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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교육표준안’은 ‘표준’이 되어야 한다
    10월 10일, 293개로 구성된 ‘동성애 동성혼 개헌반대 국민연합’(이하 동반연)에서는 오전에 국회와, 오후에는 세종시에 있는 교육부 앞에서 ‘학교 성교육 표준안에, 동성애 옹호 교육 포함시키려는 개정 시도를 강력히 반대하며, 현행 성교육 표준안 내용을 적극 지지 한다’는 내용으로 집회를 가졌다. 또 이를 지지하는 국민들의 뜻을 모은, 82,413장의 서명서도 교육부에 제출하였다. 동반연이 집회를 한 이유는, 지난 2015년 교육부에 의해 만들어진 ‘성교육 표준안’에 대하여 일부 시민단체와 새 정부 들어서, 정부쪽에서 이를 개정하려고 하는데, 그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점을 살펴보면, 십대 여성도 성을 즐길 수 있는 ‘프리섹스 이데올로기’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 다양한 가족형태를 인정함으로, 동성애와 동성혼을 조장한다는 점, 학교에서 다양한 성, 즉 동성애와 트랜스젠더 등을 가르치라고 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청소년들에게 자유로운 성관계를 권장하는 교육을 하라는 점 등이다. 왜 어른들과, 또 정부쪽에서 이러한 편향되고, 왜곡된 ‘성교육’을 주장하고 있는 것인가? 이렇듯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성’을 통한 ‘성 정치’ ‘프리섹스 이데올로기’ ‘동성애 조장’을 담은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성교육 표준안’에 들어가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본다. 현 ‘성교육 표준안’을 폐지하는 것을 주장하는 단체들은, 지난 8월에 17,000여장의 서명서를 받아 교육부에 접수한 바 있는데, 과연 이들이 청소년들의 바른 미래와 그들의 참다운 인격과 인권을 위한 행동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성 정체성 확립도 되지 않은 우리 청소년들을, 그럴싸한 유혹으로 ‘성 정치’의 희생물로 삼으려 하는지는 곧 밝혀질 것이다. 이런 과격 단체들의 주장대로 했을 때, 과연 우리 청소년들에게는 어떤 영향이 가게 될까? 청소년들은 기성세대가 바른 교육을 통하여 그들을 보호하고 지켜줘야 한다. 그런데 청소년들에게 국가 차원에서, 바른 성교육의 목적으로 표준안을 만든 것조차, 자신들의 기준과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고치라고 압력을 넣는 것은, 매우 부당한 처사이며, 국가 미래를 위해서도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학교는 청소년들의 성적 욕구 충족 방법과 배출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고, 성이 가진 아름다움과 그것으로 인한, 남녀의 바른 역할을 가르쳐 건강하고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도록 교육하는 곳이 되어야 마땅하다. 이에 대하여 교육부와 여성가족부는 덩달아 분별력을 상실하지 말고, 차분하게 우리 청소년들의 미래를 생각하는 정부 차원의 자제력을 갖게 되기 바란다. 그리고 교육부는 지난 2015년에 만든 ‘성교육 표준안’을 견지하고, 오히려 청소년들의 미래를 위해 미비한 부분이 있다면 이를 바로 잡아, 지켜나가기 바란다. 우리 청소년들은 교육을 통하여 성의 아름다움을 배우고, 순결을 지킬 권리도 가지고 있음을 잊지 말라. 제발, 기성세대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야욕을 위해, 우리 청소년들을 수단으로 이용하며, 성을 문란한 나락으로 끌어내리는 부끄러움을 범하지 말기를 바란다. 정말로, 책임감 있는 어른들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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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0-17
  • 가을노회를 앞두고
    모든 교단의 총회가 끝나고 가을노회를 앞두고 있다. 총회에서 결의된 정책들을 노회가 수임 받아 어떻게 잘 이행해야 할 것인가를 기도하면서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노회산하 지교회들로 하여금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데 큰 역사를 이룩하도록 노회가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 금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 한 해이다. 다시한번 종교개혁 정신을 돌아보고,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정책적인 노회가 되어야 할 것이며, 노회 산하 교회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이번 가을노회는 해 묵은 현안들을 다 정리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금년 총회가 결의한 사항을 돌아보며, 다시한번 해당노회 현실에 맞는지 연구하고 기회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과거 아름답지 못한 문제들은 종식시키고, 서로 화해하며 미래를 위해 도약하는 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노회 때마다 보기 민망한 일은 노회 임원선거나, 아니면 총회 총대선출을 끝내면 자리가 텅텅 비어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속회 할 때나, 중요한 안건을 결의 할 때 보면 성수가 되지 못해 임원들이 안절부절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노회는 주님의 몸된 교회들을 잘 살피고 지도하며 협력해야할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교회의 총대로서 참석한 장로들이나 노회원인 목사들이 노회 안건을 다루는 자세나 태도가 성도들에게 본이 되지 못하고 너무 성의가 없다는 자성의 소리가 노회 때마다 들려온다. 