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8(수)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칼럼

실시간 칼럼 기사

  • [목회자 칼럼] 미투 – “너가 아니, 내 마음을?”
    “10년도 더 된 일이지만, 저는 그 날을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 친구는 그날도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고 있는 저를 학교 뒷문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길로 불러 온갖 욕설을 하고 머리를 때린 후 돈을 받고 보내줬습니다. 그런 일들을 종종 있었고, 그럴 때마다 저는 두렵고 수치스러운 마음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자연스럽게 그 친구와 멀어졌는데, 어느 날 TV에서 익숙한 그 아이의 얼굴이 보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10년도 더 지났고, 오랫동안 그 친구를 보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TV에서 그 아이의 얼굴을 보자마자 몸이 먼저 기억했습니다. 갑자기 그 때의 두려움과 수치심이 물밀 듯이 몰려오고 분노의 마음까지 생기는 것입니다. TV에서 그 아이를 볼 때마다 이런 감정이 생기고, 나는 아직까지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저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고 있는 것이 너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어 어렵게 용기를 냈습니다” 얼마 전, 한창 활동하고 있는 아이돌 가수를 상대로 학창 시절의 학교 폭력을 밝힌 ‘미투’ 폭로자의 증언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공직자 혹은 유명 연예인들의 ‘성문제’와 같은 주제의 미투를 넘어 학창 시절의 학교 폭력, 혹은 운동부들의 선수 폭력과 같은 주제의 미투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미투는 2006년 미국 사회 운동가 타라나 버그(Tarana Burke)가 성범죄에 취약한 유색 인종 여성, 청소년을 위해 제안했으며, 2017년 10월 폭로된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공직, 연예계, 직장, 학교 등에서 일어난 것을 SNS를 통해 자신의 피해 경험을 연달아 고발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투(Me Too)는 “나도 고발한다”는 뜻으로 성폭력 피해 경험을 공유하며, 피해자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며, 우리는 함께 연대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건의 피해자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요? 아마 이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너가 내 마음을 알아? 아무도 모를거야, 찢기고 상한 내 마음을.” 당해보지 않은 자의 아픔을 누가 알 수 있을까요? 특히 어린 청소년 때에 생긴 마음의 상처, 집단 구타와 왕따로 인하 상처는 오래 갑니다.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더 이상 이런 일들이 반복해서 일어나지 않기 위해 어떤 방법을 구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합니다. 먼저, 가장 우선되어 생각해야 할 것은 ‘피해자 입장’입니다. 비록 시간이 지난 일이라 하더라도 상처와 아픔으로 남아 있는 피해자를 어떻게 돕고 치유해야 할 것인지,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동료들과 부모들의 입장도 고려해야 합니다. 학교 폭력이나 이와 비슷한 사건을 겪은 사람이 바로 내 옆에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실 이들도 방법을 잘 알지 못할 수 있습니다. 내 자녀 혹은 동료가 이런 일을 겪었다면 무작정 분노하며 감정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사회 기관이나 상담을 통해 도움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회 구성원 모두가 미투로 인해 발생한 일들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나의 사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관심을 갖고 사회 구조화 시켜야 합니다. 미투 운동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하며, 피해자가 직접 용기를 내어 잊혀진 과거의 사실을 밝힌다는 점에서 결국 ‘사람’에 집중해서 ‘사람’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데 힘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고, 내면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아픈 감정을 읽어서 치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가해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죄성과 사회 환경에 대한 문제점들도 짚어서 바로 세워야 할 것입니다. 결국 치유와 회복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짐으로 일어나고, 그들의 아픔을 동의하고 이해하며 동시에 안아줄 수 있는 공동체가 있을 때 살아날 수 있습니다. 오늘 나의 주변에서 생겨나는 일들에 관심을 갖고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나 한 사람이 든든한 공동체가 될 때, 10년 후 일어날 수 있는 미투와 같은 사건을 오늘 미리 막을 수 있는 힘이 될 것입니다.
    • 오피니언
    • 칼럼
    • 목회자칼럼
    2021-04-09
  • [부산기독교이야기] 포로선교사 해롤드 보켈(3)
    거제도에서의 보켈의 포로전도 사역은 1951년 초부터 시작되었다. 1951년 3월부터 종교활동을 조직화했고, 정기적인 예배 외에도 개인 전도와 상담, 성경학교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그는 과거 한국에서 선교사로 일한 경험 때문에 한국어가 유창했고, 유창한 북한 엑센트의 한국어는 인민군 포로들에게 친근감을 주었다. 특히 인민군 출신이라는 이유로 미국인들에게 고문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공포감에 빠져 있던 포로들을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데 도움을 주었다. 보켈은 한국을 방문했던 피어스나 빌리 그래함을 초청하여 설교하게 한 일도 있다. 당시 거제도에 수용된 14만 명의 포로 중에서 개신교 신자는 3만여 명, 로마가톨릭 신자는 1천여 명에 불과했다. 이들을 상태로 공개적인 설교를 하고 개인 전도를 실시했다. 그 결과 수용소 내의 각 구역에 교회 텐트가 설치되었고, 개신교 신자들 중에 집사와 장로를 세웠고 새벽기도회를 시작했다. 출석은 의무나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이었다. 보켈은 일종의 담임목사였다. 보켈의 사역을 도와주었던 한국인 동역자들이 강신정, 강응무, 김윤찬, 남기종, 박지서, 이대영, 임재수, 그리고 임한상 목사 등이었다. 또 선교사들로는 전 중국선교사였던 우드베리(E. Woodberry), 감리교의 윌리엄 쇼(W. E. Shaw) 등인데, 부산에서 포로들을 위한 사역을 도와주었던 이들은 킨슬러(Francis Kinsler) 린튼(William Linton) 목사 등이었다. 보켈 목사는 전도하고 설교하는 사역을 통해 결신자들이 생겨났는데, 1951.5-1952. 4월까지 1년간 학습 지원자는 2,402명이었고 학습자는 1,973명, 세례지원자는 1,271명인데, 실제 세례자는 900명이었다고 한다. 보켈은 설교와 전도 활동 외에도 성경통신학교를 열고, 특히 이들을 위한 성경학교를 열었는데, 같은 기간 15개소에서 3,883명이 참가하였다고 한다. 약간 다른 통계도 있는데, 이 성경학교는 5개월 과정으로 진행하였는데, 등록 포로수는 1,500여명에 달했고, 이 과정을 이수한 중공군 포로는 308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포로중 인민군 회심자는 6천명에 달했다고 한다. 세례받은 인민군 출신 포로는 2,266명이었다고 한다. 포로 중 장로교 감리교 혹은 성결교 신학교 입학하려는 자가 642명에 달했는데, 이중 신학교에 진학한 130명을 월드비전이 학비를 지원했다고 한다. 