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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기독교이야기] 부산 일신병원
    6.25 전쟁기 설립된 부산의 대표적인 의료기관은 일신병원이다. 부산역에서 부산진을 지나 서면으로 가는 길, 곧 부산시 동구 좌천동에 위치한 이 병원은 부산시민들에게는 아직까지도 종합병원으로 보다는 산부인과 전문 병원으로 기억될 만큼 이 지역사회 사람들의 가슴 속에 여인들의 피난처로 깊이 자리하고 있다. 일신병원이 설립된 것은 한국이 전화에 휩싸여 있던 1952년 9월이었다. 당시 우리나라에 호주장로교 소속 선교사로 내한 했던 두 자매, 헬렌 매켄지(Helen Mackenzie, 1913-2009)와 동생 캐더린 매켄지(Catherine Mackenzie, 1915-2005)에 의해서였다. 매혜란으로 불린 언니 헬렌은 산부인과 의사였고, 매혜영으로 불린 동생 캐드는 조산간호사였다. 이 두 자매는 1910년부터 1938년까지 30여 년간 부산에서 일했던 제임스 노블 메켄지(James Noble Mackenzie, 1865-1956) 목사의 장녀와 차녀인데, 동구 좌천동에서 자랐고 평양 외국인학교에서 초등교육을 받고 호주로 돌아가 멜버른의 장로교여자중고등학교(Presbyterian Ladies College)에서 공부한 후 헬렌은 1933년 멜버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공부하여 산부인과 의사가 되었고, 동생 캐드는 로얄 멜버른간호학교를 졸업하고 간호사가 되었다. 이 두 자매는 선교사를 자원하여 1945년 중국 곤명(昆明)으로 가 일하던 중 중국의 공산화로 1950년 중국에서 추방되었다. 그 때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했고, 한국으로의 입국이 가능하게 되자 1952년 2월 부산으로 왔고, 그해 9월에 부산진의 일신 유치원 한 구석에서 일신 부인병원을 창설하게 된 것이다. 필자는 1987년 3월 이후 여러 차례 헬렌을 만난 적이 있는데, 일신병원 설립의 어떤 계기기 있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때 헬렌이 들려준 이야기는 전쟁의 아픔을 보는 듯 했다. 추운 겨울에 다리(橋) 밑에서 어떤 여인이 변변한 담요 한 장 걸치지 못한채 출산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고 산부인과 병원 설립을 서두르게 되었다고 했다. 사실 헬렌은 산부인과 의사였기 때문에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기도 했다. 두 자매는 전쟁으로 온 나라가 고통당하고 있을 때 피난지 부산에서 산부인과 의원을 개설한 것이 지금의 일신병원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당시는 전쟁의 상처가 도처에 산재해 있었고, 거리에는 아이들과 보호받지 못한 여인들이 고난의 길을 가고 있을 때였다. 전쟁은 모든 이에게 고통스런 것이지만 특히 여성들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가족이나 보호자를 잃은 가난한 여인들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일신병원(日新病院)이라고 할 때, ‘일신’(日新)이란 말은 ‘날마다 새롭게’(daily new)라는 뜻인데, 호주선교부 기관에서 애용된 이름인데, 호주 장로교의 초기 선교사였던 멘지스, 니븐, 켈리 등 호주선교사들의 어학선생이었던 박신연이 호주선교부가 부산에서 1895년에 시작한 학교를 1908년부터 ‘일신여학교’라고 부르게 된데서 유래하였다. 이래저래 일신이라는 이름은 호주장로교와 깊은 관련을 맺는다. 헬렌과 캐드는 결혼을 포기한 채 일생동안 한국에서 봉사했는데, 언니 헨렌은 1952년부터 1976년까지 24년간을, 동생 캐드는 1952년부터 1979년까지 27년간 한국에서 봉사하고 호주 멜버른으로 돌아갔다. 아버지가 노후를 보낸 발윈(Balwyn)의 그레이가 7번지(7 Grey St.)에서 살던 중 양노원으로 옮겨가 노후를 보내던 중 캐드는 2005년 2월 10일 90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고, 헬렌은 2009년 9월 18일, 96년의 일생을 마감했다. 두 사람의 유해는 화장 한 후 멜버른 근교 코벅그에 있는 묘지공원(Fawkner Crematorium Memorial Park)에 묻혔다. 매켄지 자매를 이어 제2대 의료진으로 내한한 호주 의사가 바바라 마틴(Dr Barbara Martin)이었다. 그는 1964년 부산으로 와 1995년까지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봉사했다. 일신병원은 소규모의 산부인과 의원으로 출발했으나 이들의 헌신과 봉사, 그리고 동역자들의 후원으로 현재는 기독교 종합병원으로 발전하였고, 양질의 의료진을 갖춘 병원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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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0-12-22
  • [성경인물탐구] 하나님과 동행하며 산 에녹
    셋의 계보는 가인의 계보가 가인의 7대손인 라멕에 이르러 최절정에 달했듯이 역시 셋의 7대손인 에녹에 이르러 최절정에 달합니다. 라멕은 자신의 자녀들을 통하여 목축과 음악 그리고 무기 생산이라는 자기 보호와 만족을 위한 모든 것을 스스로 공급했습니다. 그는 철저히 하나님을 배격하고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살 것을 선언했습니다. 반면에 에녹은 어떤 특별한 업적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살았습니다. 여기서 동행한다는 것은 함께 걷는다는 뜻입니다. 에녹은 그의 평생을 하나님과 함께 그분의 뜻대로 살았던 것입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은 결코 어떤 영웅적인 행동을 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본문이 기록하고 있는 에녹의 행적은 60세에 므두셀라를 낳고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자녀를 낳았다는 것뿐입니다. 그것 이외에 에녹이 행한 일은 없습니다. 단지 다른 사람들과 같이 먹고 자고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건이라는 것이 하나님처럼 사는 것 즉,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지 어떤 특별한 일을 성취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에녹의 경건은 일상적인 것이었습니다. 