이번 가을노회부터 회의 시간에는 최선을 다하여 성실히 참석하는 본을 보여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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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9-25
  • 추석을 맞이하는 성도들의 자세
    오는 9월30일부터 10월9일까지 10일 동안 황금연휴를 맞이한다. 특이 이 기간에는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도 자리잡고 있다. 아무리 핵가족화 시대가 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한국사회는 가족, 친척들이 함께 모여 추석을 보내는 문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 기간 가족과 함께 고향교회를 돌아보며 한번쯤 예배를 참석하는 것도 뜻 깊은 일일 것이다. 추석은 우리나라 고유의 명절이다. 우리 민족에게 나름대로의 민족성이 있고 고유한 문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추석은 우리들에게 기쁜 날이다. 하지만 추석을 맞으면서 다시 한번 문화적 갈등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 우리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것은 추석의 의미가 제의(祭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통 4명절인 설날 ·한식 ·중추 ·동지에는 산소에 가서 제사를 지내는데 추석 차례 또한 조상을 기리는 추원보본(追遠報本) 행사이다. 그 해 난 올벼를 조상에게 천신(薦新)하는 제를 지내며 채 익지 않은 곡식을 천신할 목적으로 벤다. 일부 가정에서는 새로 거둔 햅쌀을 성주단지에 새로 채워 넣으며 풍작을 감사하는 제를 지낸다. 이것은 추석이 제사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 날은 온 민족이 하나님께 범죄 하는 날이다. 우리에게는 이런 일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있어야 한다. 먼저 우리는 이 추석이 조상에 대한 제사가 아니라 하나님에게 대한 감사로 바뀔 수 있도록 복음에 대한 사명감을 더욱 뜨겁게 하고 만나는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성도들은 추석문화와 추석놀이를 바람직하게 이끌어 가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추석 문화가 음주나 화투 놀이와 같은 것들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성도들은 이런 문화에 휩쓸리지 말고 아름다운 문화를 인도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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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9-25
  • 각 교단 총회에 바란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2017년 9월. 각 교단 총회가 눈앞에 다가왔다. 지난 1년간 교단 안에서의 활동을 정리하고, 새로운 목표를 정하여, 교단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결정하는 총회(總會)를 맞게 되는 것이다. 또 새로운 일군을 선정(選定)하므로, 총회 안에 새로운 리더십을 세우게 된다. 총회는 정책총회가 되어야 한다. 사소한 문제에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중요정책을 입안할 때 전문적인 문제는 전문가한테, 영적인 것은 목회자에게 각각 전문 파트에 따라 시간을 효율성 있게 나눠가져야 할 것이다. 또 자리가 텅빈 총회 모습은 보이지 아니했으면 좋겠다. 첫날 이후로 총대자리가 썰렁하여 장로총회는 모두다 집에 가거나 개인일로 자리를 뜨는 수가 많다. 교회와 노회가 주는 총대여비로 총회에 참석하는 총대들은 성실히 임해야 한다. 각 교단의 이번 총회에서는 교단 내부의 문제도 중요하겠으나, 한국교회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가지 외적 환경들에 대해서도, 한국교회의 하나 된 의견들을 집중적으로 모아야 한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정부와 정치권에서 ‘정치 개혁’을 위한 로드맵 가운데, ‘헌법 개정’을 하려고 하는데, 이 중에는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 직/간접적으로 크게 영향을 줄, 사안들이 들어 있다. 거기에는 국민의 기본권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바꾸려는 것과, 망명권을 신설하는 문제와, 난민을 대거 받아들이는 문제, 동성애 합법화와 폭력의 종교를 끌어들일 수 있는 조항과, 그리고 혼인 조항에서 양성 평등(남녀의 결합)을 사회적 ‘성 평등’으로 변경하려는 내용들이 들어 있어, 이에 대한 분명한 문제 파악과 함께, 일치된 대응이 필요하다. 