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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인심 사무총장] 거룩한 백성의 삶, 윤리적 의무
    10월 4일,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일찍 출근하여 QT말씀을 묵상하는데 그날 주어진 말씀은 레위기19:1~18 말씀이었다. 거룩한 백성으로 살면서 가져야 할 의무 중 윤리적 의무, 말씀 속에서는 이웃에 대한 배려, 품꾼의 삯에 대한 정확한 지불, 장애인과 소외된 자를 돌아보는 일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그날 내게 주신 마음은 인간이 오만한 핵 기술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고 많은 이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핵, 원전 이런 것들로 부터 생명존중과 안전을 지켜내는 것, 이것이 거룩한 백성의 윤리적 의무라고 맘에 새기었다. 고리1호기 폐쇄 결정 이후 1년이 경과한 지난 6월 23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고리에 9, 10번째 원전인 신고리 5, 6호기 건설을 승인하였다. 노후 핵발전소를 폐쇄하는 것이 신규핵발전소를 늘리는 것의 명분이 될 수 없음에도 정부는 2035년까지 13기의 신규 원전을 준공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에 대해 경고라도 하듯이 7월 울산 부근 해상에서 발생한 규모 5.0 지진에 이어 9월 12일 경주에서 규모 5.1,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하였다. 역대 최강 지진 발생으로 원전에 대해 관심이 없던 시민들도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기억하며 고리지역 세계최대 원전단지의 위험성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부산YWCA는 후쿠시마 참사를 통해 핵으로 인한 YWCA의 생명존중 가치와 부합하는 탈핵에 뛰어들었다. 2011년부터 부산YWCA에서 시작된 탈핵을 향한 움직임은 한국YWCA 중점운동으로 확산되었다. 핵 없는 세상을 실현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질서 보전을 위한 일임을 믿기에 우리 아이들과 후손들의 녹색 미래를 위해 탈핵운동을 해 올 수 있었다. 수명을 다하고도 8년을 연장하고, 또 연장하려는 고리1호기의 폐쇄를 1차적인 탈핵운동의 목표를 세우고 2015년 1월부터 준비하여 부산YWCA는 고리1호기 폐쇄 가치에 동의하는 각 단체(121개)들을 결속시켜 ‘고리1호기폐쇄 부산범시민운동본부’를 조직, 결성했다. 부산YWCA는 상임공동대표, 공동집행위원장, 사무국을 맡아 활약하면서 민관 협력은 물론, 여야 정치권과의 긴밀한 조율, 언론을 통한 시민들의 권리와 정확한 정보 제공이 용이하도록 총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우공이산의 기적으로 고리1호기 폐쇄라는 부산시민의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나 행정절차가 이미 완료 된 신고리 5,6호기 건설승인 백지화는 고리1호기 폐쇄만큼 단시일 내에 이루어지지 않고 긴 호흡으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진을 통해 정확히 드러난 건설승인에 대한 많은 문제점(동일부지 다수호기 위험성 평가 부재, 경주지진의 진앙 활동성 단층 평가배제, 역사지진의 의도적 축소로 인한 최대지진평가 오류 등)과 그동안 관심조차 갖지 않던 많은 정치인들이 경주지진을 통해 관심표명과 구체적인 활동, 의견제시 등으로 어쩌면 생각보다 빨리 건설승인 원인무효라는 큰 선물을 받을 수 도 있겠다는 기대를 해본다. 지난 9월 29일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부산범시민운동본부’를 발족했다. 핵 밀집도 세계1위인 한국의 핵발전소 상황에 대해 시민들에게 알림으로써 탈핵, 탈원전이 우리 삶에 절박하게 필요함을 공감하여 노후 핵발전소 가동 중지와 안전점검을 재실시, 신규 핵발전소 건설은 이제 그만하고, 우리 사회가 재생가능한 대안에너지를 사용하는 에너지 전환정책을 다시 점검하고 수립하도록 함께 힘을 모으는 운동을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일상생활의 작은 영역에서부터-사용하지 않는 전기코드 뽑기, 냉동식품 먹지 않기, 전기밥솥 사용 줄이기, 멀티 탭 사용하기, 소형태양광 발전기 사용하기 등 에너지 다이어트도 실천하고 생활의 불편함을 선택하는 작은 실천 운동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다. 함께 힘을 모으고 연대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사회를 이루어가는 것,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르지 않고 회복하는 것, 이 시대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사명이라 여기며 탈핵, 탈원전을 향하여 한 발짝 더 깊이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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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론
    2016-10-27
  • [강규철 장로]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오늘날 기독교계의 영적 지도자들의 일탈 행동이 많은 성도들로 하여금 시험에 들게 하고 그들의 세상적인 욕심으로 인하여 교회에 많은 분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저는 가끔씩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믿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을 갖기도 합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시고 우리의 모든 언행심사를 감찰하고 계시다고 믿는다면 어떻게 감히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행동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의 욕심을 추구하면서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고 배웠고 또 그렇게 가르치면서 정작 자신은 세상 속에 갇혀 있다면 이는 참으로 불행한 인생입니다. 