이 점에 대하여 보켈은 이렇게 쓰고 있다. “월드 비전이 이 포로수용소에서 한 일이 어떤 것인지 이제 그 결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제 몇 년이 가지 아니하여 이들은 목사 안수를 받고 그리고는 교회의 목회자들이 될 것입니다. 이들은 다 깊은 경건에 쌓여 있으며 헌신적이고 능력이 있으며, 열성이 있고, 주님을 위해서 몸 바칠 결의가 되어 있는 의지의 사람들로 변하였습니다.” 물론 이 모든 일이 보켈 선교사 한사람만의 결실은 아니지만 보켈은 포로선교를 위해 일한 중심인물이었다. 포로 출신으로 후에 신학을 공부하고 전도사나 목사가 된 이는 200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전영규(1932-1998) 목사였다. 그는 1957년 경남 김해의 장유성결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였고, 2년 후에는 부산의 수정제일교회에서 목회했다. 1953년 보켈의 보고에 의하면 포로 중 1만4천458명의 결신자가 있었다고 한다. 한편 보켈의 부인 또한 여군 포로들을 위해 헌신했다. 서울 서대문에 북한여군 포로수용소가 있었다. 보켈의 부인 거트루드 보켈(Gertrude Voelkel)은 1951년 6월부터 이곳을 출입하면서 주일 설교는 물론이지만 주간 평균 6시간 씩 성경공부를 인도했고, 포로들과 인간적인 대화와 교제를 통해 상담하고 위로하여 주었다. 그 결과 109명이 결신하고 60여명은 공산주의를 포기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종교적인 혹은 선교활동 외에도 모든 포로들에게 구호하고 의류를 공급하고 의료혜택을 베풀었다. 이런 보켈 부인의 사역을 도와주었던 한국인이 김혜수 라는 여성이었다. 정리하면 16만7천명의 포로 들 가운데서 7천여명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보켈 선교사의 전도와 신앙지도로 반공 기독교 포로의 증가하였고, 이것이 이승만 대통령의 1953년 6월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과감한 정책을 감행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1953년 휴전 협정으로 포로 선교는 막을 내리게 된다. 보켈은 포로선교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정부로부터 자유 훈장을 수여 받았고, 1961년 한국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수여 받았다. 부인 거트루드 보켈은 그간의 공로를 인정하여 1957년 6월 이호 법무부장관으로부터 공로상을 수여받았다. 보켈 부부는 한국에서의 사역을 마감하고 1967년 은퇴하였고, 1976년에는 숭실대학으로부터 명예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 오피니언
    • 칼럼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1-04-09
  • [성서연구] 조금 더 해야 할 이유(누가복음 10장 30-37절)
    많은 종교가 고행을 장려합니다. 종교학 사전은 고행을 <넓은 의미로는 자기통일과 정신성의 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자기 수련을 가리키는데, 엄밀한 고행은 육체를 정신적 지복에 대립하는 악으로 보고, 정신적 지복을 얻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신체에 고통을 주는 종교적 수단>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고행에는 소극적 측면과 적극적 측면에 있습니다. 소극적 측면은 <행하지 않음>입니다. 적극적 측면은 <행함>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행함>이 <행하지 않음>에 의해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삼국유사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자 걸인이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에 길에서 아기를 낳게 되었습니다. 그때 옆을 지나던 불교의 승려가 자신의 가사를 벗어 산모와 아기를 덮어주고 자신은 알몸으로 절에 갔습니다. 후에 승려의 미덕이 알려져서 왕의 스승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산모와 아기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에 승려의 옷을 덮었다고 해서 추위를 이길 수 있었을까요? 혹시 동사하지 않았을까요? 그 상황에서는 옷을 벗어 덮어주는 것보다는 여인과 아기를 데리고 가서 돌봐 주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승려를 높이 평가한 것은 여성의 몸에 손을 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승려로서 여성에게 손을 대는 것은 계율을 깨뜨리는 것이니, 옷만 덮어주고 끝낸 것이고, 오히려 그것을 높게 평가했다는 것입니다. 고행은 대단히 훌륭해 보이지만 그 자체에 모순을 안고 있습니다. 성경은 고행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고행은 다분히 인본주의적 노력입니다. 고행은 자신을 지키고, 자신의 성취를 위한 이기적 동기가 강합니다. 성경은 고행이 아닌 고난을 가르칩니다. 고난은 자신은 죽고, 남을 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행하신 것이 아니라, 고난 받으셨습니다. 고행이 자신을 위한 이기적 동기가 강한 반면, 고난은 자신은 죽고 남을 살리는 이타적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십자가에서 죽어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기준으로 하면 앞의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될까요? 예수님께서는 산모와 아기에게 옷만 덮어주고 가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산모를 엎고, 아기를 안고 따스한 온기가 있는 집으로 달려가셨을 것입니다. 후에 누군가 여인의 몸에 손을 댄 것으로 비난한다면, 기꺼이 비난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앞의 승려는 자신의 정결을 지키려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다 내어주신 분이십니다. 승려는 옷을 줄 수 있었을 뿐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생명까지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 사회에서 죄인으로 낙인찍힌 세리와 창기들 곁에 머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조롱을 받으면서도 기꺼이 세리장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본문에서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약을 발라주고 떠난 것이 아니라, 그를 데리고 가서 주막에 맡겨 지속적 치료를 받게 해 주었습니다. 그게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고행을 하는 수련자가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처럼 해야 합니다. 이사야 40장 1-2절에 보면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위로하되 <마음에 닿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한국 교회는 많은 섬김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조금 더 하길 원합니다. 무엇보다 마음을 더 쏟길 원합니다. 목회자에게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목회 활동의 기준이 정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장례식에는 발인예배까지, 심방은 특정 상황인 경우에만, 상담인 경우엔 한 시간 이내로....이런 것들입니다. 그것보다 조금 더 하는 것은 여건상, 혹은 다른 성도와의 형평성 등의 이유로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저도 종종 <그때 조금 더 했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많습니다. 모든 순간에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그것 때문에 힘든 일을 당한다면, 그게 곧 우리에게서 말라가고 있는 고난이 될 것이고, 그것은 참 기쁨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 오피니언
    • 칼럼
    • 성서연구
    2021-03-29
  • [시사칼럼] 브레이브 걸스, 믿음은 버팀입니다.
