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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이야기] “독일의 성탄절”
    독일에 가기 전 서울 서초동의 한 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할 때 어느 크리스마스이브가 생각난다. 주일학교 성탄발표회를 마치고 식사하기 위해 강남역 근처의 음식점을 향했다. 거리에는 캐럴 송이 울려 퍼지고 사람들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음식점은 사람들로 북적여 홀로 술을 마시는 중년신사와 합석하게 되었고 같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독일의 성탄이브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이 날을 하일리게 아벤트(거룩한 저녁)이라 부르는데, 오후가 되면 상가들이 모두 문을 닫고 대중교통도 끊기게 된다. 그래서 거리에 사람을 보기가 어려운 그야말로 고요한 밤이 된다. 이 날 독일은 우리나라의 명절처럼 흩어졌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저녁식사를 하며 성탄선물을 나누고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그러기에 홀로 사는 사람들에게 이 날처럼 외로운 날은 없다. 모든 가게나 음식점들이 문을 닫아서 갈 곳도 없다. 그러므로 뜻 있는 사람들은 홀로 있는 사람을 자기 집으로 초대한다. 나 역시 독일에서 처음 맞이한 성탄절이브를 홀로 보낼 뻔 했는데, 한 학생부부가 미리 초대를 해주었다. 다음 해부터 우리 가족도 성탄이브에는 교회 안의 홀로 있는 학생들을 초대해서 같이 식사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왠지 지금도 그 차분한 성탄이브가 그립게 느껴진다. 독일의 성탄분위기는 11월 말부터 뜨겁게 달아오른다. 성탄 4주전에 첫 번 째 대림절(강림절)이 시작되는데, 이 날에는 교회 강대상에 놓인 4개의 초들 중 한 개에 불이 켜지게 된다. 그리고 매 주일마다 불이 하나씩 더 켜져서 모두 4개가 다 켜진 주일 즉 네 번째 강림절이 지나고 성탄절을 맞이하게 된다. 첫 번째 강림절부터 도시마다 시청 앞에 대형 성탄트리를 설치하는데, 우리교회가 있었던 도르트문트에는 독일에서 가장 높은 45m의 성탄트리가 세워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크리스마스시장이 열리면서 거의 한달 동안 온 도시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가득 차게 된다. 이 크리스마스시장에서의 매출이 1년 매출과 맞먹을 정도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흥겨웠던 분위기는 조용한 성탄 이브를 지난 후 성탄절예배로 마쳐지게 된다. 성탄 이브를 같이 보낸 가족들은 다음 날 오전에 함께 교회당으로 향한다. 독일 교인들 중에는 평소에는 교회를 나오지 않다가 일 년에 두 번 부활절과 성탄절예배에만 참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성탄절에는 그 큰 교회당이 좁다고 느낄 정도로 교인들이 가득차고 활기 있어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런 활기를 반년 뒤 또는 일 년 뒤에나 다시 보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주일예배에 힘을 잃은 독일교회들이 침체되어 서서히 침몰해 가는 모습에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 한국교회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서구교회의 모습이다. 왜 어떻게 독일교인들이 주일예배를 잃어버리게 되었는지는 여기서 꼭 한번 다루도록 하겠다.