특히, ‘다문화’ ‘인권’ ‘종교차별금지’와 같은 그럴싸한 명분으로 우리 사회에 들어오려는 이슬람의 문제는,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심각함을 깨달아, 신속하고 적절하게 대처해 나가야 한다. 잘 알다시피, 이슬람은 ‘상대주의’나 ‘상호주의’가 통하지 않으며, 지금까지 유럽의 사례들을 보면, 결코 그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의 ‘동화’(同和)나 ‘협력’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역기능을 보아 왔다. 오히려 불만과 폭력과 테러를 일으키는 것을 보아 왔다. 그것은 그들의 종교적 신념과 이데올로기가 그들을 그처럼 이끌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그 문제점에 대하여 분명하게 인식하고, 그 입장을 정확히 하여야 한다. 또한, 한국교회가 연합기구들의 ‘연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이에 대한 정리도 필요하다. 언제까지나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모습으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한국교회의 분열의 이미지는 결국, 주님의 몸을 찢는 것이 되며, 한국교회 전체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고착화시키는 것이 된다. 그리고 교단 안에서 일어나는 각종 문제점에 대하여, 확고하고 분명한 치리(治理)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 기독교는 지금 종교개혁 500년을 맞고 있는데, 종교개혁자들은 가장 고통스럽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분명한 신앙의 태도를 견지하기 위해, 열정과 생명을 바쳤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교회는 결코, 권력기관이 아니다. 세상의 권력과 유착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교회 안에서 세속적 욕망과 정욕을 따라 가는 것은, ‘우상숭배’와 같은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 하느니라”(골3:5~6)고 경고 하신다. 총회는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행하여서는 안 된다.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총회인 만큼, 주님께 영광이 되고, 주님의 뜻 앞에 순종하는 거룩을 유지하는 총회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주님의 교회를 세워가며, 그 지경을 넓히기 위한 수고와 결단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주요 교단의 이번 가을 총회는, 모든 총회가 그야말로 성총회(聖總會)가 되며, 지금까지 수고한 것에 대한 선한 열매를 거두는 것과 함께, 다시 척박한 세상 가운데 복음의 씨앗을 파종(播種)하는 겸손의 모습들이 곳곳에서 나타나는 총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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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9-11
  • 법 적용은 공평해야 한다
    부기총이 대표회장과 법인상임이사 이름으로 초대이사들에게 임기제한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부기총 정관 제23조(법인임원 및 감사의 임기)에는 “이사장 1년, 법인이사 3년, 법인 상임이사 1년, 법인 감사2년으로 하되 이사장을 제외하고는 1차에 한하여 연임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지난 2010년 부기총 법인이 시작됐기 때문에 이들 5명 이사(정영문, 조운옥, 정휘식, 신이건, 정영란)들의 임기는 작년 6월 끝났어야 했다. 하지만 이들이 원하지도 않았지만 법인이사회가 결의하여 다시한번 임기를 부여했다. 규정을 위배한 것이다. 이들도 임기제한 공문을 받고 규정을 따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공문을 보낸 법인 상임이사도 사퇴해야 한다. 정근 장로는 금년 초 시무하던 백양로교회에서 은퇴한 바 있다. 정근 장로가 부기총 법인 상임이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통합측 백양로교회 시무장로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원인이 사라졌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은퇴한지 몇 개월 뒤 자신이 운영하는 온종합병원 내 누가교회 시무장로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자신의 병원이라고 해도 은퇴와 시무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교단마다 교회법이라는게 있기 때문이다. 또 누가병원은 독립교단에 가입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독립교단은 부기총 회원교단이 아니다. 부기총 정관 18조(법인임원의 선임)에는 “법인 임원은 정기총회에서 선출하며, 이사장은 본회 대표회장이 겸임하며 법인 이사는 각 교단에서 추천받은 자로 하되(이하생략)”라고 되어 있다. 