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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기독교이야기] 마리안 앤더슨의 부산공연
    전화의 파도가 휩쓸고 간 피난민의 도시 부산에서 미국의 유명한 흑인가수 마리안 앤더슨(Marian Anderson, 1897-1993)의 공연이 있었다. 휴전을 2달가량 앞둔 1953년 5월 28일이었다(강인숙은 이때가 1952년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어느 인문학자의 6.25』, 180쪽). 미8군의 요청으로 마리안 앤더슨은 피아니스트 후란츠 루프(Franz Ruff)와 함께 일본을 경유하여 내한하였고, 이날 대청동 제3육군병원 앞 뜰 야외 곧, 지금의 부산의 남일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한국음악협회 주최로 앤더슨의 공개공연이 펼쳐졌다. 어수선한 피난지 부산에서 마땅한 공연장을 찾지 못해 초등학교가 인접해 있는 가설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공연은 오후 6시 시작되었다. 이날 공연은 전화로 지친 고난의 백성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날 병원 야외에 설치한 가설무대에서 진행된 무료공연을 보기 위해 모인 인파는 무려 1만여 명에 달했고 대청동, 보수동 거리를 매운 인파는 발 디딜 여지도 없었다고 하니 이날의 열화 같은 성원을 헤아릴 수 있다. 세계 최고의 콘트랄토 앤더슨은 인종차별이 심하던 1800년대 말 미국 필리델피아에서 출생하였고, 극심한 가난 가운데서도 교회에 다니며 6살 때부터 성가대에서 활동하며 음악성을 키웠다.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음악학교에 들어갈 수가 없었고 음악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나 28세 때는 300여명의 기라성 같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 협연자로 뽑혔고, 성악가의 길을 가게 된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식당에서 거절당한 그는 주린 채로 무대에 서기도 했고, 호텔에서 투숙을 거부당하기도 했다. 워싱턴의 컨스티튜션 홀에서 리사이틀을 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흑인이기에 연주장 임대가 취소된 일도 있었다. 이 때 앤더슨은 항의의 표로 링컨 기념관 광장에서 연주를 강행 했을 때 무려 7만 5천명의 청중이 운집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처지를 딛고 일어선 그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당대 최고의 성악가였다. 세계적인 지휘자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는 앤더슨을 가리켜 “100년에 한 명 나올 수 있는 성악가”라고 극찬했다. 그는 백악관에서 루즈벨트 대통령 부처와 영국 여왕을 위한 독창회를 가질 정도로 국가적인 인정을 받기도 했다. 그런 저명한 성악가가 1953년 대청동, 보수동 거리에서 1만 명을 앞에 두고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던 일은 전쟁기 부산에서의 감동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 때 그가 불렀던 노래가 어떤 것이었는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단지 두곡은 알려져 있는데, 한 곡은 지금 찬송가 372장에 편집되어 있는 ‘그 누가 나의 괴롬 알며 Nobody Knows’ 이고, 다른 한 곡이 ‘깊은 강 Deep River’이었다. 어디서든 흑인영가를 즐겨 불렀던 그는 고난의 현장, 전쟁의 아픔을 안고 하루를 마감하는 부산시민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노래로 대신했던 것이다. 이 두 노래는 앤더슨이 불러서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흑인영가 가운데 하나였다. “그 누가 나의 괴롬 알며, 또 나의 슬픔 알까? 주 밖에 누가 알아주랴, 영광 할렐루야.” 황폐한 거리에 울려 퍼졌던 이 노래가 지금도 우리 가슴을 감동으로 채워 준다. 이 노래는 세계적인 가수가 불렀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이 노래 자체가 앤더슨의 삶의 여정을 그대로 고백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몇 분간의 침묵이 흐른 후 그가 다시 부른 노래가 ‘깊은 강’이었다. “깊은 강, 내 집은 저편 요단강 너머에 있네. 주여, 저 강을 건너 그리운 땅으로 가고 싶네.” 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고난의 현실을 떠나 저 영원한 천국으로 가고 싶다는 자유를 갈망하는 노래였다. 가사나 곡은 슬픔을 당한 우리 민족에게 주는 위로의 메시지였다. 이날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가슴 뭉클한 감동이 있다. 어떤 기자가 마리안 앤더슨에게 그의 생애에서 가장 기뻤던 날이 언제였는지를 물었을 때 “나의 생애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어머니에게 더 이상 남의 집 빨래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리던 그 날이었습니다.” 그 때가 공연료를 처음 받았을 때였다고 한다. 흑인이라는 멸시와 가난, 인종차별의 아픔을 겪어왔기에 그의 노래 ‘깊은 강’은 일상에 지친 우리들에게 위안을 주고도 남았을 것이다. 마리안 앤더슨은 1958년 10월 다시 한국을 찾았고 그 때는 당시 서울에서 가장 큰 공연장이었던 이화여전 강당에서 노래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감동의 무대였고 앵콜 송으로 ‘아베 마리아’를 불렀다고 한다. 앤더슨은 1993년에 9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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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29
  • [성서연구] 십자가 – 거꾸로 보기
    물구나무서기를 해 보셨지요? 아니면 고개를 숙여 가랑이 사이로 세상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렇게 하면 세상이 거꾸로 보입니다. 거꾸로 보는 순간 세상이 새롭게 보이고, 새로운 안목이 생깁니다. 변화는 두 가지 차원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변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환경을 바라보는 우리의 생각이 바뀌는 것입니다. 거꾸로 보기를 하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합니다. 시각과 생각이 변하면 그는 새 사람이라 할 것입니다. 십자가는 모든 것을 거꾸로 보게 만든 사건입니다. 십자가는 기존의 질서를 반대로 뒤집었습니다. 가장 높은 분이 가장 낮아진 곳입니다. 가장 강한 분이 가장 약해진 곳입니다. 또 세상에서 가장 멸시받는 죄수가 매달리는 형틀인 십자가에 <유대인의 왕>이라 붙인 것도 역설입니다. 왕은 가장 높은 존재인데, 가장 낮은 자가 매달리는 형틀에 붙었으니, 이것도 역설입니다. 죄수가 왕이라니, 또 진정한 왕이 죄수라니, 십자가는 모든 것을 거꾸로 뒤집습니다. 