제가 중학생 시절에 대구 서문로 교회에서 열린 전국 SFC 동기 수양회에 참석했는데 주제가 ‘예수님을 본받는 자’이고 부제가 ‘이럴 때 예수님은 어떻게 하실까?’였습니다. 민박집에서, 식사 시간 줄설 때, 심지어 화장실에도 부제가 붙어 있었으며 이것이 우리의 마음과 행동을 통제하였습니다. 사실 이보다 더 정확하게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를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어린 마음에 받은 충격이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저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가 잘못했을 때 마음을 찌르는 비수가 되었습니다. 100여 년 전 부산에 선교사들이 들어 올 때입니다. 범어사 사하촌에 살고 있는 한 시골 농부가 구포 장날에 파란 눈의 선교사의 복을 나눠준다는 말에 관심을 갖고 다음날 그를 집으로 초청하여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날부터 그는 복을 받기 위해 술과 노름을 일체 끊고 성경을 읽으며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태어난 아들은 선교사로부터 유아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당시 사하촌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세상에서 살기를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그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한번은 가뭄이 심하던 해의 모심기 철이었는데 하필이면 주일날에 비가 내렸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가 모심기를 하였지만 그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친척들은 저 집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겠지 조롱하면서 논에 물도 넣어 주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논농사를 포기하게 되었고 논에다 고구마를 심었습니다. 그런데 그해 엄청난 가뭄으로 모든 논농사를 망쳤지만 고구마농사가 풍년이 되어 오히려 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복은 세상적인 복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것 보다 더 귀한 영적인 복을 주셨습니다. 왕길지 선교사로부터 유아세례를 받은 아들은 나중에 목사가 되어 고신 총회장이 된 강용한 목사이며 대구 만민교회를 세우고 고신재단 이사장을 지낸 강규찬 목사는 그의 친손자이며 고신 총회장을 지낸 창원 한빛교회 윤희구 목사는 그의 외손자입니다. 멕시코에서 선교사로 봉사하는 최승렬 목사는 그의 손녀사위입니다. 그 외 수 많은 목사, 선교사, 장로, 권사를 그의 자손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고 섬긴 무지랭이 촌부에게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세상 것 보다 더 좋은 자손대대로의 영적인 축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조그만 욕심으로 하나님을 기만하고 순간의 욕망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늘도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예수님은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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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론
    2016-10-13
  • [김충만 목사] ‘저헌금시대’가 오고 있다.
    한국교회는 또 하나의 전환기에 와 있다. 20세기 후반부터 저성장 시대와 저출산 시대가 맞물리면서 1-2학년 혹은 3학년씩 묶어 편성되던 주일학교가 최근 들어 점차 하나의 주일학교로 통합되어가는 중이다. 이젠 그것도 모자라 교역자를 모실 형편도 되지 않기에 동화나 스피치가 좋은 평신도들이 사역을 대신하는 흐름이다. 그뿐 아니다. 아예 주일학교가 없는 교회가 전체 절반을 넘어서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건 거의 재앙 수준이다.사실 주일학교는 한국교회의 모판이다. 필자가 주일학교를 다니던 70년대는 대부분의 교회들이 장년 출석보다 주일학교에 나오는 학생들이 더 많았다. 특히나 여름성경학교나 성탄절에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이렇듯 주일학교는 한국교회 성장의 못자리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못자리가 서울올림픽(1988)을 기점으로 조금씩 비어가고 있다. 그러더니 결국 지금은 거의 고사 직전이다. 심을 모가 없는데 추수가 있을 수 있겠는가. 더 심각한 문제는 앞으로다. 다름 아닌 ‘저헌금 시대’다. 이 사실을 많이 생각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세대는 부모세대가 가정과 자식들보다 어쩌면 교회를 더 중심해서 살아가는 시대를 경험하며 지내면서도 어떻든 교회 안에 있었다. 그러나 우리 자녀세대는 교회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시대를 맛보며 자라면서 점차 교회 밖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또한 우리세대는 믿음의 부모들에게서 보며 자란 영적 유산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 젊은 부부들 세대에서는 신앙생활의 기본기마저 꾸준히 유지되지 않는 추세다. 그 결과 교회를 중심한 헌신과 충성은 차지하고, 가장 기본적인 주일성수나 십일조 생활에 대한 이해와 참여마저도 희미해져가고 있다. 본 게 있어야 배우고, 배운 게 있어서 실천하고 행할 것 아니겠는가. 이건 뼈아픈 현실이다. 저출산, 저성장, 고령화가 합력을 하면 급기야 저헌금 시대로의 진입과 고착은 불을 보듯 뻔하다. 