    요즘 세간에 ‘브레이브 걸스(Brave Girls)’가 화제입니다. 십년 전 데뷔했지만 뜨지 못하고 인원 교체를 거듭하다가 결국은 해체 수순을 밟고 있던 중에 갑자기 인기가 급상승해서 본인들마저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30대 초반의 네 여성으로 구성된 그룹 이름입니다. 뭘 어떻게 해도 안 되니 이제는 정리하자 생각하고 각각 옷 장수와 커피 바리스타 그리고 취직 시험을 준비하며 짐을 챙겨 숙소에서도 나온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4년 전 발표했던 노래가 ‘역주행’을 거듭하면서 현재 각종 음원 차트를 석권하며 특히 젊은 세대를 열광하게 만드는 주역이 되었습니다. 우연히 이들의 사연을 들은 유튜버가 안타까운 심정으로 만들어 올린 동영상 하나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켜 불과 며칠 사이에 천만 조회 수 이상을 기록한 결과 나타난 현상이라 ‘알고리즘’이 만들어 낸 현대판 기적이라고들 부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현대인들의 무딘 감성을 촉촉하게 적시고도 남은 감동적인 사연이 있었습니다. 생방송 중 1위에 오르는 순간 멤버 중 한 명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남긴 소감 한 마디가 그간에 일어났던 많은 일들을 대변해 주었습니다. “대한민국 국군 장병과 예비군 그리고 민방위 대원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노래는 부르고 싶은데 더 이상 불러주는 데가 없어 낙심하던 차에 군부대 위문 공연을 나서게 되었고 뜻밖에 열렬하게 호응해주는 장병들 때문에 힘을 얻었던 그녀들, 힘든 군 생활 가운데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불원천리하며 달려와 행복한 미소와 진심어린 태도로 노래하는 그녀들을 보면서 큰 위로와 활력을 얻었던 군인들, 선임이 후임에게 인계하며 군대에서만큼은 전설로 자리매김한 그녀들이 사라지려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제는 은혜 갚을 차례라며 한 마음 한 뜻이 되어버린 현역과 예비역들, 그리고 ‘어려운 고비라도 잘 버티자, 그러면 언젠가는 해 뜰 날이 있다’는 사실로 위로 받고 희망을 가진 많은 청춘들을 비롯한 수많은 뒤처지고 낙오했다 여기던 인생들, 이 모두가 다 같이 써나가는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은 실화가 여기 있습니다. 그러나 버티기만 한다고 되는 일은 결코 아닙니다. 브레이브 걸스가 부활(?)한 두 가지 중요한 비결이 있다고 봅니다. 첫째, 힘들고 짜증날 법도 한 상황인데도 언제나 웃음과 친절을 잃지 않았습니다. 특히 한 멤버가 보여준 ‘미소’는 이번 기적을 견인하는 역할을 해냈습니다. 군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감명을 받은 주된 이유였습니다. 둘째,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불러주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 열정을 다한 결과 어떤 상황에서도 공연할 수 있는 실력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실력이 뒷받침 되지 않은 감동은 신파로 전락하기 마련이라, 모처럼 기회가 찾아와도 묵묵히 쌓아 올린 내공이 없었다면 결코 신화의 주인공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버틸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이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 대표님 기도하는 사진이 있어요.” 인터뷰 중에 툭하고 나온 말입니다.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끝까지 지원했고 직접 노래까지 만들어준 제작사의 대표는 한 때 어둠의 세계에 몸담고 있다가 지금은 독실한 신앙인으로 살고 있는 ‘용감한 형제’라 불리는 사람입니다. 그라고 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그 역시 끝까지 버티며 묵묵히 곡을 만들고 그녀들을 진심으로 응원해 주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호전적인 부족 아말렉을 만나 싸울 때 아론과 훌이 모세의 두 손을 붙들고 올렸습니다(출 17:12). 이 때 쓰인 동사가 뜻밖에 ‘아만’입니다. 주로 ‘믿음’으로 번역하는 단어가 아닙니까? ‘아멘’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여기서 ‘믿음은 버팀이다’라는 영적 공식을 도출합니다. 예수님도 그러하셨습니다. 모세처럼 언덕 위에서 두 손을 들고 서셨지만, 예수님의 두 손을 붙들고 올렸던 것은 굳게 박힌 대못이었습니다. 하지만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십자가에서 끝까지 버티시며 자애로운 미소와 긍휼하신 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주를 바라봅니다. 믿음의 다른 말은 버팀입니다. 그냥 버티는 것이 아니라 묵묵하게 실력을 쌓으면서도 언제나 미소와 여유를 잃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것,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고난 가운데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진정한 신앙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오피니언
    • 칼럼
    • 시사칼럼
    2021-03-29
  • [은혜의 말씀] 언약은 신실합니다.(수10:5~11)