또 십자가는 본래 치욕적 형틀이었는데, 이제는 거꾸로 되어 구원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예배당 첨탑을 장식한 것은 다름 아닌 십자가입니다. 가장 부끄러운 형틀이 가장 자랑스러운 것이 되었습니다. 갈라디아 6장 14절에서 바울 사도는 십자가를 자랑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아멘. 십자가에서는 죄인이 의인이 되고, 멸망할 자가 영생을 얻고, 높았던 자가 낮아지고, 낮았던 자가 높아집니다. 세상이 십자가에서 뒤집힙니다. 세례 요한을 잉태한 엘리사벳을 찾아간 마리아는 예수님 안에서 일어난 뒤집기를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누가복음 1장 51~53절입니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성도는 십자가를 통과한 사람입니다. 십자가를 통과했는지의 여부에 따라 교인과 성도가 구분됩니다. 교인은 십자가를 바라보기만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십자가를 통과한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한 사람입니다. 십자가를 통과함으로써 그는 거꾸로 뒤집혔습니다. 과거에 중요하게 여기던 것이 이제는 하찮은 것이 되었습니다. 과거에 하찮게 여기던 것이 이제는 소중한 것이 되었습니다. 십자가를 통과하면 완전히 딴 사람이 됩니다. 이에 대해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말씀하기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뒤집힌 사람, 그래서 세상을 거꾸로 보게 된 사람 중에 바울 사도가 있습니다. 그는 과거에 소중하게 여기던 것을 배설물로 여기게 되었고, 과거에 핍박하던 주 예수님을 삶의 모든 것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의 이런 고백이 빌립보서 3장 7~8절에 나오는데, 『쉬운성경』으로 적어드립니다. <그 때는 이 모든 것이 내게 너무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그 모든 것이 아무 쓸모 없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것들뿐만 아니라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나는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모든 것이 쓰레기처럼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이제 압니다. 이로써 나는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여전히 세상을 거꾸로 보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이 보는 대로, 죄인이었을 때 보던 대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거꾸로 보기를 연습해야 하겠습니다. 복음 때문에 고난 당하면 오히려 기뻐하고, 사람들이 칭찬하면 오히려 불편하게 여기고, 낮아짐으로 높아지고, 섬김으로 섬김을 받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상 사람과 다르게 보는 것, 거꾸로 보는 것, 뒤집어 보는 것, 그리고 그대로 살아가는 것에 성도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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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12
  • [소강석칼럼] 코로나의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당신에게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것은 너만이 아니다 / 눈보라가 치고 거센 폭풍이 몰아치는 날 허리가 부러지는 것도 너뿐 아니지 / 거센 눈보라와 칼바람에 마디마디가 꺾이고 찢겨질 때가 오면 / 나도 그때 상한 갈대가 되어 강바람에 쓰러지리니 /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그냥 서 있는 것은 죽은 것이 아닌가 / 너도 나도 살아 있기에 바람에 흔들리며 상한 갈대가 되는 거지.” 이는 제가 한겨울에 갈대밭을 거닐며 쓴 ‘갈대 앞에서’라는 시입니다. 갈대가 되었건 억새가 되었건 푸르른 날 하늘을 향하여 칼을 갈기도 하고, 갈바람에 춤을 추기도 하고, 눈보라 속에서 허리가 꺾이고 백설에 자취를 감춘다 할지라도, 바람에 흔들리며 춤을 추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기만 합니다. 오히려 흔들리지 않는 것들은 죽은 것입니다. 상처 받지 않는 것들도 죽은 것입니다. 전문가들의 예측에 의하면 오미크론 확진자가 하루 60만이 넘는 숫자로 정점을 찍고 이제 조금씩 감소세로 간다고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20만~30만명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도 여전히 코로나의 바람은 불고 있습니다. 이미 코로나 확진을 받아 치료를 받았다 한들 항체가 100% 형성된다는 보장도 없고, 또 항체가 형성이 되어도 오래가지는 않는다는 뉴스를 접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여전히 코로나의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잘 버텨왔던 사람들 가운데도 어느 날 갑자기 코가 맹맹하고 목이 아프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닐 거야. 절대로 코로나가 아닐 거야” 그런데 여전히 코가 맹맹하고 목이 아프며 기침까지 해서 자가진단키트로 검사해보니까 두 줄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 줄 중에 한 줄은 희미하게 나오기 때문에 “이건 코로나가 아닐 거야”하면서 퀴블러 로스가 말한 ‘부정의 단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도 행여나 해서 병원에 가서 신속 항원 검사를 해보니 양성이 나옵니다. 그래서 다시 퀴블러 로스의 이론대로 ‘분노의 단계’로 들어갑니다. “아니 어떻게 내가 코로나에 걸릴 수 있어! 감히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에게 틈타다니! 하나님께서 불담과 불성곽으로 지켜주실 줄로 믿었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나를 안 지켜주실 수 있단 말인가!” 그 분노가 심하게 되면 깊은 우울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에 ‘수용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짧아야 되는데 우울감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우리의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해칩니다. 그래서 제가 코로나로 인하여 치료를 받거나 격리 중에 있는 분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말입니다.(마12:20) 아니, 오히려 상한 갈대를 일으켜 주시고 꺼져가는 심지에 기름을 공급해 주시고 사랑과 희망의 불꽃을 타오르게 해주시는 분이라고 말입니다. 물론 코로나에 안 걸리면 더 좋죠. 