한 인격의 품격이라면 보훈(報勳)은 한 국가의 품격이라 할 수 있다. 이번 행사를 위해 윤석열 대통령께서 축사를 보내줬고, 김진표 국회의장과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도 참석해 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며 감사했다. 한국교회는 과거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험한 세상에 다리가 돼야 한다. 지금 한국교회는 많은 비난과 공격을 받고 있다. 물론 비판에는 자성하고 개혁해야 한다. 동시에 어떤 일이나 역할을 통해서든 험한 세상에 다리가 돼야 한다. 지치고 위축된 세상을 향해 눈물이 고여 있는 사람들에게 다리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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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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