사실상 회원교단이 파송한 대의원이 아니면 부기총 법인 이사가 될 수 없다. 법인이사가 될 수 없다면 법인 상임이사도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만인 앞에 법은 공평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정근 장로는 국회의원이 선거에 출마한 적 있다. 다음 총선에도 나올 것이라고 모든 사람들이 믿고 있다. 연합회 작은 법(정관) 하나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나라의 큰 법을 만들 수 있는지 의문이다. 지금이라도 스스로 사퇴하기를 권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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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8-28
  • 무슬림 ‘난민지위 인정’ 신중해야 한다
    지난 20일, 서울행정법원 행정 1단독(차지원 판사)에서는 요르단 출신의 모 씨에 대하여 ‘난민을 인정하는 판결’을 하였다. 법원은 ‘원고를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은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는 결론을 내림으로, 난민으로 인정하게 된 것이다. 그리되면, 한국 국적 자에 준하는 사회보장혜택과 취업까지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이번 결정에 문제는 없는 것인가? 이는 단순히 ‘인권적’ 차원에서 무슬림이 정치적 박해를 당하는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슬림에 대한 난민 인정은 매우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자기 나라에서는 정치적인 박해를 당했을지 몰라도, 우리나라에서 난민으로 인정받거나, 국적을 취득했을 때는, 또 다른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과거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이런 식으로 무슬림 난민들을 받아들였다가, 끔찍한 폭력과 테러로 인하여 ‘다문화 정책의 실패’를, 뼈아프게 선언한 경우가 허다하다. 무슬림들의 특색은, 자기들끼리 종교적/정치적인 강한 결속력을 가지므로, 그 세력과 힘을 뭉쳐간다는 것이다. 즉, 국적을 취득하는 나라의 문화에 결코 동화되지 않는다. 또 하나, 이들은 자신들의 종교적인 신념(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와 같음)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방글라데시 이맘(이슬람 성직자)이 국내에 들어와서, 그들 나라 근로자들에게 ‘모이라’ ‘들으라’ ‘복종하라’ ‘거주 이전하라’ ‘지하드(聖戰)하라’고 선동한 것도 드러나고 있다. 이는 무슬림들의 지향점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 것으로, 매우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슬람국가 IS가 잔인하고, 끔찍한 국제적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단순히, 무슬림들 가운데 ‘돌연변이’에 의한, 부분적인 실수나 악행이 아니다. 이들의 폭력과 테러를 뒷받침하는 것은 그들이 믿는 경전인 ‘꾸란’이며, 무슬림들의 폭력을 부추기는 사이드 꾸틉의 “진리를 향한 이정표”와 같은 폭력 교서(敎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난민 지위를 인정할 때, 보다 세밀하고 철저하게 살펴야 할 것이다. 그 나라의 정치적 상황만을 판단기준으로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종교적 문제, 문화적 문제, 사회적 문제, 폭력과 살상의 문제, 잠정적 테러리스트의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만약 단순 판단으로 ‘인권’ 만을 고려하여, 많은 무슬림들에게 대한민국의 국민적 주권을 허용한다면, 이는 ‘트로이 목마’를 끌어들이는 일이 되지 않을까 심히 염려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경계하고 또 경계해도 남음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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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8-28
  • 한적하고 쉼이 있는 여름휴가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이 시작됐다. 여름휴가는 그동안 삶에 지쳐있던 마음과 몸을 조용한 곳에서 쉬면서 내일의 활력이 넘치는 생활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어느덧 우리 사회도 과거보다 나은 생활환경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형편에 따라 휴가를 계획하기도 한다. 그런데 휴가를 잘 못 보내면 오히려 휴가를 가지 아니 한 것보다 못할 때가 있다. 왜냐하면 휴가를 어떻게 보내었는가에 따라 곧 바로 다음 생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목회자들의 휴가는 아주 신중하게 보내야한다. 목회자들이 휴가를 잘 보내면 오히려 전보다 더한 활력소를 목회에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 그 후유증으로 인해 목회에 상당한 나쁜 영향을 주게 된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간 쉬어라”고(막6:32) 말씀하심과 같이 휴가는 장소 선택이 중요하다. 