그러나 그 코로나 때문에 생명이 얼마나 소중하고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고, 현장예배가 이렇게 소중하고 귀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이 모든 것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지요. 또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지만 코로나의 바람에 겁이 나고 흔들리고 있는 분도 많으실 겁니다. 그분에게는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죽어 쓰러진 나무는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시들어 떨어져버린 꽃잎은 찬이슬이 내려도 떨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살아 있으니까 겁이 나기도 하고 흔들리게 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코로나의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코로나의 바람 때문에 우리의 육체가 더 강력하게 되고 생명력이 더 질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난의 바람 때문에 우리의 신앙이 더 강인해지고 그 어떠한 혹한의 바람과도 맞설 수 있는 전천후 신앙이 될 겁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격리되어 있는 분들, 그리고 그 바람 때문에 흔들리고 있는 당신을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비록 당신이 상한 갈대와 같은 모습이고 꺼져가는 심지의 모습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고 불꽃처럼 타오르게 해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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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12
  • [시사칼럼] 용산의 부활
    대통령 당선인이 집무실과 거처를 기존의 청와대에서 다른 장소로 옮기겠다고 발표하고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많은 논쟁이 야기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대상 지역이 우여곡절 끝에 “용산”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용산”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가 적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비교적 최근인 2009년에 일어났던 이른바 “용산 참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적지 않은 인명 피해를 동반했던 현대사의 비극 중 하나인지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기억을 회피하고 싶어 합니다. 현재 각종 미디어에서 용산을 엄청나게 언급하지만 그때 일만큼은 거론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까? 하지만 당시 희생자의 가족과 같은 사람들에게는 “내 시계는 2009년 1월 20일에 멈췄다”고 할 만큼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사건입니다(고 양회성 씨의 부인 김영덕 씨의 말, 2019. 1. 20, 중앙일보). 푸코(Foucault)는 이런 경우를 ‘대항기억(counter-memory)’이라고 불렀습니다. 권력의 중심이 용산으로 이동한다면 역사에서조차 소외되어 가는 이런 존재들이 다시 주체성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편 용산 이전과 관련해서 당선인이 던진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말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무슨 의미로 썼는지 알 길이 없으나, 이를 각각 건축의 측면이나 전통 사상의 맥락 혹은 공간과 마음의 상호작용에 관한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파악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가지만은 분명합니다. 공간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결코 경시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 분야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앙리 르페브르(Henry Lefebvre, 1901-1991)입니다. 그는 일찍부터 “공간”을 중시하여 현대사회는 공간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독특한 공간 구조(공간의 재현) 안에서 생존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공간에 적응하거나 저항한다(재현된 공간)고 보았습니다(『공간의 생산』). 용산에 존재했던(하는) 군사기지와 빈민촌을 생각해 보십시오. 각각의 공간에 적응한 사람들도 있었던 반면 저항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공간의 실천”을 통해 용산에는 눈물과 이윤과 축제와 비극이 교차해 왔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용산이 새로운 화해 공간으로 부활하기를 바랍니다.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은 국가 안보나 국민 소통의 측면에서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용산과 그 주변에 사는 사람들 관심사는 오로지 한 곳에 몰려 있는 듯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한 일간지가 내보낸 기사를 보십시오(매일경제, 4. 1). “대통령 집무실이 들어서는.. 부동산 투자 가치도 올라가지 않을까요. 핵심 개발 프로젝트를 비롯해 재건축, 리모델링 사업이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됩니다”(서울 용산구 이촌동 주민 A씨), “아무래도 대통령 안보, 경호 문제로.. 청와대 주변처럼 용산도 부동산 개발 사업이 막히지 않을까 걱정됩니다”(원효로 B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 그야말로 권력이 아니라 재산이 문제입니다! 