어렸을 때 주일을 앞둔 주말이 되면 어머니는 습관처럼 인두로 지폐를 다리미질해서 성경 사이에 넣어주시면서 ‘이건 하나님께 드릴 주일헌금이다’라고 하셨다. 어려운 살림에 설탕 3kg이나 신문지에 돌돌 말은 소고기 한 근을 들고 목사님 사택에 심부름하던 기억들, 목사로 부름 받았다고 말씀드리자 그시로 신학교 등록금이라며 곗돈을 부으시더니 고향교회가 건축을 시작하자 그걸 건축헌금으로 드리면서 ‘나는 하나님 일하고, 하나님은 아들 공부시키는 일 하실거야’라시던 모친이셨다. 우리세대는 어떻든 이런저런 신앙적 자산을 아름다운 유산으로 받아가며 자랐다. 그런 때가 있었지만 이제 앞으로는 교회의 생존을 걱정해야 할 때가 되어 간다. 성장과 부흥의 한 아이콘이었던 미국 수정교회의 거침없는 몰락(부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 한국교회도 서구교회가 경험(검증)하고 알려준 교회 자체의 유지마저도 버거운 시대가 오지 말란 법이 없다. 이것이 저헌금 시대가 몰고 올 거침없는 도전이다. 한국교회 부흥의 끝자락을 경험한 우리시대의 사역적 고민과 영적 부담이 깊어만 간다. 지난 세기까지 교회가 감당했던 것들의 상당수를 이젠 복지라는 이름으로 국가가 맡아서 하는 시대에 과연 한국교회는 유럽교회의 교훈을 뛰어넘어 십자가 복음의 영광스러운 부흥을 계속해 갈 수 있을까? 현재 내가 섬기며 출석하는 교회의 주일학교, 학생회, 대학청년부는 어떤가. 이는 곧 닥칠 한국교회의 미래다. 서서히 저헌금 시대의 시그널들이 하나 둘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기독교는 한국사회에서 소수종교로 전락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어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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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9-29
  • [가정호 목사] 출장순례로 보낸 휴가
    나는 이번에 출장 겸 순례여행을 했다. 이전에는 여름이면 정신없이 본 교회와 이웃교회, 또 강습회 등 집회로 시간을 보냈다. 이젠 어느덧 50대를 훌쩍 지나니 그런 일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래서 좀 더 섬세하고 제대로 된 사역을 위하여 배워야 할 사람들을 만나 실제 삶과 사역의 현장을 보고 느끼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출장순례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다. 다만 "인도하심을 따라서..." 라는 마음속 슬로건을 가지고 출발했다. 몇 가지 느슨한 기준을 잡았다. 첫째로 밥은 혼자 안 먹겠다는 다짐을 세웠다. 주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만나게 되는 지인들에게 반드시 밥이라도 대접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동 중에 다음 계획을 잡기위해 잠깐 잠깐 기도하는 시간들을 가졌다. " 주님 누구를 만날까요?", " 주님 누구와 함께 식사를 할까요?" , " 주님 그분을 만나 어떤 질문을 하고 어떤 대화를 할까요?" ," 주님 오늘은 어디서 잘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시겠어요?" 그렇게 주님의 인도를 구했다. 월요일 출발하여 토요일 새벽에 도착할 때 까지 4박6일간의 여행 중 한 끼도 혼자 밥 먹지 않았다. 어린 시절 예배당에서 기도하다가 잠자던 추억을 되살려 가능하면 개척교회를 하는 동역자님들의 교육관이나 예배당에서 잠을 잘 수 있도록 노력했다. 손대접으로 애써주신 교회나 벗에게 감사의 표현으로 감사헌금이나 조그만 선물을 드렸다. 다양한 영역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만났다. 카페와 밥집,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목양에 본을 보이는 귀한 분, 대학에서 후학들에게 정치외교를 가르치는 선생님, 깊이 있게 성경연구하시는 분, 개척사역을 통해 교회를 세워 가시는 분, 출판을 통해 믿음으로 지식사회를 기경하는 지도자 분, 특별한 기획을 통해 아카데미를 효과적으로 기획운영하는 분, 이 땅을 말씀위에 세우시기 위해 연구원을 섬기시는 분, 한반도 통일을 위해 한 평생을 수고해 오신 분, 부교역자로 수고하시는 후배... 주님과 동행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일을 통해 편협한 생각을 고치거나 비뚤어진 자신의 일상을 돌아 볼 수 있었다. 큰 은혜가 있었다. 출장 순례의 특별한 경험이 컸다. 경건한 삶을 사는 이들과 대화를 하며 친밀감을 키워가다 보면 그 경건의 유익이 대화 하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흘러 들어온다. 믿음의 형제들과 나누는 교제의 유익인 것이다. 출장 순례 중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몇 가지 일이 있었다. 그 첫째는 만남의 순간부터 헤어질 때 까지 어떤 질문을 할 것인가가 참 중요했다. 겸손한 질문을 통해 삶과 사역을 배우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기에 주님께서 주시는 지혜로운 질문을 하게 해 달라고 기도 할 수밖에 없었다. 듣는 일보다 말하려는 강한 욕구를 내려놓는 것이 쉽지 않았다. 두 번째는 운전의 어려움이었다. 사실 차 없이 도보로 다니는 즐거움도 꽤 클 것임에는 분명하겠으나 먼 거리를 이동하는 일에 무더위를 극복해 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차를 이용하기로 했는데... 문제는 혼자서 계속 운전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스스로에게 자주 자주 타이른 말이 있었다. '천천히 쉬면서 다니자' 라고 하는 것이었다. 최대한 여유를 가지고 이동하지 않으면 졸음운전이나 피로증가로 인해 사고의 위험이 크기에... 두 번째 출장순례가 크게 기대되는 것은 첫 번째 출장순례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휴가의 계절, 훈련의 계절에 시세를 논하는 글을 쓰도록 기회를 주신 신문사에게도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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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론
    2016-09-08
  • [이상규 교수] 한국교회 어찌할꼬?