또한 에녹의 경건은 경건의 모양만 갖춘 것이 아니라 경건의 능력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경건은 그가 365세에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녹은 죽음의 계보 중에서 유일하게 죽음을 경험하지 않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죽음을 이겼으며, 그와 같은 경우는 엘리야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었는데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것입니다. 에녹의 믿음은 순수 이론적인 죽은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행함으로 온전케 된 믿음이었기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편 유다는 그의 서신에서 에녹의 경건에 대하여 한 가지를 더 첨부하여 언급합니다. 그것은 에녹이 그와 시대에 살면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했다는 것입니다. 롯은 죄악의 성인 소돔과 고모라에 거하면서 그들의 불법을 보고 들으며 의로운 심령을 상하는 정도의 경건을 소유했지만, 에녹은 그것에서 더 나아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에녹은 잘못된 일에 참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것을 책망하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메시아의 강림에 대해 잘 알았고 죄인들을 심판하신다는 사실도 잘 알았습니다. 그는 죄악 된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이 전해져야 함을 알았습니다. 바울도 벨릭스 앞에서 장차 오는 심판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였고 그것을 들은 벨릭스는 두려워했습니다. 이처럼 경건의 삶을 살았을 뿐만 아니라 주의의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을 향해 돌이킬 것을 예언한 하나님의 선지자였던 것입니다. 우리도 에녹처럼 거룩함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2020년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새로운 꿈을 갖고 2021년 새해를 맞이하는 멋진 삶이 펼쳐지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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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22
  • [교회학교를살린다] “크리스마스에는”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코로나19의 창궐로 인해 아쉽게도 성인예배와 다음세대 교회학교 예배와 활동이 모두 비대면으로 전환되었다. 작년의 크리스마스를 추억해보면 그때가 참 행복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성인 찬양대는 성탄절 칸타타 준비로 바쁘고, 성탄절 전야 발표회로 온 교회가 들썩들썩했었다. 특별히 작년엔 온 교인이 손으로 직접 쓴 성탄 카드를 서로 나누며 따뜻한 마음을 나누었던 게 참 좋았었다. 이렇게 손 글씨로 쓴 성탄카드를 나누니 어린 시절 성탄절이 생각난다며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시던 한 권사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캐롤, 트리의 알록달록한 불빛, 아이들의 웃음소리, 함께 하는 맛있는 식사시간, 주고받는 따뜻한 인사... 성탄절이면 당연히 있던 풍경들이 올해는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언제까지 이런 컴컴한 터널을 지나야할지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는 것만 같은 때이다. 그러나 우리가 잊은 게 있다. 바로 처음 성탄절이다. 처음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세상은 암흑 그 자체였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노랫말이 아니라 실제로 세상이 하나님의 깊은 침묵을 경험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죽음의 긴 터널을 지나며 자신들을 구원할 메시야를 열망하고 있었다. 그때, 하나님은 희망의 빛을 비추시고 아기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다. 구원자가 오셨다는 기쁜 소식은 먼저 괴로운 인생길을 살아가는 일용직 노동자였던 양을 치는 목자들에게 전해졌다. 참 아이러니한 것은 하나님은 목자들의 힘겹고 아픈 인생 상황을 역전시켜주신 게 아니라 구원의 기쁜 소식을 먼저 전해주셨다. 생각해보면 목자들이 본 상황은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았을 것 같다. 대궐이나 궁궐도 아닌 허름한 동굴 같은 곳에 그것도 동물의 밥그릇에 누워있던 한 아기의 모습에 오히려 절망하고 되돌아갔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자신들의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슴속에 한줄기 희망의 빛을 품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되돌아갔다. 아마도 이 순간을 기점으로 그들의 인생에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하루,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지 않았을까? 그래서일까 교회의 달력은 역사적으로 대림절과 성탄절부터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어 예수님의 생애를 주기로 일 년이 구성된다.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림절과 탄생의 기쁨을 나누는 성탄절은 그래서 새해의 시작이다. 우리의 상황은 전혀 나아진 것이 없고, 올 해 크리스마스에는 비대면 예배와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어질 것이다. 교회와 교회학교는 불 꺼진 텅 빈 방과 같아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대림절과 성탄절을 시작으로 새해의 기쁜 소식을 알려주신다. 