십여 년 전 용산의 비극도 같은 원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빈곤에 저항하는 그리스도교”의 저자 탁장한은 용산의 ‘쪽방촌’ 같은 낙후 지역을 “역유토피아(Dystopia)”라 부르고 이를 둘러싼 재개발이 초래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원주민추방)”이 용산 비극의 주범이라는 취지의 글을 쓴 바 있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이제는 용산이 욕심을 못 박는 땅, 그래서 무욕의 십자가와 같은 상징적인 땅으로 부활하기를 원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 동안 현대의 도시는 “시민에게 도시를” 혹은 “인간과 함께 하는 도시”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1960년대 자동차가 지배하는 미국의 도로를 보고 충격 받은 콜롬비아의 한 청년이 시작한 운동이 “자전거도로(Ciclovia)”를 만들게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예 도로를 자동차와 자전거가 공유(share)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데, 그 표지판 모양이 화살(arrow)을 닮았다 해서 미국의 덴버 시는 이를 “셰로우(Sharrow)”라 부르고 있습니다. “자동차 없는 도시(Carfree Cities)”를 주창하던 사람(J. H. Crawford)의 꿈은 오늘날 많은 곳에 “차 없는 도로”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예 도로를 일종의 ‘공유 공간’으로 만들어서 자동차와 자전거와 보행자와 동물(시낸스로프)까지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도로를 만들자는 시도가 생겨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모두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일체의 신호나 표지를 두지 않는다 해서 “아무것도 없는 도로(Naked Street)”라 하고, 이런 도로가 있는 곳을 “공간 공유 마을(Shared Space Village)”이라 부르기도 합니다(『도시의 보이지 않는 99%』). 금번 “용산 이전”은 대단한 결단과 엄청난 역량이 필요한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를 통해 용산이 부디 ‘시민과 인간의 도시’로 부활하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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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12
  • [은혜의말씀]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19-20)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제자들은 어디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아십니까? 골방에 꽁꽁 숨어 있었습니다.(19절) 왜냐하면, 유대인이 자기들을 예수님처럼 붙잡아 십자가에 못 박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두려움이 몰려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말씀하십니다. 또,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보여주십니다.(19,20절) 그제서야 제자들은 말로만 듣던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되었으며, 두려움이 기쁨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자, 그러면 우리가 가진 두려움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어떻게 이 두려움을 벗고 ‘평강-샬롬’을 노래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가진 두려움은 죽음으로부터의 두려움입니다.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두려움의 뿌리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죽음입니다. 우리에게는 죽음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참으로 비참하고 초라해집니다. 이 땅은 죽음이 지배하고 왕노릇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려움의 뿌리, 죽음을 누가 깨뜨려 주셨습니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은,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을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마저도 벗겨 주시고, 우리에게 ‘평강–샬롬’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부활하신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요 11: 25, 26) 여러분, 오늘 우리가 죽음을 두려하지 않는 용기를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주신 영원한 ‘생명–샬롬’이 있기 때문입니다.(요 14:26, 16:3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때, 죽음의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영원한 ‘평강–샬롬’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죽음이 준비되셨습니까? 기억하십시요! 우리는 죽음을 이긴 자들입니다. 우리 사직동 모든 성도님들이, 이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고, 부활의 ‘생명–샬롬’을 노래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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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12
  • [목회자칼럼] 선물같은 삶, 그 누림을 위해
    “내 것인 줄 알았으나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 지난 2월 26일 소천한 이어령 전 장관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의 첫 장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문학 평론가이자, 교육자, 언론인, 저술가 등 한 시대에 지성인으로 평생을 살아온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 “내 것인 줄 알았으나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는 고백입니다. 한국의 대표 지성으로 일반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지식, 부, 능력 등이 내 힘으로 일구고 얻었다 생각했는데, 인생을 마감할 즈음에 돌아보니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그저 선물로 주어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누리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물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많이 들어서 알고는 있지만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선물같은 삶’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습니다. 한번 주어진 우리의 인생, 선물같은 우리의 삶을 좀 더 멋있고 여유있게 살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들이 있을까요? 