    지금 한국교회는 위기에 처해있다. 한국교회 역사상 교회가 오늘처럼 사회로부터 불신을 받은 일이 없었다. 초기 한국교회는 국민적 신뢰를 받았고, 민족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교회를 향하여 도움의 손길을 애절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1890년대 초 우리나라가 시련의 와중에 있을 때 <코리안 리포지터리>(Korean Repository)는 “이 가련한 조선인들이 두 손을 뻗쳐 하나님을 찾고 있다”고 썼다. 1895년 10월 을미사변으로 백성의 체면이 처절하게 유린당하고 일본의 조선침략 야욕이 드러났을 때, 교회는 나라사랑의 노래를 지어 민족의 아픔을 평풍처럼 막고 일어섰다. 민족에 대한 충애(忠愛)로 교회는 신뢰를 받았고, <독립신문>은 기독교를 “충군애국(忠君愛國”의 종교로 인식할 정도였다. 삼일운동당시만 하더라도 기독교는 한국사회의 선한 이웃이었다. 당시 기독교 신자는 전체인구의 1%에 불과했으나 독립만세운동의 준비 및 거사 단계에서 25-30%의 역할을 감당했다. 중국 공산당운동의 아버지라 불리는 천두슈(陣獨秀, 1879-1942)는 3.1운동에 참여한 한국기독교의 역할을 알게 된 후 종교를 미신이라고 보았던 기존의 입장을 버리고, “우리는 조선의 독립운동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았다는 사실을 볼 때 기독교를 경시하던 사상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교회는 민족과 함께하는 고난 받는 교회였고, 따라서 존경과 신뢰를 받았다. 이런 전통은 해방당시까지 계속되었다. 교회는 근대학교와 서구식 병원을 세워 인재를 양성했고, 육신의 아픔을 안고 고통당하던 자들을 치료해 주었다. 금주단연운동을 전개하고 여권신장에 기여하였고, 민주의식을 고취하고, 미신을 타파했다. 참된 효행과 바른 가정생활을 제시하였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는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정부수립의 근간을 제공했다. 따라서 기독교는 계몽과 계도자의 역할을 감당했다. 그런데 해방 이후 사정은 달라졌다. 신앙의 자유는 주어졌으나 해방정국의 교회는 대립하였고, 분열하기 시작했다. 친일적 기회주의자들을 해방 후에도 득세하여 교회를 혼란에 빠뜨렸고, 교회는 이들을 잠재우지 못함으로써 신앙정기(正氣)를 바로 잡지 못했다. 1950년 4월 대구제일교회당에서 모인 제36회 총회에서는 한국기독교역사상 최초로 경찰이 투입되었다. 어처구니없게도 예상되는 폭력 사태를 대비한 치안(治安)을 위해서였다. 그로부터 두 달 후 6.25가 발발했다. 당시 손양원을 비롯한 많은 영적 지도자들은 한국교회의 대립과 분열이 전쟁의 내적인 원인이라고 인식했다. 1950년대 교회분열과 전쟁의 폐허 속에서 이단들이 출현하고 창궐하기 시작했고, 교회의 대 사회적 영향력은 축소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이후 국가주도형의 성장주의에 영향으로 교회는 수적 혹은 외형적 성장에 치중하여 극심한 개교회주의에 빠졌다. 섬김과 봉사, 사랑과 배려, 절재와 검약, 겸손 등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 혹은 거룩한 삶에 대한 이상은 권장되지 못했다. 현세적 풍요를 신앙의 이름으로 정당화함으로써 천박한 기독교로 변질되었다. 무인가 미자격 신학교의 범람, 선교라는 이름의 상업주의, 사려깊지 못한 노상전도행위 또한 기독교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있다. 혹자는 ‘무례한 기독교’라고 혹평한다. 교회성장이 멈춘지 오래고 기독교 인구는 감소하고 있다. 주일학교가 사라지고 있고 교회구성원의 노령화는 심화되고 있다. 이런 판국에서 이단이 활개치고 있고 신천지가 도래했다며 전국교회를 들쑤시고 있다. 한국교회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오늘 한국교회는 기로의 가장 큰 문제는 지도자의 비윤리적 행태이다. 도덕의식의 상실과 함께, 성직자의 성적 타락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교회의 계도적 권고는 능멸당하고 있다. 한국교회 문제는 목회자의 문제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무자격 신학교의 난립, 무자격 그리고 훈련되지 못한 목회자의 양산은 한국교회 근원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에게는 교회의 자정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개혁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우선 교회 지도자들의 통회자복이 시급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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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론