이 기쁜 소식은 우리의 상황과 여건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유효하다. 희망은 우리에게 있지 않고 그분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비대면의 시대에 어떻게든 희망의 소식을 전하고 나누어야 할 것이다. 다음세대는 가정에서 부모님과 함께 성탄달력을 완성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하루하루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달력에 스티커를 붙이는 전통적인 활동이다. 비록 사진으로만 만나고 있지만 아이들의 환한 얼굴을 보니 성탄 분위기가 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이어지던 종교개혁특강이 온라인만으로 전환되었지만 여전히 온 가족이 다함께 강의를 들으며 믿음으로 연말연시를 보낼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올해도 성탄카드는 이어진다. 올해 성탄카드 표지그림은 동백꽃이다. 성도들 간에 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이웃들과도 성탄의 기쁨을 나누시라고 표지를 동백꽃으로 했다. 동백꽃의 꽃말은 “누구보다도 당신을 사랑합니다.”이다. 성탄절에 사랑을 나누는 의미에 참 잘 어울린다. 그리고 동백이라는 말 자체가 겨울에 피는 꽃이라는 뜻이다. 이 빨간 꽃은 추운 겨울 눈 밭에서도 피어난다. 빨간 동백꽃은 특히 이번 성탄절에 참 잘 어울린다. 올해 우리 모두는 추운 겨울 눈밭을 맨 발로 헤매는 것과 같은 아픔을 느끼며 한 해를 보냈다. 여전히 끝이 나지 않는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성탄절을 맞이하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한해, 기쁨의 소식을 미리 전해주신다. 비록 교회에서의 모임은 어렵지만 가정과 온라인상에서라도 이 성탄의 소식을 우리와 우리의 다음세대들에게도 전하고 나누는 시간을 풍성하게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오래전 캐롤 가사처럼 헤어져있을 때나 함께 있을 때나 아무런 상관이 없다. 우리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의 기쁜 소식 안에서 늘 함께 있으니까 말이다. 크리스마스, 새해는 벌써 시작되었다. 하나님이 주시는 희망찬 새해를 열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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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22
  • [의학칼럼] 위암의 예방과 조기 진단, 그리고 내시경치료(1)
    위암은 전 세계적으로 다섯 번째로 흔한 암이며 전체 암 발생의 5.7%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과거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비교적 높은 발병률을 보였으나, 보건/위생 상태 개선 등에 힘입어 전 세계적으로 발생빈도가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아직 동아시아는 전세계의 발생률보다 2배 정도로 높고, 특히 한국 남성들의 위암 발생률은 10여 년 전부터 계속 10만 명당 40-50명 이상으로 세계 1위입니다. 2019년에 발표된 중앙암등록본부 자료에 의하면 2017년 우리나라에서는 232,255건의 암이 새로 발생하였는데, 이중 남녀 합쳐서 29,685건, 전체 암 발생의 12.8%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인구 10만 명당 조발생률(해당 관찰기간동안 특정 인구집단에서 새롭게 발생한 암환자수)은 57.9건입니다. 1999년부터 전국단위 암발생통계를 산출하기 시작하였는데, 2017년까지 암유병자수는 186만명이며, 이 중 위암이 갑상선암에 이어 15.5%로 약 28만명이 위암으로 진단되었습니다. 위암의 예방 위암의 예방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하는 것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균입니다. 위 점막층에 있는 나선 형태의 세균으로 위궤양, 십이지장궤양과 림프종 중에서 위 번연부 B세포 림프종의 원인으로 밝혀졌습니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는 전 세계 인구의 반수 이상에서 감염이 되어 있고 선진국에서 감염률이 낮지만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에서는 높은 감염률을 나타냅니다. 주로 5세 이전에 감염이 되는데 치료하지 않으면 감염이 평생 지속되고 자연 치유되는 일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대부분 만성 위염이 발생합니다. 국제보건기구(WHO) 산하의 국제암연구소에서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감염을 위암의 1군 발암 요인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감염된 사람은 위암의 위험도가 2-3배 정도 높습니다. 헬리코박터와 함께 고려해야하는 위암의 원인 인자로 위암의 가족력도 있습니다. 여러 연구들에서 위암의 가족력이 있는 경우 위암의 위험을 약 2배에서 3배(최고 9.9배) 높은 것으로 보고하였습니다. 특히, 국립암센터의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조기위암으로 내시경 치료 후 헬리코박터 제균을 시행하면 위약을 복용했던 군에 비해서 50% 정도 위암 발생이 줄어들었으며, 성공적으로 제균된 환자는 지속적으로 감염된 환자에 비해서 약 68%의 위암 발생이 위험이 줄어들었습니다. 또한 위암 환자의 가족을 대상으로 헬리코박터 제균치료를 시행하면 위암 발생 위험이 55%나 감소됨이 확인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헬리코박터 제균치료는 고위험 군에서는 특히나 위암 예방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보험 규정에서는 소화성 궤양, 저등급 위 번연부 림프종(MALT 림프종), 조기 위암의 내시경 절제술 후, 특발성 혈소판 감소성 자반증에 대해서 요양 급여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헬리코박터 제균치료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외에도 2018년 1월 1일부터 본인 부담이긴 하지만 위 선종의 내시경절제술 후, 위암 가족력이 있는 경우, 위축성 위염이 있는 경우, 기타 진료상 제균이 필요하여 환자가 동의하는 경우 제균치료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의사와 상담하여 필요시 제균치료를 받는 것이 위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위암과 가장 연관된 식이 요소로는 염분 섭취가 있습니다. 