먼저, ‘읽어야’ 합니다. ‘읽기’와 ‘뇌과학’을 오랫동안 연구한 매리언 울프는 ‘다시 책으로’를 통해 읽는 행위를 뇌과학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뇌는 문장을 읽을 때, 비판적 사고, 공감과 이해, 내면의 성찰 등이 일어남을 연구를 통해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읽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요즘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SNS를 읽고 TV, 영화 매체를 보고 읽고 삽니다. 글을 읽음으로 우리 뇌는 사고를 위한 체계를 갖추고, 생각을 합니다. 생각을 갖고 있을 때, 그리고 이 생각이 쌓여 갈 때 삶의 변화를 경험합니다. 이왕 무언가를 읽어야 한다면, 좋은 것을 읽읍시다. 지금 나는 어떤 책을 얼마나 읽고 있는가요? 두 번째는 ‘묵상해야’ 합니다. 무언가를 읽다보면 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생각을 하다보면, 그 생각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깊어집니다. 사람들이 갖고자 원하는 ‘지혜’는 생각에서 나옵니다. 물론, 창의력도 생각을 통해 드러납니다. 읽고, 그 읽은 내용을 조용히 읊조리면서 표현하면 동시에 머리에 새겨지고 묵상은 시작됩니다. 세 번째는 ‘기도하며 써야’ 합니다. 기억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 바로 기록입니다. 어떤 사람이 “머리가 좋지 않아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하는데, 저는 그 말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돌이나 비석에 글을 새기면 절대 없어지지 않고 오래 갑니다. 광개토 대왕릉비에 새긴 글귀는 비바람의 모진 고통 속에서도 닳아지지 않고 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쓰는 기술도 필요하지만 단지 쓰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기록이 되고 역사의 한 부분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이 확장한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글로 남겨봅시다. 예수님도 글을 쓰시며 간음한 여인을 살리셨습니다(요8:8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네 번째는 ‘토론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생각도 혼자만 간직하고 있으면 외고집, 외골수가 될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SNS를 활용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고, 나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 졌습니다. 생각을 쓰고, 정리하며, 다른 사람의 의견과 비교한 후 다시 내 생각을 정리하면 말하고자 하는 바가 훨씬 분명해져 있을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4가지를 토대로 좀 더 멋있고 여유있는 삶을 살고 싶은가요? 그러기 위해서는 3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합니다. 바로 공동체, 지도자, 좋은 공간입니다. 교회는 이 3가지를 다 갖춘 최상의 곳입니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이 주신 선물같은 삶을 멋있고 여유롭게 잘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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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12
  • [부산기독교이야기] 전쟁기 부산에서의 신학교육(4)
    대한신학교: 김치선 박사가 설립한 대한신학교도 전시 중 부산에서 신학교육을 시행하였다. 대한신학교는 서울의 남대문교회 담임목사였던 김치선(金致善, 1899-1968)가 1948년 설립한 야간신학교였다. 함경남도 함흥 출신인 김치선은 캐나다장로교 영재형(Luther Young) 선교사를 통해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고, 함흥의 영생중학교를 거쳐 연희전문하교를 졸업하고 1927년 4월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한 학기 수학한 후 영재 형 선교사를 따라 일본으로 가 고베중앙신학교에 편입하였다. 1931년 3월, 이 신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다시 영재 형 선교사의 추천으로 미국으로 가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수학하고 1933년 5월 졸업했다. 곧 달라신학교(Dallas Theological Seminary)에 입학하게 되는데, 당시에는 복음주의신학교(Eevangelical Theological College)로 불리고 있었다. 이 학교에서 1936년 5월 신학박사(ThD) 학위를 받고 졸업하였다. 그는 한국인 최초로 구약을 전공하여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것이다. 졸업 후 일본으로 돌아가 영재형 선교사를 도와 재일한인교회를 위해 일하던 중 1944년 3월 귀국하였고, 약 2개월 후인 1944년 5월 서울의 남대문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하였다. 이 교회에서 처음으로 새벽기도회를 시작하였는데, 남한의 모든 교회로 전파되었다. 얼마 후 남대문교회는 한경직의 영락교회와 더불어 서울을 대표하는 교회로 부상했다. 이 교회 담임목사로 일하면서 1948년 8월 야간신학교를 개설했는데 그것이 후에 대한신학교로 발전하였다. 이보다 앞서 김치선 박사는 1946년 9월 20일 부산에서 고려신학교를 개교했을 때 개교 강연자로 초청받아 ‘신학과 신조’라는 제목으로 강연한 바 있고, 이 일로 고려신학교 교수로 일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바 있으나 사양하고 자신의 교회당에서 야간 신학교를 개설한 것이다. 이북 출신이기도 했던 김치선은 해방 이후 월남 인사 중 신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수학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장로회야간신학교’를 설립한 것이다. 곧 이 학교는 곧 대한신학교로 개칭되었다. 그는 우리나라 첫 민족복음화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300만만 구령운동’을 전개했는데, 손양원도 이 운동에 동참했던 경남의 인물이었다. 이 운동의 일환으로도 신학교육이 필요했기 때문에 대한신학교를 설립한 것이다. 1950년 5월에는 첫 졸업생 18명을 배출했는데 한 달 후 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이 일어나자 김치선은 6월 28일 삼각산으로 피난을 떠났고 그 이후 부산으로까지 피난 오게 된다. 불가피하게 신학교육도 중단되었다. 그러던 중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게 되어 다시 서울로 돌아갔으나 그것도 잠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불리하게 전개되어 다시 서울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른바 1.4 후퇴였다. 그날 목요일 아침, 서울의 강은 얼어 붇고 겨울의 세찬 바람이 피난민에게 아픔을 더했다. 