    2016-08-24
  • [이용희 교수] 안전과 생명살림, 기억과 책임, 그리고 교회의 역할
    지난 7월 28일 헌법재판소에서 군형법 92조의 6(구 군형법 제 92조의 5)에 대한 합헌 판결을 내려 많은 애국시민단체들의 환영과 지지를 받았다. 이 조항은 ‘군대 내 항문성교 금지’ 조항으로 동성간 성행위를 금지하는 남한 내 유일한 법안으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던 중 헌법재판관 9명 중 5명이 합헌, 4명이 위헌 의견을 내 합헌으로 판결되었다. 이번 판결은 애국시민이라면 당연히 환영할 결정이었다. 첫 번째로 우리나라의 특수상황을 볼 때에 그렇다. 현재 우리나라는 남북한 대치중인 휴전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군대내 동성애를 허용하는 것은 군전투력뿐만 아니라 군인들의 사기를 저하시킬 것이다. 북한에서는 동성애를 사형, 감옥형 등으로 엄격하게 처형하고 있는데 남한에서만 군대내 동성애를 허용한다면 심각한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것이다. 둘째로 군대내 동성애를 허용하면 많은 젊은이들이 군대에 가서 상급자에게 성적으로 피해를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 이는 동성애자 폭증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또한 자연스럽게 동성간 성행위로 인해 에이즈 발병률이 높아지게 되고 변실금 등 각종 질환 유발로 국민 보건과 의료비용에도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키는 망국적인 결과를 초래시킬 것이다. 헌재의 이번 합헌 판결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기뻐했지만, 우리나라는 마냥 넋 놓고 좋아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그 이유는 계속되는 동성애 합법화 시도와 기성세대와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10, 20대들의 매우 진보적인 성향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부모와 교육자들은 남겨진 과제와 같은 일들을 해 나가야 한다. 첫째로 국가인권위원회법 2조 3항(동성애차별금지조항)을 삭제시키는 것이다. 이 조항으로부터 동성애에 대해서 부정적인 말을 못 하게 하는 ‘인권보도준칙’이 만들어졌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계속적으로 권고하며 청소년들에게도 동성애를 옹호, 미화, 선전하는 근거가 제공되고 있다. 둘째로 교과서 내에 이미 삽입 된 동성애 옹호, 미화 내용을 삭제해야 한다. 현재 초·중·고등학교에서 편향된 보건, 사회 등의 교과서로 이미 동성애를 미화하고 옹호하는 잘못된 성윤리가 가르쳐지고 있다. 이 내용을 바로 잡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우리의 자녀들이 올바른 성윤리를 배우며 자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동성애를 불법화한 80개 국가와 동성애가 불법은 아니지만 부도덕하게 간주되며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는 120개 국가들이 서로 연합하여 ‘200개 국가’가 ‘국제적인 연대’를 조직하여야 한다. 그래서 동성애를 합법화한 20여개 국가들이 추진하고 있는 전세계 국가들을 향한 동성애 합법화 압력을 막아서야 한다. 시대가 점점 악해지면서 사단은 ‘동성애 합법화’라는 카드를 가지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부하며, 반성경적인 풍조로 이 시대를 장악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마지막 시대라 하며 이런 동성애 문화의 흐름은 어쩔 수 없다고 핑계대고 가만히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뜻은 악인이 돌이키는 것이고,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이 나라가 동성애가 합법화 되지 않는 나라가 되도록, 서양에서 밀려오는 동성애의 물결을 막아서는 세계적인 방파제가 되어 열방을 의의 길로 선도하는 거룩한 대한민국으로 세워지도록 깨어 기도하며 행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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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론