목회자에게 휴가 장소는 그야말로 한적한 곳이어야 한다. 일반인들이 선호하는 복잡한 곳이 아닌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틈만 나시면 “한적한 곳”(막1:35,45,6:32 등)을 자주 가셨던 것과 같이 목회자들의 휴가는 한적한 곳에서 보내야 한다. 일반인들이 선호하는 복잡한 유흥지에서 며칠 지내다 집으로 돌아오면 오히려 몸도 마음도 휴가 전보다 더 지쳐 있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과 같이 한적한 곳에서 쉬는 휴가가 되도록 하자. 그리고 그 다음, 휴가는 쉬는 것이다. 마치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고 하신 말씀같이 모든 것을 다 주님께 맡기고 몸도 마음도 쉬어야 한다. 주님도 한적한 곳에 가서 자주 기도 하셨던 것처럼(막1:35,눅5:16), 목회자들도 모든 일들을 기도하면서 맡기고 쉬도록 해야겠다. 끝으로, 금번 휴가 기간에는 인간적인 일체의 뜻을 포기하고 자신을 비우고 정화하여 성령의 뜻과 일치하려는 기다림의 쉼을 통해 성령의 충만한 능력을 재충전하는 기회로 삼아야한다. 그리하여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한국교회를 다시 도약시키는 역사가 이번 목회자들의 여름휴가를 통하여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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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8-07
  • 동성애에 대한 대법원의 이중적 판결
    지난 달 28일 대법원이 한 동성애 단체에 손을 들어 주는, 어이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모 동성애 단체는 지난 2015년 법무부에 사단법인 설립을 요청했으나, 법무부는 그 동안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유는 ‘법무부는 국가 인권 전반에 관한 정책을 운용하고 있고, 인권 옹호 단체의 법인 설립 허가를 관장하기 때문에,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을 위한 목적으로 법인설립을 하려는 동성애 단체의 성격과는 맞지 않아, 이를 허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해 온 것이다. 이는 지극히 당연하며, 국민의 ‘법 감정’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그런데 동성애 단체는 이에 불복하여, 지난 2015년 7월에 법무부를 상대로, ‘설립불허 가처분 취소 소송’을 시작하였고, 2016년 6월 서울행정법원이 동성애 단체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이에 법무부가 7월에 곧바로 서울고등법원에 항소를 했으나, 올해 3월 서울고등법원도 동성애 단체 편에 손을 들어 주었다. 이에 또 다시 법무부가 올해 4월, 대법원에 상고했는데, 지난 7월 28일 대법원은 법무부의 ‘상고 이유에 관하여 이유 없음’으로, 최종 판결을 내린 것이다. 즉, 동성애 단체가 법무부에 법인설립을 하는 것이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동성애 문제에 대하여, 2008년 판결에서, ‘동성애는 혐오를 조장하는 부도덕한 성행위’라는 요지의 판결을 통하여, 동성애를 우리 사회 통념상 부정적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동성애는 ‘부도덕’하다고 하고, 동성애 단체는 문제가 없다는 것인가?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국민들의 ‘법 감정’에도 못 미치는 것이며, 과거에 대법원이 판결한 것도 스스로 뒤집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른 것이다. 법이 ‘고무줄 판결’이 되면, 누가 그 법을 받아들이고, 따르겠는가? 이번 결과로 동성애 단체는 전략적으로라도, 법무부에 ‘법인 설립 신청’을 다시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 그들은 ‘법인의 인격’을 가지고, 동성애를 옹호하고, 활성화 시키고, 대외적인 영향력과 동성애 인권 강화를 빌미로, 반동성애에 대한 무차별적 대응을 시도할 것이 뻔한데, 국가 최고의 사법기관인 대법원이 이렇듯, 갈지(之)자를 걷는 것은, 국민 생활에 큰 혼란을 야기할 것이 분명하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아주 잘못된 것이며, 이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문제가 있는 동성애 조장에 기여를 하게 되는, 나쁜 결과를 가져 오게 될 것이다. 대법원의 원칙 없는 판결과 상관없이, 법무부는 이런 동성애 단체의 법인 설립에 대하여, 끝까지 불허해야 마땅하다. 국가 기관들이 국가의 기본 질서와 국민들의 근본적인 생활에 대한 책임감 없이, 시대적 조류(潮流)나 포퓰리즘에 놀아나는 듯 한 행태는, 이제 더 이상 국민들로부터 지지와 신뢰와 인정을 받지 못함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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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8-07
  • 교회법의 현실과 나아갈 방향