    기브온이 이스라엘과 화친 조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이를 괘씸하게 여긴 가나안 서쪽의 왕들이 연합군을 일으켜 기브온을 치러 올라옵니다. 그러자 기브온 사람들은 즉시 여호수아에게 사람을 보내 도움을 요청하지요. 그런데, 기브온이 이렇게 당당하게 여호수아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화친조약”입니다. “언약”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누구와 언약을 맺었습니까? 온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누구의 중재로요. 예수님이시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흘리신 보혈의 피는 언약의 피라고 했습니다. 마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언약이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복 주시기 위하여 세운 약속입니다. 좀더 성경적 정의를 내린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피로 맺은 약속'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 약속의 증거, 피로써 우리와 언약의 관계를 맺으셨습니다. 그러면 이 언약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1. 언약의 특징 : 언약은 신실하게 유지됩니다.(7절, 9:19,20) 비록 기브온이 속임수를 통해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었지만 한번 맺은 언약은 신실하게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언약의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온 군대를 동원하여 하나님 앞에서 기브온과 한 약속에 책임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언약의 신실성이 중요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와 언약을 맺으실 때 우리가 불성실하고 믿음으로 살지 못하면 언약을 파기하십니까? 아니지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맺어진 언약은 영원불변합니다. 그러므로 의심하지 마십시오.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신학적으로 이것을 “견인교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맺으신 구원의 언약은 이렇게 신실하게 유지된다면 우리도 하나님과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켜야 하겠지요? 2. 언약의 특징 : 언약은 보호를 약속합니다.(8절, 시 121편) 하나님은 전투에 나가는 이스라엘에게 두려워 말라 말씀하십니다. 적들을 여호수아의 손에 넘겨주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스라엘과 언약한 기브온을 보호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언약 속에는 보호의 약속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언약한 우리들을 끝까지 지키고 보호해 주십니다. 오늘 가나안 연합군과 전투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호하고 계십니까? 크게 세 가지 방법으로 보호하고 계십니다. 1)사람을 통하여(10절) 2)자연을 통하여(11절) 3)초자연을 통하여(13,14절) 말씀을 맺기 전에 또 하나 나누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호수아를 격려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선택에서 실수한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격려와 용기를 주십니다.(8절) 하나님은 우리가 저지른 실수마저도 고치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가 여호수아에게는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었을까요? 여러분의 말 한마디가 인생을 바꿉니다. 서로 칭찬하고 격려하십시오. 약점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약점을 자꾸 보지 말고 장점을 보십시오. 그러면, 칭찬하고 격려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서로 칭찬하고, 서로 격려하고, 서로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 오피니언
    • 칼럼
    • 은혜의 말씀
    2021-03-29
  • [서임중 칼럼] 축복과 저주의 부메랑
    ‘부메랑 효과’(boomerang effect)란 용어가 있는데 선진국이 발전도상국에 원조를 하거나 자본을 투자하여 생산한 물품이 현지의 수요를 웃돌아 도리어 선진국으로 역수출되어 해당 산업과 경쟁하게 되는 일을 부메랑 효과라 한다. 직장에서 남편이 화가 나서 집에 들어왔다. 아내에게 이유 없이 화를 낸다. 아내는 화가 나서 아들에게 신경질을 냈다. 억울한 아들은 강아지를 발로 찼다. 강아지도 화가 나서 닭들에게 화풀이를 했다. 강아지가 덤벼들자 닭은 놀라서 장독 위로 뛰어오르다가 그만 장독을 넘어뜨려 버렸다. 그 결과로 장독 속에 소중하게 담아 두었던 고추장이 다 밖으로 쏟아졌다. 결국 남편의 분노가 모든 가족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 피해는 남편에게까지 다시 돌아왔다. 신경질 부메랑 효과 이야기다. 이솝이야기의 하나다. 생쥐가 사자에게 잡혀 죽게 되었을 때 생쥐는 살려주면 은혜를 갚겠다고 하여 사자는 생쥐를 살려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자가 덫에 걸렸을 때 생쥐가 그물을 갉아서 풀어주었다. 생명과 사랑의 부메랑효과다. 사무엘하 16장에는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반역을 당하고 신발도 신지 못하고 울면서 피난길을 가는 상황에 설상가상으로 답잖은 신하 시므이의 저주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왕을 향해 ‘사악한 자여’ ‘피흘린 자여’ 하면서 악담하고 저주를 하면서 지근에 따라오는 것이다. 600 여명의 따르는 자들이 있었지만 시므이 한사람을 통제시키려는 사람이 없는 현실이었다. 이러할 때 한 사람, 아비새가 등장한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그렇다. 그 누구도 나서지 않는 상황에 아비새가 나선 것이다. 어느 공동체이든 위기 때는 두 사람이 등장 한다. 한 사람은 ‘시므이’ 같은 사람이다. 한 사람은 ‘아비새’ 같은 사람이다. 시므이 같은 한 사람 때문에 교회가 뿌리 채 흔들린다. 아비새 같은 한 사람 때문에 교회가 질서를 유지하고 안정이 되어 간다. 이와 같은 상황은 정치현장이나 목회현장이나 다를 바 없다. 아비새가 나서서 시므이를 단칼에 목을 베겠다고 했을 때 다윗이 한 말은 축복을 부르는 부메랑효과를 생각하게 한다.