    2016-08-04
  • [송진호 사무총장] 안전과 생명살림, 기억과 책임, 그리고 교회의 역할
    필자가 부산에 온 지도 벌써 반년이 넘었다. 1년도 되지 않은 짧은 기간 동안 부산은 참 많은 사건을 겪었다. 그리고 그 때마다 반복되는 질문은 기업의 이윤이나 애향심, 그리고 국가안보(national security)에 앞서야 하는 '인간안보와 시민의 안전(human security)' 사상이 온갖 절충과 타협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경험과 그 갈등과 혼란 현장 한 가운데에서 우리 교회의 존재감과 목소리를 발견하지 못하는 문제의식이었다. 국가경영 차원에서 바라보면 모든 문제와 이슈들은 중층적이고 다양한 고려와 배려사항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모든 배려와 고려에 앞서서 최우선적 가치와 원칙으로서 타협과 절충의 대상이 되지 말아야 할 것은 시민의 생명살림과 안전, 그리고 인간 존엄성을 지키는 인간안보(human security) 사상이다. 생명과 안전, 인간 존엄성과 인간안보의 원칙이 여타의 배려, 고려사항 및 정치적 제 계산법에 떠밀려서 매 사건 때마다 우선순위의 뒷전으로 밀려나는 현상을 우리는 세월호 기억 이후로 데자뷰처럼 반복 경험하고 있다. 작년에 부산 시민들의 노력으로 고리원전 1호기 영구폐쇄 결정을 얻어낸 사건은 그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경제 효율성논리와 시민의 생명과 안전논리가 첨예하게 대립하였던 노후 원전을 영구폐쇄 결정한 것은 너무나도 환영할 사건이었다. 부산 도심에서 30분 거리에 위치한 고리원전 폐쇄 결정의 기억은 또다시 제기되고 있는 신고리 5, 6호기 건설을 졸속 결정한 정부와의 또 다른 마찰을 예고하고 있다. 이미 탈핵을 선언하고 실천하고 있는 독일 정부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산업 경쟁력 위축론과 신재생에너지 시기상조론, 전기요금 인상론, 그래서 징검다리 에너지가 원전이라고 주장하는 원전 찬성론자의 온갖 경제 효율성 중심논리에서 우리는 또다시 시민의 생명과 사람 중심의 안전사상 부재에 대한 성찰적 반성이 필요하다. 원자력을 지지하는 사람이건 원자력을 반대하는 사람이건 이것은 이데올로기 논리도 진보-보수 편가르기 논리도 아닌 사람중심의 생명존중 인간안보의 관점에서 함께 토론되어야 할 사안이다. 벌써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고 있는 동남권 신공항 유치를 둘러싼 정치권과 지자체, 거기에 편승한 시민사회와 언론의 미성숙한 민낯들 속에서 진정 시민의 안전을 둘러싼 합리적인 논의 테이블도 가져보지 못한 경험이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앞에서도 냄비처럼 잠깐 들끓었던 불매운동 여론도 벌써 뇌리에서 지워지고 있다. 정작 안전한 소비자운동과 생명살림의 대안소비운동에 대한 논의마저 사라져 버렸다. 성주군민들의 사드 반대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우리는 주민 안전이슈는 사라지고 ‘외부세력’과 ‘종북좌파’의 개입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탄저균과 지카바이러스 등 미군의 생화학전 대응능력을 기르기 위한 연구과제인 ‘주피터(JUPITER) 프로젝트’가 부산에 도입된다는 데에도 자치단체도 지역 정치권도, 심지어 지역 내 교회도 여전히 공론의 장에서 합리적인 토론조차도 못해보고 있는 실정이다. 과잉되고 조작된 애향심과 애국심, 국가안보논리와 보랏빛 경제성장 환상의 바람몰이 속에서 정말로 오늘의 부산시민들과 미래세대 부산시민은 정말 안전한 것인지에 관한 차분하고 객관적인 검증과 합리적인 사회적 대화의 장을 마련할 것을 요구한다. 오늘날 시민들의 다중의 불안 속에서 이미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린 경제 중심의 성장론과 경쟁력 신드롬의 보랏빛 환상 앞에서 반복되는 생명 경시풍조와 안전 불감증 현상 속에서 잃어버리고 잊어버린 생명존중과 인간 중심의 안전사상을 시정과 국정의 최우선적 가치와 원칙으로 재편해 나가는 일에 교회가 앞장서야 할 때이다. 그래서 전통적 군사력 중심의 국가안보 개념을 확장하여 시민의 생명과 안전, 복지와 평화, 인권과 인간 존엄을 중시하는 안보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인간안보(human security) 개념을 성서에 기반하여 해석해내고 강화해 나가야 한다.
    • 오피니언
    • 정론
    2016-07-21
  • [이선복 교수] 거룩한 스승이란?