    지난 17일은 국가헌법이 공포된 제헌절이다. 한 나라의 헌법이 공포된 날을 기념하기 위해 1948년 제정한 기념일이다. 그런데 우리 크리스천들이 소중하게 여기고, 지켜야 할 교회법은 지금 어떤 상황인지 한번쯤 고민을 해 보아야 한다. 교회법은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이 땅에 드러낼 수 있도록 교회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해 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교회법은 그 역할과 취지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교회와 교인들이 분쟁이 나면 교회법에 순종하기 보다, 사회법에 의지해 소송으로 치닫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크리스천 사이에서 교회법은 세상법보다 더 권위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 왜 교회법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는가? 크게 그 법을 운영하는 교회지도자들의 자질과 교회법이 구속력 없다는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교회법을 공정하고 평등하게 잘 시행하면 문제가 없지만, 일부 교회지도자들의 정치적인 판단 때문에 교회 스스로가 영적권위를 상실하곤 한다. 또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강제성을 가진 세상법을 더 선호한다는 문제도 낳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교회문제의 소송은 단순히 법적인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앙적인 문제요, 전도와 세상에 대한 영향력과 직결되는 문제라는 사실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문제를 누구의 탓으로 돌리기 전에 스스로 자신의 죄임을 고백하고 먼저 기도하며 대안을 찾아야 한다. 이웃을 사랑하고 더 나아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 세상의 어떠한 법보다 더 상위에 있는 법이다. 그래서 할 수 있다면 교회 안에서는 법이 필요 없도록 교회와 관련된 문제는 사랑과 용서로 해결하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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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7-24
  • 침례교단,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길
    1935년에서 1951년까지 중국에서 의료선교사로 봉사하다가 공산당의 손에 의해 순교당한 미국인 외과의사 왈레스(William. L. Wallace)를 기념하고, 6.25전쟁 직후 낙후되었던 한국의 보건의료 부문에 봉사하기 위하여 미국 남침례교 한국선교회 유지재단에서 세운 침례병원이 결국 파산됐다. 지난 62년 동안 지역 사회발전과 지역 의료보건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해 왔기 때문에 지역교계에는 큰 충격이라고 할 수 있다. 침례병원은 남산동 신사옥으로 옮긴 이후 병원 경영이 악화되면서 지금의 사태를 초래했다. 경영이 악화되고 침례병원이 파산되기까지 17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과연 17년 동안 침례교단은 병원을 위해 어떤 정책을 수립하고, 어떤 방안을 강구해 왔는지 묻고 싶다. 금년 1월 부산지역목회자연합회와 침례병원 정상화대책위원회가 긴급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목회자들은 총회가 임시총회를 열어, 총회가 관심을 가지고 병원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간절히 촉구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최근 병원 이사장은 노동조합 지부장에게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미안한 감정은 없다”고 주장했다. 과연 최선을 다했는가? 그리고 길바닥으로 내몰린 직원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정말 없는지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지난 62년 동안 침례병원의 주인은 침례교단이었다. 그동안 주인행세를 해 왔다면, 책임지는 자세도 보여야 한다. 과거 고신총회 산하 복음병원도 임시이사가 파송되고 병원 부도가 났지만, 주인인 고신총회가 적극 나서 4년 만에 병원을 정상화 시켰다. 교단차원에서 모금운동을 펼쳤고, 200억이라는 돈을 모금했다. 당시 고신은 1,800여 교회였지만, 현재 침례교단은 3천교회가 넘는다. 무엇보다 마지막까지 병원에 남아 병원을 회생시키고자 노력했던 직원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들 중에는 금융권에 대출을 받아 병원 회생절차를 신청한 이들도 상당수다. 어떻게 보면 교단이 해야 될 일을 직원들이 한 것이다. 남아있는 직원들 상당수는 침례교단 성도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다시 한 번 당부 드린다. 침례교단은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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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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