    • 오피니언
    2020-12-22
  • [독일이야기] 사회적 신뢰도
    올해는 좀 늦춰졌지만, 매년 11월이 되면 우리나라는 대입수능시험을 치르는데, 거의 국가적인 행사가 된다. 대학입시가 워낙 초미의 관심사다 보니, 시험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일이 생기면 사회적으로 아주 커다란 난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험출제자들도 은밀한 곳에 머물게 해서 문제 유출을 방지하고, 전국에서 같은 날 철저한 감독 하에 시험을 치르게 된다. 독일의 경우 우리와는 달라 모두가 함께 치르는 수능시험이나 또는 각 대학의 입학시험이 따로 없다. 인문계 고등학교인 김나지움 마지막 학년에 아비투어라는 졸업시험을 치르고 여기에 합격하면 누구나 대학을 갈 수 있다. 졸업시험이 일종의 대학입학자격시험인 셈이다. 독일대학은 대부분이 국립대학으로 미국이나 우리나라와 달리 평준화되어 있기 때문에 아비투어 합격생은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나라도 의대나 법대 또는 취업이 잘되는 인기학과는 학생들이 몰리기 때문에 입학정원이 있고 그래서 좋은 성적이 필요하다. 아비투어에서 1점(A학점)을 받은 학생은 그해에 자신이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지만, 성적이 안 좋으면 한해를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중요한 아비투어지만, 그 시험을 자기 학교에서 치른다. 시험문제도 그것을 가르친 과목담당교사가 출제하고 채점도 그 교사가 한다. 문제도 사지선다형이나 단답식이 아니라 논문식으로 출제되며 그러기에 아이들의 실력을 보다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 물론 교사들이 출제하고 채점한 모든 것을 교육부에서 감사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독일에 있는 동안 아비투어 채점에 부정이 있었다거나 학생이나 학부모가 결과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뉴스를 들은 적이 없다. 교사는 철저히 양심적으로 시행하고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사회는 그것을 믿어주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적용하기 쉽지 않은 시스템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그만큼 사회적인 신뢰도가 높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서로를 믿어주는 것이고 또 서로가 믿을 수 있게 양심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이처럼 서로를 믿는 만큼, 불필요한 시간과 재원을 쓸 필요가 없고, 보다 심도 있는 평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나라도 속이고 사기 치는 사람들, 비윤리적인 기업인이나 정치인도 있어 감옥에 가고 정계에서 퇴출되기도 한다. 그러나 거짓말을 좋아하지 않는 정직한 사람들이 많고, 자신의 자리에서 양심적으로 일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서로를 더 믿을 수 있는 것이다. 독일인들의 그러한 정직과 양심은 오랜 기독교신앙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윤리가 교회 울타리를 넘어서 사회 속에 녹아져 들어갔다. 교인들이 어떻게 교회에 잘 모이느냐도 중요하지만,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오랜 고민과 노력이 그 교회가 속한 사회를 좀 더 신뢰할 수 있는 사회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 오피니언
    2020-11-20
  • [독일이야기] 액자 마이스터의 자부심
    매년 이맘때가 되면 우리나라 대입 수험생들과 부모들은 초긴장상태에 돌입한다.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초등학교부터 교육의 첫 번째 목표는 좋은 대학, 좋은 과이다. 이것이 미래의 성공과 안정된 삶을 보장하는 행복의 최고 관문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문이 좁다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고, 아이들은 학교공부, 학원, 과외 이렇게 쉼 없이 달려야 한다. 1989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라는 영화가 나온 지 30년이 지났건만 우리는 여전히 행복이 성적순인 사회에서 살고 있다. 나는 오늘 이런 부분에서 우리와 다른 독일을 말하고 싶다. 그들은 이런 획일적인 가치가 아닌 다양한 가치를 키워주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4년제인 초등학교를 마치고 아이의 학력에 따라서 세 종류의 학교로 진급한다. 대학 공부를 할만한 능력이 있는 아이는 김나지움으로, 대학은 가지 않아도 조금 고급직업을 수행할 아이는 레알슐레, 공부에 자질이 없는 아이들은 하우프트슐레 등에 나눠서 보낸다. 이 결정은 담임선생이 하는데, 4년간 같은 아이들을 맡아서 관찰하기에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판단하고 부모들도 대체로 그것을 받아들인다. 언뜻 하우프트슐레 학생은 루저처럼 생각될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공부를 싫어하고 공부 능력이 안 되는 애들이 대학졸업까지 10년 넘게 책과 씨름하는 것 자체가 불행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 적성에 맞는 직업의 기술을 연마하고 이른 나이에 직장생활을 시작하므로 일하는 시간도 길어 연금도 많이 받게 된다. 