지속해서 많은 양의 염분이 포함된 음식을 먹게 되면 위암 발생률이 높아지게 됩니다. 일본에서는 절인 음식, 간이 된 생선, 가공육 섭취를 통한 다량의 소금 섭취는 위암 발생을 예측할 수 있는 지표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동물 실험에서는 소금은 직접 위 점막을 손상시키며, 발암물질로 알려진 물질인 N-nitroso 화합물을 만들어 내게 되며, 헬리코박터에 취약한 인자를 발현하고 헬리코박터 감염을 촉진시키게 됩니다. 따라서 염분(나트륨) 섭취는 하루에 2.4g (소금 6g에 해당) 이하로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소고기, 돼지고기, 양고기와 같은 붉은 고기와 가공육은 위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붉은고기는 고온에서 굽거나 튀기면서 요리하기 때문에 이러한 연소 작용은 이합체 아민 및 다환 (polycyclic) 방향성 탄소물질 및 잠재적인 발암물질을 만들어내고, 가공육은 소금을 많이 포함하여 암 발병을 촉진시킬 수 있습니다. 최근42개의 관찰 연구를 통한 메타분석에 따르면 붉은 고기와 가공육은 50% 가량 위암의 발생을 높이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외 비만, 흡연, 음주 등도 위암의 발생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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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22
  • [소강석칼럼] 우리 함께 귤 따러 가요
    우리 총회에서 10년 전에 제주도에 수양관을 지으려고 사 놓은 땅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어찌해서 수양관을 짓지 못하고 귤밭으로 남아 있습니다. 작년에 저는 제주도에 가서 그 귤밭을 보고 반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총회장이 되면 꼭 귤 따러 오겠다”고 이야기를 해 놓았습니다. 물론 제가 총회장이라고 해서 그냥 따는 것이 아니라 경작 수고비를 다 지불하고 성도들에게 좋은 추억도 선물하고 싶어서 같이 간 것입니다. 정말 총회장이 된 이후로 두려운 영광, 영광스러운 두려움에 싸여 긴장의 나날이었고, 총회 세움과 한국교회 세움의 사명 때문에 강박증에 시달릴 정도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총회 제주도 귤밭에 귤 따러 간다고 생각하니까 비행기를 타는 순간부터 가슴이 설레였습니다. 제주도를 수없이 왔다 갔다 했지만, 귤밭을 눈으로 보기만 했지 한 번도 직접 따보지는 못했거든요. 마침내 우리 총회 귤밭에 도착하였는데 정말 얼마나 탐스러운 귤들이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려 있었는지요. 제주노회 목사님들이 총회장의 방문을 환영한다고 현수막도 걸어주고, 삼겹살도 구워 놓았는데, 저는 바로 귤나무로 달려가서 정신없이 귤을 12개나 따 먹은 것입니다. 귤을 따 먹는데 얼마나 과즙이 상큼하게 터지는지 향기가 진동하였습니다. 저와 함께 동행한 성도들은 정신없이 귤을 따서 정말로 사랑하는 분들에게 택배로 보내드렸습니다. 그 순간 지금까지 달려온 시간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니까 이렇게 상큼한 감귤을 따 먹는구나.” 십수 년 전부터 이슬람 스쿠크, 동성애, 포괄적 차별금지법, 종교인과세 등 한국교회를 위태롭게 할 수 있었던 역사의 결정적 순간마다 부족하지만, 하나님께 쓰임을 받아 많은 재정과 시간과 힘을 바쳐 눈물로 씨를 뿌렸습니다. 그 일의 가치와 성과를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릅니다. 그러나 같이 일했던 분들은 다 압니다. 그때 김영진, 전용태, 김승규 장로님, 이혜훈, 김진표 의원님, 측면에서 박지원 현 국정원장님 등이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그분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지금은 이슬람 스쿠크, 동성애, 포괄적 차별금지법 등의 문제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알고 있고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코로나19로 인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한 번도 취업을 못 해본 청년들이 29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내하며 눈물로 씨를 뿌리면 반드시 열매를 딸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미래의 어딘가 제주도의 감귤처럼 하나님이 예비하신 꿈의 열매, 축복의 열매가 익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포기하면 모르지만, 포기하지만 않으면 반드시 영혼의 감귤, 삶의 성공이라는 감귤을 딸 수 있습니다. 제주도의 감귤 뿐만이 아니라 우리 삶에도 영혼의 감귤, 축복의 감귤이 있습니다. 그 감귤은 포기하지 않는 자만이 딸 수 있습니다. 끝까지 인내하고 눈물로 씨를 뿌린 자만이 거둘 수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돌아와, 저는 또 정신없이 총회와 한국교회 연합과 세움 사역을 위해 질주하고 있습니다. 시대적 사역을 하다 보면 오해도 받고 힘든 일도 겪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저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면 제 삶의 또 다른 내일 어딘가에 제주도의 감귤처럼 상큼한 축복의 열매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끝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금도 어딘가에서 축복의 열매들이 익어가고 있으니까요. 우리 함께 귤 따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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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02