다시 피난민들은 부산으로 몰려들어 1951년 3월 부산의 인구는 120만 명을 넘어서게 된다. 그리고 이들을 수용하기엔 주거 환경이 턱없이 부족했다. 곧 서울 복귀가 어렵다고 판단한 김치선 박사는 그가 거주하던 대청동의 중앙교회 노진현 목사와 대한신학교 임시교육에 대해 의논하였고, 매우 열악한 환경이었으나 신학교육을 재개하였다. 대한신학교 교육을 시행한 곳이 어디인가는 분명한 기록이 없지만 노진현 목사의 중앙교회당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노진현과 김치선은 일본 중앙신학교 동창이었고, 노진현이 분교장을 맡은 점을 고려해 볼 때 전시 중 다른 공간을 찾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부산에서 임시교육은 약 2년간 계속되었다. 제주도에서도 1951년 9월 윤필성 목사를 교장으로 임시학교를 열었으나 겨우 한 학기 후 폐쇄되었다. 1953년 7월 휴전협정의 체결되자 그해 9월 부산 분교는 서울로 복귀했다. 복귀와 더불어 대한신학교는 4년제 신학교로 인가를 받았고, 김치선 박사는 교장으로 취임했다. 전쟁 중인 1951년 5월 대구에서 총회신학교가 개교했을 때 김치선은 교수로 초빙되었으므로 김치선은 자신이 설립한 대한신학교와 총회신학교, 양 학교에 관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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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12
  • [성서연구] 대선 후에 교회에 남은 숙제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제 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당선자가 정해졌습니다. 그러나 이번 대통령 선거는 우리에게 무거운 숙제를 남겼습니다. 교회는 이제부터 숙제를 잘 풀어야 합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슈 중 하나는 무속 문제였습니다. 후보와 배우자의 주변에 특정 무속인이 있다거나, 점을 쳤다거나, 오살 의식을 행했다는 말이 돌았습니다. 후보를 지지하는 굿판이 벌어졌고, 굿판을 주도한 인물이 선거 캠프에 이름을 올렸다가 사퇴하기도 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일은 무속 문제로 서로를 공격하다 보니, 후보와 후보 진영의 인사들은 무속의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말하거나, 과거에 교회에 다녔다고 하거나, 혹은 집안의 친척 중에 목회자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또 후보는 자신이 교인이라고 하는데, 정작 교회에서는 교인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영락교회 예배에 참석해도 되느냐는 문의도 있었는데, 영락교회 예배 참석이 무속의 그림자를 덮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각 후보 진영에서 무속의 올가미를 벗기 위해 교회를 이용하려 했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 기독교가 건강한 종교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기독교는 대한민국에서 소망이 있습니다. 여전히 교회는 우리 사회에서 영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왜 각 후보 진영에서 자신들의 종교적 욕구, 혹은 관심사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1위 종교인 기독교를 통하지 않고, 무속적 방법으로 당선을 기원하거나, 당선 여부를 알고자 했을까요?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보입니다. 우선 교회에서는 특정 후보의 당선을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또 점쟁이가 하듯이 어떤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교회는 나라를 위해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나라에 필요한 사람이 당선되길 기도했을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각 후보 진영에서 무속에 의지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이유가 전부일까요? 저는 더 두려운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은 각 후보 진영에서 볼 때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보다 무속을 의지하여 점을 치고 굿판을 벌이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속과 얽히는 것이 비난 받을 일인 줄 알면서도 무속에 의지하는 것은 아닐까 염려됩니다. 이는 교회가 1위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짠 맛을 잃은 소금처럼 영적 능력과 영향력이 약화되었다는 반증인 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이런 우려를 불식하는 방법은 교회가 다시 맛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교회는 본질에 더욱 충실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야 합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어떤 것을 요구할 때, 상황에 따라 행동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처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언젠가는 진리가 승리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복음을 붙잡아야 합니다. 무속을 포함해서 세상에 다양한 종교에는 신께서 죄인인 인간을 위해 죽으신 사랑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참 생명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에만 있습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으로 승부해야 합니다. 선거를 통해 권력을 얻은 이들이나, 잃은 이들이나,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이 다 죽음 앞에 서 있는 연약한 인생입니다. 정치인들이 아무리 좋은 정책을 펼치고, 복지국가를 이룬다 해도 영원한 생명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참 생명과 평안은 오직 주님의 복음에만 있습니다. 우리는 무속이나 다른 종교가 갖지 못한 그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선은 끝났지만, 복음으로 대한민국을 세워나가야 하는 과제는 우리에게 숙제입니다. 다시 한 번 십자가와 부활의 생명의 복음을 들고 민족복음화를 위해 나아가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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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18
  • [시사칼럼] 누가 진정한 승자인가?