내가 만난 하우프트슐레 출신의 독일인들을 중에 대학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등감이나 자괴심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독일은 마이스터(장인)제도가 있다. 대부분의 직종에서 경력과 실력을 쌓고 시험을 통과하면 마이스터가 되는데, 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할 뿐 아니라, 사회가 이들을 인정하고 존중해준다. 가령 미용사도 마이스터가 아니면 자기 미용실을 개업할 수 없다. 그래서 처음에는 미용실 직원으로 취직하여 일하면서 마이스터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준비한다. 한 독일교회 장로와 친하게 지냈는데, 클래식음악 매니아에다 늘 교양있게 처신해서 나는 그가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했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그의 집을 방문해서 알게 되었는데 그의 직업은 액자틀 만드는 일이었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싫어해서 하우프트슐레를 졸업한 후 이 직업을 갖게 되었고, 이 분야에서 마이스터가 되었다. 그는 공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전혀 없었고, 도리어 마이스터라는 것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나는 독일이라는 사회의 건강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 획일적인 가치로 비교당하지 않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 자신의 적성을 존중받고, 어떤 직업이든 그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살 수 있는 사회,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 이상에 욕심내지 않고 만족하면서 살 줄 아는 사회 그런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 오피니언
    2020-10-27
  • [독일이야기] 이야기를 시작하며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미국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우리는 늘 미국이 우리가 본받아야할 서양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미국이 보여준 혼란과 허술함은 그런 우리들의 생각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미국이 우리보다 못한 나라라는 의미가 아니라, 미국이 우리가 무조건 답습해야할 모범되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느 나라도 우리의 모범이 되는 나라는 없다. 우리가 배우고 본받아야할 것들이나 또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들이 있을 뿐이다. 나는 그중의 하나, 독일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다. 독일 이야기이다. 독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그곳에서 10년간 살았기 때문이다. 물론 10년의 삶이라고 해도 그 나라를 다 다녀본 것도 아니고, 그들의 삶을 다 경험한 것도 아니기에 독일에 대한 나의 지식에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경험하고 연구하고 생각한 독일에 대해서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먼저 독일과 연관된 나의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고3이 되던 새해 첫 날 목회자가 되겠다고 헌신하면서 신학을 위해 독일어과에 진학했고 이것이 훗날 독일에 가는 계기가 되었다. 1993년 가족들과 독일로 가서 도르트문트 제일교회를 목회하면서 보쿰대에서 신학박사과정을 시작했다. 2003년 학위를 마쳤고, 지금의 부산중앙교회로 부임하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독일에 많이 주목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우리와 함께 이념으로 분단된 국가였다가 통일을 이룬 나라이기 때문이다. 올해로 독일은 통일 30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어떻게 통일을 준비했고, 어떤 과정으로 통일을 이루었고, 통일 후에 동서독의 갈등을 어떻게 극복해 나갔는가를 아는 것이 우리의 통일문제를 이해하는데 필요하다. 그야말로 독일은 우리의 통일에 있어서 교과서는 아니지만, 매우 중요한 참고서가 되는 나라이다. 아울러 교회의 차원에서 볼 때에 독일은 개신교의 고향이다. 독일에는 그 이름 앞에 Lutherstadt (루터의 도시) 라고 붙은 도시들이 많이 있다. 루터가 태어나고 활동한 많은 도시들이 다 개신교의 유적지가 되어있다. 500년 개신교가 어떻게 발전했는가 하는 역사적인 연구뿐 아니라, 지금 독일교회는 어떤 모습일까 역시 우리가 충분히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분야이다. 배우고 본받아야 할 점도 있고 타산지석으로 여겨야 할 점도 있을 것이다. 아울러 독일은 세계 1,2차 대전의 주범이었고, 유대인을 600만명이나 학살하는 역사의 대 죄인이었다. 이렇게 매번 주변나라와 싸우던 독일은 2차 대전 후 참회의 길을 걸으면서 평화를 위한 각고의 노력을 해왔다. 이 모든 과정에서 교회는 어떤 역할을 했는가, 어떤 고민을 했는가도 우리가 관심 가져야할 분야일 것이다. 이런 무거운 주제 이외에도 이 독일이야기에서 평범한 독일의 일상, 독일 사람들의 사고방식, 그들의 문화, 환경정책, 난민정책 등등을 돌아보려고 한다.
    • 오피니언
    202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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