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삼하16:11~12)” 다윗은 자기 입으로 시므이를 저주하지 않았다. 이 일로 다윗은 축복을 받게되고 시므이는 저주를 받게 되었다. 다윗을 통해 축복의 부메랑을, 시므이를 통해 저주의 부메랑을 생각한다. 목회를 하면서 이런 경우를 흔히 겪는다. 시므이처럼 모든 기준이 자기 자신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조금도 이해하려 하거나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생각이 의요 선이다. 그것은 저주를 불러오는 부메랑이 된다. 다윗처럼 자기를 저주하는 시므이를 향해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맡긴다. 언어로 표현 할 수 없는 고통이었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철저한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며 인격이며 삶의 모습이다. 그것은 축복을 불러오는 부메랑이 된다. 부부가 길을 가다가 아내가 다리가 아파지면서 남편에게 업어달라고 했다. 남편은 아내를 등에 업었다. 아내가 미안하여 “무겁지?”라고 말하자 남편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럼 무겁지. 돌대가리지, 철면피지, 강심장이지 당신은 무거울 수밖에 없어” 조금 가다가 남편이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좀 전에 내가 업어주었으니 나도 조금만 업어주라.” 아내는 남편을 업었다. 남편이 조금 미안해하면서 “생각보다 가볍지?”라고 물었다. 아내가 말했다. “가벼울 수밖에요. 머리에 든 것이 없지, 허파에 바람이 들었지, 속은 비었지, 양심도 없지 가벼울 수밖에요” 말의 부메랑효과다. “여보 무겁지?” 하면 “아니야 솜털처럼 가벼워, 천사를 업은 것 같어, 날마다 업고 걸었으면 좋겠다.” “여보, 생각보다 가볍지?” 하면 “응, 정말 그러네. 당신 너무 허약한 거 아니야, 괜스레 내가 잘못 섬긴 것 같아 미안하네, 보약 한재 지을까 여보?” 이 얼마나 사랑과 축복의 부메랑 대화인가. 누가복음 6:38절도 축복의 부메랑효과다. 마태복음 7:12절도 축복의 부메랑효과다. 그러나 마태복음 27:25절은 무서운 저주의 부메랑효과를 가져왔다. 성경은 온통 부메랑효과의 기록이다. 섬기면 섬김 받는 것, 사랑하면 사랑받는 것, 축복하면 축복 받는 것, 저주하면 저주 받는 것, 미워하면 미움 받는 것, 모두가 부메랑 효과다. 남의 말 나쁘게 하는 사람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쁜 사람으로 입 돋음에 오른다. 불평 잘하고 원망 잘 하는 사람은 그 생활이 항상 불평과 원망의 울타리로 둘러쳐 있는 것을 본다. 그러나 감사하는 사람을 범사가 감사로 충만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울 사도를 통하여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축복의 부메랑효과다. 마귀의 궤계는 저주의 부메랑효과다. 은퇴 전 나의 목회 현장은 ‘마카리오스’가 인사 용어였다. ‘평행감축’이 인사말이었다. 어느 하루도 행복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사랑과 감사로 웃음꽃이 피었다. 교회가 축복받는 이유는 이해와 관용과 용서와 사랑의 부메랑효과 때문이다. 교회가 카오스현상이 되는 것은 믿음 없는 마음의 원망 불평 비판 정죄의 부메랑효과다 잠언 6:2절에서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고 하신 것처럼, 민수기 14:28절의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는 말씀처럼 축복과 저주는 내 입의 말을 통해 불러 오는 부메랑효과가 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축복하면 축복이 온다. 저주하면 저주가 온다. 사순절 절정의 기간인 고난주간에 축복과 저주의 부메랑효과를 생각하면서 깊은 묵상을 통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고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면 좋겠다.
    • 오피니언
    • 칼럼
    • 서임중 칼럼
    2021-03-29
  • [의학 칼럼] 발달성 고관절 이형성증
    “허벅지 주름이 달라요”, “엉덩이 주름이 달라요”, “사타구니 주름이 달라요”, “다리 길이가 다른 것 같아요” 이런 이유로 많은 부모님들이 아이와 병원을 찾습니다. 이는 발달성 고관절 이형성증이 의심되는 증상이지만 양 허벅지 및 엉덩이 부위의 피부와 연부조직들이 약간씩은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에 정상에서도 얼마든지 발견되는 증상입니다. 그러나 진단이 늦어지는 경우, 치료 방법이 어렵고 복잡해지는 경우가 많으며 장애를 남길 수도 있으므로 빨리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발달성’이란 발달하면서 생기는, 아이가 성장하면서 생긴다는 뜻이며, ‘고관절’은 우리 몸의 여러 관절 중에서 엉덩이뼈와 허벅지뼈를 연결하는 관절을 말합니다. ‘이형성증’이란 ‘이=이상하다’, ‘형성=만들어짐’ 즉, 이상하게(비정상적으로) 만들어진다는 뜻으로 발달성 고관절 이형성증은 성장하면서 고관절이 비정상적으로 형성되는 질환을 말합니다. 발달성 고관절 이형성증은 조기 발견, 조기 치료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국내에서는 2006년부터 영유아 검진 사업에 포함돼 생후 4개월부터 시작합니다. 이보다 이른 시기에 발견하면 치료가 더 간편하고 결과가 좋기 때문에 생후 2개월로 검진시기를 앞당겨야 한다는 전문의의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 발달성 고관절 이형성증은 아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검진인 만큼 부모님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합니다. 발달성 고관절 이형성증을 그냥 방치하게 되면 심한 정도와 나이에 따라 고관절의 심한 통증, 파행(저는 증상), 아탈구(고관절이 일부 빠짐), 퇴행성 관절염으로의 진행 등의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특히 발달성 고관절 이형성증을 진단받은 가족이 있는 경우 혹은 첫째 아이, 여아, 둔위 태향(태아가 산모 자궁 속에서 앉은 자세로 있는 것), 자궁 내 압박으로 발생되는 변형과 동반된 경우, 양수 과소증의 경우에는 발달성 고관절 이형성증의 고위험군으로 볼 수 있습니다. 