    “거룩한 스승”이란? 6월 30일부터 7월 2일까지 부산대학교에서 열린 제31회 전국교수선교대회 주제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대학교육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주장한다. 또 교육부 스스로가 각종의 정부지원사업을 무기로 대학들이 구조조정을 하도록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개혁이란 무엇이고, 교육부가 추구하는 방향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 물음에 필자는 현직 교수의 한 사람으로 교수가 변하지 않고는 대학이 절대 변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싶다. 즉 개혁의 주체는 교수이고, 또 교수가 변화되어 참된 스승의 역할을 제대로 할 때 교육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대 대학교육에 있어 지향해야 할 참된 교수의 상은 무엇일까? 필자는 기독교수의 한사람으로 그 가치를 성경과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찾고 싶다. 기독교수에게 있어 최고의 스승의 모델, 멘토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모든 인류에 참 사랑을 가르쳐 주셨음은 물론, 제자들의 발을 씻겨 본을 보이시며 너희도 이같이 행하라 하시며 교육의 본을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요한복음 13:15). 많은 대학이 심각한 위기 속에 있다. 높은 장벽의 취업 현실 속에 학생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전공 성적과 외국어 스펙 만들기에 집중, 교육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돌아 볼 틈이 없다. 경쟁구조는 날로 더 심해져 가고,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컨닝까지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3년전 우리는 세월호 사건을 통해 새롭게 교육을 회복할 기회가 있었지만, 스스로 무산시키고 말았다. 도망치는 선장의 모습을 보고 내 자신 속에도 그러한 부분이 없었는지, 또 무엇보다도 교육자의 한사람으로서 그 잘못이 교육에 있었음을 통감하고 회복의 길을 찾았어야 했는데, 결국 본질은 외면하고 정치적 책임공방에 관심이 집중되는 안타까운 모습을 봐야만 했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는 교육이 바로서야 한다. 또 그를 위해서는 모든 교육자가 먼저 학생들 앞에서 정직한 모습으로 바로서고, 가슴으로 사랑을 실천하며 구체적인 교육방법을 위해 구현해 갈 수 있도록 앞장서야 할 것이다. 전국교수선교대회가 3일 남았다. 지난 한학기도 동안도 열심히 달려 왔다. 그러나 돌아보면 부족한 점 투성이다. 또 누구를 위한 교육이었나? 혹 자신을 위한 것은 아니었는지, 생계수단을 위한 일상적인 교육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보면 회개하고 반성할 점이 너무나 많다. 이번 선교대회는 신앙생활을 통해 받은 은혜와 사랑을 확인하고, 또 우리 학생들에게 어떻게 사랑을 전달하고 봉사할 수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즉 기독교수로서의 성경적 가치와 기독교 세계관에 기초한 스승 상을 회복, 모든 교육의 영역에서 복음의 선한 영향력을 드러내고, 하나님 나라의 완성과 임재를 실천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또한 동시에 이번 부산대학교 대회는 그 동안의 대회가 기독 사립대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던 만큼, 복음이 지역거점 국립대학으로 확산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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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론
    2016-07-06
  • [안중덕 목사] 청소년을 위한 사회적 역할
    우리나라에서 청소년에 대한 인식은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꿈도 피워보지 못한 수많은 ‘꿈지기’들의 희생을 목격하면서 온 국민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고 안타까워 몸을 떨었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존중하고 그들이 원하는 일들을 하게 해 주어야겠다고 다짐도 했었다. 그리고 두 해가 지난 지금,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수영교습을 의무화하자는 목소리가 나올 뿐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인다. 최근에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에서 발표한 ‘2016 제8차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국제비교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 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는 82점으로 조사 대상인 OECD 회원국 22개국 가운데 가장 낮았다. 주관적 행복지수란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의 정도를 OECD 평균(100점)과 비교해 점수화한 것이다. 이 연구팀이 지난 3~4월 전국 초등학교 4학년~고등학교 3학년 학생 7908명을 대상으로 학교생활 만족도, 행복감, 건강 상태 등 항목의 행복지수를 조사한 것인데, 우리나라는 2009년 첫 조사 이후 2014년까지 6년 연속 최하위로 나타난 것이다. 이는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전혀 나아진 것이 없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청소년들이 입시와 경쟁의 굴레 속에서 청년성(靑年性)을 상실한 채 여전히 박재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청년성’이란 과단성, 불온성, 도전성을 말한다. 과단성(果斷性)은 일을 딱 잘라 결정하는 의지로서 젊은이에게는 진리와 정의에 대한 과단성이 있어야 한다. 불온성(不穩性)은 기성의 권력이나 세력에 맞서고 대립하는 기질로서 젊은이는 세상의 불의와 불평등과 맞설 수 있는 불온함(야성)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도전과 모험심은 세상에 존재하는 악에 대한 도전, 그리고 삶의 역경과 시련에 대한 담대한 용기와 모험심이 있어야 한다. 과연 우리의 청소년은 이런 청년성을 키워가고 있는가. 어떻게 우리의 청소년들이 박재되어 가는 틀을 깨고 나와 청년성을 회복하게 해 주어야 하는가. 