  • [통일칼럼] 북한이해 방법
    미국 조지타운대학 국제정치학교수인 빅터차는 북한을 ‘불가사이한 국가’라고 불렀다. ‘불가사이한 국가’라는 별명에 걸맞게, 북한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접근방법을 사용한다. 첫째는 내재적 접근법이다. 이 연구법은 북한을 연구할 때, 북한체제가 설정해 놓은 이념과 논리를 기준으로 삼고, 북한의 특수한 현실을 고려하여 그들 사회현상을 분석하자는 접근방법이다. 즉, 북한 사람의 입장에서 북한을 이해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접근방법은 북한체제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북한사회의 비민주적이고 부정적인 면에는 줄곧 침묵해 왔다는 점에서 오류를 범해왔다는 지적과 비판을 받아왔다. 둘째는 외재적 접근법이다. 내재적 접근법의 제한성을 극복하기 위하여 개발된 연구법이다. 이 방법은 서구 사회주의 및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기초한 인류 보편적 시각에서 북한사회 전반을 이해하는 연구이다. 외재적 접근법으로 수행된 연구들에서는 북한사회가 폐쇄적이고 위험한 국가의 모습으로 그려져 왔다. 셋째는 내관적 접근법이다. 북한을 내재적 접근법으로 연구하면서 동시에 외재적 접근법적 비판을 함께 가하는 연구방법이다. 즉, 북한사람의 입장에서 북한의 체제와 사회문화 현상을 수집하고 분석하여 서술한 뒤, 다시 자유민주주적 자본주의 보편적인 가치로 북한사회를 분석 평가하여 이해하는 접근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북한연구에 내재적 접근방법을 적용하여 최초로 국내에 소개한 사람은 재독학자 송두율교수였다. 송두율은 북한연구에 새롭게 도입한 내재적 접근방법에서,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북한사회를 작동시키는 내부적 원리인 주체사상을 먼저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하였다. 그가 말하는 내재적 접근은 비유해서 말하자면 아이가 울 때, 왜 우는지의 원인을 찾아 배가 고파서 우는지, 배가 아파서 우는지를 진단해서 처방을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내재적 접근방법의 연구결과물들은, 북한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지지하는 편향된 결과물을 이끌어 내는 경향을 보여 왔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국내 북한학자들로부터도 비판을 받아왔다. 진보성향의 학자들은 내재적 접근의 연구를, 보수적 성향의 학자들은 외재적 접근의 연구를, 중도적 입장에서 북한을 이해하려고 하는 학자들은 내관적 접근방법의 연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북한선교를 염두에 둔 교회와 기독교인은 북한을 이론적 시각이 아닌,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북한동족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과, 저들에게 진리를 알게하여, 진리로 자유하게 하는 성육신적, 섬김의 선교학적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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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02
  • [성서연구] 겨울을 사랑하는 마음
    남산자락을 돌 때마다 제각기 물들어 찬란하게 빛나는 나뭇잎에 기쁨을 느꼈습니다. 바람에 멋들어지게 떨어지는 은행잎에도 매료되었습니다. 떨어지는 것까지 아름답다니, 인생은 저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은행잎이 밤새 떨어져 비단 양탄자처럼 깔린 모습은 정말 환상이었습니다. 일부러 한밤중에 나와 그 위에 혼자 가만히 서 있었던 적도 있습니다. 정호승님의 시의 한 구절인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는 대목을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나도 멋지게 살다가 멋지게 떨어지리라고 다짐하면서. 그런데 그 아름다움이 짧게 지난 후에 찾아오는 것은 아픔입니다. 제 단순한 생각으로는 일생을 마친 나뭇잎들을 그냥 두었으면 좋겠습니다만, 노란 조끼를 입은 이들이 노란 은행잎들을 가차 없이 쓸어버리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같은 노란색인데 관용은 없었습니다. 쓸려가는 나뭇잎들이 우리인 듯 아팠습니다. 찬란한 가을의 자리를 빼앗는 겨울이 미웠습니다. 겨울은 사랑하기 어려운 계절입니다. 우선 춥습니다. 앙상합니다. 음산합니다. 거리에 사람도 적어집니다. 그런데 최근에 불현듯 겨울을 사랑하는 마음이 성숙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겨울을 견디는 마음, 겨울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따스한 봄이 온다는 것을 떠올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겨울을 잘 견디셨습니다. 예수님께 다가온 겨울은 십자가였습니다. 나뭇잎들이 떨어지듯, 사람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갔습니다, 삭풍이 살을 에듯, 채찍과 조롱이 예수님의 몸과 마음을 할퀴었습니다. 겨울이 가을에게 붙어있는 한 모금의 숨마저 죽이듯,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겨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겨울을 사랑하셨습니다. 전능하신 예수님께서는 얼마든지 십자가에서 내려와 원수들을 무릎 꿇릴 수 있었지만, 가장 무능한 자처럼 십자가에 높이 매달려 계셨습니다. 그건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가장 강한 분이 가장 약한 자처럼, 가장 귀한 분이 가장 천한 자처럼, 가장 거룩한 분이 가장 추한 죄인처럼 매달려 계셨습니다. 겨울을 사랑하는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의 겨울을 봄으로 바뀌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위해 세상에 탄생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겨울이 있었음을 아십니까? 