출생 후 육아 방식에 따른 요인도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나라처럼 아기를 업고 있으면 고관절이 안정적으로 발달하게 됩니다. 아기의 고관절이 굽히고 벌린 자세(고관절 굴곡 및 외전)로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고관절을 펴고(신전) 다리를 모은(내전) 자세로 아기를 고정하는 관습이 있는 국가나 종족에서는 발달성 고관절 이형성증이 더 많이 발생합니다. 집에서 흔히 해주는 ‘쭉쭉이’는 고관절 형성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키 크는 데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답니다. 발달성 고관절 이형성증이 의심되는 우리아이를 위한 간단한 신체검사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 피부 주름이 달라요! (피부 주름 비대칭) 부모님들이 병원을 찾는 가장 흔한 원인이 허벅지의 양측 피부 주름이 다른 것입니다. 고관절이 빠진 쪽의 가랑이의 피부 주름은 깊고 뒤쪽으로 길게 연장되어 있습니다. 일반인이 발견하기 쉽지만 특이도가 대단히 낮기 때문에 피부 주름만으로 발달성 고관절 이형성증을 진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리가 잘 안 벌어져요 (고관절의 외전 제한) 다리가 잘 벌어지지 않는 증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생후 3개월 이후 나타나며, 기저귀를 갈아주면서 발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리 길이가 달라요!(하지 부동) 탈구되어 있는 쪽의 다리가 짧아 보이며 특히 고관절을 90도 굽히고, 슬관절을 최대한 굽혔을 때 탈구된 쪽 무릎의 높이가 낮은 증상을 보입니다. *다리를 절고 자세가 이상해요!(파행 및 자세 변화)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발견되는 경우는 진단이 좀 늦어진 경우로 빠진 다리를 바깥쪽으로 돌리고 다리를 저는 증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발달성 고관절 이형성증의 치료로는 생후 6개월(또는 그 정도의 환아 체구일 때)까지는 간단한 보조기만으로 치료가 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영아기에 발견된 경미한 이형성증은 이중 또는 삼중 기저귀로 다리의 위치를 벌려서 유지해 주는 것만으로 치료할 수 있는데,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고 효과적인 보조기 치료법은 파블릭(Pavlik Harness) 보조기입니다. 6개월 이후에는 체구가 커져서 보조기만으로는 치료가 어렵고 수술이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6개월 이내에 발견하더라도 기형성 또는 선천성 탈구의 경우에는 수술이 필요합니다. 수술 방법은 빠진 고관절을 제자리에 맞추는 단순한 정복술부터 심한 경우에는 허벅지뼈나 골반뼈를 자르는 복잡하고 큰 수술까지 다양합니다. 고신대병원 정형외과 최영 교수는 “발달성 고관절 이형성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기 발견과 조기 치료”라면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빨리 발견되는 만큼 치료법도 간단하고 나중에 후유증도 적다”고 강조했습니다.
    • 오피니언
    • 칼럼
    2021-03-29
  • [목회자 칼럼] 부활을 준비하라
    웨딩(Wedding)을 준비하지 말고 메리지(Marriage)를 준비하라는 말이 있다. 드레스 맞추고 사진 찍는 결혼식 준비보다 영적 혼수감을 준비해서 만남의 축복을 누리라는 것이다. 죽음을 기억하고 부활을 대비하라. 꽃은 떨어지고, 잎은 마르고, 풀은 시들고, 모든 것은 지나간다. 한번뿐인 인생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니 심판을 대비하라. 라틴어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옛날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 소리로 외치게 했다고 한다.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 이런 의미에서 생겨난 풍습이라고 한다. 인생은 웰빙이 아니라 웰다잉이다. 잔치집이 아니라 초상집에 지혜가 있다. 사람은 죽을 때에 장례식에서 그 사람의 진가가 드러난다. 몇 년 전에 소천하신 장성만 목사님 장례식 때에 큰 감동을 받았다. 어느 목회자는 “장례식 때에 설교할 내용이 있도록 살아라”고 평소에 강조하였고 한다. 34년 동안 투병 생활을 하신 길원평 교수님은 설레이는 죽음을 대비한다고 하였다. 우리 몸은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천국이 있기 때문이다. 믿는 자에게는 영생의 복락이 있다. 부활 전에 무덤이 있고, 무덤 전에 십자가 죽음이 있다. 부활절 전에 고난 주간이 있다. 사람은 고난을 통해서 비로소 깨닫게 되고 고난을 거친 후에 일체가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알게 된다.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고난 없기를 기도하지 마라. 오히려 고난을 자취하라. 성령 충만 받기 전에 먼저 된 일들이 있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고, 다함께 모이고,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해서 오로지 기도에 힘쓸 때 마침내 성령이 임하시고 초대 교회가 탄생되었다. 풍성한 열매를 맺기 전에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 어두운 세상에 빛은 촛대가 타들어가면서 빛을 내고, 썩은 세상에 소금은 형체도 없이 녹아지는 자기해체와 자기희생의 과정을 거친 후 방부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아프리카 우간다에 수많은 학교와 교회를 설립한 유니온 비전 선교는 한 사람 최슬기 자매의 순교가 시작이었다. 슬기 있는 다섯 처녀들은 기름병을 미리 준비하였기 때문에 혼인 잔치에 들어갔다. 