    만일 선거로 인해 득을 보는 사람이 있다면, 당선인을 제외하고 누가 이번 대통령선거전에서 많은 득을 보았을까요? 이제 새로운 정권에서 부상하는 인물들을 보면 알 수 있겠지요. ‘엽관제(獵官制, spoils system)’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19세기 중반 절정을 이룬 정치 풍조였는데, “전리품은 승자가 독식한다(to the victor, belong the spoils)”는 슬로건으로 유명했습니다(한국행정학회, “엽관주의”). 직업공무원제가 확립된 현대에는 더 이상 적용할 수 없는 원칙인데도, 현실적으로는 정권이 바뀌면 여전히 정무직을 비롯한 핵심적인 임명직에는 같은 정당 인사들을 대거 중용합니다. 그런데 이번 대선(大選) 결과 실질적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보게 생긴 사람들은 정치와는 일견 무관해 보이는 이른바 ‘C 스승’과 ‘K 법사’ 같은 이들일 지 모릅니다. 대선 이전에도 각종 방송에서 이들의 존재를 어느 후보자와 관련해서 언급했었는데, 관련 영상(Utube)의 조회 수가 수십만에서 수백만에 달했습니다(MBC, JTBC, YTN). 그러니 이제 이들을 찾는 발걸음이 얼마나 많아졌겠습니까? 2012년 2월 19일 한 방송사(JTBC)에서 “권력과 풍수”라는 제목의 시사물을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진행자의 발언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부모 묘소는 김일성의 죽음을 예언한 손석우가 정했다고 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97년 대선을 앞두고 고향에 있던 선친의 묘를 용인으로 이장했습니다. 얼마 후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자 언론까지 이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실제로 1995년 11월 김 전 대통령은 전남 하의도에 있던 부모의 묘소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의 한 장소로 이장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리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대의 지관(地官)으로 유명했던 사람이 등장하고, 게다가 이장 후 2년 뒤에 치러진 선거에서 대통령 당선자가 되었으니 세간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한두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잠시만 검색을 해도 부모 묘소를 이장한 알만한 이름의 정치인들 목록을 쉽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국가지도자들의 이러한 모습이 대중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엄청납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주 흥미로운 가십거리가 되어서, 마침내 ‘더 킹(The King)’(1997)이나 ‘명당’(1998) 같은 영화들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전자의 영화에서 출세지향자들이 역술인을 찾아가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를 묻고 거기에 모든 걸 거는 장면은 500만이 넘는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후자의 영화에서는 아예 이런 대사가 등장하기도 했지요. “사람은 변하지만 땅은 영원한 법.. 이제 그 운은 내가 가져야겠소.” 흥선대원군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누적관객수가 200만을 넘었습니다. 하지만 영화계가 잠깐 역술인이나 풍수지리에 관심을 가져서 나온 결과물들이 아닙니다. 더 이전에 개봉했던 영화 ‘관상’(2013)은 말 그대로 관상(觀相)을 주제로 한 영화인데 천만 가까운 사람들이 보았습니다. ‘곡성’(2016)이란 영화는 한국 토속신앙의 실체를 가감 없이 드러내서 세계적인 화제몰이를 한 바 있습니다. 오늘날 영화와 같은 매체가 대중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막대합니다. 이번 대선은 우리 사회 전반에 아직도 풍수지리사상, 관상을 비롯한 각종 역술, 태생적인 한국의 토속신앙 등이 얼마나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지를 확인한 현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선거 때만 되면 후보자들이 교회를 찾아옵니다. 그러나 동시에 사찰도 찾고 무속인도 찾습니다. 물론 후보자들 중에는 개신교 신자도 있고 가톨릭 · 불교 신자도 있고 무신론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종교적 신념 때문에 교회와 사찰을 찾는 게 아니라는 사실쯤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종교단체들을 순례하는 까닭은 한 표가 아쉽기 때문입니다. 당선을 위해서라면 하늘에서 내리는 동아줄이라도 붙잡겠다는 일념 때문입니다. 권력의지가 그들의 신앙입니다. 나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어떤 종교라도 좋고 누구와 손잡아도 좋다는, 일종의 변형된 기복주의를 가졌습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대한민국의 주권자로서 한 표를 행사한 만18세 이상의 다음세대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라보는 대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교회는 도대체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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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18
  • [교회와세금] 교회의 세금, 어떻게 되어 있는가?