죄와 고통, 사망이 우리의 겨울입니다. 그 겨울에 우리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라는 겨울을 사랑하여 감당하심으로 우리의 겨울은 따스한 생명의 봄으로 바뀌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21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고 합니다. 바울은 겨울을 앞두고 있었는데, 계절상의 겨울만 앞둔 게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순교라는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6-7절에서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했는데, 봄부터 늦가을까지 농부가 모든 것을 다 마친 것과 흡사합니다. 남은 것은 겨울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 겨울을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들고 겨울 한복판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구원의 꽃이 피는 봄이 오게 했습니다. 바울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동역자들도 온 힘을 다해 겨울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20절을 보면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고 드로비모는 병들어서 밀레도에 두었노니>라고 했는데, 어려운 처지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최선을 다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분들은 자신들의 겨울을 회피하지 않았고, 사랑했습니다. 겨울을 사랑하는 마음이 봄을 가져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마음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코로나 19 사태, 우리 사회의 혼란, 한국교회의 어려움은 우리가 사랑해야 할 겨울입니다. 좋았던 한때인 가을을 빼앗은 겨울을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교회와 성도는 단 한 번도 다수였던 적이 없습니다. 늘 소수였습니다. 믿음을 지키며 사는 것은 늘 추웠고,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선배들은 겨울을 피해 도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방한복처럼 입고 겨울을 향해 달려가야 하겠습니다. 겨울을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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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02
  • [시사칼럼] 파기만 하면 나오네
    지난 11월 중순 아테네에서 하수도 공사 중 거리 표지석으로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헤르메스 신의 조각상이 발굴되어 화제가 되었습니다. 언론들은 이를 두고 “땅만 파면 나오네”라는 재미있는 기사 제목을 붙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어디 아테네뿐이겠습니까? 최근 몇 년 동안 로마도 그렇고 성경에도 나오는 데살로니가에서도 지하철 공사 중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서양의 전유물만도 아닙니다. 최근 경주에서 다시 한 번 신라 시대 유물들이 잇달아 발굴되었지요. 불과 몇일 간격으로 ‘쪽샘 L17호’라 불리는 목곽묘(木槨墓·덧널무덤)에서는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에 제작되어 신라에 수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허리띠 장식과 마구, 투구, 토기 등이 발견되었고, 황룡사지 서회랑 서편 터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다른 유물들과 함께 금동봉황장식 자물쇠 몇 점이 발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오래 전 경주에서 나타난 기이한 유물이 떠올랐습니다. 1956년, 경주 불국사를 대대적으로 보수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불가사의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정말 기이한 유물이 출토된 것입니다. 바로 ‘돌십자가’와 ‘마리아’로 보이는 상이었습니다. 불국사는 통일신라시대인 751년에 건립되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상이라니, 그렇다면 이는 고대 기독교가 우리나라에까지 전파되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왜냐하면 신라와 동시대인 발해의 고토에서는 이미 기독교 유물이 여러 점 발견된 바 있기 때문입니다. 발해의 솔빈부 아브리코스 절터에서 십자가가 출토되고, 한때 수도였던 동경 용원부(현 훈춘)에서는 삼존불의 왼쪽 협시보살이 십자가를 목에 걸고 있는 상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1926년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한반도와 인접한 중국 만주지방의 안산(鞍山) 부근에서 요대(遼代) 성종 때(11세기 초)의 것으로 추정되는 기와로 만든 7점의 십자가가 출토되고, 동방박사의 아기 예수 경배도를 방불케 하는 암각화도 발견된 바가 있다고 합니다. 중세시대에 유럽에서는 아시아에 프레즈비터 또는 프레스터 존이라 불리는 기독교 주교가 살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로마 교황은 그를 찾기 위해 사절단을 파견했고, 수년 후에는 프랑스의 루이 9세도 사절단을 파견했으나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독교의 분파라고도 할 수 있는 ‘네스토리우스파’를 발견했는데, 이 사실은 프레스터 존이 동양 어느 곳에 실재한다는 신념을 굳혀 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5세기에 이르러 페드로 코빌람이라는 포르투칼의 탐험가가 홍해에서 그리 멀지 않는 아비시네스(아비시니아, 에디오피아를 말함)에 크리스트교를 믿는 왕이 있다는 말을 듣고, 이 국왕이야말로 진정한 프레스터 존임에 틀림없다고 단정하고 그곳을 찾아가 네구스(왕의 칭호)라고 부르는 왕의 궁정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토마스 불린치, The age of fable). 