엘리사는 불쌍한 과부에게 그릇을 빌리라, 기름병을 채워라,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생활하라고 했다. 어느 식당에 손님 맞을 준비에 대한 글이 있었다. 손님은 저의 은인이십니다. 예쁜 딸 고운 꽃신 사주셨고 홀로계신 어머니 용돈도 쥐어주셨고 저의 장래를 위한 적금까지 부어주시는 손님은 저의 은인이십니다. 오시는 길 빗질하고, 문간대청 닦아놓고, 그릇그릇 정성을 담고, 몸과 마음 또한 정갈히 다스렸으니 어서 오소서.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쓸데가 없다. 준비된 만큼 쓰임 받는다. 순간을 위해 평생을 준비한다. 행사가 행복이 되려면 준비에 달렸다. 호수의 백조는 수면위의 모습은 우아하나 수면 아래 실상은 요란하다. 아버지의 땀, 어머니의 눈물이 훌륭한 자식을 만든다. 엄마가 새벽에 일어나 더운밥을 지어주고 아빠가 새벽 출근길에 나서야 자녀들이 복을 받는다. 목회데이터연구소 자료에 의하면 중등부 때 신앙생활을 떠난 경우가 가장 많았다. 그리고 신앙생활에 최고의 영향을 끼친 사람은 엄마였다.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사람들이 있다. 마리아는 일년치 봉급인 삼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값비싼 향유옥합을 깨트려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가룟 유다는 아까운 것을 가난한자들에게 주지 않고 허비했다고 책망했지만 예수님께서는 힘을 다하여 예수님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다고 칭찬하였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결정적인 순간에 산헤드린 의원이요 부자였기에 빌라도 총독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했고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새 무덤에 장례하였다. 창세기 마지막 50장은 요셉의 장례식 출애굽기는 요셉의 해골을 파오는 것이다.
    • 오피니언
    • 칼럼
    • 목회자칼럼
    2021-03-26
  • [부산기독교이야기] 포로선교사 해롤드 보켈(2)
    중공군이 참전하면서 1950년 10월 25일 첫 중공군 포로가 생겼다. 10월 28일에는 평양에 2개의 포로수용소가 설치되었고, 인천 수용소도 11월 말까지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로 확장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중공군의 총공세에 밀려 후퇴하게 되자 평양에 수용되었던 2만4천여 명의 포로가 인천으로, 다시 후퇴하게 되자 다시 부산으로 이송되었다. 그래서 1950년 12월 3일 기준으로 부산에 집결된 포로 수는 14만6천135명에 달했다. 포로 관리 문제는 심각한 현안이 되었다. 미 제8군 사령관 리지웨이(Matthew B. Ridgway) 장군은 맥아더 사령관에게 보낸 1951년 1월 6일자 편지에서 전장(戰場)으로부터 멀지 않는 곳에 14만 명의 포로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우려스러운 상황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적과 싸우기도 모자라는 병력을 포로경비와 관리에 투입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점, 그리고 수송과 물자의 이동과 관리 등의 문제를 지적하였다. 결국 증가하는 포로들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또 분산하여 관리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되어 처음에는 제주도로 이전을 검토하였으나 거제도가 적합한 포로수용지로 부상했다. 거제도가 섬이기 때문에 포로 관리가 용이하다는 점과 부산으로부터 이동거리가 멀지 않다는 점, 급수 및 식량재배가 가능하다는 점 등이 고려되었다. 그래서 거제도 고현을 중심으로 22만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수용소를 설치하게 된 것이다. 수용소(Camp)의 하부구조는 ‘구역’(Enclosure), ‘동’(棟, Compound)으로 나눠지는데, 60, 70, 80, 90으로 나누어지는 ‘구역’과 그 휘하에 28개 ‘동’으로 구성되었는데, 1개 ‘구역’에 약 6천명을 수용할 수 있게 했다. 부산에 있던 포로들은 이 거제 수용소로 이송되기 시작하여 1951년 2월 말에 5만 명의 포로가 이곳으로 이송되었다. 3월 1일에는 주요 본부 및 부대도 거제도로 이동하였고, 3월말까지 거제도에 이송된 포로는 10만 명에 달했다. 5월 말에는 11만 5천명, 6월 말에는 수용 포로 수가 14만 명을 넘었다. 영등포 수원 원주 재천 대전 하양 등지에 분산되어 있는 포로들은 부산으로 집결되었고, 다시 거제도로 수송된 것이다. 결국 부산에는 병원수용소만 남고 나머지 포로들은 거제도로 이송된 것이다. 제1포로 수용소라는 이름도 거제도 수용소로 넘어갔고, 이곳이 최대 수용소가 되었다. 이곳에 가장 많이 수용된 인원은 17만 명에 달했다. 포로경비대대도 거제도로 이동하였는데, 3개의 경비대대(31, 32, 33대대)를 통합하여 포로경비연대를 창설했다. 당시 거제도 인구는 약 10만 명 정도였는데, 포로 수까지 합하면 30만 명에 달하는 인구가 거제도에서 살게 된 것이다. 이런 포로들을 위해 전도했던 선교사가 해롤드 보켈 목사였다. 보켈 선교사는 부산과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이들에게 설교하고 전도했다. 보켈이 처음 거제도로 간 때는 1950년 성탄절 직후였다. 그 이전에 포로로 잡혀왔던 임한상(任漢祥) 목사가 포로들을 위해 신앙지도를 하고 있었는데, 1950년 성탄절에는 비기독교인들을 포함한 4천 명의 포로들과 함께 성탄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이때의 상황에 대해 보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1950년 크리스마스 직후 임한상 목사가 속해 있는 포로수용소 켐프를 처음 방문했다. 그 때 이미 임 목사는 미군을 설득하여 텐트를 준비해 예배처소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성경공부를 하는 한편 불신자를 초청해 모임을 가졌다. 대화 중에 나는 임 목사가 크리스마스에 4천명의 포로를 모아놓고 야외에서 아름답고 감동적인 예배를 드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성경책과 찬송가들이 임 목사에게 제공되었고, 임 목사의 사역은 계속적으로 커지게 되었다. 