청소년기는 급속한 신체적 성장과 함께 극심한 심리적 변화를 경험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의 변화를 잘 극복하고 적응해야 심리적으로 안정되며, 성인기로의 순조로운 이행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청소년기는 생애능력을 키우는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일과 중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지적능력의 증대를 위해 사용하고 있고, 입시와 성적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미래 자신의 진로, 직업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생애핵심역량의 통합적 발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금까지의 청소년 활동은 학교교육에 치중하고 있어 자발적 활동의 기회를 확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청소년 활동역량의 증진을 위해서는 청소년 스스로 잠재되어 있는 능력을 개선하고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자기주도적인 청소년 활동으로 이루어지는 통합적인 활동 프로그램과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이러한 역할은 학부모나 청소년 자신의 자발적 의지도 중요하지만 전문적인 청소년활동기관과 지역사회의 다양한 기관이 참여하여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한다. 교회의 청소년 사역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교회의 청소년들이 사라지고 있다. 교회들은 오래 전부터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유의미한 대안과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위기가 아닌 현실에 직면한 것이다. 교회가 스스로 청소년들을 끌어안고 청년성을 키워주어 역사의 주체로서 하나님 나라의 신실한 일꾼으로 키워가기에는 힘겨워 보인다. 그렇다면 교회가 청소년들에 대한 사회적 역할을 할 방법은 있는가. 한 가지만 제안하고 싶다. 교회는 우리 사회의 시대적 상황을 새롭게 인식하고 청소년을 위한 새로운 역할을 모색해야 해야 한다. 그래야 교회와 우리 사회에 미래가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개화기에서부터 기독청년운동을 주도해 온 YMCA, YWCA와 같은 기독교 청소년 전문기관들과 손을 잡는 것이다. 기독교청소년시민운동단체의 전문성과 교회의 인적, 물적 자원이 만나면 충분히 지속가능한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지금 우리는 청소년들에게 희망과 신뢰를 주는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할 때임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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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론
    2016-06-16
  • [주광순 교수] 한국 교회와 이주민 사랑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자주 외국인들을 만나게 된다. 우리나라에도 외국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도 있고 외국인 유학생도 있고 결혼해서 들어 온 여성도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자면 2014년에 우리나라에 체류하는 외국인 수만 해도 180만 명 정도가 된다. 장기 체류하는 외국인도 140만 정도다. 결혼해서 국적을 취득한 여성까지 치면 그 이상일 것이라고 본다. 그 자녀들까지 합치면 그 수는 더 될 것이다. 요즈음 추세로 보아서는 그 수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보자면 우리나라도 더 이상 단일민족, 단일문화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문화 사회가 된 것이다. 오늘은 결혼 이주민 여성과 다문화 자녀 문제를 거론해 보고자 한다.구약성경에는 ‘이방인과 나그네를 선대하라’는 말씀이 나온다. 외국인 노동자나 유학생도 이방인이요 나그네지만 이주민이나 그 자녀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다. 엄마들이 국적을 취득하면 한국 사람인 것은 맞지만 생김새나 피부색이 다른 관계로 외국인 취급을 받는다. 다문화 자녀들은 더 미묘하다. 한국말도 잘하고 한국 학교에도 다니지만 특히 생김새나 피부색이 다른 경우에 완전한 한국 사람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수 있고 우리 사회에서 따돌림을 당할 것이다.필자는 독일에서 유학을 해서 몇 년 전에도 독일에 머문 적이 있었다. 거기 예전에 다니던 한인교회에서 한국인 2세들을 만나서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한국 부모들이 교육열이 강해서 독일말도 잘 하고 공부도 잘 한다. 그런데 어떤 독일 사람이 ‘당신은 어떻게 이렇게 독일말을 잘 하는가?’하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이 질문이 충격적인 것은 2세들이 비록 혈통적으로는 한국인이지만 내적 정체성은 독일인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에게 누가 ‘당신은 어떻게 이렇게 한국말을 잘 하는가?’라는 질문을 할 것인가! 스스로는 독일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정작 독일 사람들은 그들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에피소드이다.성경에는 의외의 말씀이 있다. 마태복음 25장에 양과 염소의 비유도 그렇다. 영생과 영벌에 처하는 기준이 이웃을 도왔는가 그렇지 않은가이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힘든 본문이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그렇게 작은 일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35절에 하나님께서 ‘의인들’에게 영생을 제공하며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다고 하신다. 이 말을 우리 현실에 적용해 보자면 다문화 자녀가 우리 사회에서 고통 받고 있는데 내가 무언가를 한다면 심판 날에 주님께서는 ‘네가 나를 도왔다’고 말씀하신다는 것이다.또한 우리가 이주민과 자녀들을 무언가 돕는다고 할 경우에 동정심으로 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 자녀를 돕는 것은 곧 주님을 돕는 것이다. 여기서 놀라움은 다문화 가정이 단지 연약한 존재로서 우리의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모든 것을 초월해 계시면서, 우리의 섬김을 받아야 할 주님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물론 약자가 곧 하나님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 등장하는 굶주리고, 헐벗고, 병든 사람들 그리고 나그네들을 단지 사회학적 개념으로 파악해 버리는 것도 충분하지 못하다는 점도 분명하다. 이들 약자 속에는 무언가 우리 주위의 일상적인 약자를 넘어서는 것이 있다. 주님이 자신과 일치시키실 만큼 그 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스스로 한번 자문해 보자. 우리는 주님을 도울 것인가 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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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론
    2016-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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