한편 근대에 이르러 처음으로 티베트에 부임한 기독교 선교사들은 아시아의 오지에 로마 가톨릭교회와 유사한 주교의 궁정과 그 밖의 여러 사원들이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여기에는 승려와 여승의 수도원이 있었으며, 화려한 종교적 행렬과 의식이 있었으므로, 여러 선교사들은 라마교를 타락한 기독교의 일종이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기독교로부터 종교적인 제례나 양식들을 수입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복음이 인도를 건너 티베트에, 그리고 중국으로 전파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서유럽에서 이단으로 정죄 받은 네스토리우스교는 동진하여 중국에 도착해서 활발한 포교 활동을 벌였습니다. 당시 당나라는 세계 제일의 제국으로 국제적 문화를 자랑하고 있었으며 네스토리우스교는 이러한 기류에 편승하여 “경교”로 토착화된 후 상당한 세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동시대 신라에서 발굴된 돌십자가는 바로 이러한 복음 전파의 결과물이 아니었을까요? 이름도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주신 거룩한 지상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2000년 전 유대 땅에서 사방으로 땅 끝을 찾아 떠났을 것입니다(행 8:1). 그 중에는 미지의 동방세계를 향해 떠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복음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전했는지 우리는 아주 일부 밖에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한 가운데 그들이 전한 복음은 마침내는 대륙의 끝인 우리나라에까지 그 흔적을 남기고야 말았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어둠을 뚫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온 누리에 빛의 자국을 남깁니다. 오래 전 경주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그 빛을 묵묵하게 받아내었던 이들을 생각하며, 어수선한 시대에 다시 한 번 복음의 그 밝은 빛을 사모하며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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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02
  • [교회학교를 살린다] “최고의 교육과정, 성경을 알자2”
    지금 한국교회와 교회학교는 위기에 놓여있다. 먼저는 외부적으로 코로나19라는 예기치 못한 파도로 인해 교회에서 모이는 것 자체가 위협을 받고 있다. 정말 큰 위기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교회의 위기상황은 외부적인 요인보다 내부적인 요인으로 인해서 더 심각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대개는 신앙공동체가 순수한 신앙을 잃어버리고 부수적이고 지엽적인 것에 주목할 때 위기가 찾아왔다. 그렇다면 순수한 신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인 복음에 기초한 신앙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따르며, 세상적 가치인 물질과 명예, 쾌락을 따르는 것을 단호하게 거절하는 신앙이다. 그러나 중세시대에는 기독교가 전 세계를 지배하는 지배자의 종교가 되면서 교회 안에 세속적 가치가 침투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성경적 가치에 기초한 순수한 신앙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교회의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 거대한 성당을 짓기 위해 성직을 매매하고 면죄부를 판매했고, 그러기 위해서 성경에도 없는 연옥과 같은 교리들로 성도들을 옭아매었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는 중세시대 부패한 로마 카톨릭 교회를 향하여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당시 사제이자 신학대학 교수였던 루터는 순수한 신앙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삶 이전에 성경에 기초한, 성경에 헌신한 삶이라는 것을 성경을 연구하면서 강하게 깨달았다. 오늘날 교회와 교회학교의 위기 속에서 우리 신앙인들이 지향해야 할 신앙의 기초, 순수한 신앙을 회복하는 길도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있다. 신앙인으로서 누누이 들어왔던 성경은 위인전도 아니고 윤리책도 아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 삶의 유일한 기준이다. 오늘날 교회안팎으로 많은 대안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 때에, 여전히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가장 핵심적인 대안이다. 기독교교육의 최고의 교육과정인 성경을 바로 아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회복과 부흥의 열쇠이다. 다음세대 신앙교육을 위한 제일 좋은 대안 역시 부모를 비롯한 성인교사가 성경을 꾸준히 배우고, 다음세대가 성경을 배우는 자리에 있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초대하고 함께 배우는 것이다. 코로나19사태 이후로 성민교회는 현재 성도들이 가장 열심히 신앙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어린아이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교회 전체가 성경을 배우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다. 11월 초부터 시작된 종교개혁특강 때문이다. 