    교회와 세금(Church and taxes)이란 제목으로 12회에 걸쳐 칼럼을 쓰고자 한다. 조세(tax)란 국가나 지방공공단체가 필요한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국민의 재산 및 소득, 소비행위 등에 대해 세금을 징수하는 절차를 말한다. 본 칼럼은 우리나라 현행 세법의 기초위에 종교단체, 특히 교회가 납부해야 할 세금의 의미를 실무적 관점에서 소개하는 데에 있다. 조사를 위해 국회예산정책처에서 발행된 ‘2021년 대한민국 조세’와 세법의 조세법령 체계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교회가 주체가 되어 세금을 납부하는데 알아야 할 구체적인 항목과 내용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현행 우리나라 세법은 국세(14개)와 지방세(11개) 총 25개 세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세에는 ①소득세 ②법인세 ③부가가치세 ④상속세 ⑤증여세 ⑥종합부동산세 ⑦개별소비세 ⑧교통‧에너지‧환경세 ⑨주세 ⑩증권거래세 ⑪농어촌특별세 ⑫교육세 ⑬인지세와 ⑭관세가 있다. 또 지방세에는 ①취득세 ②레저세 ③담배소비세 ④주민세 ⑤자동차세 ⑥지방소득세 ⑦지방소비세 ⑧지역자원시설세 ⑨지방교육세 ⑩등록면허세 ⑪재산세가 있다. 본 칼럼은 이러한 세금이 특히 어떠한 세원을 기초로 발생하고 있는가에 주목하여 세금을 소득과세, 재산과세, 소비과세, 기타과세로 분류하고 내용을 설명하려 한다. 세법은 매우 방대하고 복잡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전문가가 아니면 교회재정 담당자라 할지라도 전체 흐름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2018년부터 종교인소득 과세가 의무화되며 교회의 세금납부가 더욱 복잡하게 되고 원천징수, 연말정산, 건강보험, 국민연금까지 일련의 절차를 알아야 할 필요성이 생겨났다. 또한 2020년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으로, 2021년에 많은 교회가 거액의 세금을 고지받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부목사 사택 등에 대해 전년도 100만원 정도 납부했던 고지액이 5000만원으로 눈폭탄처럼 증가한 사례가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현행 세법은 수익 창출이 아닌 공익을 목적으로 세워진 비영리법인에 대해 조세특례제한법 등(the special tax treatment control law)에 따라 일정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 과세를 면제하고 있다. 즉 비영리법인에 해당하는 교회가 고유목적에 따라 예배를 하며, 헌금수입이 발생한 경우 과세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고유목적에서 벗어나 수익창출과 관련된 사업을 하거나, 사용하던 자산의 용도를 변경하는 경우 일시에 소급하여 고액의 세금이 부과되는 때가 있다. 또 이 경우 교회가 법원과 충돌하여 과세의 적법성을 살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자칫 이것이 교회가 조세를 회피하는 것처럼 비추어질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교회지도자나 재정담당자는 교회의 회계재정은 물론 조세에 대해서도 충분히 지식을 갖고, 검토하며 사역에 임할 필요가 있다. 본 칼럼은 제1회 서론에 이어, 제2회부터 소득세와 법인세, 부가가치세, 종합부동산세, 취득세와 관세, 재산세, 자동차세, 종교인소득 과세, 원천징수와 4대보험 등 교회와 관련된 구체적인 조세 실무를 9회에 걸쳐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H교회 세금납부 사례, 법원판례 등을 소개 후 마치고자 한다. 아울러 칼럼을 통해 교회 사역현장에서 수고하시는 회계 및 재정담당자, 교회지도자 등이 우리나라의 현행 세법과 교회 전체 세금납부 흐름을 이해하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칼럼을 쓸 수 있도록 인도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또한 교회가 세상을 향해 계속해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 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 문의: sblee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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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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