후에 임 목사는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수많은 포로들이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공부하는 일에 임 목사는 핵심 인물이었다. 그는 특히 6개월 동안 포로수용소 병원에서의 사역을 통해 특별하게 열매 맺는 전도를 하였다. 그의 신실하고도 도전적인 리더십 때문에 모임에 참석해 복음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포로들의 숫자가 점차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보켈 선교사와 임목사의 활동에 고무된 유엔 당국은 거제도 포로수용소 내에서의 종교활동에 대해 호의적이었다. 수용소는 일종 또 다른 전쟁터였다. 좌익과 우익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은 때로 폭력을 동반하였고 살인에 이르기까지 험악한 단계로 발전하기 때문에 적절한 종교교육은 필요한 일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보켈의 역할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 오피니언
    • 칼럼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1-03-26
  • [목회자칼럼] 이럴 때 난 갈등한다
    1. 아무리 애를 써도 변화가 없을 때 난 갈등한다. 목회 초년 시절 또는 개척할 때, 있는 힘껏 애쓰고 힘써도 사람은 변화되기 힘든 것일까? 양적 변화로 성도 수의 부흥이 있든지, 아니면 질적 변화로 삶의 변화가 있든지 둘 중 하나의 결실은 있어야 하는데 아무 것도 없을 때, 이 때 우리는 좌절감으로 얼마나 많은 갈등을 했나? 계속 해야 하는지, 어떤 변화를 찾아야 하는지... 2. 경제적 어려움이 계속 될 때 난 갈등한다. 적은 수입으로 감사하고 만족하며 살아가다가도 너무 오랫동안 힘듦이 지속될 때 우리는 갈등한다. 과연 이 일을 계속해서 하는 것인지, 다른 길을 가야 하는 것인지... 3. 나의 문제는 참을 수 있는데 자녀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때 난 갈등한다. 이 땅의 모든 아빠, 엄마들이 나름대로의 어려운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 목회자라는 직업은 자녀와도 연관이 있기에 더욱 힘겹다. 나는 목회자이고, 사명자이기에 참을 수 있지만 목회자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이 온갖 소문과 좋지 않은 이야기에 엮일 때 부모는 갈등한다. 4. 중년기는 마음이 전쟁터라고 하는데,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 안에서 싸우는 나를 발견할 때, 난 갈등한다. 좌절과 탈진이 반복될 때, 중년기 남자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반복된 갈등으로 에너지가 상승하거나 유지되기는커녕 성과 없이 끝도 없이 아래로 내려갈 때 어려운 마음은 갈등의 전쟁터가 된다. 5. 직장 상사와 마음이 맞지 않을 때 난 갈등한다. 남자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직장인데, 그 속에서도 상사와 마음이 맞지 않을 때, 하루에서 수십 번 사표를 꺼낼까 말까 고민하며 참고 또 견딘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길을 걸을 때면 “언제까지 이 회사를 다녀야 하나?” 고민하고 갈등한다. 미래를 생각해서는 지금 그만두어야지, 라고 생각하지만 현재 상황을 봐서는 당장 행동에 옮기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머리와 마음이 매일 싸우는 상황에서 어떤 것이 정답인지 알지 못한 채 아침 출근길에서 매일 갈등한다. 6. 오늘 아침 이불 속에서 난 갈등한다. 기온이 내려간 추운 아침, 따뜻하고 포근한 이불 속에서 5분만 더, 3분만 더, 머물고 싶은 유혹에서 난 갈등한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중에 5분이라도 더 안식하고 싶은 마음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움직여야 하는 삶 앞에서 갈등한다.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인간은 누구나 갈등 속에 살며, 갈등하는 것이 곧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또한 갈등을 하며 생각의 발전, 인격의 성숙을 이뤄간다. 갈등이 없으면 생각의 싸움이 일어나지 않고, 생각의 싸움이 일어나지 않으면 나의 모습을 바로 직면하기가 어렵다. 갈등을 통해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봄으로 ‘나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나는 어떤 사명자’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떤 사람은 그 갈등을 빨리 해결하고픈 마음에 온갖 방법을 동원해 답을 찾는다. 반면에 또 다른 사람은 갈등 앞에 “이 갈등이 왜 생겼는지” 고민하고 “갈등에 반응하는 나의 모습”을 바라본다. 사건을 통해 내 모습을 보면서 나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과연 내가 정체성에 맞는 삶 다시 말해 사명을 깨닫고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갈등 앞에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문제 해결에 급급한 나머지 갈등이 주는 유익을 놓치고 현상에만 전전긍긍하지는 않는지, 아니면 갈등을 기회로 삼아 내 모습을 바로 보는 계기로 삼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현상과 깊은 의미를 파악해보면 갈등이 결코 피하고 싶은 숙제가 아니라 나의 정체성과 사명을 발견하는 감사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으로 실존하는 우리가 크고 작은 갈등 앞에 사명을 발견하고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앞에 갈등이 있는가? 예상하지 못한 갈등을 실패의 걸림돌로 생각하지 말고 성장의 디딤돌로 여기는 건 어떨까? 같이 나누어 봅시다.
    • 오피니언
    • 칼럼
    • 목회자칼럼
    2021-03-05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