종교개혁은 외부로는 흑사병, 내부로는 교회의 타락이라는 위기 속에서 500여 년 전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돌아가자고 소리 높였던 성경학자 루터의 목소리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일반 평신도들을 일깨웠고 전유럽 교회가 개혁에 동참하게 되었으며, 오늘날 우리 개신교가 태동하는데 도화선이 되었다. 종교개혁의 역사를 배우면서 많은 성도들이 신앙과 성경에 대해 질문하고 사색하는 계기가 되었노라고 고백하고 있다. 동시에 이 강의를 오프라인 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 참여하면서 온 가족이 함께 듣고 과제를 제출하면서 가정에서도 신앙교육의 장을 열어가고 있다. 부모님들의 열의로 인해서 다음세대들까지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는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섯 살 아이로부터 청년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다음세대들이 부모님과 함께 참여하며 서로 신앙과 성경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며 대화와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접하면 참으로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이 종교개혁특강을 성민교회 뿐만 아니라 외부의 성도들도 2천명 가량이 온라인을 통해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름도 모르는 익명의 성도들이 그렇게나 많이 성경과 순수한 신앙에 대해 관심을 갖고 배움의 열망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건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다. 연말이 다가온다. 어떤 이에게 이 한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절망의 빈칸처럼 느껴질 것이다. 올 한해가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순식간에 사라져가도록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위기의 순간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음성, 성경으로 돌아가 우리의 살 길을 찾을 것인가? 우리는 지금 가장 중요한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그 옛날 종교개혁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다시 성경으로 돌아갈 것을 결단해야 할 것이다. 위기의 때에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는 신앙의 개혁이 우리와 우리의 다음세대에게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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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02
  • [의학칼럼] 라식-라섹-스마일라식 회복기간 얼마나 다를까?
    최근 검사부터 수술까지 하루 만에 끝날 수 있는 원데이 시력교정술이 바쁜 직장인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나 라식, 라섹, 스마일라식으로 대표되는 레이저 시력교정술의 경우 수술 후 일정 회복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수술 전 환자 본인이 개인의 생활 패턴이나 수술 후 회복기간 등을 고려하여 수술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 라식 각막절편이라고 불리는 플랩을 만든 후 각막 실질에 레이저를 조사하여 각막을 절삭함으로써 굴절이상을 교정하는 라식은 수술 후 벗겨낸 각막절편을 다시 덮어준다. 이때 각막 자체의 자연적인 유착력에 의해 회복되기 때문에 통증이 적고 수술 후 정상 시력까지 회복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개인차가 있지만 1~3일 내 목표 시력의 70~80%까지 회복이 가능하다. 그러나 각막절편을 만드는 과정에서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으며 중심 이탈, 각막 혼탁 등이 발생할 경우에 시력 회복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 라섹 라섹은 각막상피를 제거한 후 노출된 실질부에 레이저를 조사하고 치료용 콘택트렌즈를 덮어 각막표면을 재생시킨다. 수술 후 각막상피가 다시 재생되기까지 1~2주 정도의 회복기간이 필요하며 이 과정에서 심한 통증이 발생하기도 한다. 또한 수술 후 2~3일간 눈물 흘림, 이물감, 눈부심 등이 있을 수 있고, 각막상피가 회복될 때까지 3~5일 정도 치료용 콘택트렌즈를 착용해야 한다. 하지만 각막절편을 만들지 않아 물리적 충격에 비교적 강하며 최종 시력은 라식과 차이가 없다. 스마일라식 기존의 라식, 라섹과 다르게 스마일라식은 통증이 거의 없고 회복이 빨라 별도의 회복 기간 없이 수술 후 하루 만에 일상생활로 복귀가 가능하다. 이는 스마일라식이 각막 내부를 통과하는 레이저를 사용하여 각막 실질을 분리하기 때문인데 이렇게 분리한 각막 실질은 2mm의 최소절개만을 통해 제거된다. 이처럼 각막 손상이 적기 때문에 부작용이나 건조증 발생률이 적고 초고도근시나 각막이 얇은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의료진의 기술력과 경험이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병원과 의료진을 선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술력의 발전으로 나에게 꼭 맞는 시력교정술을 선택할 수 있게 된 만큼 수술 전 올바른 시력교정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또한 컴퓨터나 스마트 폰의 잦은 사용으로 눈 건강을 해치는 생활 습관을 자제하고 평소 눈 관리를 위해 정기적으로 안과를 찾아 시력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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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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